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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491호]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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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도시 이야기] 톨레도에서 콘수에그라까지

‘내 마음의 돈키호테’라는 별을 찾아

▲ 콘수에그라의 명물이 된 돈키호테의 풍차. photo 이승원
여행의 참된 기쁨 중 하나는 여행이 끝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설렘이다. 시간이 흘러도 더욱 새록새록 싱그러워지는 추억의 아우라를 곱씹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이다. 추운 겨울에 한여름의 바캉스를 떠올리며 따뜻함을 느끼고, 무더운 여름에는 겨울바다의 고즈넉한 산책을 회상하며 차가운 겨울바람의 향기를 상상해 본다. 유난히 추위가 빨리 찾아온 올겨울, 나는 콘수에그라의 뜨거운 햇빛과 새파란 하늘을 그리워하며 여행의 추억에 잠겼다.
   
   한여름의 스페인 여행은 워낙 더운 날씨 때문에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정과 낭만이 가득한 스페인 특유의 감수성을 최대한 경험하고 싶으신 분에게는 살짝 귀띔하고 싶다. 정말 무더운 날씨에다 에어컨 없는 건물도 수두룩한 곳이지만, ‘그래도 스페인은 여름’이라고. 바르셀로나 해변클럽의 밤새 끝나지 않는 축제의 열기, 알함브라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장엄하게 펼쳐지는 궁전과 성벽, 정열과 광기가 어우러지는 최고의 향연 플라멩코의 본고장 세비야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여름이다.
   
   
   세 번째의 톨레도 방문
   
   2016년 여름 나는 세 번째로 톨레도를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할 때까지는 톨레도 그 자체의 매력을 보고 싶었으나, 이번에는 돈키호테의 풍차로 유명한 콘수에그라를 함께 방문하고 싶었다. 마드리드에서 톨레도까지는 기차로 40분, 버스로 1시간15분, 운전을 하면 50분 정도의 거리다. 나는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톨레도까지 가서 한 번 더 톨레도의 아름다운 골목길을 둘러본 뒤 톨레도에서 콘수에그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톨레도에서 콘수에그라까지는 버스로 50분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다. 톨레도에 10여년 전 처음에 갔을 때는 없었던 거대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여름에 언덕길로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는 수고를 덜어주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톨레도의 마을 한복판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은세공으로 유명한 톨레도에는 각종 은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데, 그 섬세하고도 미려한 은세공 제품들 중에서도 이번에는 유난히 ‘돈키호테와 산초’ 시리즈가 눈에 띄었다.
   
   기사라기보다는 왠지 우아한 광대처럼 보이는 돈키호테, 풍만한 몸집과 너그러운 미소로 사람의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는 산초, 그리고 주인을 잘못 만나 팔자에 없는 편력을 떠나게 된 가여운 명마 로시난테. 세 친구의 모습을 앙증맞은 은세공 제품으로 빚어낸 돈키호테 시리즈는 어디서나 넉넉한 미소로 톨레도의 여행자들을 반겼다. 돈키호테에게 못 이기는 척 가짜 기사 작위를 내려주는 여관 주인도, 돈키호테가 소설책 때문에 미쳐버렸다고 걱정하며 모든 소설책을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돈키호테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심의 눈길이 아닌 연민과 우정의 눈길로 돈키호테와 머나먼 고행길을 떠나는 산초야말로 돈키호테의 모험을 가능하게 만든 진정한 인연의 힘이다. 돈키호테로 하여금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품게 만든 것은 중세 기사들의 영웅적 모험담을 펼쳐놓은 책들이었지만, 돈키호테가 자신의 삶 속에서 한 번도 실현해보지 못한 진짜 모험을 떠날 수 있게 만든 것은 산초를 비롯한 주변의 온갖 인연의 힘이었던 것이다.
   
   작가 이창래는 돈키호테를 일컬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간 삶의 모든 어리석음, 갈망, 욕망, 그 모든 것이 여기 다 들어 있다”고. 나는 그 모든 어리석음과 이룰 수 없는 갈망이 가득한 ‘돈키호테’의 흔적을 찾아 콘수에그라로 떠났다. 마드리드에서 콘수에그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마드리드에서 콘수에그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타거나,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간 다음 콘수에그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나는 톨레도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두 번째 길을 택했다.
   
