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오늘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감독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를 다루겠습니다.

배종옥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고흐는 1890년 프랑스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한 들판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지요. 이후 사흘을 앓다가 37세의 나이로 오베르의 라부여관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신용관 영화는 고흐의 죽음이 타살일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허구를 더한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러빙 빈센트’의 가장 큰 특징은 유화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입니다.

배종옥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고흐가 그린 인물화의 인물들과 작품 배경들이 스크린에서 동영상으로 움직이니 참으로 신기하더라고요.

신용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전 세계에서 지원한 4000여명 가운데 107명이 선발됐고 이들이 2년 동안 1009개의 장면과 움직임을 위해 6만2450여점의 유화를 그렸다고 하네요.

배종옥 저는 영화를 볼 땐 배우들이 목소리 더빙만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직접 연기를 했더군요.

신용관 감독들은 초상화 속 인물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배우를 찾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해요. 캐스팅된 배우들은 그린스크린(green screen) 앞에서 연기를 했고, 영화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유화 화가들이 촬영된 영상을 기초로 고흐 특유의 역동적인 붓터치를 더해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과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배종옥 제가 마침 2년 전에 오베르를 방문했었습니다. 파리에서 차로 1시간가량 걸렸던 기억이네요. 고흐 무덤도 가보고요. 실제로 보면 고흐가 사망한 여관방이 너무 조그마해서 애잔한 느낌이 들더군요. 생전에 작품을 얼마 못 팔았다고 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공감이 많이 됩니다. 오베르가 바람이 많고 꽤 을씨년스러운데, 그런 오베르의 모습이 영화에서 실감나게 묘사돼 있었습니다.

신용관 영화의 오프닝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고흐의 작품 3개를 이용해서 만들었더군요. 가장 유명한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의 일렁이는 구름과 별의 장면으로 시작해 어두운 밤의 배경이 된 ‘아를의 노란 집’을 지나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에 담긴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어집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를 위해 모두 729장의 유화가 사용됐으며 1년의 제작기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배종옥 영화가 미스터리 요소를 차용한 것은 아주 영리한 선택이라고 봐요. 안 그랬다면 그냥 평면적인 전기가 됐겠지요. 영화는 고흐(로버트 굴라직)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편집배원인 아버지 조셉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의 아들 아르망 룰랭(더글러스 부스)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르망은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동생 테오에게 전달하고자 생전 고흐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고흐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되지요.

신용관 그 계기 중의 하나는 빈센트 반 고흐가 “내가 나를 쐈으니 그 누구도 찾을 필요가 없소”라고 한 말이지요. 듣기에 따라서는 범인을 감싸려는 말처럼 들릴 수가 있으니까요.

배종옥 아르망은 빈센트를 후원했던 미술 재료상인 탕기 영감과 빈센트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라부여관의 주인집 딸 아들린 라부(엘리너 톰린슨), 빈센트의 후원자이자 의사인 폴 가셰 박사(제롬 플린), 가셰의 딸이자 빈센트를 그리워하는 여인 마르그리트(시얼샤 로넌) 등을 만나 인간 빈센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지요.

신용관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고흐의 대표작인 초상화 ‘탕기 영감의 초상’ ‘라부양의 초상’ ‘가셰 박사의 초상’ ‘피아노에 앉은 가셰의 딸’ 등을 확인하게 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고흐의 작품이 90여점이나 되니 고흐 애호가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이지 싶습니다.

배종옥 주변 인물들의 입을 통해 고흐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해주는 게 좋았어요. 고흐가 나이스하고 젠틀한 사람이었다는 말도 그렇고,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특별한 감성의 소유자였다”는 탕기 영감의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신용관 하긴 직장인처럼 규칙적으로 아침에 나가 오후 정해진 시간까지 작업하고 들어왔다는 발언은 의외였습니다.

배종옥 일반적으로 예술가라고 하면 밤새워 작업하고 자유분방하게 생활할 것 같지만 의외로 정해진 틀 속에서 철저하고 치밀하게 작업하는 이들이 많은 듯해요. 그런데 가셰 박사는 고흐가 형처럼 의지하고 따른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좀 다르게 표현된 거 같아요.

신용관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겠지요. 고흐가 겪은 극적인 사건들 몇몇은 제작진이 상상력으로 메웠습니다. 또한 고흐의 작품에 표현되지 않았던 삶도 그려야 했는데 제작진은 그 장면들을 플래시백 형식을 차용, 흑백으로 보여줬지요. 이 영화는 고흐가 고갱과 싸우고 귀를 자른 에피소드를 앞부분에 배치했습니다.

배종옥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 원인 중의 하나로 고갱과의 갈등과 결별도 포함되지 않겠냐는 뜻이었던 거 같아요. 고갱이 고흐를 늘 한 수 아래로 내려다봤다고 하는데, 귀까지 자르는 건 뭣하지만 저는 고흐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돼요. 자기는 이 그림이 맞는 거 같은데, 사람들은 다 아니라고 하니 미칠 노릇이지요. 연기도 마찬가지지요. 나는 이게 맞는 거 같은데 모두들 아니라고 한다면….

신용관 사실 이 영화는 워낙 형식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고흐의 작품이 곧 영화고, 영화가 곧 고흐의 작품”인 셈이지요. 고흐 특유의 물결 치는 유화의 붓터치 때문에 저로선 시각적 피로를 느낀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배종옥 저는 보다 보니 익숙해지던데요. 아이디어가 참 좋았지요. 러닝타임 95분 동안 고흐의 그림 속에 있다가 나온 느낌입니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모든 가능성을 마치 추리소설처럼 하나씩 추적해 나가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신용관 제 별표는 ★★★. 한 줄 정리는 “고흐의 작품들이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놀라움”.

배종옥 저는 ★★★★. “인간적인 고흐를 만나게 됐다.”

신용관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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