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이냐 파국이냐. 바야흐로 북핵문제가 종착점으로 치닫고 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고비다. 목전의 두어 달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여기에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1946년 뉴욕 출생인 그는 편향적인 발언을 일삼고 스캔들을 달고 다닌다. 언행은 거칠고 공격적이다. 심지어 악수를 하면서도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들기 일쑤다. 여러모로 다소 비상식적인 인물로 비치는 것이 우리의 평균적 정서다. 미국에서조차 또라이니 허풍쟁이니 하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혹독한 경쟁과 검증을 극복하고 미합중국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이다.

과연 그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그는 40대 초반에 이미 뉴욕 맨해튼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의 삶과 성공을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바로 ‘트럼프:거래의 기술’(Trump:The Art of the Deal·1967)이다. 이 책은 무려 10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어 ‘deal’은 다루다, 매매하다, 거래하다, 협상하다 등등을 두루 가리킨다. 그는 자서전 제목에 이 단어를 넣어 자신의 독특한 인생관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거래 자체를 좋아해서 거래를 한다.… 나는 거래를 통해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거래의 기술’을 필두로 그는 거의 스무 권에 가까운 책을 펴냈다. 대부분이 공저(共著)라서 모두 그가 직접 썼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책마다 그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한결같이 ‘거래의 기술’에 언급된 내용을 부연하거나 상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거래의 기술’이 그의 삶과 사업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단서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는 ‘거래의 기술’을 대통령선거 캠페인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그는 이 책을 손에 들고 “나는 위대한 협상가다”라고 외쳤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외국과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아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고 주장했다. 이런 호소가 이른바 ‘성난 화이트 아메리칸(Angry White American)’의 표심을 예리하게 자극했다. 이처럼 ‘거래의 기술’은 그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소개한 책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뉴욕 변두리에서 주택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따라서 그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직선적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교사의 얼굴을 때려 멍이 들게 한 적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상당한 성공을 거뒀지만 주류에는 미치지 못했다. 트럼프 자신의 성장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유일한 일류 딱지인 ‘와튼스쿨’ 학력을 항상 자랑했다. 이런 콤플렉스가 다소 허풍을 떨고 과장을 즐겨하는 그의 기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독특한 기질을 오히려 삶과 사업의 활력소로 삼았다. 특히 그는 변두리 개발업자인 아버지의 품을 떠나, 맨해튼 중심부에서 자수성가해 보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1971년 25세 때 드디어 맨해튼에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얻었다. 그는 어렵사리 사교클럽에 가입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불과 몇 년 후 그는 기상천외한 거래를 통해 낡은 대형호텔을 인수하여 성공적으로 재개장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불과 10여년 만에 트럼프타워 건설, 카지노사업 진출, 트럼프파크 건설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뉴욕 맨해튼의 대표적인 부동산 사업가로 성장했다.

그는 호텔 사업을 처음 결심할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나는 27세(1973)에 불과했으며, 실제로 호텔에서 잠을 자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만제곱피트에 달하는 그 괴물 같은 (코모도어)호텔을 사려 하고 있었다.” 그는 속수무책 퇴락해가는 대형호텔을 살리기 위해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한 큰 그림을 그렸다.

그의 구상은 복잡한 협상이 필요했다. 그는 소유주와는 가격 협상을, 뉴욕시와는 감세 협상을, 은행과는 대출 협상을, 하얏트호텔과는 공동운영 협상을 동시에 벌였다. 3년을 씨름한 끝에 드디어 이 협상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그는 오로지 사업구상과 협상을 통해 맨주먹으로 이 호텔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하얏트호텔과 지분을 반씩 나눠 가졌다.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지렛대를 또 다른 지렛대로

이 성공이 바로 트럼프 신화의 다딤돌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크게 생각하라(Think Big)’는 신념을 얻었다. 그는 남이 미처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발상으로 커다란 협상판을 만들었다. 그는 거기에 모든 문제를 풀어놓고 자기 주도로 일괄타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쪽과의 합의를 저쪽의 지렛대로 사용하고 저쪽과 합의를 또 다른 지렛대로 사용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켰다.

그의 통 큰 면모는 협상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조건을 바꿔가며 협상을 질질 끌지 않았다. 대담한 제안을 하고는 곧바로 가부(可否)를 압박했다. “협상에서는 너무 약삭빠르게 굴면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으며, 시간적으로도 가능한 빨리 매듭짓는 것이 유리했다. 그 가격으로 사거나,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런 스타일은 대개 디테일을 놓치기 쉽다. 나중에 그런 디테일이 악마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에게도 성격상 그런 우려가 농후하다. 그러나 그는 평생 협상으로 이골이 난 인물이다. 결코 서둘러 사인하지 않았다. “일단 우리는 매입가에 관해서는 합의를 보았으나,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가 수천 가지는 될 것이다.”

