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502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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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온 편지] 어서 와, 핀란드는 처음이지?

한국서 스타 된 핀란드 삼총사가 전하는 행복론

글·사진 이보영  프리랜서. 1999년부터 핀란드 거주  

▲ 한국의 TV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한 핀란드 삼총사. 왼쪽부터 빌레, 빌푸, 사미.
한국의 TV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핀란드 편에 출연, 핀란드 청년의 순수청정 매력을 보여주며 한국에서 큰 인기몰이를 한 세 명의 핀란드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 드디어 왔다. 3월 말이면 한국은 입춘, 우수, 경칩을 지나 완연한 봄 날씨겠지만, 핀란드 헬싱키는 여전히 영하의 겨울왕국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사실 한국 TV에 출연했던 핀란드 청년들과는 구면이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핀란드 편 사전제작 때 촬영진을 도우며 이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오늘은 헬싱키에 삼총사가 모이지만 작년 이들을 처음 만난 곳은 핀란드 중부에 있는 유바스큘라(Jyvskyl)라는 도시였다. 세 명 중 현재 빌푸 레파넨은 헬싱키, 빌레 마이얄라는 투르쿠(Turku)라는 도시에서 유학 중이고 사미 카파넨만이 여전히 유바스큘라에 살고 있다. 유바스큘라는 이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우정을 키운 정든 고향이다. 참고로 유바스큘라는 핀란드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이며 전통 있는 명문 유바스큘라대학이 위치해 있어 핀란드의 대표적인 교육도시로 불린다. 교육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핀란드의 아테네’라는 특이한 별칭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 TV에서는 이 핀란드 친구들을 계속 ‘순수한 시골청년’으로 이미지 메이킹했지만, 유바스큘라는 핀란드에서는 꽤 큰 도시에 속하니 엄격히 말하면 이들은 핀란드 기준으로는 ‘도시청년’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 눈에는 이 나라 최대 도시 헬싱키도 시골로 비쳐질지 모른다. 인구도 60만밖에 안 되고 도심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헬싱키에서 오늘 우리가 두 번째 도원결의를 하게 된 까닭은 빌푸가 자신의 제2의 고향인 헬싱키를 친구들과 필자, 그리고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함이다. 전날 헬싱키에 도착, 친구 집에서 1박을 한 빌레가 가장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헬싱키에서 가장 멀리 사는 사미도 이른 새벽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오늘 가이드 역할을 맡은 빌푸는 약속시간이 벌써 10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헬싱키도 시골인 이유
   
   ‘핀란드 사람들은 보통 약속 시간 엄수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데.’ 필자는 조금 의아했지만 두 친구는 오히려 느긋하다. 빌푸는 원래 약간 성향이 느리다는 거다. 모두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더 느긋한 표정의 빌푸가 저쪽에서 걸어온다. 아마도 이들이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무사히 한국 여행을 잘 마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서로의 성향을 잘 알고 있어서인 것 같다. 우리는 헬싱키 서쪽에 위치한 캄피(Kamppi) 고속터미널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마지막 종착역인 헬싱키 동쪽 부오사리(Vuosaari)역으로 향했다. 헬싱키가 작기는 작은 도시인가 보다. 도시의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지하철로 겨우 25분 정도밖에 안 걸리니 말이다.
   
   헬싱키 지하철은 최근 인터넷에서 나름 유명세를 탔다. 그 이유는 런던, 파리, 뉴욕, 서울처럼 지하철 노선이 거미 망처럼 복잡하고 잘 구축돼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헬싱키 지하철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간단한 지하철 노선일 것이다. 끝에서 약간 갈라지기는 했지만 한 줄로 쭉 이어진 선이 믿기 힘들지만 전체 노선도다. 지하철 1호선은 개통 40년이 넘었지만, 오랫동안 추가 노선 없이 운행되고 있다. 작년, 드디어 2호선이 개통했지만 지하철역을 서쪽에 몇 정거장 더 추가했을 뿐 일직선 모양은 변함이 없다. 한산한 헬싱키 지하철을 타고 보니 지난 가을, 한국 여행 전에 빌레가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노선에 대해 많이 걱정했던 게 떠올랐다. “서울 지하철에 잘 적응했냐”고 물어보니 “생각보다 지하철에서 길 찾기가 쉬웠고 소문만 들었던 푸시맨도 없어서 좋았다”고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보인다.
   
