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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04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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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한국이 유독 마블에 빠진 이유

김효정  기자 

photo 마블스튜디오
지난 4월 1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동측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펜스에 매달려 기다리는 사람만 7500명. 4월 25일 개봉하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홍보를 위해 내한한 네 명의 할리우드 배우를 기다리는 팬들이다. 흔히 ‘레드카펫’이라고 부르는 행사에서 배우들을 직접 만나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기다리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영화제작사 마블(MARVEL)스튜디오의 영화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같은 수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마블의 모든 히어로가 한데 모여 출연하는 팀업(team-up) 무비다. 2012년 ‘어벤져스’에 이어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대학생 최은화씨는 전날 밤 7시에 코엑스에 도착했다. 그는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는 모두 영화관에서 관람했을 정도로 열성팬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두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서둘러 코엑스에 도착했지만 이미 최씨 앞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2월에 ‘블랙 팬서’ 배우가 내한했을 때도 갔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지금 오면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앞줄에 서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날 최씨와 함께 밤을 샌 사람은 1000여명에 가깝다. 이 중에는 코엑스에 오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배우들의 방한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
   
   지난 4월 12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가진 배우들은 이런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일제히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스트레인지 역할을 맡은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공항에서의 환대는 비현실적이었다”며 “생각도 못할 만큼 많은 팬들이 왔지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에 두 번 방문한 바 있는 톰 히들스턴은 기자간담회에서 “로키가 돌아왔어요”라는 한국어 인사를 건네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로키는 그가 마블 영화에서 연기하는 캐릭터의 이름이다.
   
   배우들은 방한 일정 내내 “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요즘은 마블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한국 시장은 특히 더 열광적이다. 지난 2월 개봉했던 ‘블랙 팬서’는 아시아 지역 전체 언론사와 갖는 기자간담회를 서울에서 열었다. ‘블랙 팬서’의 주요 촬영지 중 하나가 부산 광안리 일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의 흥행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감독 라이언 쿠글러는 “한국의 고궁이 아름다웠다”거나 “전통 음식인 삼계탕도 맛있었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밝혔고 악역 ‘에릭 킬몽거’로 출연한 배우 마이클 B. 조던은 “한국어는 정말 아름다운 언어 같다”며 한국 관객을 향한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블랙 팬서’가 이렇게 끌어들인 한국 관객은 모두 약 540만명. 흥행 수입은 약 4280만달러(약 460억원)로 미국을 제외하고 중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익을 올린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화가 탄생한 이래 전 세계 개봉작 중 1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 영화는 33개인데 이 중 5개가 마블의 영화다. 2008년부터 10년간 개봉한 18편의 마블 영화는 모두 145억달러(약 15조원)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장 중 하나가 한국이다. 마블 영화의 제작을 총괄하는 케빈 파이기 대표는 지난해 10월 영상을 통해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의 형식으로 찍은 이 영상에서 케빈 파이기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로 말을 시작했다.
   
   “마블에 한국은 매우 중요합니다. 해외에서 중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시장이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저희가 제작하는 영화뿐만 아니라 마블 상품이나 게임도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다는 점입니다. 마블은 늘 한국과 함께할 것이며 마블 작품들을 열렬히 사랑해주시는 한국 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케빈 파이기의 말은 사실이다. 한국은 마블이 그동안 올린 해외 수익 중 중국에 이어 다음으로 많은 수익을 창출한 국가다. 2013년 개봉한 ‘아이언맨 3’는 한국에서 총 6421만달러(약 690억원)를 벌었고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7828만달러(약 840억원),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6286만달러(약 670억원)를 벌었다. 지금까지 마블 영화가 한국 시장에서 영화 입장권으로만 올린 수익은 6억달러(약 6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블 영화를 본 관객 수만 8400만명이다. 영화시장이 크다는 영국이나 일본보다 많고 중국과의 인구 규모를 생각해 볼 때 놀라운 수치다. 왜 한국 관객은 이렇게나 마블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대
   
   마블의 인기에 대해 얘기하려면 우선 마블 영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는 마블코믹스(MARVEL comics)에서 시작했다. 마블 코믹스는 미국 만화산업의 양대 축을 담당하는 회사 중 하나다. 주로 미국 특유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장르의 수퍼히어로 만화를 제작한다. 배트맨, 슈퍼맨이 DC코믹스에서 출간되었다면, 마블코믹스의 유명 수퍼히어로에는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이 있다. 사실 마블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블의 수퍼히어로는 DC에 비해 그렇게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수퍼히어로인 아이언맨만 해도 코믹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알 법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은 수퍼히어로 영화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시작을 알렸다. 아이언맨 이전에도 좋은 평가를 받은 수퍼히어로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블의 인기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영화 ‘트릴로지’ (Trilogy·3부작 시리즈) 중 2004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2’는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손꼽히는 수퍼히어로 영화다. 영화 ‘인셉션’ ‘인터스텔라’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배트맨 트릴로지’ 역시 유명하다. 특히 2008년 개봉한 ‘다크 나이트’는 위대한 영화 반열에 꼽히기도 하는 작품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아이언맨’이 이전 수퍼히어로 영화와 다른 점은 아이언맨의 등장이 이 영화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 ‘아이언맨’은 시작일 뿐이다. 마블스튜디오는 ‘아이언맨’을 출시했을 때부터 마블 수퍼히어로들로 구성된 특유의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계획하고 있었다. 2012년 영화 ‘어벤져스’는 그 계획을 관객들이 직접 목격할 수 있게 한 영화다.
   
