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구우면 더 맛있는 양대창.
같이 구우면 더 맛있는 양대창.

“맛있는 집이라면 방방곡곡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어요. 결국 부산에서 맛본 양곱창구이에 반해서 개업까지 하게 되었죠.”

매콤달콤하게 양념해 구워 먹는 경상도식 양곱창 요리는 식도락가 탁승호(68)씨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강둔치에서 미식가 지인들을 불러 모아 수시로 시식회를 거친 탁씨는 1992년 서울 을지로3가에 양대창숯불구이 전문점 ‘양미옥’을 열었다. 최고 등급의 질 좋은 특양과 선도 좋은 곱창 본래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양념 맛을 연하게 자제한 그의 양대창구이는 개업 초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며 서울에 경상도식 양곱창구이 바람을 일으켰다.

주 메뉴는 특양, 대창, 곱창. 이 중에 단연 인기는 양과 대창으로, 양 3인분에 대창 1인분 정도의 비율로 섞어 구우면 제일 맛있다.

“양만 굽는 것보다 대창이나 곱창에서 나온 기름이 양에 적당히 어우러져야 풍미가 더 좋죠.”

양과 곱창, 양과 대창이 언젠가부터 ‘양곱창’ ‘양대창’ 등 한 단어의 고유명사처럼 널리 퍼진 것을 보면 그만큼 서로 찰떡궁합임을 알 수 있다.

주문을 하면 깔리는 반찬부터 정갈하기 이를 데가 없다. 숯불화로에 석쇠를 놓고 양대창을 올린 뒤 살짝 익으면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른다. 대창의 지방이 지글지글 녹아내리며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냉큼 한 점 집어 먹고 싶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두툼한 양은 속까지 잘 익으라고 가운데 칼집을 일일이 더 넣어준다. 이 집은 독특하게도 재벌구이를 한다. 타지 않도록 민첩하게 뒤적이던 양대창을 접시에 도로 담고 접시에 고여 있는 양념에 익은 양대창을 버무려 다시 구워주는 식이다. 굽는 동안엔 사각뚜껑을 열고 닫는 것을 계속 반복하면서 정성을 다한다.

이윽고 대창의 기름기가 양까지 고루 버무려져 노릇노릇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양부터 한입 맛보면 오독오독 씹히면서 입안에서 담백한 육즙과 감칠맛이 폭발한다. 진하게 농축된 조개 관자 맛이랄까! 새콤한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상큼함이 더해져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가 않는다. 쫄깃쫄깃한 식감의 대창은 씹을수록 입안에 고소한 맛이 퍼진다. 재벌구이를 하기에 다른 집보다 잘 배어든 양념은 너무 달거나 맵지 않고 양대창과 한 몸처럼 잘 어우러진다. 과연! 일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고 싶은 명가(名家)의 맛이다.

소는 음식을 먹고 되새김질해서 위가 네 개나 된다. 양, 벌집양, 천엽, 막창의 순서로 이어지며 그 다음이 작은창자인 곱창, 큰창자인 대창을 거친다. 우리가 흔히 ‘양이 찼다’고 할 때 양이 바로 소의 밥통인 양을 일컫는 말이다.

안주인 김영희씨와 남대문점 대표인 아들 탁현진씨.
안주인 김영희씨와 남대문점 대표인 아들 탁현진씨.