   오늘 헬싱키 투어의 첫 번째 공식 액티비티는 숲과 바다를 모두 체험할 수 있는 부오사리 지역의 자연 하이킹이다. 사리는 핀란드어로 ‘섬’이다. 헬싱키는 무려 300개 이상의 섬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헬싱키 지명에는 유난히 사리(Saari)라는 단어가 많이 붙는다. 오늘 우리가 방문하는 부오사리는 그 300여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이 섬은 헬싱키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어 지하철이나 차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부오사리 지하철역에 내린 후 한 10분 정도 걸었을까. 벌써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핀란드는 전체 국토의 73% 정도가 숲이니 그야말로 사방이 숲인 셈이다. 수도인 헬싱키도 40%가 녹지다. 복잡한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에서도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어느새 숲 혹은 푸르른 공원에 닿는다.
   
   핀란드에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몇 가지 특이한 국민 기본권이 있다.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사용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한 것도 그렇고, 본인이 소유하지 않은 사유지나 숲에서도 거닐고 야영하고 야생식물을 채집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도 국민의 기본권리이다. 이 권리는 ‘거닐 수 있는 자유(freedom to roam)’ 혹은 ‘모든 사람의 권리(everyman’s right)’라고 불린다.
   
   
▲ 사우나를 하다 갑자기 발트해 얼음 구멍에 뛰어든 삼총사.

   숲을 거니는 것도 국민의 기본권
   
   숲을 거닐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맘껏 누릴 욕심에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숲에만 들어오면 핀란드 사람들은 힘이 나고 IQ가 갑자기 쑥 올라간다. 반대로 필자는 방향감각과 더불어 IQ도 뚝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길눈이 갑자기 밝아지고 에너지도 더 넘치는 우리 삼총사 친구들의 뒤만 따라가면 된다.
   
   핀란드 사람들은 복잡한 지하철에서는 어리둥절 길을 잃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아무런 이정표 없는 숲과 호수에서는 길을 잘 잃지 않는다. 핀란드 사람에게는 자연과 공생하는 신비한 ‘촉’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핀란드에는 ‘오리엔티어링’이라는 스포츠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 속에서 지도와 나침반만을 이용해서 정해진 지점을 찾아가는 스포츠로, 오리엔티어링의 세계 챔피언은 거의 언제나 핀란드인이다. 조류 관찰도 핀란드인이 자연과 함께 즐기는 대표적 취미다. 매해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성능 좋은 망원경을 들고 철새 도래지를 찾는다. 놀랍게도 어떻게 알아보는지 매년 같은 새를 친구처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직 추워서 철새는 없었지만 숲 초입에 텃새들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오손도손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무서워하거나 개의치 않고 열심히 식사 중인 새들이 너무 귀여웠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발길을 멈췄다. 역시 이 핀란드 친구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새 이름을 다 불러준다.
   
   이 새들은 텃새여서 겨울철에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새집과 함께 새 모이를 걸어준다. 핀란드 마트에서는 겨울철 새 모이를 사람이 먹는 식재료와 함께 판다. 조류 관찰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핀란드 사람들은 이런 모이를 사서 집 근처에 걸어주고 새들이 겨울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기를 기원한다. 새를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가까이 가려 하니 핀란드 친구들이 나를 조용히 막는다. 새들의 평화로운 식사시간을 자칫 방해할 수 있다면서. 청년들의 몸에 배어 있는 자연 존중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난 가을 빌레 부모님의 별장을 방문, 인근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을 때 이들이 버섯 이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놀랐다. 식용버섯과 아주 흡사해 보이는 독버섯도 신기하게 잘 구별해내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 읽은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핀란드 편을 보고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이 떠올라 이 친구들에게 얘기해주었다. 이 네티즌은 ‘청년들이 숲에서 바구니를 들고 버섯을 따는 모습은 자연 사랑을 지나치게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억지 설정인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이 말을 듣더니 친구들은 “핀란드에서는 최근에 오히려 젊은 세대가 자연을 더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 서로 경쟁하듯 숲에서 채집한 귀중한 버섯이나 희귀한 조류 사진을 올리는 것이 젊은이들의 트렌드”라고 했다. 어쨌든 이들의 버섯 채집과 조용한 조류 관찰 태도는 모두 설정이 아닌 자발적 장면임을 필자가 증명한다.
   
   
▲ 우텔라 자연산책로에 있는 통나무휴게소 ‘코타’에 들러 허기를 달랬다.

   모두가 즐기는 조류 관찰
   
   숲속을 조금 더 걷다 보니 ‘Uutela nature trail(우텔라 자연산책로)’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하이킹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다. 빌푸는 오늘의 하이킹 루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1.5㎞를 걸을 예정이며 중간에 코타(KOTA)라는 휴식공간에 들를 예정이고 마지막으로 사르카니에미(Srknniemi) 자연보호 지역을 통과할 거라고 한다. 이때 갑자기 빌푸가 꽤 강도 높은 농담을 던진다. “통과만 해야 해요. 자연보호지역이라 절대 만지면 안 됩니다! 마치 스트립클럽처럼요!”
   
