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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497호]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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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기행] 남해서 올라온 봄의 메신저 도다리쑥국

이지형  작가·푸드칼럼니스트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시인 백석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고 쓰고 있을 때 사랑한 사람은 ‘자야’였지만, 그전에 첫사랑이 있었다. 그저 ‘란’이라고만 줄여 부르던 여성. 란은 멀리 남해안 출신의 처자였고, 이십대 중반의 시인은 첫사랑을 찾아 여러 차례 통영에 내려간다. 그런데 만나지는 못했다. 어느 한 날, 절망한 백석은 낮술을 먹고 통영 충렬사 계단에 앉아 시를 쓴다. 그게 ‘통영(統營) 2’다. 사람도, 사랑도 가고 이제는 그 시만 덩그러니, 충렬사 근처에 검정색 시비(詩碑)로 남았다. 이 시의 첫 소절.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도다리로 꿈틀거리는 남해 봄바다
   
   전복에, 해삼에, 도미 그리고 가자미(가재미)…. 백석이 실연으로 상심한 와중에도 잊지 못했던 가자미 유(類) 중에 문치가자미가 있다. 우리 연안에서 가장 흔하게 잡히는 가자미로, 함경도 특산인 가자미식해의 재료이기도 하다. 몸길이 대략 35㎝ 정도로, 다른 가자미들처럼 옆으로 납작하다. 두 눈은 몸의 오른쪽에 몰려 있는데, 눈이 있는 쪽은 진한 갈색 바탕에 반점들이 오롯하고 눈 없는 반대쪽은 온통 흰색이다.
   
   그런데 잠깐, 눈들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 아니던가. ‘좌광우도’라고들 하지 않나. 눈이 왼쪽이면 광어(넙치), 오른쪽이면 도다리. ‘좌광우도’ 네 글자가 잘 외워지지 않을 땐 “‘왼쪽’이면 두 글자니까 광어, ‘오른쪽’이면 세 글자니까 도다리”라고 외기도 하는…. 하지만 문치가자미는 엄밀한 학술적 구분으론 도다리와 다른 어종이다. 도다리는 몸집이 30㎝ 정도로 문치가자미에 비해 작고 마름모꼴이다. 그렇긴 해도 사람들은 문치가자미를 그냥 도다리로 뭉뚱그린다. 하긴 가자밋과 어류 전체를 넙치(광어)와 어류들과 구분해 몽땅 도다리로 얼버무리기도 하지만.
   
   하여간 이 문치가자미, 크게 보아 도다리는 겨울, 그러니까 12월에서 2월 사이에 산란을 한다. 산란의 시절엔 바다 밑바닥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지만, 산란이 끝나면 축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먹이를 찾아헤맨다. 그때가 우수 지나고 경칩 지날 때쯤이다. 하늘에서 봄비가 내리고, 땅에서 개구리들 움찔할 때, 남해 연안 바닷물도 산란을 끝낸 도다리들로 인해 거대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남해 바닷가에선 도다리가 ‘봄의 메신저’다.
   
   2월 지나 3월로 가면서 대량으로 잡히기 시작하는 ‘봄의 메신저’들을, 우리는 툭툭 두세 도막으로 썬다. 그리고 국을 끓인다.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 않다. 무와 대파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거기에 손질해 토막 내놓은 도다리를 넣는다.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하고, 매운 고추 정도를 곁들인다. 그리고 화룡점정(畵龍點睛)…. 도다리가 다 익은 듯하면 향긋하고 부드러운 해쑥을 넣고 바로 불을 끈다. 다진 마늘은 안 넣는 편이 쑥 향을 제대로 즐기기에 좋다. 봄철의 별미 도다리쑥국의 완성이다.
   
