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에 270여만원에 이르는 ‘노마스’의 오믈렛. 고기 반 근 분량의 캐비어가 올려진다.
한 접시에 270여만원에 이르는 ‘노마스’의 오믈렛. 고기 반 근 분량의 캐비어가 올려진다.

노마스의 ‘웰커밍 드링크’.
노마스의 ‘웰커밍 드링크’.

최근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영화에도 외국의 식당이 등장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게 됐다. 푸드 채널에는 음식을 먹으러 일부러 외국을 찾아가는 방송까지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미국 뉴욕의 노마스(Norma’s)는 아직 먹방이 본격화되지 않던 7~8년 전부터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대사 중에 언급되었던 집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여주인공이 뉴욕에 자주 간다고 하자 환심을 사려는 남자 배우가 “뉴욕에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노마스에 가서 브런치 사드릴게요” 하는 대사를 했다. 필자는 그때 귀를 의심했다.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노마스’가 이미 낯설지 않다는 의미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후 신라호텔에서 노마스의 셰프를 초청하여 1주일 동안 브런치 음식을 소개한 일도 있었다. 그때가 2012년이었는데 노마스의 명성과 인지도는 이미 오래전에 증명됐다고 할 수 있다.

노마스는 위치부터 색다르다. 보통 브런치는 친한 사람들과 가볍게 먹는 식사이기 때문에 브런치 레스토랑은 작은 카페나 빈티지한 레스토랑이 어울리는 운치 있는 동네에 주로 위치한다. 그래서 미국의 레스토랑 전문지 저갯(Zagat)의 상위권에 있는 뉴욕 브런치 집들은 웨스트빌리지, 트라이베카, 소호 등 주로 맨해튼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발사자르(Balthazar), 리틀파크(Little Park), 부베트(Buvette) 등이 그런 집들이다. 그런데 노마스 혼자 비즈니스타운과 관광지의 한가운데인 센트럴파크 바로 밑 미드타운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도 하룻밤 숙박비가 500달러나 하는 부티크 호텔 1층에 말이다.

노마스가 위치한 파커뉴욕호텔(전에는 ‘르 파커 메르디안’이라는 이름이었다)의 화려한 로비에 들어서면 왼쪽 계단 위쪽으로 긴 줄이 서 있다. 그 안쪽으로 예사롭지 않은 단맛에 대한 설렘을 안고 수다를 떠는 사람들과 잔뜩 오른 혈당에 기분이 좋아져 식당을 떠나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곳에 노마스가 있다. 인테리어는 철제와 가죽,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천장이 높고 조명이 밝아서 여느 브런치 레스토랑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자리를 잡으면 친절한 인사와 함께 ‘웰커밍 드링크’로 스무디가 나온다. 위스키 샷잔 크기의 작은 유리잔에 가득 담겼는데 망고, 바나나, 블랙베리 등의 과일로 만들어졌다. “오렌지주스나 커피를 마시겠냐”는 질문이 웃음과 함께 항상 이어진다. 스무디의 달달한 맛에 취해 보통 메뉴도 보지 않고 그냥 ‘예스(Yes)’라고 한다. 노마스가 위치한 곳이 호텔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하지만 바로 짜서 준다는 오렌지주스는 9달러이고, 커피는 7달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금 등을 합치면 자리에 앉자마자 음료를 2만원어치 마시며 식사를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노마스에는 매우 특별한 메뉴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오믈렛이다. 메뉴 이름부터 ‘엄청 비싼 바닷가재 프리타타(The Zillion Dollar Lobster Frittata)’이다. ‘프리타타’는 이탈리안식 오믈렛으로 달걀, 육류, 채소 등의 식재료가 여러 층을 이루는데 노마스의 프리타타를 만드는 식재료의 종류는 많지 않다. 로브스터 한 마리(순살 약 450g)와 신선한 달걀 6개, 크림, 차이브, 그리고 로브스터 소스가 들어간다. 저민 감자 위에 오믈렛이 올려지고, 그 위를 오믈렛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갑상어알이 차지한다. 메뉴에도 ‘수퍼사이즈(Supersize)’라 표기돼 있는데 캐비어의 양이 자그마치 고기 반 근 분량인 10온스(약 283g)에 이른다. 철갑상어알의 종류는 세브루가(Sevruga Caviar)다. 가격은 이름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무려 2000달러다. 뉴욕시의 소비세 8.875%가 더해지고, 팁 15%를 더하면 달걀 요리 한 접시에 2475달러, 270여만원에 이른다. 물론 조금 저렴한 맛보기 프리타타도 있다. ‘보통(Regular)’이라 표기돼 있는데 1온스의 철갑상어알을 올려서 가격이 10분의 1인 200달러다. 다행히 이 메뉴를 시켜도 구운 토스트와 버터와 잼은 철제바구니에 담아 추가비용 없이 제공된다.

노마스의 바닷가재 오믈렛은 이미 2004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오믈렛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당시 가격은 지금의 절반인 1000달러였다. 2016년 4월에는 미국 CNBC 방송사의 ‘거부들의 비밀 생활(Secret Lives of the Super Rich)’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가 될 정도였다. 거부들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 오믈렛을 먹을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노마스가 ‘수퍼사이즈 프리타타’는 1년에 12접시만 팔기 때문이다. 물론 200달러짜리 프리타타는 나눠 먹기에 좋은 크기여서 꾸준히 팔린다. 그래서 매주 몇 명씩은 주문한단다.

