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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인생의 소울푸드] 플라자호텔 김영철 대표의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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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489호]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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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소울푸드]플라자호텔 김영철 대표의 집밥

엄마가 읍내 장에 다녀오는 날에는

김영철  플라자호텔 대표 

2018년은 호텔 업계에 종사한 지 32년째 되는 해다. 돌아보면 호텔 업계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2010년 G20정상회담 등의 국가적 행사를 기점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보였다. 또한 2015년 시행된 관광진흥법에 따른 호텔 건축 규제 완화에 따라 호텔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양적 성장을 보였고, 외국인의 경우에도 비즈니스·관광 등을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수가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다. 개발도상국이었던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가 되는 과정을 업계 종사자로서 지켜보며 민간 외교관의 자세로 큰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수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식’을 많이 얘기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은 가장 발전이 더딘 콘텐츠 중 하나인 듯하다. 단품(單品)으로 식사하는 서양의 식문화와 달리 밥·국·찬 등을 함께 먹는 동양의 식문화 차이를 먼저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보는 한식은 다양한 색감과 맛으로 보는 재미는 물론 골라 먹는 재미까지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 아니라 발효식품을 식재료로 사용해 건강식으로도 손색없다. 우리 주변에 있는 친숙한 식재료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든 각종 장류(醬類)를 활용하여 만든 한식이야말로 이 땅의 자연과 세월이 빚어낸 미미(美味)의 절정이 아닐까.
   
   내 고향은 경북 상주이다. 어린 시절 시골 출신이 모두 그런 것처럼 나도 산과 들과 내를 놀이터 삼아 뛰어놀곤 했다. 한창 놀다가 배가 고프면 어머니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밥이나 간식거리를 먹고 다시 놀러 나가곤 했다. 어머니는, 옛 어른들의 말씀으로 손맛이 참 좋은 그런 분이었다. 흔히 말하는 종갓집 음식으로 식사 때마다 찬의 종류가 참 다양하였다. 그래서인지 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시고는 찬을 만들 재료를 사기 위해 읍내로 나가곤 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가 5일장과 읍내 구경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장에서 사온 재료를 두 손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상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많은 찬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어머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어린 나는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곤 했다. 하지만 한식은 집밥이라는 인식이 강해 어머니의 음식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런 아쉬움이 오래 지속됐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가 그 시절에 다소 생소하기도 했던 호텔학과를 선뜻 선택했고, 현재까지 호텔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래전부터 레스토랑의 운영·관리 업무를 해오며 어머니의 손맛 좋은 음식, 즉 한식을 어떻게 고객에게 선보일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양식을 한식에 접목하는 퓨전한식부터 양식의 표현 방식으로 한식을 만든 모던한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고객에게 선보이며 느낀 게 많았다. 그 느낌을 요약하면 이렇다. ‘단순히 한식이라는 장르만을 가지고 고객들이 무조건 좋아하게 만드는 부분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플라자호텔에서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12개 종가(宗家)의 내림음식을 호텔 뷔페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프로모션을 진행한 적이 있다. 전남, 경북, 경남, 충북 등 12종가의 종부(宗婦)들은 호텔 셰프들과 함께 각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한 내림음식 20여종을 주 단위로 뷔페 레스토랑에서 11주에 걸쳐서 국내외 고객에게 선보였다. 고객들의 호응은 실로 대단했다. 종가의 내림음식을 경험한 고객들은 종부가 직접 선보인 음식과 함께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종가의 역사에 감동했다. 종부들이 설명해주는 음식 각각에 담긴 의미를 귀담아듣고 되새기며 음식을 즐기는 고객들의 모습은 31년간 호텔 업계에 종사한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 음식은 어떤 음식인가요?”라는 외국 고객의 물음에 통역을 맡은 호텔 직원에게 음식에 담긴 종가의 역사, 음식의 모양과 조리법까지 설명하는 종부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한 종부는 ‘약포’라는 음식을 설명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잘라 먹기를 금기시하는 사대부만의 법도가 있었다. 그래서 소고기를 잘게 잘라 동전 크기로 빚어 말려 지금의 육포와 유사한 음식을 만들게 되었고 우리 집안만의 내림음식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외국 고객은 약포를 접시에 담으며 “나도 양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외국 고객은 뷔페 레스토랑을 나서며 크게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프로모션을 통해 얻은 한식의 포인트는 바로 스토리였다. 음식에서 맛과 시각적 표현 방식은 가장 기본에 해당한다. 한식만의 푸짐함, 다양한 색감, 맛 등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이런 점만으로 한식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12종가 내림음식 프로모션에서 확인했듯 한식에 우리만의 역사와 문화 스토리로 담아내야 한다. 한식에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다면,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문화를 경험하는 하나의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음식을 알리고 싶었던 아이에서 한식의 세계화를 생각하는 어른이 될 때까지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오늘은 잠시 숨을 고르며 가족과 함께 어머니가 해주시던 요리 중 몇 가지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어린 시절 식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읍내 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의 스토리를 내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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