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7일 재즈클럽 ‘디바 야누스’에서 만난 말로. ⓒphoto 이신영 상미디어 기자
지난 2월 7일 재즈클럽 ‘디바 야누스’에서 만난 말로. ⓒphoto 이신영 상미디어 기자

디바를 만나러 서울 서초동에 갔다. ‘디바 야누스’. 재즈클럽이다. 교대역 1번 출구 부근에 있다. 지난 2월 7일 오후 3시, 문은 잠긴 채다. 닫힌 유리문 너머로 컴컴한 무대가 보인다. 주변엔 의자가 흩어져 있다. ‘저녁 8:30 공연’이라 쓰여 있는 작은 흑판이 보인다. 클럽의 사장 겸 관리자 겸 출연자가 달려온다. 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보컬 중 한 명이다. 1998년에 첫 음반을 냈으니 대중과 만난 지 이제 꼭 20년 차다. 클럽에서 노래하다 늦깎이로 낸 음반이다.

앉자마자 물었다. “디바 야누스 운영하며 돈 좀 많이 버셨나.” 말로가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3년 전부터 맡아왔는데, 한 푼도 가져간 돈이 없다. 서울은 일단 임대료가 비싸다.”

디바 야누스는 그 자체로 한국 재즈의 역사이고 성지다. 40년 전인 1978년, 처음 문을 열었다. ‘야누스’란 이름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고,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정기적으로 공연을 한 최초의 재즈클럽이다. 처음엔 서울 이화동에 있었다. 이후 이화여대 후문 쪽으로 옮겨갔다. 다시 청담동으로 이사했다가 지금의 서초동에 정착했다. 한국 1세대 재즈보컬 박성연씨가 쭉 운영했다. 잦은 이사에서 알 수 있듯, 경영은 항상 좋지 않았다. 관객이 한 명도 없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박성연씨의 입원으로 없어질 위기의 야누스를 인수한 게 바로 말로다. 매주 수요일엔 직접 공연도 한다. 한때 여기저기 생기는가 싶던 재즈클럽은 이제 서울에 다섯 곳이 남았다. 재즈클럽이라 하면 매일 공연을 하는 곳을 말한다. 디바 야누스, 올댓재즈, 블루문, 에반스, 클럽케이다.

말로란 이름은 어린 시절 불리던 애칭에서 따왔다.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셨다. 첫딸이 태어났을 땐 ‘그런 대로 괜찮다’는 의미로 ‘대로’라고 불렀다. 둘째딸은 ‘그렇지만 괜찮다’의 ‘지만’. 셋째 딸인 제가 태어났을 땐 ‘정말로 못 참겠다’며 ‘말로’라 부르셨다. 나중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송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유를 물었다. “1집 음반을 내고 이런 일이 있었다.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피디가 찾더라. ‘왜 원곡대로 노래를 안 하나.’ 혼자 벽을 치고 울었다. 이후론 주로 오프라인에서 관객과 만난다.”

말로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03년 3집 ‘벚꽃 지다’를 내고서다. ‘언제던가 꽃피던 날이, 한나절 웃다 고개 들어 보니 눈부신 꽃잎 날려 잠시 빛나다 지네.’ 특유의 저음과 쓸쓸한 가사가 만나 독특한 매력을 빚는다.

2집까진 영어 가사를 붙인 곡을 발표하다 3집 때 처음 한국어 음반을 냈다. 계기가 있었을까. “2002년이었다. 그해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나. 올댓재즈에서 노래를 하던 시절이었다. 이태원에 있다 보니 외국인 관객이 많았다. 영어 가사 아닌가. 외국인들은 노래를 들으며 웃고 박수 치고 환호한다. 한국인들은 구석자리에서 가만히 구경하듯 듣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지금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 건가, 노래로 아부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영자 신문에선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데 한국 언론에선 인터뷰 신청도 잘 안 들어왔다. 우리나라 관객들과 소통해야겠다, 결심했다.”

대중은 반가워했지만, 동료 뮤지션들은 달랐다. “한국어로 노래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 ‘너도 돈 벌려고 돌아서는구나’ ‘너 요새 가요한다며?’ 같은 반응도 있었다.”

말로는 2010년 또 다른 실험을 했다. ‘동백아가씨’를 다시 부른 스페셜 앨범을 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음반 좀 빨리 보내달라고 전화가 빗발쳤다. 하루에 1400장까지 팔리더라. ‘가요무대’에서 출연 요청도 받았다.” 말로의 소속사 JNH의 이주엽 대표 얘기다. 2년 후엔 배호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말로가 부르는 ‘동백아가씨’를 공연장에서 들은 적이 있다. 익숙한 선율에 말로가 목소리를 얹기 시작하자, 공연장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할까. 낡았다 생각했던 곡이 말로의 힘을 빌려 ‘재즈 스탠더드’로 재탄생했다.

‘재즈 스탠더드’는 재즈뮤지션들이 즐겨 부르거나 연주하며, 시대를 넘어 대중에게 사랑받는 곡을 말한다. 흔히 재즈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스탠더드들은, 역설적이게도 태생은 재즈가 아니다. ‘어텀 리브스(Autumn leaves)’는 원래 샹송이었고,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는 만화 주제가였다.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도 재즈 곡은 아니었다.

