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5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기초과학연구원(IBS). ‘암흑물질 사냥꾼’ 이현수 박사 연구실에 거의 왔을 때 ‘암흑물질 삼거리’가 나타났다. 한 연구원이 자기 연구실 밖에 종이로 그렇게 써 붙여 놓았다. ‘암흑물질 삼거리’의 한쪽 끝에 이현수 지하실험연구단 부단장 방이 있었다.

이 부단장은 서울대 물리학과 96학번. 이화여대 교수로 일하다가 안정된 자리를 던지고 2015년 IBS로 옮겨왔다. “선배 교수 중 일부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는 연구 여건이 대학보다 좋은 IBS를 택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문을 열었다.

이현수 부연구단장은 2000년 암흑물질 연구를 시작했다. 암흑물질은 미지의 물질. 이 부연구단장은 암흑물질에 대해 “질량은 있는데 볼 수는 없다. 전자기 상호작용이 없고, 중력과만 상호작용한다. 약한 상호작용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우주는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로만 만들어진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암흑에너지, 암흑물질이라는 정체불명의 것들이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을 만드는 보통 물질은 우주 전체의 5%밖에 안 된다. 95%의 우주는 우리가 모른다. 95% 중 암흑에너지가 70%, 암흑물질이 25%를 차지한다. ‘암흑(dark)’이라는 수식어는 뭔지 모른다는 뜻이다.

암흑물질 후보로는 윔프, 액시온 등 몇 개가 있다. 이현수 부연구단장은 그중 ‘윔프(wimp)’를 추적하고 있다. “암흑물질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약하게 상호작용하고 질량이 큰 윔프가 최고의 후보다.”

세계적으로도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째 암흑물질을 찾고 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흑물질을 찾아야 한다.

그는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 첫해 두 번째 학기에 암흑물질 연구를 결심했다. 김선기 교수의 암흑물질 연구 소개를 듣고 ‘전향’했다. “1주일간 고민했다.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입자물리학은 기초 중의 기초과학이다. 연구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왜 물리학과에 왔는지를 다시 생각했다.”

이현수 부연구단장은 “나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선기 교수 연구실에 합류한 지 2~3개월 지나 김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암흑물질 연구비를 따냈다. 김 교수는 1998년부터 경기도 청평 양수발전소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연구를 해왔다. 2~3년간 R&D를 한 결과 연구비를 따낼 수 있었다. 이현수 부단장의 상관인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 김선기 교수의 1년 후배인 경북대 김홍주 교수가 그때부터 암흑물질을 같이 연구해온 팀원들이다.

김선기 교수는 연구비를 받자 검출기를 설치할 지하 공간을 찾아 전국을 뒤졌다. 이현수 부연구단장은 “연구하는 신호는 매우 미약하다. 잡음 없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선(cosmic ray)이 가장 큰 잡음이다”라며 자신의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는 “이 손바닥에 지금 이 순간 1개 정도의 큰 에너지를 가진 입자(뮤온)가 지나간다”면서 원자 핵 속에 들어 있는 중성자나 양성자보다 100배나 무거운 질량(1GeV)이라고 했다. 이 부연구단장은 “이 뮤온을 없애기 위해 검출기를 갖고 지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양양 발전소 지하에 실험실

암흑물질 연구팀은 연구실을 청평에서 강원도 양양으로 옮겼다. 양양의 양수발전소 지하에 큰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의 환기터널 공간과 배수터널 공간에 2003년과 2014년 각각 실험실을 구축했다. 납과 구리를 잔뜩 써서 ‘배경 잡음’을 차단할 수 있는 검출기를 설치했다.

“박사후연구원 1명, 중국 유학생 1명과 같이 모두 3명이 양양 양수발전소에 상주했다. 2003년부터 2006년 초까지였다.”

암흑물질 연구팀은 검출기에서 나온 초기 데이터를 갖고 2005년 논문을 썼다. 이현수란 이름이 ‘제1저자’로 맨 앞에 나왔다. 이 논문은 유럽 학술저널(피직스 레터스 B)에 게재됐다. “한국에서 진행된 암흑물질 실험에 근거한 첫 논문이었다.”