   서울에도 도다리쑥국 하는 식당이 몇 있지만, 이맘때면 제대로 된 봄을 맛보러 80년 전 사랑에 빠져 통영으로 달려간 시인 백석을 좇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철을 즐기는 건 낭만적이고 매력적이고 맛있는 일이다. 따뜻한 바닷바람 담뿍 품은 도다리쑥국으로 길고 추웠던 겨울을 깨우는 건, 특히나 향기롭다.
   
   그런데 매년 봄마다 한 그릇, 두 그릇 도다리쑥국을 비워내며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일까, 쑥일까? 도다리쑥국이 봄철의 대표 별미가 된 것은 도다리 때문일까, 아니면 쑥 때문일까…. 그런 궁금증이다.
   
   
▲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에 진열된 가자미와 도다리. photo 뉴시스

   쑥국인가, 도다리국인가?
   
   생선들은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을 때 가장 맛있다. ‘가을 전어’를 얘기한다. 이유가 있다. 전어들은 4~5월에 집중적으로 알을 낳는다. 산란을 끝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살이 차오르는데, 전어의 경우 그게 가을이다. 많게는 지방의 함량이 다른 때에 비해 세 배까지 올라간다.
   
   “노 팻, 노 테이스트(No fat, no taste)!”라고들 한다. 지방이 없으면, 맛도 없다. 가을이 돼 지방을 한껏 품은 전어를 구우면, 그 담백한 향기가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집 나갔던 며느리가 염치고 뭐고 다 팽개치고 슬그머니 돌아오는 건, 전어의 그 풍성한 기름 향에 정신이 혼미해서다. 물론 그것도 잠시다. 전어는 워낙 뼈가 많고, 10월 지나면 그 뼈들이 거세져 편히 먹지 못한다.
   
   그런데 도다리쑥국의 도다리 자리를 꿰찬 문치가자미는 어떤가. 산란기가 12~2월이다. 살이 차오르기에 봄은 너무 이르다. 백과사전의 문치가자미 항목도 “여름에 특히 맛이 좋다”고 전한다. 경험적으로도, 또 상식적으로도 그게 맞는 얘기이다. 문치가자미 대신 ‘진짜 도다리’로 가면 별미 취급받는 ‘봄 도다리’에 조금 더 근접할 수 있긴 하다. 어류도감상의 도다리는 문치가자미에 비해 산란이 몇 달 빠르고, 그래서 4월이 얼추 ‘제철’이 된다.
   
   그러나 진짜 도다리가 됐든, 유사 도다리(문치가자미)가 됐든, 도다리는 가을 전어만큼 드라마틱한 맛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다. 계절에 따라 단백질과 지방 함량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전어에 비해, 도다리들의 단백질·지방 구성은 봄·여름·가을·겨울 가리지 않고 엇비슷하다. 그러니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도다리쑥국이 봄철 별미가 된 건 도다리 때문이 아니라, 쑥 때문이라고.
   
   
   쑥 한 줌의 위력
   
   도다리쑥국에 넣는 쑥을 해쑥이라 부른다. 언젠가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먹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도다리 얘기는 안 하고 해쑥 자랑만 늘어놓던 기억이 난다. “이게 남해에서 바닷바람 맞고 자란 해쑥이어서….” “해쑥 아니면 도다리쑥국도 제맛 내기 어렵고….” 그 얘길 들으면서 바다(海)에서 자라서 해쑥인가 보다 했다. 이제 막 포근해지는 바닷바람 맞고 자란 쑥이니, 그냥 내륙의 산야에서 자란 쑥에 비해 얼마나 더 짭짤하고 감칠맛이 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도다리쑥국을 연거푸 퍼먹었다.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쑥이 바닷바람 맞고 자란 쑥인 건 맞다. 바람에서 봄기운이 느껴질 때면, 남해안의 아낙들은 일제히 큼직한 바구니나 비닐 하나씩 들고 한산·소매물·비진도 등 통영 앞바다의 섬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볕 잘 드는 언덕에 여기저기 돋아나 있는 쑥들을 맘껏 캔다. 쑥대밭이라 하지 않나. 그냥 두면 엄청난 생존력으로 밭을 일거에 덮어버리는 게 쑥이다. 봄날이면, 쑥이 그야말로 지천에 널린다.
   