그는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고 강조한다. 겉보기에는 정말 멋진 말이다. 실제로 그는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이 옳다는 바를 고수하기 위해 거칠게 싸웠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시 당국과 소송전도 불사했다. 그는 손해가 두려워 싸우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얕잡아본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신념’이란 바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교사를 구타한 것도 크게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사건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자립하려는 생각이 있었으며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 생각을 알리고자 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의 이런 성격은 그의 사업이나 협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나를 이용하거나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철저하게 응징했다.”

그는 그에게 맞설 기색이 보이면 아예 초장에 거친 대응을 통해 상대를 후려갈겼다. 대선 캠페인 때 보잉 CEO가 그의 중국 정책을 문제삼았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보잉이 공급하는 대통령 전용기 값이 너무 비싸다”고 비판하고 ‘주문취소’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러자 적어도 업계에서는 그의 통상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또한 그는 거래를 할 때는 일을 추진시킬 지렛대를 잘 사용하라고 주장한다. “코모도어호텔을 구입할 때 나는 호텔 주인을 설득해서 그들이 호텔을 폐업할 의사가 있음을 공표하게 했다. 그들이 발표를 한 뒤에 나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호텔이 문을 닫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강조하면서 다녔다.”

그는 대통령 당선 후 이례적으로 대만 총통과 통화를 했다. 여차하면 ‘하나의 중국’도 안중에 없다는 엄포였다. 요즘도 북핵문제와 FTA 재협상이 걸려 있는 우리를 상대로 갖가지 관세폭탄을 쏟아놓고 있다. 이처럼 호시탐탐 지렛대를 만들어 거래를 주도하려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다.

특히 그의 말은 수시로 냉온탕을 오간다. 우리는 도대체 그의 의중이 뭐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바로 그가 원하는 바이다. 그는 상대가 자신의 의중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처신이 몸에 밴 사업가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고도 결코 정치가로 변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정치는 단순히 사업의 연장일 뿐이다.

그가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업은 낡은 호텔의 재건사업이었다. 그때 하얏트호텔 측과 호텔 운영권 협상이 도무지 진척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협상 당사자가 실권자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최고책임자를 수소문하여 그와 담판을 지었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 “중요한 협상을 하려면 최고위층과 만나야 하는 법이다.”

“그는 교착상태를 지독히 싫어한다”

그의 자문변호사였던 조지 로스가 트럼프와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트럼프처럼 협상하라’(Trump-style Negotiation·2006)를 썼다. 거기에 트럼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착상태다. 그는 거래가 어떠한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 채 무한정 끄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이처럼 그는 늘 최고위층과 만나 신속하게 담판을 짓는 방식을 선호했다. 또한 조건을 여러 번 바꿔가며 승강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는 과감한 조건을 제시해 ‘Yes’든 ‘No’든 곧바로 결론을 내려는 스타일이다. 이런 협상관이 이번에 김정은의 회동제의를 전해 듣고 ‘즉석에서’ 수용한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협상 스타일이 국제정치무대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맨해튼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공무원들과 무수하게 충돌했다. 특히 뉴욕시 당국은 센트럴파크의 아이스링크 재건공사를 몇 년째 질질 끌며 예산만 낭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자비(自費)로 몇 달 만에 마무리하겠다고 제안하여 그대로 실행했다. 이런 경험 등을 통해 그는 공무원과 정치인의 무능과 안일을 극도로 혐오하게 됐다.

그는 지금도 정치를 ‘트럼프 스타일 비즈니스’처럼 하고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도 조직을 이용하기보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해치운다. 그는 바탕이 여전히 사업가다. 어디서나 사업가는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받는 직업이 아니다. 그 자신도 “나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거의 모든 일을 마다않고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엄연한 ‘현실’이다. 어설픈 도덕적 판단은 백해무익하다. 우리는 그를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독특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독특성이 무엇인지 분석하여 그에 적합한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최근의 외교적 진전은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고 언급한 것은 적절하다. 그처럼 자기과시적인 사람에게는 그런 배려도 필요하다.

그는 미국이 협상을 잘못 맺어 국익을 잃었다며 워싱턴 정치를 공격해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도 이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기존의 협상을 흔들어 국제질서를 재편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그의 ‘거래의 기술’이 그의 정치적 운명의 기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머지않아 김정은과 담판에 나선다. 그의 성격상 단판으로 끝내려 할 것이다. 그는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속내를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판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기가 한 말을 태연히 뒤집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한 그는 정치인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사업가적 카드를 준비할지도 모른다. 우리로선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그는 평생 부동산 사업을 해온 사업가다. 우리는 여전히 사업적 거래와 국제정치적 거래가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본다. 이런 생각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미 협상이야말로 ‘트럼프 스타일 정치’에 대한 본격적 시험대이다. 행운일지 불행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운명이 그런 시험대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작년 6월 전직 농구선수인 데니스 로드맨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때 그가 ‘거래의 기술’을 가져간 것이 외신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 김정은은 밤낮으로 ‘거래의 기술’를 열공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를 알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거래의 기술’을 읽어 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트럼프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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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전 한국공항공사 상임감사, 전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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