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주꾸미는 여러모로 애매하다. 시장에서, 음식점에서 부르는 대로 ‘쭈꾸미’라 해주고 싶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규정에 위배된다. 자장면 말고 짜장면도 표준어 아니냐고 따져도 소용없다. 주꾸미의 ‘주’를 이유 없이 된소리 ‘쭈’로 발음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주꾸미는 계속 주꾸미여야 한다.

이름뿐 아니라 크기와 생김새도 애매한 편에 속한다. 뼈 없이 흐물흐물한 연체동물 중에 두족류가 있다. 머리(두)에 발(족)이 달려서 두족류다. 그중에 발이 10개인 걸로 오징어·갑오징어·꼴뚜기가 있고, 8개인 걸로 낙지·문어가 있다. 주꾸미의 경우 다리가 8개이니 낙지·문어와 한통속이다. 하지만 문어가 보통 60~70㎝에서 클 때는 3m에 이르고, 낙지도 곧잘 30㎝를 웃도는 데 비해, 주꾸미는 커봐야 20㎝다. 거대한 문어, 미끌미끌 유연한 낙지에 비해 생김새에도 별 특징이랄 게 없다. 그렇게 눈에 띄지 않으니 ‘꼬마 문어’나 ‘꼬마 낙지’ 소리를 듣고 만다. 주꾸미라는 그 애매한 이름조차 제대로 듣고 살지 못했다.

그러던 주꾸미가 오랜 세월에 걸친 푸대접을 딛고, 봄날 제철음식으로서 이름을 날리는 중이다. ‘봄 도다리’와 어깨를 겨루기도 하고,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슬로건 속에서는 자신에게 ‘꼬마’라는 수모를 안겼던 낙지와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이 정도면 입지전이다. 무엇이 주꾸미의 입지전을 가능하게 했을까? 이름도 애매하고, 생김새도 볼품없는 주꾸미의 기사회생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주꾸미에게 화려한 봄날을 안겨다준 요인은 두 가지다. 하나, 모락모락 김을 내는 흰 쌀밥의 모양새로 머리(사실은 몸)를 가득 채운 알들. 둘, 보이진 않지만 몸체 전반에 퍼진 유기화합물 타우린. 시련을 이기고 봄철의 대표 음식으로 떠오른 주꾸미의 사연을 7개의 키워드를 통해 정리해볼 생각이다. 각각의 키워드는 모두 흰 알과 타우린의 변주에 해당한다.

1. 동백꽃

동백은 겨울과 봄에 외롭게 꽃을 피운다. 12월 말 한반도 남단 거문도에서 피기 시작해 2월에 진도와 해남, 여수와 통영을 거치고, 3월이면 미당 서정주의 시로 유명한 고창 선운사에서 붉디붉은 꽃을 터뜨린다.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남은, 그것도 목이 쉬어 남은 동백꽃들을…. 그리고 충남 서천 마량 포구의 동백꽃이 남는다. 마량은 동백의 북방한계선이다.

서천 바닷가 마량 포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한반도의 마지막 동백들이 그 빠알간 꽃망울을 일제히 터뜨리려 할 때 주꾸미는 하얀 밥알 같은 알을 제 몸에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그게 3~4월을 대표하는 알배기 주꾸미, 봄날의 주꾸미다.

시들어야 떨어지는 다른 꽃들과 달리 동백은 꽃망울 아직 생생할 때 툭, 땅으로 떨어진다. ‘동백은 세 번 핀다’란 말은 그래서 한다. 나무 위에서 한 번, 땅 위에서 한 번 피고 난 연후에도 그 진홍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고, 사람 마음속에서 한 번 더 자신을 피워낸다. 동백이 그렇게 세 번 피고 지는 봄날 내내, 주꾸미는 전국 도처에 깔린 식당의 냄비와 석쇠 위에서 그 하얗고 탐스러운 알을 툭툭 터뜨려댄다. 듣도 보도 못한 식감으로 주꾸미가 사람들을 유혹하기 시작하는 3월 하순, 마량 포구 일대에선 붉은 꽃과 하얀 알이 뒤섞이는 ‘동백꽃·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다.

2. 밥 문어

세심한 어류 백과사전 ‘자산어보’는 주꾸미를 준어(蹲魚)로 칭한다. ‘준(蹲魚)’은 웅크리고 쭈그린다는 뜻인데, 춤을 춘다는 의미도 갖는다. 200년 전 흑산도의 정약전은 바위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발각돼 도망치는 주꾸미를 유심히 관찰했을 게다. 오므렸던 다리를 연신 펼쳐대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주꾸미의 폼은 어수룩하나마 왈츠를 추는 모습과 닮았다. 한자 표기 중엔 준어 말고 죽금어(竹今漁)도 등장하는데, 발음(주꾸미)이 먼저인지, 표기(죽금어)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주꾸미의 생태에 주목한 약전과 달리, 일본인들은 요리의 재료로서 주꾸미의 특징에 더 관심을 보였다. 주꾸미를 표현하는 일본어 중에 반초(飯鮹)가 있다. ‘반(飯)’은 밥이다. ‘초(鮹)’는 문어일 때도 있고, 낙지일 때도 있다. 주꾸미는 일본 사람들에게 ‘밥 문어’ 아니면 ‘밥 낙지’다.

3. 삼겹살

알 가득, 살 오른 주꾸미를 사람들은 데치고, 삶고, 볶고, 굽는다.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어도 그만이지만 미식과 요리의 욕구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손바닥 펼친 만큼의 아담한 사이즈, 그리 크지 않아 통째로도 먹기 적당한 이 식재료를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는다. 신선한 야채들에 얹어 샐러드의 풍미를 높이고, 비빔밥에 넣어 먹는가 하면, 철판볶음, 석쇠구이, 샤부샤부의 재료로 쓴다. 그리고 삼겹살과 함께 볶아도 먹는다.