“미국에 가보니, 재즈는 클럽에서 즐기며 일상적으로 듣는 노래더라. 엄마 아빠가 즐겨 듣던 노래를 자녀 세대의 뮤지션이 편곡하고 다시 연주한다. 그렇다면 나는 부모님들이 즐겨 듣던 ‘동백아가씨’며 배호 노래들을 다시 불러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케이(K) 스탠더드다.”

한국 1세대 재즈보컬리스트 박성연과 말로(오른쪽)가 함께 무대에 섰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서다. ⓒphoto 자라섬재즈페스티벌
한국 1세대 재즈보컬리스트 박성연과 말로(오른쪽)가 함께 무대에 섰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서다. ⓒphoto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말로가 부르는 ‘돌아가는 삼각지’가 다르게 들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리듬도 다르지만 발음도 다르다. 음악으로 말을 건네듯 발음이 분명하다. 이런 게 재즈일까. “사람들은 재즈라면 기술이나 테크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석해 부르는 게 재즈다. 나의 느낌, 감정을 전달하는 거다. 그러려면 가사를 이해해야 한다. 진심을 담아 전달하려면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가사에 집착하는 이유다. 글 읽는 것도 좋아한다. ‘엘리건트 유니버스’ ‘창백한 푸른 점’ 같은 자연과학 책을 즐겨 읽는다.”

그러고 보니 말로는 자연과학도였다. 경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버클리 음대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했다.

직접 책을 쓰기도 했다. ‘재즈싱잉의 비밀’. 제목만 보면 창법을 구구절절 써놓은 책이 아닐까 싶지만, 재즈 입문서다. 재즈를 모르는 이들에게 재즈를 알려주려는 노력이 행간에 읽힌다.

사실 재즈만큼 지명도에 비해 내용이 덜 알려진 장르도 드물다. 관객층은 어떨까. 재즈 잡지 ‘엠엠재즈’의 김희준 편집장에게 물었다. “한 달에 한두 번 공연을 보고 음반도 사는 열혈팬들은 1000명 내외가 아닐까 싶다. 클래식과 팬층이 좀 겹치기도 한다.”

관객 규모에 비하면 재즈뮤지션의 숫자는 꽤 많다. 말로는 “연주하는 뮤지션은 200~300명가량이다. 보컬은 50명 내외. 재즈만 부르는 보컬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실 경제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형편없다. 음악만 해선 생계 해결이 안 된다. 택배 배달하면서 음악하는 뮤지션도 있다. 극소수 교수 정도가 예외일까. 뮤지션 숫자에 비해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재즈클럽에서 공연하는 게 재즈뮤지션의 본업이다. 뮤지션은 늘었는데 연주 기회는 줄었다. 그러다 보니 악순환이다. 지명도를 가지려면 클럽에서 대중과 자주 만나야 하는데, 공연을 못 하니 실력이 늘지 않는다. 재즈를 하려면 즉흥과 실험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어쩌다 무대에 서도 익지 않은 채로 서게 된다.”

어느 정도는 재즈뮤지션들이 자초했단 지적도 있다. 어느 클래식 연주자의 얘기다. “재즈뮤지션들이 폐쇄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재즈가 뭔지, 클래식과 어떻게 다른지, 대중의 눈높이로 친절히 설명하는 걸 들은 적이 드물다.”

재즈뮤지션들도 할 말은 있다. 이를 위해 재즈계의 소위 ‘원로’들이나 협회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란 얘기를 한다. 지난해 재즈계 인사들이 모여 ‘재즈 포럼’을 결성한 이유다. 뮤지션들의 본업은 클럽 공연이다. 출연료는 이런 식으로 계산한다. 입장료가 1만원이고 그날 관객이 5명 왔다면, 5만원을 받는다. 보통 여러 뮤지션이 한 그룹으로 움직인다. 5만원을 나눠 가져야 한다. 이마저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바닥’이 좁다 보니 인간관계가 얽혀 있어 제대로 항의도 못 한다.

말로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즈를 소개한다. 6년째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내 아이를 학교에 들여보내고 학교에 가볼 일이 있었다. 음악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칠판 옆에 화면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더라. 제대로 따라부르지 못해도 화면은 멈추지 않는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음악을 즐겨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길로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받아들여주시더라.”

성인들에게도 재즈를 가르친다. “6~7년 전부터다.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분들과 노래를 부른다. 요즘엔 일주일에 한 번 직장인들에게도 재즈보컬을 가르친다. 재즈는 문학으로 치면 현대시와 같다. 읽고 이해하려면 그전에 여러 텍스트가 내면에 쌓여야 하지 않나. 그래야 비유나 상징을 이해할 수 있다. 뮤지션들의 과제인 이유다. 재즈는 관객이 우연히 들을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찾아서 들어야 한다. 관객이 새로운 언어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 재즈와 친해지는 방법을 물었다. “재즈클럽에 가보는 거다. 음악이 연주되는 걸 직접 봐야 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문화를 접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확 들리진 않는다. 많은 분들이 클럽에 와본 후 그 매력에 빠진다. 한 번도 안 오는 분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고들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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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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