그는 2007년에는 ‘CSI검출기를 이용한 암흑물질 탐색’이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을 썼다. 서울대 최우수 졸업논문으로 선정됐고, 논문 내용은 물리학 분야 최고의 학술지인 미국 물리학회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렸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시카고대학의 페르미연구소로 갔다. “입자물리학의 주류는 가속기다. 주류를 경험하고 싶다고 했더니, 김선기 교수님이 시카고대의 김영기 교수에게 추천해주셨다. 김 교수는 당시 페르미연구소 부소장이셨다.”

페르미연구소에는 두 개의 실험그룹이 있었다. 박사후연구원이던 이현수는 CDF그룹 소속으로 4년4개월간 일했다. “초기에는 배웠고, 나중에는 톱 쿼크 질량 측정을 주도했다. 내가 측정한 톱 쿼크 질량은 당시 가장 정밀한 질량이었다.”

페르미연구소에서 2011년 귀국했고 2012년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가 한국의 암흑물질 연구자에게는 암흑기였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이 2006년 끊겼다. “후배들이 힘들었다. 나보다 1년 늦게 시작한 후배는 검출기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없어 논문을 쓸 수 없었다. 박사학위가 몇 년이나 늦어졌다.” 다행히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세계수준대학(World Class University) 프로그램이 있었고, 연구가 재개됐다. 연구의 공식 명칭은 KIMS 실험. 그리고 IBS가 생겼다. “한국의 암흑물질 연구집단이 IBS에 지원했다고 보면 된다. 10~15년을 같이 연구해온 그룹이다.”

연구단은 교수급 인력 6명으로, 이들이 같이 제안서를 썼다. 김영덕 교수(세종대)가 지하실험연구단 책임자(Project Instructor)가 됐다. 지하실험연구단은 암흑물질 실험과 ‘중성미자가 안 나오는 이중 베타붕괴 실험’을 수행한다. 이현수 부연구단장은 암흑물질 쪽을 관장한다. 암흑물질 윔프 연구자가 15명이고, 베타 연구 쪽에 연관되는 사람까지 하면 연구자가 30명에 이른다.

2014년부터는 예일대 팀과 공동 프로젝트로 바꿨다. 일본계인 레이나 마루야마 교수와 공동 연구 협약을 맺고, 양양의 지하검출기를 이용해 예일대와 IBS팀이 연구를 함께 하고 있다. 실험 이름도 COSINE이라고 바꿨다. KIMS(Korea Invisible Mass Search)에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마루야마 교수와 이현수 부연구단장이 COSINE 실험의 공동대표다. 연구자는 모두 50명이 좀 넘는다. “1주일에 3~4회 온라인 미팅을 한다. 그리고 연 1~2회 협업 미팅을 갖는다.”

이 연구집단의 현재 목표는 이탈리아 암흑물질 연구팀 DAMA의 연구 결과를 검증하는 것이다. “DAMA는 암흑물질을 찾았다는 발표를 계속해왔다. 얼마 전에도 네이처에 DAMA의 최신 실험 결과가 뉴스로 소개됐다. 다른 연구집단이 같은 실험을 수행하면 실험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다. 전 세계 암흑물질 연구 커뮤니티는 현재 DAMA 연구 결과 검증이 가장 중요한 이슈다.”

암흑물질 윔프 연구는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암흑물질을 이루는 입자가 발견될 걸로 예상되는 에너지 범위 내에서 윔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수색 범위가 더 넓어졌다. 나는 암흑물질이 발견되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를 물었다. 이 부연구단장은 “해당입자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해야 한다. 일반물질과의 반응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연구단장은 1977년 경북 상주생. 올해 41살이다. 인터뷰 중인데, 백발에 가까운 연구자가 연구실 문을 열고 머리를 디밀었다. 김영덕 연구단장이었다. 20년간 암흑물질을 찾아온 그가 십수년 선배인 김영덕 연구단장 연배가 되었을 때는 암흑물질을 손에 쥐고 있을까 궁금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