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경외과 의사는 저를 붙잡고 한참을 하소연했습니다. “환자들이 제발 의사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왜 우리 말보다 블로그 글을 더 믿는지 모르겠어요.” 한 사학과 교수는 사람들 만나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본 글, 그럴듯하게 지어낸 야사(野史)를 근거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막상 그 분야를 30년 동안 연구한 제 얘기는 듣지 않아요.”

요즘 자주 듣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대중이 똑똑해졌다.’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듣기에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얘기인 것처럼 보입니다. 한때는 서로 협력해 이끌어내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인류의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처럼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독점한 정보를 바탕으로 권력에 아부하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며 사실을 교묘히 왜곡하는 전문가 집단은 이제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전문가의 부재 혹은 몰락이 긍정적인 결과만 낳은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 주간조선 커버스토리 ‘전문가를 인정 않는 사회’에도 썼습니다만 최근 들어 전문가가 없는 사회가 어떻게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논란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나 살충제 달걀, 이른바 ‘안아키스트’ 논란 같은 것들은 전문가와 일반 대중들 사이 불신의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 외에도 더 큰 문제들을 보여줍니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의사소통과 결정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더 많아질 겁니다. 사회는 점점 더 빨리, 더 어렵게 변해갈 겁니다. 개인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하기 힘든 상황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문가가 인정받는 사회는 권위적이거나 전근대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입니다.

지난주 기사에서는 왜 우리는 전문가를 불신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책임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다뤘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주변의 많은 전문가들이 보태고 싶다며 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지 못할 전문가도 있지만, 충분히 믿을 만한 전문가도 많다고요. 전문가만큼 알고 전문가 못지않은 판단을 내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믿을 만한 전문가를 찾고 전문가의 조언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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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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