(좌) 노마스의 브런치 식탁을 장식한 오믈렛과 팬케이크. (우) 노마스의 웨이터가 대표 메뉴인 프렌치토스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좌) 노마스의 브런치 식탁을 장식한 오믈렛과 팬케이크. (우) 노마스의 웨이터가 대표 메뉴인 프렌치토스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메뉴는 노마스 경영진과 조리진의 협력의 산물이다. 2004년 호텔(당시는 르 파커 메르디안 호텔) 사장이었던 스티븐 파이프스(Steven Pipes)와 노마스의 총주방장인 에밀 카스틸로(Emile Castillo)가 철갑상어알을 어떻게 오믈렛에 사용할 수 있을지 상의하다가 이런 ‘황당한’ 메뉴를 개발했다. 그들은 어차피 대박 아니면 쪽박(Go big or go home)일 거라는 생각으로 이 메뉴를 시도하였다. 고급 재료 때문에 가격이 비싸질 거라면 좀 재밌게 해보자고 만든 것인데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대박을 쳤다.

노마스의 메뉴판은 위트가 있다. 메뉴판의 분류를 ‘엄마는 이걸 만들 수 없어요(MOM CAN’T MAKE THIS)’ ‘확인도장 받으세요(STAMP YOUR PASSPORT)’ ‘달걀 한 판 (EGG CELLENT)’ ‘아직 사라지지 않은 메뉴(THE ONE THAT DIDN’T GET AWAY)’ 식으로 해놓았다. 가장 많이 시켜 먹는 팬케이크나 프렌치토스트 등의 메뉴가 ‘엄마는 이걸 만들 수 없어요’에 분류되어 있고, 기네스북에 오른 오믈렛은 ‘달걀 한 판’에 속해 있다.

노마스에서 많이 시켜 먹는 유명한 메뉴로는 와플 ‘와자(Waz-za)’가 있다. 과일이 가득 덮인 와플인데, 그 속도 과일로 그득하다. 블루베리, 라스베리, 바나나 등이 설탕에 절여 있다. 단 음식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크런치 프렌치 토스트(Crunch French Toast)’를 주문한다. 보통 기대하는 프렌치토스트에 카라멜 소스를 듬뿍 묻혔다. 단 음식에 익숙한 서양인들은 “맛있다”고 하고,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심장이 뛴다”고 한다. 한국인 입맛에는 오히려 디저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놀라지 않으려면 벨지안 와플을 시키면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와플이다.

노마스는 평일 아침 6시 반이면 문을 연다. 호텔 식당이라 숙박객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전 11시면 문을 닫는다. 주말은 숙박객보다 많은 관광객 때문인지 조금 늦은 7시 반에 문을 열어 오후 3시까지 아침 메뉴를 판매한다. 노마스는 스스로 ‘점심에도 아침식사를 파는 집(Breakfast for Lunch)’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이 레스토랑 전문지 ‘저갯’도 노마스를 최고의 브런치 장소(Best Brunch Spot)뿐만 아니라 최고의 아침 식당(Best Breakfast) 또는 조찬모임 장소(Best Power Breakfast)로도 꼽고 있다. 즉 관광객, 숙박객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맨 등 누구에게라도 아침식사를 하기에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마스에서는 반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사람부터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가 어울려서 식사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뉴욕에서 가장 뉴욕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도 조식으로 유명한 호텔 레스토랑들이 있어서 뉴욕까지 가서 이걸 먹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호텔 레스토랑 조식 중 어디에 뭐가 맛있는지를 물어보면 대답이 군색해진다. 조식을 파는 호텔 레스토랑 대부분이 뷔페식당이기 때문이다. 아침 메뉴를 특정 지어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아침식사로 차려진 다양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직까지 서울 호텔들의 아침 메뉴다. 유명한 조식 단품 메뉴로 유명한 식당들은 찾기가 힘들다. 노마스는 단품요리를 주로 하는 조식이기 때문에 여행 시 뷔페가 지겨울 때 찾아가 볼 만한 집이다. 특히 볼거리로 가득한 뉴욕에서의 하루를 시작하려는 야심만만한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은 지갑을 열어볼 만한 식당이라고 하겠다.

단 뉴욕에 가서는 ‘노마스’를 찾지 말고 ‘노마’를 찾아야 한다. ‘어퍼스트로피와 S’는 발음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아침을 활기차게 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일부러라도 앞에서 언급한 2만원짜리 커피와 오렌지주스를 시키라고 일러주고 싶다. 커피는 익숙하지 못한 당분들을 잠시라도 덮어주기에 충분할 만큼 맛이 진하고 강하다. 또 식사 내내 무한리필 해준다. 오렌지주스는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 등의 산지에서 마시는 오렌지주스와 흡사하다. 이렇게 먹고 마신 후 식당 문을 나서면 뉴욕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닐 조건이 충분해진다. 칼로리는 저녁식사 분량까지 섭취했고, 지갑은 얇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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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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