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니콜로 마키아벨리. (우) ‘군주론’(1550년판).
(좌) 니콜로 마키아벨리. (우) ‘군주론’(1550년판).

정치는 오랫동안 철학이나 종교가 제시하는 도덕을 실행하는 하위 분야로 여겨졌다. 하지만 도덕은 욕망의 통제를 지향하고, 정치는 욕망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본질적 차이가 외면된 탓에 정치는 도덕의 옷자락 속에서 위선적으로 왜곡되기 일쑤였다. 더구나 정치의 기능이 점점 확대되면서 그러한 왜곡도 더욱 심화되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드디어 모든 분야에서 중세의 질곡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정치를 도덕과 종교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도발적인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Il Principe)’이다. 이 책은 통념상 지극히 ‘부도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1513년에 초고가 완성되었으나 필사본으로만 회람되었다. 출판은 그의 사후(1532년)에야 이루어졌다.

마키아벨리는 29세 때 피렌체 공화국의 관리로 임용되어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가 43세 때인 1512년 외세의 개입으로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가(家)에 의한 군주제가 부활하자 그는 공직에서 추방당했다. 더구나 이듬해 반(反)메디치가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까지 받았다. 다행히 사면이 이루어져 곧바로 석방되었다.

그는 피렌체 교외의 농장으로 물러나 오전에는 생업으로 노동을 했고 오후에는 술집에 가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진흙과 먼지가 묻은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옷으로 정장을 하고’ 서재로 들어가 하루 4시간씩 정열적으로 고전과 역사를 연구했다. ‘군주론’은 이러한 연구 과정의 산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것을 메디치가의 수장(首長)에게 바치고 공직을 얻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뜻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강력한 군주가 출현하여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를 통일해주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 그는 군주가 어떻게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가를 논했다. 그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와 자신의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군주상을 그려나갔다. 그에 따르면, 유능한 군주는 주어진 포르투나(fortuna)를 자신의 비르투(virtu)로 극복해야 한다.

‘포르투나’란 운명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고, 운명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행운이든 불운이든 주어진 운명이 있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군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비르투이다. ‘비르투’란 군주 개인의 역량, 능력, 적극적 자세 등을 가리킨다. 설사 포르투나로 군주가 되더라도 비르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권력을 지킬 수 없다. 포르투나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르투가 철학이나 종교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도덕적 자질 또는 덕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철학이나 종교는 이상적 세계에 대해 논의할 뿐 군주가 실제로 활동해야 하는 현실적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제공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덕한 것이 파멸을 가져오고, 악덕한 것이 생존과 번영을 가져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이상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느냐’란 커다란 괴리를 보인다. 따라서 군주가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 고집하다가는 권력을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결국 권력을 장악하고 포부를 펼치고자 하는 군주라면 도덕적 속박을 벗어버리고 현실적 이익에 따라 냉정하게 계산된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무릇 군주란 사랑과 두려움을 모두 받아야 좋지만 그중에 굳이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보다 두려움을 택해야 한다. 또한 군주는 약속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혼동시키는 데 능숙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우의 간교함과 사자의 용맹함을 겸비해야 한다. 그밖에도 징벌은 강하고 짧게 실행하고 시혜는 조금씩 오래 베풀라든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잔인한 폭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든지 하는 ‘부도덕한’ 충고가 잇따른다.

이러한 제안들은 자칫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오해로 말미암아 지금도 그의 사상은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 권모술수를 불사하라고 주장한 적이 결코 없다. 오히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군주라면 착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착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상황의 ‘불가피성’에 따라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여기서 ‘불가피성’이 ‘네체시타(necessita·영어 necessity)’이다. 유능한 군주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네체시타인지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따라서 군주에게는 이러한 실천적 숙고 능력, 즉 프루덴차(prudenzia·영어 prudence)가 필요한 것이다.

요컨대 유능한 군주라면 도덕에 속박되지 말고 다양한 현실적 선택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프루덴차를 발휘해 네체시타를 따져 보고 적절한 방안을 골라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때 목적은 당연히 공익(公益)을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나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대신 비르투를 통해 공적인 과업을 완수하는 유능한 군주의 모습이다.

이처럼 그가 이상적인 군주론을 강하게 피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론’ 다음으로 저술한 그의 또 다른 대표작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공화제를 다룬다. 이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는 공화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나는 내 영혼보다 피렌체 공화국을 더 사랑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은 강력한 군주제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군주의 안녕을 넘어, 국가의 안녕인 것이다.

그의 현실주의적 시각은 사회과학의 창설자인 막스 베버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베버는 ‘소명으로서 정치’에서 정치를 ‘악마의 힘과도 손을 잡는’ 일로 묘사하며, 정치인에게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조화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선한 동기에 관한 신념이고 후자는 유익한 결과에 관한 책임이다. 양자의 불일치 가능성이 바로 정치의 존재 이유이다.

역사상 탁월한 정치적 제안이 본래 의도와는 달리 오용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마키아벨리의 생각 역시 마키아벨리즘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이러한 오해는 그의 구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치현실 자체가 그만큼 모순적인 탓이다. ‘군주론’이야말로 그런 정치적 모순을 정면으로 돌파해 보려는 한 인간의 진한 고뇌로 이룩된 노작(勞作)인 것이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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