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문호(大文豪) 에밀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내가 취한 행동은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서두르기 위한 혁명적 조치입니다.”

‘나는 고발한다’는 드레퓌스 사건 재판의 부당성과 함께 군부·종교계의 거짓을 고발한 명문(名文)입니다. 주간조선 2486호에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 단독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진실’ ‘역사’란 말을 자주한 김은성씨의 폭로도 거짓에 맞선 ‘혁명적 조치’가 아니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에밀 졸라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교류 범위도 넓었지만 김은성씨는 아닙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제게 “앞으로 자주 와. 이런저런 얘기 같이 해”라고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그는 많이 외롭습니다. 오른쪽 무릎 연골이 다쳐 거동이 불편한 그는 치료차 병원에 가는 것 외엔 외출을 못 합니다. 아침 일찍 부인이 일을 하러 나가면, 고독과 긴 싸움을 벌입니다. 지난날의 고통도 엄습합니다. 세상을 뜬 셋째 딸, 차가운 구치소 바닥…. 가슴에 드리운 상처를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 독서에 몰입하고 찬송가를 듣지만 쉽지 않나 봅니다. 그의 기사가 실린 ‘주간조선’이 나오자마자 다시 김은성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와 자정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번의 인터뷰까지 합하면 총 16시간가량 대화를 나눈 셈입니다. 권력에 근접했던 취재원이 확신에 찬 어조로, 정확하게 증언하니 기자로서 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김은성씨와 저는 39살의 나이 차가 있지만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평소 권력 비사(秘史)에 흥미를 갖고 있던 터라 그에게 이런저런 인물에 대해 물으면 “아, 그 친구?”라며 그 사람과 얽힌 내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습니다. 정보기관에 오래 몸담아왔기 때문에 수많은 정치인들의 소소한 취미까지도 꿰뚫고 있었습니다. 막힘없이 답하는 그를 보며 ‘이분 자체가 역사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구속되었지만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정치적 선입견을 갖고 인터뷰에 임했다면, 그의 증언을 기사화하는 데 주저했을 것입니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으면서 객관적 시각을 견지한 김은성씨는 ‘역사의 증인’ 자격이 충분합니다. 역사의 증인은 올바른 역사를 후대(後代)에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김은성씨 같은 인물이 쓴 회고록은 훗날 정치인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고, 그 자체로도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김은성씨 인터뷰는 또 다른 역사를 알리는 서막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지금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영구미제’를 꿈꾸며 침묵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그들에게 시효가 만료되도록 허락지 않을 것입니다. ‘제2의 김은성’ 또는 ‘용기와 끈질김으로 무장한 기자’들에 의해 진실이 밝혀질 날을 고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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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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