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85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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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국제 카잔자키스 친구들’ 요르고스 스타시나키스 회장

“조르바는 마초? 한국인의 오해”

▲ 요르고스 스타시나키스 국제 카잔자키스 친구들 회장(오른쪽)과 유재원 한국외대 교수.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가끔은 조르바 같은 친구가 그립다. 매일 새로 태어난 듯 사는 사람,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 영혼을 팽개친다’며 식사를 강권하는 사람, 죽은 애인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주는 사람.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그 조르바 말이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올해는 카잔자키스 서거 60주기를 맞는 해다. 그는 1883년 크레타섬에서 태어났다. 아테네와 파리에서 공부했다. 사업가, 장관, 작가, 신문특파원으로 전 세계를 누볐다. 평생 가난하게 살다 환갑 즈음에 발표한 ‘그리스인 조르바’(이하 ‘조르바’)로 경제적 여유를 얻었다.
   
   그의 궤적만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매년 모여 카잔자키스 문학을 논한다. ‘국제 카잔자키스 친구들’ 모임이다. 올해는 60주기를 맞아 12월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컨퍼런스를 열었다. 지난 11월 29일 서울 회현동의 한 호텔에서 요르고스 스타시나키스(77) ‘국제 카잔자키스 친구들’(이하 ‘친구들’) 회장을 만났다. 베이징으로 가기 전 한국에 들른 터였다. 유재원 한국외대 그리스·불가리아학과 교수가 함께했다. 한국그리스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유 교수는 한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카잔자키스 전문가다.
   
   ‘친구들’은 1988년 설립됐다. 왜 ‘친구들’이란 명칭을 붙였는지 궁금했다. 스타시나키스씨의 설명이다. “친구로서 모이는 거지, 이권과 연관이 없다는 뜻이다. 크레타에 카잔자키스박물관이 있다. 우리와 관련이 없다. 작품 판권도 카잔자키스 후손이 갖고 있다. 128개국 지부의 8500명 회원들이 순수하게 카잔자키스 문학을 논한다.”
   
   중국에서 행사가 열리는 이유는 뭘까. “전 세계를 유랑했던 카잔자키스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중국이다. 1957년 당시 아시아독감이 유행했다. 중국 방문 후 귀국길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독일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리스 태생의 스타시나키스씨는 파리에서 법률과 정치를 공부한 후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에서 33년간 일했다. 그리스인이지만 어릴 땐 카잔자키스를 몰랐다. “가톨릭 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신부님이 카잔자키스의 소설을 금서로 정했다. 한 편도 읽을 수 없었다. 1960년 파리로 유학 가서야 카잔자키스 작품을 접했다. 반했다. 1968년에 카잔자키스의 부인 엘레나씨를 알게 됐다. 모임을 만들어 보라고 권하더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궁금했다. “역시 ‘조르바’다. 역사와 우정, 종교, 사랑, 부처, 크레타,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자유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조르바’를 쓸 때 작가는 가택연금 상태였다. 너무 가난해 친구들이 가져다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조르바의 실제 인물 ‘요르고스 조르바’는 크레타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실제 조르바와 작가가 탄광사업을 한 곳은 펠로폰네소스 남부의 ‘마니’ 지역이다.
   
   
▲ 스타시나키스씨가 쓴 책 ‘카잔자키스와 조르바, 진정한 우정’(왼쪽), 국제 카잔자키스 친구들에서 발행하는 잡지 ‘크레타의 시선’.

   카잔자키스 파문은 사실 무근
   
   소설에서 조르바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늘어놓는다.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싶어 걸리는 부분도 있다. ‘여자가 인간입니까?’ 같은 부분이다. 스타시나키스씨의 생각을 물었다. “오해다. 조르바는 여성을 존중했다.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조르바의 손녀딸과 증손자를 직접 만났다. 얘기를 들어 보니, 조르바가 여성한테 굉장히 잘했단다. 오해가 퍼진 데는 영화 탓이 크다.”
   
   스타시나키스씨는 특히 앤서니 퀸이 조르바를 연기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못마땅해 했다. “그 영화는 정말 별로였다. 사실 관계도 바꿨다. 조르바가 연주한 악기는 산투르인데 부주키로 바꿔놨다. 해변에서 조르바가 추는 춤도 종류가 다른 춤이다.”
   
   유재원 교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마담 오르탄스가 죽는 장면을 봐라. 웬만한 남자는 조르바처럼 못 한다. 마담 오르탄스가 죽은 후 조르바는 그녀가 오랫동안 기르던 앵무새장을 들고 나온다. 소중히 들고 수도사에게 맡기지 않나. 그리스식 시선으로 보면 앵무새는 마담 오르탄스의 영혼을 뜻한다. 조르바가 마담 오르탄스를 노리개로 대하지 않았단 얘기다. 지금까지의 번역본이 그리스 문화와 역사를 세심히 살피지 못해 일어난 오해다.”
   
   유 교수는 마침 ‘조르바’ 번역을 마친 참이었다. 최초로 원서를 완역했다. 지금까지 한국에 출판된 ‘조르바’는 모두 중역이다. 그것도 2개의 언어를 경유해 번역했다. 그리스 원서를 프랑스어로 옮기고, 이걸 다시 영어로 옮겼다. 이 영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 ‘한국의 조르바’다. 유 교수의 설명이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어는 그리스인들에게조차 힘들 정도다. 영어나 프랑스어판으로 읽는 그리스인도 있을 정도다. 크레타 방언뿐 아니라 목동이나 농부, 장사꾼들의 독특한 말버릇, 은어, 비속어들이 등장한다. 그리스어 사전에도 안 나오는 말들이다. 민중의 언어로 글을 써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번역을 거치며 미묘한 언어적 차이가 사라졌다. 표준 영어로 번역되니 오히려 읽기 쉬워졌단 얘기다.” 유 교수가 번역한 완역본은 내년 초쯤 만날 수 있다.
   
   스타시나키스씨와 유 교수는 마치 친한 친구가 오해받는 것이 안타까워 안달 난 친구들 같았다. 유 교수의 말이다. “유독 한국에서 카잔자키스가 잘못 알려져 있다. 그리스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했다고들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과 믿음, 교회와 개인의 관계를 가장 진지하게 고뇌한 작가였다.” 왜 다른 소설가도 아니고 카잔자키스였는지 스타시나키스씨에게 물었다. “세상엔 세 종류의 소설이 있다. 첫째, 슈퍼마켓용 소설이다. 뿌리 없이 깃털 같은 소설이다. 유행하는 대로 쓴 소설. 둘째,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 뿌리내리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와 작품이 지엽적인 한계를 넘어설 때 세 번째 종류의 소설이 탄생한다. 나에겐 카잔자키스가 그렇다.”
   
   유 교수는 “카잔자키스는 수도사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가난했다. 신문사에서 기행문 쓰라고 의뢰받아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다. 나중엔 각국 정부에서 초청을 받아 방문했다. 단벌신사에 채식주의자였다. 오롯이 쓰고 생각하고, 쓰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친교도 즐기지 않았다. 파리 유학 시절 하숙집 주인이 ‘저 사람은 필시 이상한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누굴 만나지도 않고 방에서 안 나오니 말이다.”
   
   스타시나키스씨는 “카잔자키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편견 속에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땐 유럽이 최고고, 다른 지역과 민족은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준 게 카잔자키스다. 여러 사상을 거쳤지만 그의 최종 종착지는 자유, 자유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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