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호메로스. (우) ‘오디세이아’ 표지.
(좌) 호메로스. (우) ‘오디세이아’ 표지.

시중에는 ‘아빠의 무관심’이 자식을 잘 키우는 비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빠는 잠자코 돈이나 잘 벌어오고 엄마가 좋은 사교육을 수소문하여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에 관해 대부분 부재(不在) 상태이다.

이러한 부재는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버지가 집을 떠나 부재한 상태에서 자식이 스스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고색창연한 고전이 있다. 바로 호메로스(Homeros)의 ‘오디세이아(Odysseia)’이다. 이 시가(詩歌)는 수백 년 동안 구전(口傳)되다가 기원전 8세기 무렵 비로소 문자로 정착되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이타케의 왕인 오디세우스이다. 그는 막 태어난 아들을 두고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트로이전쟁(기원전 12세기)에 참전한다. 그는 전쟁 중에 출중한 지모(智謀)를 발휘한다. 저 유명한 트로이목마도 그의 아이디어다. 그는 직접 목마 안에 숨어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드디어 10년간의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자 연합군의 왕들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각자 귀향길에 오른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순조롭게 귀향하지 못한다. 그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게 미움을 받아 무려 10년 동안이나 바다 위를 떠돌게 된다. 이를 둘러싼 파란만장한 모험담이 ‘오디세이아’인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이아’를 펼치면 정작 오디세우스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첫머리(1~4권)는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집을 떠나 1년간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이어서 중간 부분(5~12권)은 오디세우스가 10년 동안 바다를 떠도는 이야기이고, 후반부(13~24권)는 부자(父子)가 협력하여 가정을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9년이 지나도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그의 생존에 의구심이 들자 이미 3~4년 전부터 많은 사내들이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을 하러 몰려든다. 그들은 주인 없는 집의 가축을 잡아먹으며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다. 텔레마코스는 10대 중후반부터 이런 난장판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한다.

이때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은 포세이돈이 멀리 간 사이에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아테네 여신이 나그네로 변신하여 텔레마코스 앞에 나타난다. 여신은 바다 건너 필로스의 네스트로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를 찾아가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권한다. 또한 “그대는 더 이상 어린애 같은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되오”라고 격려한다.

이를 통해 텔레마코스는 커다란 용기를 얻는다. 그는 가인(歌人)의 애절한 노래를 제지하려고 밖으로 나온 페넬로페에게 쏘아붙인다.

“어머니께서는 집안으로 드시고…. (이런 일은) 제 소관이에요. 이 집에서는 제가 주인이니까요.”

페넬로페는 깜짝 놀라며 아들의 의젓함에 감동한다. 이튿날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가 떠난 이래 처음으로 주민총회를 소집한다.

그는 구혼자들이 더 이상 자기 집에 대해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요구한다. 아울러 아버지 소식을 알아보려고 하니 배와 선원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다. 회중은 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때 아테네 여신이 오디세우스의 충직한 부하인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나 항해를 주선하고 동행한다. 이 ‘멘토르’가 오늘날 멘토(mentor)의 어원이 된 것이다.

배는 새벽 무렵 필로스에 닿는다. 마침 거기서는 성대한 제사의식이 열리고 있다. 오랫동안 오디세우스가 부재한 이타케에서는 보지 못하던 성대한 광경이다. 멘토르는 “이제는 자신을 갖도록 하시오. 지금은 결코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오”라고 격려한다. 네스트로에게 안내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네스트로는 오디세우스를 회상하며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오디세우스의 행방은 모르니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에게 가보라고 권고한다. 그러자 멘토르, 즉 여신은 네스토로에게 텔레마코스를 부탁하고 떠나간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멘토는 적당한 시점에 물러나야 하나 보다. 네스트로는 텔레마코스의 스파르타행을 주선한다.

텔레마코스는 스파르타에 도착하여 메넬라오스를 만난다. 그가 바로 문제의 여인 헬레네의 남편이다. 그녀는 한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달아났다. 메넬라오스가 그의 형인 미케네의 아가멤논에게 이 일을 호소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되찾지만 그의 귀향길은 순탄치 않았다. 최근에야 9년 만에 가까스로 귀향한 것이다.

메넬라오스 부부도 텔레마코스가 오디세우스를 닮았다고 놀란다. 메넬라오스는 귀향 도중에 오디세우스가 요정 칼립소에게 붙잡혀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낙담한 텔레마코스 앞에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귀향을 재촉한다. 텔레마코스가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자 헬레네는 “오디세우스가 벌써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덕담을 건넨다.

마침 그때 오디세우스는 오랜 방랑을 끝내고 무려 20년 만에 고향땅을 밟는다. 두 부자는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조우한다. 그러나 곧 부자임을 확인하고 뜨겁게 포옹한다. 부자는 집으로 돌아가 밖으로 통하는 문을 걸어잠근 다음 난폭한 구혼자 무리들을 도륙 낸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도 재회의 기쁨을 만끽한다.

텔레마코스는 스무 살이 되도록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다. 10대 중후반부터는 난폭한 구혼자 무리로부터 시달리다 19세부터 1년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그의 1년은 아버지의 20년 축소판이다. 어느새 늠름한 용사로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와 손잡고 집안을 회복한다. 이처럼 ‘오디세이아’는 아버지의 귀향기이자 동시에 아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도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란다. 그러나 텔레마코스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생생한 현실이다. 그는 스스로 역경을 헤치며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강요된 허구이다. 그들은 입시교육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성장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만다.

그로 말미암아 성장론은 사라지고 수저론만 난무한다. 흙수저, 금수저도 모자라 핵수저까지 등장한다. 김정은까지 수저론에 힘을 보태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세태가 어떻든 간에 ‘오디세이아’는 변함없이 고전적인 성장론을 역설하고 있다. 텔레마코스는 아마 강인한 후계자가 되어 이타케를 훌륭하게 다스렸을 것이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