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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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주말 장거리달리기를 위해 복장을 갖춘다. ‘달림이’에게 봄은 일찍 온다.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보온재킷은 이제 더 쳐다보지 않는다. 몸에 붙는 티셔츠 위에 가벼운 기모셔츠, 그리고 바깥에 얇은 바람막이만 입는다. 바지는 아내가 늘 민망해하는 타이즈를 또 입었다. 달릴 때 걸림이 없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보온을 위해 장갑과 모자를 챙긴다. 그리고 전화기, 교통카드, 지폐, 신용카드를 넣은 작은 허리가방을 두르는 것으로 장거리달리기 준비를 마친다.

집을 나섰다. 공기는 아직 차다. 그래도 겨울의 날카로운 느낌이 아닌 부드러운 봄기운이 묻어난다. 모처럼 미세먼지 예보 없는 주말 아침이다. 해뜨는 방향으로 달릴 계획이다. 한강 물길 반대 방향인 상류 쪽으로 가면 동쪽 방향, 해뜨는 방향이다. 경기 남양주 도농동 집에서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팔당역을 지나 양수역까지 25㎞를 달릴 생각이다.

빨리 걷는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달리며 몸을 데우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속도를 내면 20㎞ 정도 지나 힘들어진다. 빨리 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천천히 긴 시간 달리기 여행을 즐기려고 한다.

20대 중반에 우연히 시작된 나의 달리기 생활이 28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장교후보생 시절 장거리 구보 훈련을 하면서 달리기의 매력을 알게 됐다. 뙤약볕 내리쬐는 넓은 연병장에서 군장을 갖추고 소총을 앞에 들고 줄 맞춰 수십 바퀴를 돌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했던 장거리 구보훈련이 나는 기다려졌다. 3년간의 군복무 기간 동안 나는 ‘검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매일 아침저녁 달리고 또 달렸다. 제대 후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후 미국 뉴욕·보스턴 마라톤 같은 해외 마라톤대회도 참가하며 25년 동안 풀코스 마라톤을 80여회 완주했다. 그 기간 동안 기록을 단축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달리는 중간 포기하는 좌절감도 느껴 보았다. 30년 가까운 긴 시간 부상과 좌절, 성취감 등 달리기 생활의 굴곡을 겪으며 도달한 결론은 ‘달리기 자체의 즐거움을 즐기자’는 것이다. 나를 느끼고 공기를 느끼며 내면에 몰입하는 즐거움. 그러려면 안전한 곳에서 천천히 오래 달려야 한다.

집에서 나와 달리기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났다. 몸과 머리에 열기가 가득하다. 모자가 거추장스러워진다. 바람막이를 입은 몸 안은 이미 땀으로 젖었다. 팔다리의 움직임이 부드럽다. 호흡이 안정되어 달리는 몸이 리듬감 있게 움직인다.

덕소마을이 끝날 즈음 예봉산 뒤에서 아침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른 봄답지 않게 쾌청한 하늘에 햇살이 더욱 눈부시게 갈라진다. 강렬한 아침 태양빛이 정면으로 안긴다. 바로 이 에너지, 떠오르는 봄 태양의 기운을 온몸으로 맞고 싶었다. 천천히 달리며 지난 겨울 지독한 추위에 축 늘어진 나의 몸에 에너지를 충전한다. 에너지가 호흡을 통해 들어온다. 피를 타고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 든다. 몸이 저절로 앞으로 간다.

팔당역을 지나니 해는 비스듬한 높이에 떠올라 어둠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제부터 중앙선 옛 철로를 자전거길로 바꾼 곳이다. 대학 시절 능내나 양평으로 놀러갈 때 기차 타고 지나간 길이다. 팔당댐을 시선 아래로 두고 볼 수 있다. 기차가 다니던 터널 속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을 깨우고 영감을 주는 낯섦이다. 달리기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달리면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낯설게 보기는 발견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몰입과 낯섦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 때론 오래된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도 해준다. 분노와 혼란을 가라앉히고 용서와 평안을 주기도 한다.

능내역에 이르면 양수역이 이제 5㎞ 정도 남았다. 곧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가 강 건너편에 보인다.

양수역에 도착했다. 멈추고 나니 땀이 더 많이 흐른다. 숨을 고르고 마무리 운동을 한다. 이제는 근육의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이 더 필요한 나이다. 50대에 접어들어서는 몸을 부드럽게 만드는 운동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장거리달리기로 경직된 어깨, 허리, 다리 근육을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꼼꼼하게 한다. 양수역에서 중앙선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아침 해의 에너지를 흠뻑 받은 세 시간의 달리기가 주는 충만감을 안고 집에 들어선다.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을 위한 Q&A

Q 달리기를 하면 무릎관절에 안 좋다는데.