“굳이 삼겹살을?”이란 의문을 피할 수 없다. 땅 위의 단백질과 바닷속의 단백질을 함께 놓고 먹는 건 미감(美感)으로도, 식감(食感)으로도 부담이다. 그러나 영양소들의 합종연횡을 고려할 때, 삼겹살과 주꾸미의 궁합은 탁월하다. 삼겹살 앞에서 미식가들을 주춤거리게 하는 콜레스테롤의 횡포를, 주꾸미가 잡아주기 때문이다. 주꾸미 속, 타우린의 효능이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은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 삼겹살을 많이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 콜레스테롤은 간과 혈관에 쌓여 혈액의 흐름을 막는다. 동맥질환, 고혈압을 걱정해야 한다.

주꾸미가 그 문제를 해소해준다. 주꾸미 속 타우린은 간에 쌓여 있는 콜레스테롤을 담즙산 형태로 배출시킨다. 고추장을 담뿍 넣어 주꾸미와 삼겹살을 볶은 ‘쭈삼(주삼) 불고기’의 인기는 영양상의 이유도 갖는다.

4. 박카스

간의 부담을 덜어주다 보니 타우린은 피로회복제로도 각광이다. 최근엔 알츠하이머병을 호전시킬 성분을 찾기 위한 연구가 부산하다.

주꾸미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타우린이 들었을까?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분석해 놓은 수산물성분표를 보면, 100g을 기준으로 1597㎎의 타우린이 주꾸미에 들어 있다. 연체동물 두족류 중에 압도적인 수치다. 오징어의 5배, 문어의 4배, 낙지의 2배 수준이다. 오징어·문어·낙지 모두 자신들의 강점으로 타우린을 내세우지만 주꾸미에 비하면 턱없다. 타우린의 최강자는 단연 주꾸미다.

특정 브랜드 얘기를 꺼내서 그렇지만 사람들이 흔히 마시는 피로회복제 박카스와 비교해 보면 주꾸미의 위력이 단박에 드러난다. 박카스의 주성분이 바로 타우린이다. 그냥 타우린 음료라고 해도 된다. 그럼 박카스 한 병에는 타우린이 얼마나 들었을까?

약국에서 파는 박카스-D에 2000㎎, 편의점에서 파는 박카스-F에 1000㎎의 타우린이 들었다. 요즘 같은 봄날, 서해에서 잡아 올리는 주꾸미를 1㎏ 주문하면 보통 7~9마리가 딸려 온다. 한 마리의 무게는 130g 안팎이 된다. 이 정도 주꾸미 한 마리면 대략 2000㎎, 약국에서 파는 박카스-D 한 병에 포함된 양과 비슷한 양의 타우린을 함유한다.

타우린 섭취를 위해 박카스 한 병을 마실지, 주꾸미 한 마리를 먹을지는 취향의 문제이지만, 주꾸미에는 타우린 외에 질 좋은 단백질도 풍부하단 사실을 잊지 말자.

5. 가미카제

아마도 타우린의 간 기능 개선과 연관이 있겠지만, 주꾸미는 시력 유지·회복에도 큰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일본의 한 연구자가 고양이에게 한참 동안 생선을 못 먹게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시력이 확 떨어졌는데, 나중에 분석해 보니, 그게 타우린 결핍 때문이었단 것이다.

과장이 섞인 걸로 보이지만 한층 드라마틱한 사연도 있다.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 얘기다. 2차 세계대전 말미,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미군 함정으로 몰고 가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이 가미카제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고 몸이 상하면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시력이 떨어졌단다. 미군 함정으로 정확히 달려들어야 하는데, 눈이 침침하니 큰일이다. 이때 주꾸미를 먹여 시력을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낙지를 먹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때는 시력보다 원기 회복 또는 흥분에 타우린 효능의 초점이 맞춰진다. 어느 쪽이든 타우린의 빠른 약리 효과를 강조하는 ‘설(說)’ 정도로 보면 된다.

6. 소라(피뿔고둥)

동백과 삼겹살에 이어 주꾸미의 단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소라다. 주꾸미를 잡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물을 쓰기도 하지만 ‘소라방’ 조업이 여전히 많다. 빈 소라 껍데기 여러 개를 줄에 묶어 얕은 바다 밑에 가라앉혀 놓는 조업 방식이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주꾸미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어부들은 그걸 건져올린다. ‘소라방’으로 뭉뚱그려 부르고 말지만, 주꾸미 조업에 사용하는 ‘소라’는 정확히는 ‘피뿔고둥’이다.

7. 모정

그런데 주꾸미들은 왜 그리 쉽게 피뿔고둥의 빈 껍데기 속으로 파고들어 갈까? 서해안에 흔한 피뿔고둥은 주꾸미의 주요 은신처인 동시에 최고의 산란 장소다. 5~6월 산란기가 되면 주꾸미는 봄에 품었던 알들을 피뿔고둥 껍데기 속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내내 그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알을 지키기 위해서다. 알을 내어놓고 부쩍 야윈 몸으로 부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끼가 나오면 짧고 거룩한 생을 마친다. 그 절절한 모성 앞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는 쌀밥 모양의 주꾸미 알에 계속 욕심을 내야 할지 말지, 그건 한번쯤 고민해야 할 문제다.

키워드

#맛기행
이지형 작가·푸드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