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오늘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감독 케네스 브래너)을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배종옥 1974년에 이미 영화로 나왔었지요. 잉그리드 버그만, 숀 코너리, 알버트 피니 등 당대의 인기 배우들이 등장했었습니다.

신용관 이번에 개봉한 영화도 호화 캐스팅이 화제입니다.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 미셸 파이퍼, 주디 덴치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주인공인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 역과 연출을 동시에 맡은 케네스 브래너 또한 ‘헨리 5세’(1989)로 아카데미 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연기파 배우입니다.

배종옥 쟁쟁한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요. 감독이 연기자이니 동료 배우들 섭외하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신용관 1934년 유명 탐정 포와로는 사건 의뢰를 받고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탑승합니다. 눈사태로 열차가 멈춰선 밤, 승객 중 하나인 사업가 라쳇(조니 뎁)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지요. 기차 안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인데, 13명의 용의자는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습니다.

배종옥 포와로는 현장에 남겨진 단서와 용의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하지요. 저는 이 영화의 추리적 요소보다 드라마적 요소가 더 재미있었어요.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이런 스토리 라인을 무시하는 게 덕성인 듯한 분위기가 있는데, 저는 이 영화의 전개 방식이 반가웠어요.

신용관 열차는 어땠습니까. 영화의 주된 무대이고 제작진이 작심하고 만든 흔적이 역력했습니다만.

배종옥 제 눈에는 너무 세트처럼 보이던데요. 특급열차임을 감안해도 열차가 너무 넓고요. 현실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신용관 초반부 열차가 이스탄불 기차역을 출발하는 장면은 매우 역동적이었습니다.

배종옥 여러 등장인물들이 오가며 열차에 탑승하는 모습을 힘있게 잘 찍었더군요. 특히 열차 안 복도로 이동하는 인물을 객차 바깥쪽에서 따라가며 찍은 트래킹쇼트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용관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 포와로가 탐문을 통해 추리를 펼치는 부분이 다소 약하게 느껴지지 않던가요?

배종옥 그래도 지금처럼 CCTV 화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한 사람의 추리력으로만 해결해간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CSI수사대’에서처럼 팀이나 조직으로 협업하는 것도 아니고요.

신용관 밀폐된 공간이 주는 흥분감과 재미를 잘 이용한 영화인 듯합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직후를 비롯해 몇몇 군데에서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앵글을 사용한 건 어땠습니까?

배종옥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카메라 앵글이지요. 저로선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신용관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겸하고 있는데요.

배종옥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몰입하고 그 역할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연출까지 무난하게 소화했으니 대단한 일이지요.

신용관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습니까?

배종옥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러웠어요. 특히 조니 뎁은 짧게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미셸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대포 등 연륜 있는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배우들도 좋았습니다.

신용관 일급 배우들을 엑스트라 취급한 거 아니냐는 불만도 일부에서 나옵니다만.

배종옥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앤디 가르시아 등이 나온 ‘오션스 일레븐’(감독 스티븐 소더버그·2001)도 마찬가지였지만, 각각 배우들의 분량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걸 얼마나 잘 엮어내느냐가 관건인데,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요령껏 잘 소화했다고 봅니다.

신용관 그래도 13명이나 되는 용의자들에 대한 정보가 친절하게 전달되지 않았고, 관객의 입장에서 다소 정신이 없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배종옥 원작 소설이 존재하고, 이전에도 영화로 만들어졌던 바가 있어 일부러 스피디하게 진행하려 했던 거 같아요.

신용관 무엇보다도 오리엔트 특급열차 안에서 벌어진 살인을 ‘암스트롱 사건’이라는 과거의 사건과 연결시키는 부분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습니다.

배종옥 동감입니다. 감독도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요.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신용관 캐릭터들 내면의 고통에 관객들이 공감하게 만드는 쪽에 방점을 두고 만든 듯합니다.

배종옥 요즘 영화들이 범인을 잡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상처받은 영혼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어요. 살해당한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는 거잖아요. 그런 걸 감싸안으려는 포와로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이 강조된 것 같습니다.

신용관 워낙 유명한 원작이고 TV 드라마로도 제작된 내용이니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관객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배종옥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스토리를 알고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도 실망하지 않게끔 영화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과연 성공적이었는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신용관 이 영화의 흥행 호조에 힘입어 후속편인 ‘나일강의 죽음’을 제작한다고 합니다. 이 작품 또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베스트셀러이고 케네스 브래너가 탐정 포와로 역으로 주연 및 연출을 다시 맡는다고 하네요.

배종옥 속편에선 ‘순수의 시대’(감독 마틴 스콜세지·1993)나 ‘제인 에어’(감독 캐리 후쿠나가·2011) 같은 잘 만든 시대극 분위기를 담았으면 하네요.

신용관 제 별점은 ★★★. 한 줄 정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면 실망스러울 확률이 높은 영화”.

배종옥 저는 ★★★☆. “화려한 영상과 따뜻한 인간미”.

신용관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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