엘레노르 몰포(Helenor Morph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비로 꼽힌다. 신비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엘레노르 한 마리가 중남미 국가 파나마에서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로 날아왔다. 파나마는 나비의 나라이다. 파나마의 상징인 나비가 먼 길을 날아온 데는 사연이 있다. 실제 나비는 아니고 나비를 형상화한 3m 높이의 조각작품 ‘엘레노르’<사진>이다. 파나마의 여류작가 가브리엘라 바티스타(Gabriela Batista)의 작품인 ‘엘레노르’는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곤충관 앞에 세워졌다. 지난 10월 19일 가브리엘라 바티스타 작가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열렸다.

‘엘레노르’를 이곳까지 오게 한 것은 한국 유영호 작가의 작품 ‘그리팅맨’이다. 인사하는 푸른 거인 ‘그리팅맨’은 평화의 메신저이다. 유 작가는 자비를 들여 지구촌 곳곳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있다. 제1호는 2012년 우리나라의 정반대편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세워졌다. 15도 각도로 고개 숙인 동양식 인사에는 소통과 겸손, 화해와 용서의 뜻을 담고 있다. 이후 ‘그리팅맨’은 의미 있는 장소를 찾아 평화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파나마도 유 작가가 후보지로 꼽은 곳이었다. 파나마는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 북미와 남미가 접하는 곳이다. 유 작가는 만남과 소통의 장소인 파나마 측에 작품 기증의 뜻을 전했다. 파나마시티도 ‘그리팅맨’의 메시지를 환영하고 최고의 장소를 제공했다. 2016년 1월 파나마시티 차니스 로터리에 세워진 ‘그리팅맨’은 파나마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 작가의 작업에 감동을 받은 가브리엘라 바티스타 작가가 “그리팅맨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도 한국에 작품을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서울시에 전달해왔다.

‘엘레노르’ 제막식에 참석한 가브리엘라 바티스타 작가(왼쪽)와 유영호 작가.
‘엘레노르’ 제막식에 참석한 가브리엘라 바티스타 작가(왼쪽)와 유영호 작가.

그리팅맨에 화답한 파나마 나비 ‘엘레노르’의 여정은 2년 가까이 걸렸다. 바티스타는 제막식에서 “파나마의 대표 나비인 엘레노르가 상징하는 평화, 자유, 사랑의 메시지를 한국에 나누고 싶다. 이번 프로젝트는 나에게 놀라운 경험이다”라고 말하고 영감을 준 유영호 작가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번 제막식에는 호세 블란돈 파나마시티 시장, 루벤 아로세메나 발데스 주한 파나마대사까지 참석했다. 이번 작품 기증에 대한 파나마의 관심을 보여준다.

문제는 장소이다. 양국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작품을 서울시는 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세웠을까. ‘나비’를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이유라면 서울시의 상상력 빈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티스타 작가가 기증한 작품은 단순한 나비가 아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에 서 있는 작품은 마치 곤충관 안내판처럼 보인다.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는 간데없고 단지 곤충으로서의 몰포 나비만 남았다. 서울시 문화행정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나비의 날갯짓은 ‘그리팅맨’에서 시작됐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내보낸 관련 자료 어디에도 ‘그리팅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유영호 작가에게 제막식 초대장을 보낸 것은 정작 서울시가 아니라 주한 파나마대사관이었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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