   그러나 바닷바람 맞았다고 해쑥이 아니다.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쑥의 생명은 여린 질감과 강한 향이다. 바다의 짠내를 속으로 머금으며 만들어낸 섬 기슭 쑥의 강한 향은 물론 해풍의 덕일 게다. 그러나 거친 바람을 오래 맞고 있으면 여린 질감은 사라진다. 뽐내는 일 없이 수줍은 연초록의 야들야들한 질감은 바닷바람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기인한다. 돋아난 지 얼마 안 되니 연하다.
   
   해쑥은 그렇게 그해에 막 난 여린 쑥을 가리키는 말이다. 햇감자, 햇과일, 햅쌀이라 할 때 접두사 ‘해’다. 이 여린 쑥이 5월을 넘기면 질겨지고 씁쓸한 맛도 강해진다. ‘해쑥’이라 이름 붙일 만한 쑥은 3~4월, 그야말로 봄 한때의 쑥이다. 도다리쑥국이 봄철의 별미가 된 건 바로 해쑥의 짧은 채취 기간 때문이다. 그러니 봄철의 별미 도다리쑥국은 도다리국에 쑥을 넣었다기보다, 쑥국에 도다리를 넣은 것으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 도다리쑥국은 봄의 남해바다가 주는 선물이다. photo 김승완

   벚꽃 바라보며 세 그릇
   
   쑥의 효능을 알고 가자. 쑥은 곰을 아리따운 여성으로 둔갑시킬 만큼의 신약(神藥), 묘약(妙藥)이다. 물론 쑥만으로 된 건 아니고, 마늘과 간절한 마음이 함께 있어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쑥의 중요성이 절하되진 않는다. 그럼, 신화의 웅녀(熊女)를 탄생시킨 쑥의 강한 약성(藥性)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쑥에는 시네올(cineole)이란 정유(精油) 성분이 있다. 유칼립투스란 식물이 가끔씩 엄청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데, 그 역시 유칼립투스 오일의 주요 성분인 시네올 때문이다. 강력한 살균력으로 인해 소염과 방부 작용에 탁월하다. 특히 호흡기 계통 질환에 효과가 크다. 한의(韓醫)에서 기침·천식·비염 환자들에게 쑥을 권하는 이유다.
   
   시네올이 아니더라도 쑥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칼륨과 함께 피를 맑게 해준다. 또 탄닌 성분은 핏속의 과산화지질 생성을 억제해 세포의 노화를 늦추어준다.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어린 쑥 얘기하는 마당에 딱히 어울리진 않지만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 먹고 고친다”는 옛말도 있다. 여린 쑥이든, 묵은 쑥이든 모두 오염된 피를 정화시키는 데 독보적이다.
   
   도다리쑥국의 양대 축인 도다리의 효능을 빼놓고 갈 순 없겠다. 도다리는 바다 밑바닥에 살면서 새우, 조개, 게 종류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육식을 위주로 한 잡식이다 보니, 단백질의 질이 우수하고 지방 함량이 적다. 담백하고 개운한 만큼 간(肝)에 좋다. 비타민A도 많고 콜라겐도 풍부하다.
   
   도다리와 쑥의 연합이 만들어내는 힘은 이렇게 막강하다. “봄철에 도다리쑥국 세 번만 먹으면 한 해 건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남쪽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다. 마침, 도다리쑥국의 본고장 통영의 거리엔 3월 하순~4월 초순에 걸쳐 벚꽃이 흐드러진다. 바닷가 마을에 두어 달 머물면서 벚꽃 피기 전에 한 번, 벚꽃 무성할 때 한 번, 벚꽃 진 후에 또 한 번, 그렇게 세 번만 도다리쑥국을 먹으면 2018년 무술의 해가 내내 무탈할 텐데…. 늘 생각만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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