장기근속 직원들 단골 취향 ‘줄줄’

소의 첫 번째 위인 양 중에서 위쪽의 좁고 두툼한 살이 붙은 부분을 ‘양깃머리’ 혹은 ‘특양’이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이 바로 구이로 쓰인다. 융털이 나 있지 않고 위를 잡고 있는 근육이라서 운동량이 다른 부위보다 많아 식감이 상당히 쫄깃하다. 지방이 없는 순수한 근육질로 웰빙식, 미용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특양은 결을 따라 썰고 칼집을 넣어야만 맛좋게 구울 수 있다. 곱창은 한우를 쓰고 있지만 양만큼은 청정지역의 억센 풀을 먹고 되새김질 운동을 많이 하는 뉴질랜드산을 사용한다. 두께로나 맛으로나 사료를 먹이는 한우의 양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대창, 곱창도 먹기 좋게 손질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양이 적은데도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엔 대창을 손질할 수 있는 기술자가 드물어 먹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대창은 원래 기름이 주렁주렁 달린 창자 모습인데, 옛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먹나’ 했었나 봐요. 몇몇 명가들은 손질 기술이 있어서 팔곤 했지만, 기름을 적당히 떼어내고 양말처럼 뒤집어서 구워 먹는 방법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건 저희 양미옥이 유명해지면서부터죠.”

양미옥엔 개업 초부터 근속해온 주방식구들이 꽤 된다. 내공을 탄탄히 쌓은 직원들은 아무리 힘든 내장 손질도 기계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 척척해낸다. 특히 양은 껍질을 손톱으로 결 따라 빨리 벗겨야 탱글탱글 맛있다. 마치 초밥 만들 때처럼 체온이 전달되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이 집에선 한겨울에도 얼음물에서 작업한다. 이를 묵묵히 능숙하게 해내는 직원들의 정성 덕분에 오늘의 양미옥이 있다고. 홀서빙을 담당하는 종업원도 10년, 20년 이상 오래된 직원들이 많아 굽는 솜씨가 능숙하며 단골들의 취향을 줄줄 꿰고 있다.

이 집의 음식 가격은 아직도 7년 전 그대로다. 다른 곳에 비해 중량도 푸짐해 양은 180g, 대창이나 곱창은 200g을 준다. 대창의 기름기를 다른 곳보다 많이 제거하는 편이라 더 실속 있다.

“저희 집은 장사가 잘되니까 그날그날 재료를 다 소진해요. 재고가 없으니 늘 신선한 음식을 드실 수 있죠.”

매일 아침 들여오는 재료에 파인애플즙, 고춧가루, 간장, 흑설탕, 마늘 등 여러 가지 양념을 넣고 버무려 하루 숙성시킨 뒤 손님상에 내는데, 그중에서 고춧가루에 특히 신경을 쓴다. “국내산 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고춧가루만 사용해요. 몇 년 전 국산 고춧가루 파동이 나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때도 국산 고춧가루만을 고집했었죠.”

모든 재료를 최고 등급으로 까다롭게 골라오는 탁승호·김영희(68)씨 부부. 음식 장사에 성공하려면 정직함은 기본이고 이런 장인정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다.

식사로는 된장찌개가 감동적이다. 원래는 고기 먹은 뒤에 내는 식사였는데 어머니표 찌개처럼 깊고 담백한 맛에 반한 손님들 요청에 단일메뉴로 추가했다. 저녁엔 양대창구이로 술 한 잔 기울이는 손님들이 대부분이고 점심엔 무·배추를 많이 넣어 매콤하고 시원하게 끓인 곱창전골, 가성비 뛰어난 양곰탕 등 다양한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본의 맛집 방송에 소개되어 일본인 손님이 많은 편. 이 집은 특히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자주 찾았던 집으로 유명하다. “무려 180번을 오셨죠! 담백한 양을 즐겨 드셨어요. 지금도 이희호 여사님은 종종 들르십니다.”

을지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양미옥은 1년 전 남대문시장이 마주 보이는 북창동에 직영점을 열어 오로지 두 곳만 영업 중이다. 아들 탁현진(42)씨가 대표로 있는 이곳은 넓은 주차장이 식당 건물 뒤에 바로 붙어 있고 조용히 식사할 수 있는 룸이 여러 개 구비되어 있다. 메뉴와 맛, 가격은 모두 을지로 본점과 같지만 주말 저녁에도 식사 메뉴가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다.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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