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95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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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소울푸드] 전형수 김앤장 상임고문의 김치찌개

폭우 속 김치 냄새에 잠이 깨지 않았더라면…

전형수  김앤장 상임고문  

난 어려서부터 김치찌개를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매니아다.
   
   맛깔스러운 젓갈을 머금은 시골김치가 익어가는 겨울철이 되면 보글보글 끓는 상큼한 김치찌개 생각에 군침이 돌고, 바쁘고 팍팍한 삶에 낭만과 활력을 준다. 김치찌개의 구수한 냄새만으로도 밥 한 공기 거뜬히 비울 수 있다. 충청도 두메산골의 김치찌개는 시골김치에 멸치 또는 밴댕이젓갈 몇 마리 넣고 끓이는 게 고작이었다. 고기는 엄두도 못 냈지만, 그래도 그게 최고!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던 옛 보릿고개 시절, 꽁보리밥에 고추장, 김치 또는 김치찌개로 배를 채우기 급급했던 기억이 새롭다.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오다가 천신만고 끝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가서 고시까지 합격했다. 이후 공직에 입문하여 기관장을 거쳐 지금은 납세자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밥술이나 뜨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항상 시골 두메산골과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김치찌개에 대한 향수가 몸과 마음에 가득하다. 요즈음에도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이면 모든 시름이 즉시 해소된다.
   
   이것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찌개는 단연 ‘우리집 김치찌개’다. 식구들이 중지를 모아서 개발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맛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지금부터 우리집 김치찌개의 레시피를 공개할까 한다.
   
   먼저 김치찌개용 돼지고기(앞다리살 선호)를 준비한다. 집에 상시 재고관리 중인 젓갈이 듬뿍 들어간 묵은 김치를 꺼낸다. 묵은 김치에 식용유(또는 들기름)와 마늘을 넣고 볶아서 지나치게 시거나 짠맛(매우 짜면 설탕 1티스푼 넣음)을 살짝 감해준다. 동시에 옆에서 돼지고기도 후춧가루를 약간 넣어서 볶는다. 잠시 후 살짝 볶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한데 섞어 좀 더 가열한 후 멸치·다시마 등으로 만든 육수를 넣어서 푹 끓인다. 먹기 1분 전 어슷썰기한 대파와 고춧가루를 넣으면 세상에서 제일 맛난 ‘우리집 김치찌개’가 된다. ‘우리집 김치찌개’는 먹다 보면 정신을 잃을 정도다.
   
   김치찌개는 나에게 좋은 식감과 건강, 그리고 감사함을 주고 있지만 이에 더하여 내 생명의 은인이 된 사연도 있다. 내가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8월 하순 늦여름, 친구 6명과 1박2일로 치악산 등산을 갔다.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을 떠날 때 좋았던 날씨는 현지에 도착하여 강원도 평창 상원사를 지나면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원사와 남대봉 사이 계곡에 텐트를 쳤다.
   
   밤이 되면서 빗줄기가 굵어져 빗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소주를 여러 잔씩 마신 터라 아랑곳하지 않고 곤히 잠이 들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는 문득 김치 냄새로 잠이 깼다. 확인해 보니 김치를 넣은 비닐주머니가 터진 것이 아닌가. 내가 김치찌개 담당이라 ‘사명감’에 눈을 떴다, 김치를 추슬러놓긴 했는데, 더욱 굵어진 빗줄기 소리가 아무래도 불안했다. 단잠 자는 친구들을 깨워서 비 맞으며 텐트를 계곡물 약간 위로 옮기느라 법석을 떨었다. 그야말로 욕 겁나 많이 먹었다.
   
   다시 살짝 잠이 들었던 새벽녘! 우당탕 하는 굉음과 함께 돌더미가 우리 주변을 덮쳤다. 너무나 순식간이었는데, 우리가 옮겨온 텐트 바로 밑까지 싹 쓸려내려가 쑥대밭이 되었다. 돌더미가 우리 텐트를 살짝 스치고 지나간 것이 정말로 천운(天運)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몰살! 그날 김치 냄새가 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김치찌개 담당이었던 내가 잠에서 깨어 텐트를 옮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김치 냄새, 김치찌개, 우리들 생명의 은인이여.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에 출장갔을 때였다. 떠나기 전날 과음으로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세 차례나 서양식 기내식을 먹고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내리니 헛배가 부르고 메스꺼움이 점점 심해졌다. 나는 일행에게 간청하여 무조건 한식당으로 갔다. 메뉴에 김치찌개는 없었다. 대신 설렁탕과 배추김치가 있었다. 나는 설렁탕을 뜨겁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뜨거운 설렁탕이 나오자 배추김치 두 사발을 확 부어서 즉석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폭풍 흡입이 이어졌다. 이내 속이 시원해지면서 마음도 상쾌해졌다. 즉석 김치찌개 덕분에 독일 출장은 기대 이상의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즉석 김치찌개 파이팅!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드는 게 작은 소망이다. 나아가 우리의 참맛을 고루 간직한 김치찌개 맛의 수준을 더욱 높여서 여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고도 싶다.
   
   2018년 우리나라가 3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한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인 나라로 일본·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김치찌개의 영양 듬뿍, 간간하고 매콤하며 짭짤한, 오묘하기까지 한 바로 그 맛! 그 깊고 강력한 맛으로 우리 나라 우리 국민을 더욱 강건하게 하여 자랑스러운 신화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김치요, 김치찌개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30-50클럽 가입과 김치찌개, 모두가 우리의 자랑이다. 대한민국 만세! 맛있는 김치찌개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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