A 달리기 자체가 무릎관절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없다. 오히려 가벼운 달리기는 무릎관절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자신의 무릎 주변 근력보다 너무 센 강도로 달리기를 하거나 너무 자주 달리기를 해서 피로가 누적되면 무릎관절이 손상될 수 있다.

Q 걷기와 달리기의 운동 효과를 비교해서 설명한다면.

A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이나 달릴 수 없는 환경이라면 걷기를 하는 것이 좋다. 가능한 빨리 오래 걸어야 운동 효과가 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운동한다면 당연히 달리기가 운동 효과가 크다. 빨리 걷는 것보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근육을 많이 쓰며 체중관리에도 더 효과적이다. 또 걷기 동작에는 매번 무릎이 똑바로 펴지는 동작이 있기 때문에 무릎관절이 약한 사람이라면 빨리 걷는 것보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무릎에 더 유리하다.

Q 요즘 미세먼지가 많은데, 바깥에서 달리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A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야외에서 달리지 않는 것이 좋다. 운동으로 인한 이익보다 오염된 공기로 인한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덴마크 코펜하겐대 전염병학과 조라나 요바노비치 안데르센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공기오염이 심하지 않을 경우 운동으로 인한 이익이 더 크다.

Q 달리기에는 신발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골라야 하나.

A 신발은 반드시 러닝화(마라톤화가 아니다!)를 신어야 한다. 요즘 ‘달리기 한다’를 ‘마라톤 한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달리기를 위한 신발도 ‘마라톤화’를 신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마라톤화는 전문 선수들이 기록 단축을 목표로 할 때 신는 경량화다. 충분히 훈련된 선수들이 신기 때문에 가볍게 만들기 위해 보호장치가 적다. 그러므로 일반 초보 ‘달림이’가 신기에는 부적당하다. 반드시 러닝화를 신어야 한다. 러닝화는 자신의 발 특성과 동작 특성, 용도에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 초보자가 직접 고르기 힘들기 때문에 러닝화 전문매장을 방문해 상담하는 것이 좋다. 초보자가 직접 러닝화를 선택해야 할 경우 러닝화 중 ‘안정화(stability shoes)’를 선택하면 신발로 인한 부작용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쿠션이 너무 많은 것은 오히려 안정성이 부족해 자칫 신발로 인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Q 그외 초보 달림이에게 필요한 장비와 고르는 요령은.

A 신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운동복이다. 달릴 때 걸림이나 피부쓸림이 없는 옷을 입어야 한다. 땀배출이 잘되는 기능성 섬유의 운동복이 좋다. 면소재의 옷은 피해야 한다. 땀을 머금고 있어 무거워지고, 이로 인해 피부쓸림도 더 심해진다. 상의는 등산용 기능성 티셔츠도 괜찮다. 하의는 기능성 섬유로 된 속내의에 몸에 밀착되는 운동복 바지면 좋다. 날씨와 기온에 맞춰 입으면 된다.

운동복은 달리기 경력이 늘어갈수록 계절, 기온, 날씨 등에 따라 다양하게 필요해진다. 미리 구입하지 말고 그때그때 필요할 때 구입하는 것이 좋다. 그외 모자, 양말, 휴대폰이나 신분증을 넣을 수 있는 작은 허리가방 등을 준비하면 좋다. 러닝용품 전문점에 가서 조언을 받는 게 최선책.

Q 아침에 달리는 것이 좋은가, 저녁에 달리는 것이 좋은가.

A 아침이든 저녁이든 자신의 생활주기에 맞춰 달리는 것이 좋다. 달리기의 운동 효과는 규칙적으로 할 때 가장 크다. 만약 아침이든 저녁이든 선택할 수 있다면 저녁(오후 5~7시)이 좋다. 오후 늦은 시간에는 몸이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운동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Q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는 것이 좋은가. 적절한 운동 시간과 횟수는.

A 초보자에게 달리기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 숨가쁘게, 힘들게 달리지 말라.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편한 속도로 달려라. 몸이 좋아지면 속도도 저절로 빨라지게 된다.

한 번 달리기를 할 때 최소 40분 이상 하는 게 좋다. 처음에 연속해서 달리기 힘들다면 중간에 걸어도 된다. 40분 정도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최소 3일은 달려야 달리기의 긍정적인 효과가 몸에 미친다. 5일 정도 달린다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빨리 느낄 수 있다.

Q 그외 달리기 초보자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A 운동은 일상의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나의 체력조건, 생활조건 등에 맞는 운동 강도와 주기, 시간을 찾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또 달리기의 부정적 효과(허리나 다리 근육이 굳어지는 것)를 줄이기 위해 달리기 전후, 특히 달린 후 근육을 부드럽게 해주는 운동을 꼭 해야 한다. 50세 이상은 몸의 부드러움을 유지해야 생활 속 잔부상과 통증을 피할 수 있다. 달리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스트레칭은 꼭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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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성 조선비즈 연결지성센터장. 대한육상연맹 자문위원. 마라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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