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메뉴 반반삼치
대표메뉴 반반삼치

맛의 추억은 잊히지 않는 법! 인천에서 청춘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푸짐한 삼치구이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며 풀어내던 젊은 날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인천시 동인천역 인근 밤늦도록 생선 굽는 냄새가 퍼져나가는 삼치거리는 옛 추억을 찾아온 단골들과 이제 막 추억을 쌓아가는 젊은이들의 소박한 정겨움이 가득하다.

좁다란 골목에 올망졸망 붙어 있는 삼치구이집들. 기본 삼치구이 가격은 어느 집이나 6000원이다. 서민의 거리인 만큼 500원 올리는 데 5년은 족히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 간판엔 원조라는 문구가 없다. 다른 음식점 골목에서 흔하게 보던 호객 행위도 일절 없고 어느 방송에 나왔다는 매스컴 광고 하나 안 보인다. 이곳의 터줏대감 ‘인천집’의 주인장 김범년(59)씨는 모두 ‘더불어 살자’라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지켜온 이 골목만의 전통이라고 말한다.

이곳엔 원래 막걸리를 숙성하는 양조장이 있었는데 안주 없이 막걸리만 먹는 노동자들을 딱하게 여기던 노부부가 부두의 값싼 삼치를 가져다 구워 팔았던 데서 이 골목이 비롯되었다. 하나둘 삼치구이집이 모여들어 삼치거리를 형성하자 주머니가 가벼워도 언제든 삼치구이에 막걸리 한잔 할 수 있는 푸근하고 정감 있는 곳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삼치구이집이 일렁였지만 지금은 십수개의 삼치구이 전문점이 운영 중이다.

그중에 ‘인천집’은 국내산 삼치를 이용해 트렌디하면서도 원칙을 지켜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범년씨는 이곳에서 삼치구이를 팔던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1970년대 초반 김재현(작고)씨가 인천집을 창업한 이래 30년간 명성을 날려왔지만 아들인 범년씨가 대물림받을 2000년대 초반엔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원도심이었던 이곳이 쇠락하던 때라 장사도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고심하던 그는 동인천 삼치구이거리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음식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국내산 선동삼치를 가장 먼저 식탁에 올리고 젊은층을 겨냥한 신메뉴를 선보였다.

“국산 삼치는 구우면 더 고소한 맛이 나요. 굽기 전에 막걸리에 담가 숙성시키면 비린내가 사라지고 육질에 탄력이 생기지요.”

‘몽삼치’라고 불리는 수입 삼치는 머리와 꼬리를 자른 몸통이 몽둥이처럼 크긴 하지만 살맛이 퍽퍽하다. “몽둥이 삼치는 어르신들이 옛 추억의 맛으로 떠올리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국내산 삼치를 더 선호한다”는 그는 ‘질보다 양’을 우선시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맛’으로 승부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대표 김범년씨
대표 김범년씨

‘인천집 동동주’와 찰떡궁합

이 골목의 인기 메뉴인 ‘반반삼치’도 그가 처음 개발한 메뉴다.

“반반치킨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삼치 한 마리를 펼쳐서 구운 다음 반쪽에만 직접 개발한 소스를 뿌려 냈다. 매콤달달한 양념 소스와 담백한 구이 두 가지 맛을 두루 맛볼 수 있는 반반삼치는 대히트를 쳐서 어느새 이 골목의 대표메뉴가 되었다.

삼치는 다른 생선에 비해 기름기가 적어 구우면 살이 퍽퍽해진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동안 삼치를 반쯤 구운 뒤 튀겨냈었다. 중국집을 운영하던 조리사 출신으로 요리 지식이 해박한 그는 이왕이면 더 건강하고 촉촉한 삼치구이를 열망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연구한 끝에 최근 고가의 스팀오븐을 들였다. 올리브오일을 듬뿍 발라 스팀오븐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촉촉한 삼치구이! ‘반반삼치’처럼 이 골목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을지 그의 기대가 크다.

주문을 하면 우선 단무지와 김치, 마요네즈에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가 반찬으로 나온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메인이 나오길 기다리며 먹기에 하나하나 아삭하니 신선하고 맛있다. 드디어 나온 반반삼치! 먼저 양념을 바르지 않은 부분의 뽀얀 속살 맛을 보면 비리지 않고 담백하며 간이 슴슴하다. 주인장이 개발한 산뜻한 고추장아찌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참 오묘하다. 천천히 음미해 보면 삼치도 부위별로 다른 맛이 난다. 등쪽 살은 탄력이 있고 여린 닭가슴살 맛이 난다면, 뱃살 부분은 기름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스팀오븐의 위력일까? 속살이 전체적으로 꽤나 촉촉한 편. 나머지 반쪽을 덮은 빨간 양념은 굉장히 매워 보이지만 살짝 매콤하고 약간 달달한 편으로 담백한 삼치구이와 잘 어우러진다.

간단하게 한잔하러 온 이들은 삼치구이나 반반삼치만으로도 충분하다. 식사를 겸해 푸짐하게 맛보고 싶은 이들은 반반삼치와 달걀말이, 파전이 한 번에 나오는 ‘인천집 코스’를 주문하면 좋다.

삼치거리라고 삼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척에 포구가 있는 만큼 삼치는 물론 고등어, 가자미, 갈치 등 다양한 생선도 함께 맛볼 수 있고 뜨끈한 탕과 전 종류도 준비해 두었다.

김범년씨는 인천막걸리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인천막걸리인 ‘소성주’를 주로 판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가게 자리가 바로 소성주의 원조 격인 대아막걸리를 숙성하던 곳이었어요.” 쌀알 동동 떠 있는 ‘인천집 동동주’도 인기다. 특별히 맞춰온 이 집 동동주는 달달하고 차게 준비해 삼치구이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인천집’ 문은 오후 2시가 되어야 열린다. 낮 시간에도 손님이 간간이 오긴 하지만 날이 어스름하게 저물고 하나둘 불빛이 켜질 무렵에야 비로소 막걸리 한잔하기 좋은 선술집 분위기가 된다. 예전에는 어르신이나 중년손님이 많았지만 3~4년 전부터 손님층이 한결 젊어졌다. 인터넷으로 유명해지면서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이 늘었다. 요즘엔 아파트에서 생선을 굽기가 어려워 가족 단위로도 많이 찾는다. 조용히 모임을 갖고 싶은 단체손님을 위해 안쪽에 전직 대통령 이름을 붙인 방을 준비해두고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정감 어린 분위기의 ‘인천집’엔 오래된 물건이 많다. 그중엔 손님이 쓰던 것을 가져다준 것도 꽤 있다. 가게 내부를 채운 손때 묻은 장식품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추억들이다.

“이렇게 정을 주고받으며 장사하는 게 적성에 딱 맞아요.”

김범년씨는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오는 ‘내 먹는 건 팔고, 먹지 않는 건 팔지 않는다’는 철학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그 정신을 큰딸 김유미(31)씨와 사위 장진혁(28)씨가 다시 이어가고 있다. “저 어릴 땐 동인천 삼치거리 일대가 더 북적북적했어요. 이 지역을 살리면서 우리 집도 함께 커가고 싶어요.”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젊은 그들에게서 인천집의 희망이 보였다.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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