   톨레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돈키호테’를 다시 읽다가 멋진 구절을 만났다. “역사는 진실의 어머니이며 시간의 그림자이며 행위의 축적이고, 과거의 증인이며 현재의 본보기이자 미래에 대한 예고이다.” 첨단문물로 가득한 대도시보다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오직 ‘현재’에만 집착하여 경제적 이익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장소에서는, ‘진실의 어머니’는커녕 ‘시간의 그림자’나 ‘과거의 증인’ ‘미래의 예고’를 전혀 느낄 수가 없으니까. 돈키호테는 ‘책’을 통해 역사와 만났고, 역사 속의 그 아름다운 투쟁과 열정의 기사도가 당시의 삭막한 현실 속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돈키호테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결코 멍청하거나 미친 사람이 아니다. 모두들 ‘현실’에만 집착하느라 ‘현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때, 그는 잘못된 세태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이상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상 없이 살 수 없는 용기. 난 그런 거 없소이다.” 바로 그것이다. 현실을 모르면 바보 취급을 받지만, 이상도 꿈도 없이 현실에만 안주하여 산다는 것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럽다. 나는 톨레도를 거쳐 콘수에그라로 가면서 ‘나 또한 나이가 들수록 점점 현실에 안주하여 게으르고 타산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다그쳐 보았다. 새로운 이상에 도전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기 좋아하는 우리 어른들의 나태한 가슴속에서 돈키호테의 열정과 순수를 꺼내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힘, 문학의 힘, 그리고 희망의 힘이 아닐까.
   
   
▲ (좌) 콘수에그라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 (우) 콘수에그라 골목길 풍경.

   걸어서 풍차마을 꼭대기까지
   
   풍차마을 콘수에그라는 마침 장터가 열려 북적거렸다. 중세 기사들의 복장을 입은 남자들이 거리를 활보했고, 손에 맥주와 스페인식 전통요리를 들고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만찬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파는 물건이나 사람들의 의상은 달랐지만, 우리네 전통 장터의 정겨움과 무척 닮은 시장에서 한 할아버지께 ‘풍차마을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을 물었다. 걸어가기에는 멀다며 버스를 타고 올라가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왠지 투지가 불타올라 걸어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돈키호테가 겪은 고난의 여정을 아주 조금이라도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과연 오르막길은 힘겨웠지만, 풍차 하나가 곧 커다란 집채만 한 콘수에그라의 풍경은 장엄했다. 풍차와 풍차 사이의 간격이 넓고, 험준한 바위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마을의 경치는 ‘황량함’과 ‘너그러움’이 공존하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풍차 아래 고즈넉하니 앉아 흘러간 시간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여행자의 눈빛이 아련하게 반짝였다. 풍차마을로 가는 오르막길은 힘들었지만,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은 돈키호테를 향한 아련한 향수로 가득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비싼 물가에 비하면 콘수에그라는 모든 것이 반값도 되지 않았다. 10유로 정도면 두 사람이서 맥주와 식사를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인심이 후했다. 돈키호테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사도 정신이라 보았으며, 가장 미친 짓은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여 꿈 따위는 잊어버린 속물주의라고 보았다. 체 게바라는 그 돈키호테의 ‘두려움 없는 질주’야말로 역사를 바꾸는 힘임을 알았다.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
   
   ‘돈키호테’를 읽고 있으면 우리가 가장 큰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은 그 어느 멋진 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임을 알게 된다. 머나먼 훗날에, 아주 시간이 남아돌 때까지 꿈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꿈꾸라고, 지금 사랑하라고, 지금 행복하라고 말해주는 돈키호테. 세상은 우리에게 산초 판자처럼 ‘현실에 적응하라’고 말하지만,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저마다의 돈키호테는 ‘꿈과 이상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열정’이야말로 삶을 추동하는 힘이라고 속삭인다. 온갖 고된 여정과 쓰라린 객고(客苦)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모두 조금씩 ‘돈키호테의 후예’가 아닐까. 다른 삶을 향한 끝없는 모험과 열정이야말로 돈키호테의 등을 떠미는 영혼의 바람이었다.
   
   콘수에그라의 거대한 풍차들, 그러니까 돈키호테가 자신이 싸워 이겨야 할 진정한 ‘적수’라고 생각하고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그 풍차들을 바라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실제로 돈키호테가 말을 타고 그 풍차로 뛰어들었더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산초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돈키호테는 거대한 풍차들의 무리를 보자마자 감격에 겨워 이렇게 선언한다. “친구 산초 판자여, 저기를 좀 보게! 서른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인들이 있네. 나는 싸워 저놈들을 몰살시킬 것이야. 그 전리품으로 부자가 될 걸세. 이것이야말로 정의의 싸움이며, 사악한 씨를 이 땅에서 없앰으로써 하느님께 크게 봉사하는 일인 게지.”
   
   
▲ 톨레도 골목길에서 돈키호테 동상을 만난 아이들(좌). 콘수에그라 마을축제에서 작업 중인 청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더라도
   
   돈키호테의 엉뚱한 성격을 익히 아는 산초였지만, 풍차를 괴물로 착각하고 그야말로 용감무쌍하게 ‘적진’으로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얼마나 속수무책의 철없는 영웅놀음처럼 보였을까. 산초는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 돈키호테의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맙소사!” “제대로 살피고 일을 하시라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건 풍차라고요. 머릿속에 그런 해괴한 생각을 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그걸 모르겠냐고요!”(‘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안영옥 옮김·열린책들·2014)
   
   내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산초의 이런 진심 어린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장면이다. 산초가 극구 말리는데도 굳이 한밤중에 용감하게 모험을 떠나야 한다며 그야말로 난리법석을 피우는 돈키호테. 그날도 어김없이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와 용맹스러운 결심을 담은 문장을 나열하며 자신이 오늘밤 반드시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돈키호테 앞에서 산초는 망연자실한다.
   