   우리 모두 웃음이 빵 하고 터졌다. 그럼 이제 모두 자연 스트립클럽으로 출발할까요?
   
   얼마를 걸었을까.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며 따뜻함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완벽한 타이밍에 굴뚝에서 정겨운 연기를 뿜뿜 내뿜는 통나무 휴게소 코타에 도착했다. 코타는 핀란드 원주민인 사미족이 고대부터 거주하던 임시 숙소 형태로 천으로 만든 텐트형이 있고 나무로 만들 수도 있다. 현대에는 휴게소나 바비큐 그릴을 위한 코타가 핀란드 전역에 많이 세워지고 있다. 이 지역 이름을 따서 정식 이름은 우텔라 코타(Uutelan Kota)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분들은 이 지역 주민들로 코타 관리도 하고 모닥불도 피우며 방문객을 맞는 자원봉사자이다. 핀란드에서는 특히 자연 보호와 관리 부문에서 민간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크다.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우리는 마트에서 미리 사온 소시지를 꼬치에 꽂아 굽기 시작했다. 특히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와 허기가 졌던지 사미에게 이 소시지는 그야말로 구세주였던 것 같다. 빌푸는 보온병에 담아온 홈메이드 코코아를 모두와 나눴다.
   
   놀랍게도 현재까지 우리는 교통비와 소시지, 그리고 겨자 외에는 지출한 돈이 거의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사실 많은 것을 무료로 아낌없이 준다. 이런 관대한 자연을 사랑하는 자원봉사자도 무료로 불도 피워주고 그들의 온기로 이곳을 더 따뜻하게 덥혀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다 무료”라고 했던 코코 샤넬의 말이 떠올랐다.
   
   핀란드에서는 요즘 ‘원헬스(One Health)’ 개념이 대세다. 원헬스란 사람의 건강이 주변 환경과 동물 복지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복지국가 핀란드에서는 요즘 동물 복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동물의 복지가 사람의 건강과 복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핀란드 가축 농가에서는 이제 돼지 꼬리를 자르지 않는다. 꼬리를 자르는 것이 훨씬 편리하며 실용적인 가축 사육법이기는 하지만 꼬리를 잘리게 된 돼지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그 스트레스는 우리 인간의 건강을 역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헬스, 동물의 행복이 인간의 행복
   
   숲이 행복하고 그 속을 날아다니는 새가 행복하고 심지어 사육하는 돼지까지 행복하다면, 결국 그 행복은 돌고 돌아 우리 인간에게도 진정한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그리고 필자는 그들의 믿음을 또 믿는다.
   
   숲을 빠져나오니 어느새 광활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헬싱키란 도시가 가진 매력은 숲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양수겸장의 도시라는 거다. 겨울철 헬싱키에서는 누구나 성경 속의 예수님처럼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그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금기가 유난히 적은 발트해가 겨울철에는 꽁꽁 얼어붙기 때문이다. 원래 발트해에서 발트(balt-)라는 어근은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어의 ‘희다’라는 형용사에 해당한다. 흰색의 바다, 겨울이면 얼어붙어 흰색으로 변하는 바다를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발트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바다 위를 걸어 오늘의 두 번째 액티비티 장소를 향해 떠났다.
   
   핀란드에서 꼭 해야 하는 것! 물론 사우나다. 핀란드에는 생각보다 대중 사우나가 그리 많지 않다. 헬싱키만 해도 최근에 대중 사우나 몇 곳이 생기기는 했지만 몇 년 전까지 대중 사우나는 두세 군데밖에 없었다. 명실공히 사우나의 나라에서 대중 사우나가 별로 없다는 것에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 있지만 이유가 다 있다. 일반 가정마다 개인 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굳이 대중 사우나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인구가 550만인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무려 300만개 이상이 있다. 이 통계 숫자만 보더라도 핀란드인이 사우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개인 사우나가 있음에도 최근 대중 사우나가 늘어나는 것은 핀란드 사람에게 사우나는 목욕 외에 사교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핀란드 사람들은 기승전 그리고 사우나다. 모든 행사나 명절 모임에 사우나가 빠지는 일은 결코 없다. 거추장스러운 옷과 훈장을 다 떼고 맨몸의 자연인으로 돌아가 평등하고 허심탄회하게 타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우나다. 평상시에는 조용하며 말을 아끼는 아이스맨들이지만 사우나에서는 갑자기 수다스러워지고 사교적이 된다. 핀란드 현지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사우나 방문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다.
   
