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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03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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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기행] 부산 앞바다에 거대한 龍이 꿈틀대면 메루치 들어오네예!

이지형  작가·푸드칼럼니스트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4월 하순, 마지막 봄비가 내리는 곡우(穀雨)다. 겨우내 언 땅을 녹였던 우수(雨水)의 비가 내리고 나서 딱 두 달이다. 나무엔 물 차오르고, 참나무의 새 잎들은 연두색으로 산을 물들인다. 농부들이 씨 뿌리는 사이, 서해의 어부들은 조기잡이로 북적거린다. 경칩·우수를 지나며 잠자는 개구리를 들쑤셔 깨웠던 대지의 소란은 전조였다. 마지막 봄비를 기다리면서, 우리 산하는 소리 없이, 땅속 깊이 들썩인다. 도처에서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진다.
   
   그 장관의 절정.
   
   부산 기장 앞바다에 출몰하는 은빛 용(龍).
   
   그야말로 4월의 진경(眞景)이다. 꾸물거리던 날 잠시 개고 봄 햇살 비출 때, 부산 앞바다에는 정말로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깃배들 지나다니는 수면 바로 아래로 출현한 용은 꿈틀거리는 대신 찬찬히, 그리고 유연하게 해안을 훑어간다. 방향을 틀 때마다 은빛 비늘이 펄럭인다. 거대한 용의 비늘은 도대체 몇 개일까? 수천, 수만, 수억?
   
   용을 좇는 어부들의 눈에 생기가 돈다. 별처럼 반짝이는 은빛 비늘 하나하나는 제각각 생물이다. 기장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겨우내 머물면서 양질의 플랑크톤으로 살을 찌운 뒤 산란을 위해, 용의 몸으로 연안을 치고 들어온 대멸(大 )의 무리…. 타고난 칼슘·단백질의 몸체에 지방질까지 잔뜩 머금어 건강하기 이를 데 없는 봄멸치들이다.
   
   4월, 부산 앞바다의 장관은 바로,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멸치들이다. 은빛 멸치의 거대한 무리가 힘차고도 가벼운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은빛 용은 그러나, 사투 끝에 거친 부산 사내들의 그물에 걸려들고 만다. 기장의 대변항(港)으로 잡혀온, 사람 손바닥 크기의 대형 멸치들은 어판장 또는 식당에서 손 빠른 아낙들에 의해 순식간에 해체된다. 배를 갈라 뼈와 내장을 발라내고, 머리를 떼어낸 뒤 소쿠리에 담아 비늘을 제거한다. 한때, 바다의 수면 아래로 눈부셨던 은빛 용의 비늘들은, 봄날 최후의 진기한 횟감이 된다.
   
   상서로운 은빛 용의 웅혼한 자태와 이 계절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생멸치의 싱싱한 맛을 누구라고 독점할까. 부산 기장은 ‘먹거리 축제’가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축제의 공간이었다. 매년 4월 하순 곡우 무렵이면 부산 기장군 대변항 일대가 ‘멸치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대변 멸치축제’란 이름으로 전국 미식가들을 처음 불러모은 게 1997년. 올해도 곡우(4월 20일)를 즈음해 4월 19~22일 나흘에 걸쳐 대변항 일대에서 열리는 ‘기장 멸치축제 2018’은 그러니까 22년째를 맞는 먹거리 축제계의 큰형님이다. 대변항을 통해 잡아들이는 멸치가 전국 멸치 어획고의 60%다. 기장의 ‘멸치 종주권’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기장의 멸치축제를 찾게 되면, 밤낮으로 항구 일대를 휘감는 ‘빛’에 속수무책으로 넋을 잃는다. 밤하늘과 밤바다에 하얀 벚꽃을 방불케 하는 빛의 파편들을 터뜨리고, 흩뜨리는 해상 불꽃쇼가 열린다. 그런데 멸치축제에 왜 빛인가.
   