   산초는 한밤중에 성치도 않은 몸과 마음으로 혼자 적을 무찌르러 나간다는 돈키호테를 붙잡기 위해 기막힌 묘안을 짜낸다. 한밤중이라 돈키호테의 시선을 교묘히 피해 로시난테의 네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박차를 가해도 로시난테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자 돈키호테는 어리둥절해 한다. 발을 묶여 답답함을 호소하는 로시난테의 비명소리는 처량하고 구슬프지만 독자는 그럼에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로시난테에게도 이 위험한 한밤중에 철부지 주인 돈키호테를 태우고 정처도 없이 길을 떠나는 것보다는 산초의 보호를 받으며 발이 묶여 있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말 주인 돈키호테는 기를 쓰고 출발하려 하고, 종자인 산초는 기를 쓰고 주인을 막아서며 말리고, 로시난테는 어떻게든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 보려 하지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돈키호테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길을 떠나려 하자 산초는 곧 죽어도 남의 말은 듣지 않는 이 고집불통의 편력기사를 보필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몸을 떨다가 그만 바지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실례’를 범하고 만다. 자신이 뒷간에 가면 돈키호테가 몰래 혼자 길을 떠날지도 모르기에, 차마 ‘큰일’도 보러가지 못하고 참고 또 참으며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청난 실례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산초는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고, 돈키호테는 평소의 점잖음과 우아함을 유지해 보려고 기를 쓰지만, 산초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고약한 분변의 향내만큼은 숨길 수가 없다. 산초는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키득키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돈키호테는 산초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냄새에 놀라 떠나고 싶은 비장한 각오까지 잊어버릴 지경이다. 말 못 하는 로시난테는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었을까. ‘돈키호테’는 이렇듯 주인공이 심각하고 비장해질수록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야말로 웃음과 슬픔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웃픈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한밤중의 공포 속에서도 돈키호테는 진심으로 적들을 물리치는 고행길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고, 산초는 돈키호테의 엉뚱하고도 기막힌 용기와 기백에 황당해하면서도 진심으로 돈키호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으며, 영문을 모르는 로시난테조차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심각하게 발버둥 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안쓰러우면서도 정겹고 애처롭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커다랗고 높은 이상을 향해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으로 또 앞으로 질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영원한 결핍을 일깨우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언뜻 헛된 이상에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하는 백면서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인의 학대와 착취에 고통받는 소년을 구하려고 애쓸 때의 돈키호테는 마치 순수한 열정에 불타오르는 혁명가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상의 연인 둘시네아를 향한 낭만적 사랑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늙고 지친 상태와는 상관없이 그저 사랑에 빠진 순수한 청년처럼 보이기도 한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현실의 남루함 속에서도 결코 빛을 잃지 않는 우리 안의 순수를 자극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주인에게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혹한 매질을 당하고 있는 소년을 구하려는 돈키호테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고통받는 자의 아픔을 함께하려는 공감의 몸짓으로 다가온다. 가상의 연인 둘시네아를 향한 열정에 사로잡혀 말도 안 되는 공상과 고백과 모험을 불사하는 돈키호테의 사랑 또한 세속에 찌든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해맑은 순수와 열정으로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돈키호테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매번 꿈을 포기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공포가 영혼을 할퀴어도 좋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다. 나의 눈부신 이상을 이 세상 한 귀퉁이에 조금이라도 펼칠 수만 있다면. 콘수에그라의 거대한 풍차를 보면서 나는 ‘맨 오브 라만차’의 멋진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콘수에그라의 여정이 내게는 ‘내 마음의 돈키호테’라는 별을 되찾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겨낼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감당해낼 수 없는 슬픔을 견디어 내고/ 용맹한 자도 가기를 꺼리는 곳으로 달려가며/ 교정될 수 없는 악을 바로잡고/ 저 멀고 먼 순수와 순결을 사랑하며/ 두 팔이 피곤할 때도 실천하기를 주저 않고/ 닿을 수 없는 별에 가 닿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요./ 그 별을 따라 가는 것/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아무리 갈 길이 멀더라도/ 옳음을 위해 나아가고/ 그 어떤 의혹이나 쉼이 없이/ 기꺼이 지옥으로 행진해 가오/ 하늘의 정의를 위해서!/ 그리고 나는 아오./ 내가 언젠가 이 영광스러운 과업을 마치고 쉬게 될 때/ 나의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은 좀 더 나아지겠지요./ 멸시당하고 상처투성이의 사나이일지라도/ 단 한 푼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마지막 용기를 가지고서/ 저 닿을 수 없는 별에 나아가 닿는다면!’ -‘이룰 수 없는 꿈, 맨 오브 라만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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