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바깥의 찬 기운과 집안의 따뜻한 기운 때문에 생긴 습기로 창문이 뿌옇다. 그래서 햇살이 어슴푸레하다. 겨울이다. 어릴 적 나는 겨울방학만 되면 외할머니댁에 가곤 했다.

외할머니는 벌써 일어나 계신다. 방에는 어젯밤 피운 화로에 온기가 여전하다. 일어나야 하는데…. 바닥이 자글자글하니 일어나기가 싫다. 그냥 이렇게 등 붙이고 있고 싶다. 뒹굴뒹굴하며 게으름을 맘껏 부리고 있는데 소리가 들린다. 달그락달그락. 외할머니가 부엌에서 뭔가를 하시나 보다.

옷을 덧입고 용기 내 부엌으로 나가 봤다. 큰솥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할머니, 뭐예요?”라는 말과 동시에 할머니가 솥뚜껑을 여셨다. 뽀얀 김이 확 올라와 가라앉자 감자떡과 고구마가 반들반들 윤기 내며 쪄지는 것이 보인다. “우왕~ 맛있겠다.” 입맛을 다시고 서 있는데 할머니가 물으신다. “아가야, 배고프냐? 잠깐만 기다려라. 내 김치 좀 가져오마. 이건 김치랑 먹어야 제맛이다.” 목에 수건을 하나 감싸고 큰 스테인리스 그릇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신다. 가을에 파놓은 구덩이에 넣어둔 김치. 늦가을 할머니는 그리 구부러진 허리로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김치를 독에다 하염없이 밀어넣어 두었다. 그 김치를 내오시려는 거다.

외할머니는 솜씨가 참 좋으셨다. 대가족을 거느리고 할아버지 손님들을 늘 대접하다 보니 손이 크셨다. 웬만한 걸 집에서 다 만드셨다. 집 앞 뜰에는 각종 꽃들을 키우셨고, 뒷마당에는 파를 심으셨고, 언덕 위 밭에는 고구마, 감자, 대추, 고추 등 갖은 야채와 밤나무, 사과나무를 튼실하게 잘 키워내셨다. 할머니의 손에선 모든 게 다 살아나고 열매를 맺었다. 어린 나에게 할머니는 신(神) 같은 존재였다.

할머니의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었던가. 그 가운데도 겨울에 먹는 김장김치 맛은 더할 나위 없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마당 한쪽에 묻어둔 독 안에서 갓 꺼내온 김치. 살짝 언 듯 첫 입에 서걱함이 느껴지는 김치는 정말 겨울에 제격이었다. 따끈하게 쪄낸 감자떡과 고구마에 할머니 손으로 찢어 올려주신 김치는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달고도 짭짤하고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이 대조적인 맛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음식에서 이런 대조적인 효과를 종종 맛본다. 쓴 커피에 달디 단 케이크도 그렇다. 처음엔 단맛을 죽이는 듯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단맛과 쓴맛 양쪽을 모두 강하고 또렷하게 느끼게 한다. 김치를 얹어 먹은 고구마도 그렇다. 그 어느 것도 달지 않은 고구마가 없었던 듯하다. 고구마는 더 달았고, 김치의 짭조름한 깊은 맛은 더 부각됐다. 정신줄 놓고 먹다 보면 안에서 뭐가 물컹 씹힌다. “할머니, 이거 뭐예요?” 볼이 터져나갈 듯 고구마와 김치를 가득 입에 물고 질문해도 할머니는 용케 알아들으신다. “아가, 꼭꼭 씹어 먹어둬라. 그게 약간 말린 생선인데 이제 김치랑 같이 삭아서 더 맛있제?” 반건조 생선과 굴이 사이사이 든 김치는 흉내 내기 힘든 깊은 맛이 있었다.

겨울방학이 끝나 할머니집에서 돌아올 즈음 외할머니는 김장김치를 들려보내곤 하셨다. 마당 독에서 포기김치를 꺼내고 또 꺼내 통에 한 가득 담아주시면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도 나의 외할머니 김치 사랑은 계속됐다. 김이 오르는 하얀 쌀밥에 손으로 죽 찢은 김치 한 쪽만 있으면 국도, 반찬도 다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할머니 김치가 다 떨어진 날이면 산해진미가 널려 있어도 왠지 서운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반찬 투정 좀 그만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 김치 맛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덧 내가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음식이란 게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없이 주고픈 마음, 한없이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음식이라는 것을 알겠다. 외할머니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를 위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걸 해주시려는 마음. 그래서 힘든 몸을 이끌고 갖은 채소들을 밭에서 정성스레 키우고, 그걸로 음식을 만들어 가장 맛있을 때 내게 건네주셨던 것이었구나 싶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삶이 힘들고 마음이 춥고 혼자인 게 외롭고 지치는 날이면, 나는 할머니의 그 음식들이 무척이나 그립다. 내 인생의 소울푸드가…. 아마 한없는, 끝없는 사랑이 고파서인가 보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 때문이다. 나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찌개를 끓이고, 계란찜을 하고, 생선을 굽는다. 그들이 음식으로 배만 채우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사랑까지 먹으며 영혼도 채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 밥 주세요.”

“여보, 오늘은 뭐 해놨어?”

저녁 밥상으로 모여드는 그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 행복해진다.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만든 피로가 싹 가신다.

“자, 우리 따끈할 때 먹읍시다.”

따스한 밥을 한 숟가락 뜨면서 나는 오늘도 외할머니를 생각하고 있다. 먼 훗날 나의 음식들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기억에 잊을 수 없는 소울푸드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정용실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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