   
▲ 헬싱키는 숲과 바다가 있는 양수겸장 도시이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발트해를 걸어다닐 수 있다.

   인구 550만에 사우나만 300만개
   
   우리가 오늘 가게 되는 사우나는 헬싱키의 대중 사우나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곳이라 할 수 있는 솜파사우나(Sompa sauna·http://www.sompasauna.fi)이다. 특이한 이유는 일단 무료여서, 그리고 핀란드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남녀 공용 유니섹스 사우나이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때로는 나체로) 남녀가 함께 사우나를 한다.
   
   부오사리역에서 지하철로 약 15분 정도 걸려 칼라사타마(Kalasatama)역에 도착했다. 헬싱키의 신도시 개발 지역이어서 여기저기 공사 현장이 복잡한데 빌푸는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우리를 이끌고 사우나를 잘도 찾아간다.
   
   약 20분 정도 걸어가니 저 멀리서 나체의 중년 아저씨 모습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놀라서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는데, 친구들은 개의치 않고 탈의실로 향한다. 이 사우나는 커뮤니티 사우나로 역시 지역 주민의 자원봉사로 무료 운영된다. 발트해변에 있는 소박한 사우나다. 오늘도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사우나 옆에서 열심히 땔감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친구들은 ‘다행히’ 모두 수영복을 착용하고 사우나를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모두들 사우나를 박차고 우르르 뛰어나간다. 궁금해서 따라가니 예상했듯 사우나 옆 발트해 얼음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필자는 여름의 발트해에서도 추워서 벌벌 떤 기억이 있어 겨울바다는 엄두도 못 내고 바라만 보았다. 친구들은 그 후 한 차례 더 사우나 열탕, 발트해 냉탕 모험을 감행한 후 사우나를 마무리했다.
   
   이제 식사 시간.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 후 보통 거하게 식사를 한다. 한국에서 음식 먹방을 제대로 보여준 이들이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 헬싱키에 있는 한식당(Korea house·주소 Mariankatu 19 Helsinki)으로 장소를 정했다. 오늘 하루 헬싱키에서 이들을 알아보는 핀란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한식집에서 이들은 갑자기 주목받는 스타로 변신했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핀란드 친구들을 알아보고 서비스라며 반찬도 듬뿍 주셨다. 친구들은 한국에서 맛봤던 한국 맥주를 시켰다. 이들은 한국 맥주에 반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먹은 음식 중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었냐고 물으니 “속초에서 먹었던 순대볶음”이라고 한다. 핀란드 탐페레시에는 무스타마카라(mustamakkara·검은 소시지라는 뜻)라고 불리는 그 지역 명물 음식이 있다. 돼지 선지를 이용해서 만든 소시지여서 색깔이 적갈색이고 맛도 순대와 약간 비슷하다. 핀란드에서는 사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인데 이 친구들은 무스타마카라 팬이라고 한다. 아마 그래서 더욱 순대 맛에 빠졌던 것 같다. 주인 아저씨는 “메뉴에는 없지만 다음에는 순대볶음을 특별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는 전차를 타고 몇 정거장을 이동, 코로나바(Corona bar·주소 Eerikinkatu 11 Helsinki)에 도착했다. 헬싱키 투어의 마지막 장소다. 이곳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형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ki)와 미카 카우리스마키(Mika Kaurismki)가 1992년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25년 넘게 운영하는 헬싱키에서 가장 유명한 바(술집)이다. 이 바의 소유주인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길고 삐죽한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 주인공이 어디선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번에는 핀란드산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다소 철학적인 ‘행복’이었다. 필자는 핀란드 청년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사는 너희들은 진짜 행복하냐”고 물었다. 사미는 “핀란드는 일과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서 일이 끝나면 완전한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상사와의 관계도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이어서 상사 때문에 괴로운 일은 없다”고 했다. 빌푸는 “핀란드인이 행복한 이유는 사회 복지 안전망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라고 답했다. “핀란드는 한 사람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준다”면서 “이곳에서 사람들은 쉽게 극한으로 내몰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사실 빌레의 대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10년 뒤 자신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핀란드에서도 공무원이란 직업은 봉급은 적지만 안정성에서는 최고다.) 그는 “빨간색 오두막집을 짓고 집 앞 텃밭에서 감자를 키우며 자동차 한 대와 개 한 마리를 키우며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이렇게 평범한 삶을 꿈꾸는 빌레의 행복론은 오늘날 많은 핀란드 사람들이 누리는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의 비결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세 명의 행복한 핀란드 청년과 하루를 보낸 필자의 잠정적 결론이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또 현실이 되는 나라! “어서 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는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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