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7일 저녁, 저는 일본 지바현에 있는 마쿠하리 멧세라는 전시장 앞에 서 있었습니다. 동방신기의 일본 팬클럽 ‘Bigeast’의 팬미팅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한국에서 바다 건너 일본 지바현까지 간 참이었습니다. 그 해에만 두 번, 동방신기 공연을 보겠다고 일본을 찾아갔었습니다.

공연장 앞에 서서 한국 팬들끼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슬며시 다가오더군요. “사실 저 욘사마 팬이에요.”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욘사마, 배우 배용준씨의 사진이 붙어 있는 열쇠고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저희에게 그 얘기를 했었나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참 반가웠더랬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 한류팬들은,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팬 중에도 젊은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한국 동방신기 팬과 일본 동방신기 팬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누구든지 국적을 맞힐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20~30대는 한국 팬, 40~50대는 일본 팬이었으니까요.

2017년 12월 15일의 일본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그날 도쿄의 중심지 시부야의 유명 서점, 쓰타야에서 한국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을 찾고 있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한국 팬이 일본 앨범을 하나 사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찾고 있었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이 방탄소년단의 앨범이었거든요. 앨범을 집으려고 다가가려면 꽤 어린 친구들 사이를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잔뜩 꾸민 10~20대 일본 여성 팬들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앨범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정수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연구교수를 비롯해 한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모두 “이제 일본에서 한류는 주류 문화 중 하나가 됐다”고 말합니다. 10년 전 한류에 빠졌던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면서 저도 모르게 어린 손녀와 딸에게 한류를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가끔 별식으로 한류 스타가 추천해준 한국 음식을 먹어 보고 ‘네’ ‘대박’ 같은 한국말을 쓰는 어머니를 통해 한류팬이 된 사이토 유이씨도 그런 경우입니다.

지난주 주간조선 커버스토리 ‘日 한류 3.0 엄마에서 딸로 대물림되고 있었다’는 한국 문화가 일본을 ‘정복했다’는 식으로 우열을 정하려는 기사가 아니었습니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어떻게 전파되고 흡수되는지,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흥미롭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류는 끝났다’ ‘한류, 다시 시작’처럼 중계하듯이 보도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에 대한 조금 더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합니다.

키워드

#취재 뒷담화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