   누가 기획하든 빛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해안을 유유히 선회하는 은빛 용의 비늘로, 황금빛 봄 햇살을 연신 반사해대며 바다를 휘젓고 다니던 멸치들이다. 그 멸치를 표현하는데 빛을 빼놓아서 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만든 빛 따위로, 봄바다를 물들이던 은백색 멸치의 그 맑은 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빛’의 문제로 오래 고심할 필요는 없다. 축제가 열리는 대변항 포구 곳곳에선 “메루치 들어오네예!”란 고함을 신호로 ‘멸치 털기’가 시작되는데, 그야말로 빛의 향연이다. 해안을 유유히 항해하던 용의 모습과는 또 다른 두 번째 장관이다.
   
   멸치 털기는 예닐곱 명의 어부가 그물 끝을 탁탁 잡아채며, 그물에 걸려 있는 멸치를 후리는 작업이다. 그물코에 빼곡하게 박혀 있던 멸치들은 어부들의 숙련된 장단과 리드미컬한 몸짓에 맞춰 공중으로 튕겨 나간다. 그 순간 그물 위로 현란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자신의 껍질을 떨구어내는 한 마리 용의 경련 같은 것…. 은빛 용도, 은빛 멸치도 그렇게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의 뭇 시선 속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빨간 초장 속에서 살살 녹는 멸칫살
   
   그물에서 떨군 멸치들은 손질을 거쳐 횟감이 될 채비를 한다. 근처 식당에 가면 어디서도, 어느 계절에도 맛보지 못한 식감의 멸치회가, 무침의 형태로 미식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미나리와 쑥갓 그리고 양파·쪽파와 고추를, 뼈를 발라내고도 큼지막한 멸칫살에 붓는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고추장과 식초로 버무린다.
   
   혀에서 녹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멸치회야말로 혀에서 살살 녹는다. 새콤달콤한 양념 사이로 잠깐 동안 느껴지던 멸칫살의 육질은, 입안에서 스르르 녹고 만다. 혀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이어 무쳐 놓은 야채를 씹게 되는데, 그때 미각을 휘어잡는 담백하고 비릿한 바다 향은 먹는 이의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멸치회의 맛에 정신이 아득해지기 전,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비늘을 벗겨낸 지 얼마 안 돼 발그스름하게 맑은 멸칫살과 싱싱한 초록 야채, 그리고 새빨간 초고추장이 합세해 뿜어내는 강렬한 색. 바다 위에선 용의 웅혼함으로, 포구에선 그물 위로 펄떡이는 생명력으로 은빛 장관을 펼치던 멸치는, 번잡한 포구 식당의 좁은 테이블 위에서 세 번째 장관을 보여주고 말 없이 사라진다.
   
   보기 드문 맛이라곤 하나, 살 올라 귀한 봄멸치를 회로만 먹을 리야…. 포구 식당에 들어가 ‘봄멸 3종 세트’를 시키면 ‘멸치회+멸치찌개+멸치구이(튀김)’의 상차림이 등장해 입맛을 호사시킨다. 다시마와 함께 국물만 내고 버리기 일쑤인 멸치가 찌개의 주재료로 떡 하니 자리 잡고 선사하는 풍미는 자못 감동적이다.
   
   
   작지만 강한 생태계 최말단의 ‘생선’
   
   멸치는 조기강·청어목에 속하는 물고기로, 바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말단에 존재한다. 생선이긴 해도 생선이라 부르려면 어색하다. 국물 내는 데 쓰거나, 꽈리고추·마늘 등과 볶아 밑반찬으로 먹고, 그것도 아니면 젓갈의 재료 정도로 이용하니 온전한 생선의 지위를 주기도 무엇하다.
   