   2008년부터 4년간 마블은 반응이 좋건 좋지 않건 자신들의 계획에 맞춰 팀업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할 캐릭터들을 소개해왔다. 2008년에 ‘인크레더블 헐크’를 개봉하며 헐크를 소개했고 2011년에는 ‘토르: 천둥의 신’과 ‘퍼스트 어벤져’를 통해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라는 낯선 캐릭터를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어벤져스’는 각각의 영화로 소개됐던 캐릭터인 아이언맨, 헐크,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에 새로운 캐릭터 블랙 위도와 호크아이가 함께 팀을 이뤄 외계로부터 온 적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의 영화다. 수퍼히어로가 한 번에 등장해 팀워크를 맞추는 영화가 지금까지 없었을 뿐더러 영화의 내러티브와 액션이 훌륭한 수준이라 큰 흥행을 거뒀다. 한국에서만 707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전 세계적으로는 15억달러(약 1조6000억원)의 입장권 수익을 올렸다.
   
   ‘어벤져스’ 역시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한번 모인 수퍼히어로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흩어져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토르는 지구 밖 우주 행성 아스가르드에서 자신의 적들과 싸웠다. 캡틴 아메리카는 지구 내부의 적들과 맞섰다. 그 사이 새로운 히어로들도 속속 등장했다. 우주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팀이 등장했고 지구에서는 개미만큼 작은 히어로 앤트맨이 활약했다. 수퍼히어로 집단은 닥터 스트레인지나 블랙 팬서 같은 새로운 멤버들을 맞이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게 곧 개봉할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의 이야기다.
   
   이것은 영화상의 이야기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 부분이 바로 마블 영화가 전에 없던 인기를 얻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 이유도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마블 영화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아이언맨은 ‘아이언맨’ 영화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 영화에도 나오고 ‘스파이더맨’ 영화에도 나온다. 마블 영화를 하나로 묶어주는 초국가적 조직이 존재하는데 이 조직을 이끄는 캐릭터 닉 퓨리는 여러 영화에 걸쳐 출연하면서 마블 세계관을 이어준다. 각각의 영화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진짜 세계에서 존재하는 일들처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한 영화에서 벌어진 사건이 다음 영화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 2016년 5월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일대에서 열린 ‘2016 마블 런’ 행사 모습. 마블 영화의 팬들이 모여 달리기를 하는 이 행사에는 8000명 가까운 사람이 참석했다. 올해 4월 21일 열린 ‘2018 마블런’에도 1만명 가까운 사람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photo 마블스튜디오

   팬들과 함께하는 마블 세계관
   
   마블은 영화만큼이나 관련 캐릭터·브랜드 상품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 배우를 닮은 피규어는 불티나게 팔린다. 어디에서나 마블 영화 관련 상품을 찾아볼 수 있고 잊을 만하면 연결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팬들은 마치 마블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 쉽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밖에서 만들어지는 보너스 영상 같은 것이다.
   
   수퍼히어로들 간의 내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소개되고 나서 작은 의문을 가지는 관객들도 있었다. 이 영화에는 어벤져스의 대표 멤버 토르가 출연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것인지 궁금해하는 관객을 위해 토르가 직접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시빌 워가 일어나는 동안 토르는 호주에서 친구와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내용의 짧은 영상이었다. 토르 역의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가 호주 출신이라는 점을 활용한 것인데 현실과 영화 속 세계가 애매하게 겹치는 이 영상은 230만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찬철 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 교수는 텍스트에 참여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마블의 인기를 설명한다. “마블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충분히 반영함으로써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관객들은 그저 주어지는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 할수록 콘텐츠 역시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했다. 지금까지 영화는, 인기 있는 수퍼히어로 영화라고 할지라도 그저 주어지는 것일 뿐 관객이 함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마블스튜디오는 관객을 마블의 세계관으로 끌어들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한국에서 이런 쌍방향적 영화 세계관은 특히 더 인기를 얻는다. 최근 종영했지만 지난 10여년간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떠올려 보자. 이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현실과 브라운관 속 이야기가 긴밀하게 얽히고 시청자들의 참여로 완성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마블 영화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은 단지 수퍼히어로의 활약을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 속 세계에 편입된 것처럼 느끼면서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을 목격하며 감탄한다.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내가 이런 이벤트를 목격하게 되다니!’ ‘닥터 스트레인지와 스파이더맨이 만나다니, 상상만 했던 일이 이뤄졌어’라며 기대하는 팬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팬들은 현실 어디엔가 존재할 것 같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기꺼이 함께하기를 원한다.
   
   이 사실을 마블 측에서도 잘 알고 있다. 마블이 주최하는 마케팅 중에는 관객이 참여하는 행사가 많은 것이 이를 입증한다. 4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등지에서 열린 ‘2018 마블 런(Marvel Run)’은 마블 팬들이 한데 모여 달리기를 하는 행사로 아시아에서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개최된다. 2016년에는 8000명 가까운 마블 팬이 행사장을 찾았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개봉을 앞두고는 마치 축제 같은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4월 14일부터 서울 코엑스, 5월 1일부터는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에서 마블 브랜드 체험행사인 ‘마블 매니아 2018’이 열린다. 이 같은 마블의 참여형 마케팅은 늘 성황을 이룬다는 게 마블 측의 설명이다.
   
   다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내한 행사장으로 돌아가 보자. 대학생 이지현씨는 행사 전날 입국한 배우들을 마중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까지 다녀온 열성 팬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마블 캐릭터는 아이언맨이다. “토니 스타크라는 돈만 많은 기업가가 아이언맨이라는 영웅이 되고, 고뇌를 느끼고, 리더가 되는 것을 보면서 저도 자라왔어요. 아이언맨과 함께 성장했다고 하면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저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마블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이씨의 말은 단지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마블과 ‘함께’하고 있다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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