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일산 사과나무치과병원 원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김혜성 일산 사과나무치과병원 원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보통 우리 몸에 ‘미생물이 산다’고 하면 장 속에 사는 유산균 같은 것을 떠올릴 법하다. 우리 몸에 사는 세균, 진균(곰팡이), 바이러스까지 각종 미생물의 수는 말 그대로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 인간을 이루는 세포의 수만 30조개가 넘는데 인간 몸속에 사는 세균만 39조개로 추정된다. 이 많은 미생물은 최근까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인체에 침투하거나 제거해야 할 것으로만 여겨져왔다.

몸속 미생물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바뀐 것은 2010년대 들어서부터다. 2006년에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장내(腸內) 미생물이 비만 정도를 좌우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2008년부터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매년 1억달러를 투자해 ‘인간 미생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2년에 중간발표가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세균까지도 우리 몸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점, 각 몸 부위의 미생물들은 각각의 생태계를 이뤄 산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이건 매우 중요한 발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균이 ‘침입해서’ 병에 걸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균은 ‘침입하기’ 이전에도 우리 몸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장에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이 있습니다. 잇몸에도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진지발리스가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으로 균형을 이뤄 존재하고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균형이 깨지면 증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지난 1월 1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사과나무치과병원 김혜성(51) 원장의 말이다. 일산 사과나무치과병원은 경기도 고양시와 김포시에 6개의 지점을 둔 네트워크 치과병원이다. 본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만 19명인 치과병원 원장이 미생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따로 있다. 김혜성 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생물 매니아’다. 그가 쓴 논문은 SCI·SCIE(과학논문 인용색인)급 국제 학술지에도 여럿 채택이 되었다. 일반 독자를 위해 미생물에 대한 전문지식을 풀어낸 책도 여러 권 있다. 최근에는 ‘미생물과의 공존’(파라사이언스)이라는 책을 써냈다.

책 ‘미생물과의 공존’에서 김혜성 원장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의 건강은 몸속 미생물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팽팽한 균형을 잘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걸 위해서는 우선 우리 몸의 ‘미생물 생태계’를 알아야 한다.

“미생물 입장에서 보면 우리 몸은 하나의 지구입니다. 몸의 각 부위는 각각의 대륙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건강한 사람의 몸속에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다양한 유형으로 생태계를 이뤄서 살고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지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장내 미생물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은 우리 몸 전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최근 활발히 연구되는 바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의 분포는 비만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같은 병과도 연관이 있다.

폐 속에도 미생물이 있다. 우리는 흔히 폐나 뇌 같은 기관에는 미생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뇌는 무균지대이고 폐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생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뇌와 폐는 물론 우리 몸의 기관 어디에서든 풍부한 미생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혜성 원장은 폐 속 미생물은 건강한 상태에서는 일정한 균형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병적 미생물이 침투하거나 사람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미생물의 수와 구성이 변하면서 폐렴 같은 폐질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폐의 미생물 분포가 구강(口腔), 그러니까 입속 미생물 분포와 거의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흔히 폐는 코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생물이 더욱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구강과 폐의 미생물 분포가 같다. 실제로 일본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바가 있다.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다른 건 다 똑같은데 한 그룹 노인들에게 이만 열심히 닦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망률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하더군요. 대개 이를 닦으면서 구강위생을 관리한다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를 닦는다는 것은 온몸의 미생물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구강관리만 잘해도 건강

태아가 자라는 태반(胎盤)의 미생물 생태계도 구강 미생물 생태계와 닮아 있다는 게 최근 학계에서 자리 잡은 얘기다. 새끼를 밴 쥐에게 유전자에 표식을 새긴 세균을 입으로 넣어줬더니 새끼의 태반에서 검출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실 우리 몸 어디에서든 미생물을 발견할 수 있지만 가장 취약한 곳이 구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입은 인체 중 가장 취약한 공간이라는 게 김혜성 원장의 설명이다.

“피부에도 어마어마한 미생물이 살지만 피부는 점막의 방어막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피부를 자주 씻어내지요. 그런데 입은 점막이 노출된 곳입니다. 게다가 입속에는 치주포켓이라고 부르는 잇몸주머니(periodontal pocket)라는 공간이 있는데, 여기가 미생물로서는 더없이 살기 좋은 공간입니다.”

잇몸주머니는 치아와 잇몸 사이 살짝 벌어진 홈을 가리키는 말이다. 1~3㎜의 작은 공간이지만 미생물에게는 매우 넓은 공간이다. 칫솔질로 닿기 어려운 곳이다 보니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嫌氣性) 세균들이 다양한 생태계를 이뤄 살고 있다.

“이 중에서 진지발리스라는 세균은 인체 세포의 결합을 깰 수 있는 효소를 만드는 무서운 세균입니다.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좁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입을 통해 다른 기관에 이전하면서 여러 염증을 일으키는 핵심세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강 미생물 관리만 잘해도 몸속 미생물을 건강한 균형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구강 미생물을 관리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 행동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혜성 원장은 약에 대한 의존을 먼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생물은 진화합니다. 한때는 만병통치약이었던 페니실린이 듣지 않는 세균이 무척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를 먹곤 하는데 이게 반복되면 병적 미생물뿐 아니라 공존(共存)하는 미생물까지 말을 듣지 않게 만듭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약을 먹어야 합니다.”

치아를 관리하는 도구들도 바꿔야 한다. 김 원장은 치약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치약들에는 거품이 잘 나게 하는 계면활성제가 대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계면활성제는 모든 세균을 다 죽여버리는 성분입니다. 입속에는 우리가 공존하며 살아야 할 세균들이 많습니다.”

막상 씻어내야 할 세균들이 뭉쳐서 사는 잇몸주머니는 그대로다. 칫솔질이 잘못됐기 때문에 치아 표면의 세균만 다 쓸어내리고 잇몸주머니는 그대로 두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김혜성 원장은 잇몸주머니를 세척하는 양치 방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칫솔을 치아 뿌리에 닿게 해 이와 잇몸 사이에 45도 각도로 세워 잇몸주머니 안을 털어내는 방식으로 양치해야 합니다. 바스법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저는 환자들에게도, 학회에 가서도 바스법을 강력하게 제안하는 편입니다.”

김혜성 원장은 치과가 미용실이나 내과처럼 자주 오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치 방법에 대한 조언을 얻고 건강관리를 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치과에서는 치아 위생만 관리하는 게 아닙니다. 건강한 구강을 통해 전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겁니다. 최소한 1년에 한 번씩은 치과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치과가 먼저 환자들에게 다가가야겠지요. 제가 미생물에 대해 얘기하고 알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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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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