   무엇보다 정말 작다. 회로 먹는 멸치를 ‘대멸’이라 했는데 ‘수산물 검사법’ 기준으로 7.7㎝만 넘으면 대멸이다. 7.6~4.6㎝ 길이 멸치를 ‘중멸’, 4.5~3.1㎝ 멸치를 ‘소멸’로 구분하고, 1.5㎝ 이하를 따로 ‘세멸’로 칭한다. 작고 가늘어서 씹는 데 부담이 없고 그래서 주먹밥 만들 때도 쓰고 하는 ‘지리멸’이 바로 수산물 검사법 기준으로 세멸이다.
   
   이리 작은 몸집이지만, 바다에 사는 2만여종의 물고기 중 가장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산다. 지구상의 물고기 가운데 개체 수가 가장 많단 얘기다. 생태계의 피라미드형 구조를 떠올릴 때 당연한 얘기 아니냐 물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건 동물성 플랑크톤뿐, 하루 종일 다른 물고기들에게 쫓기고 먹혀야 하는 운명 속에서 거대 종족을 꾸리는 건 눈물겨운 일이다. 남모르는 분투와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맘때 부산 앞바다에서 은빛 용을 좇는 어부들은 한 조각 한 조각 빛나는 용의 비늘, 그러니까 손바닥만 한 대멸들의 역동적이고 스피디한 움직임에 감탄하고 만다. 작지만 기민한 운동능력에 다산, 빠른 부화 그리고 조기 성숙까지 가세해 대규모의 생존이 가능해진다. 용의 모습으로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군집 능력 역시 천적들을 질리게 하는 생존의 기술이다.
   
   군집을 이룬 멸치들의 움직임은 때로 너무나 광폭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옛 책을 들추니 ‘장람(瘴嵐)’이 변해 멸치가 생겨났다는 말이 등장한다. 장람, 무서운 말이다. 독기를 품어 어두침침, 으슥해진 산과 바다의 기운을 장람이라 한다. 그렇게 음습한 기운이 변해 만들어진 게 멸치들이라니…. 거대한 멸치 떼가 자신들이 탄 배를 덮칠 것 같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어부들이라도 있었던 걸까.
   
   멸치의 ‘멸’이란 말 또한 썩 기분 좋진 않다. 그냥 멸치과의 생선을 뜻하는 멸()을 쓰기도 하지만, 업신여긴다는 뜻의 멸(蔑), 금방 죽는다는 뜻의 멸(滅)도 쓴다. 먹이사슬의 최말단에 있다고 업신여김을 받거나, 그물에서 후리는 순간 한번 펄떡이다 생명을 잃는다고 ‘금방 죽는 고기’란 이름을 선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멸치는 굳세게 제 갈 길을 간다. 제주 사람들이 멸치를 두고 행어(行魚)라 부르는 건 쉬지 않고 얕은 바다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은빛 삶을 즐기는 멸치의 부지런함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게다.
   
   몸집 작은, 그러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들의 활력이야말로 멸치에 듬뿍 담긴 영양의 근원이리라. 단백질과 칼슘, 그리고 풍부한 무기질 덕에 멸치는 발육기 어린이, 성장기 청소년, 임산부 모두에게 필수식품으로 꼽힌다. 100g 기준으로 47.4g의 단백질, 1905㎎의 칼슘을 함유한다. 생멸치 말고 마른멸치 기준이다. 부산 앞바다에 놀러가 회로 먹는 봄 대멸 속의 풍부한 지방은 계절이 얹어주는 덤이다.
   
   멸치와는 별 관계없는 얘기이긴 한데, 멸치축제가 열리는 대변항은 장동건·유오성 주연의 조폭·우정 소재 영화 ‘친구’의 촬영지다. 장동건이 쏟아지는 비와 칼을 동시에 맞으며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읊조리며 쓸쓸히 죽어가던 바로 그 영화. 2001년 10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부른 영화를 기억하는 중년이라면 멸치회와 소주 한 잔에 젊은 시절 추억까지 더해져 잊을 수 없는 멸치축제가 되겠다. 그 은빛의 축제 끝나고 나면 2018년의 봄도 제 갈 길 가는 중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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