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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05호]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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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혼돈의 도시, 나폴리가 사랑한 스타들

글·사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나폴리 시내 한 건물 벽면을 장식한 마라도나 초상화.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이탈리아 나폴리를 찾았다. 연말에도 또 한 번 갈 예정이다. 그만큼 나폴리는 ‘마약’ 같은 도시다. 갈 때마다 유럽의 어떤 도시와도 비교하기 힘든 강한 인상을 받는 곳이다. 북적거림을 넘어선 혼돈의 분위기가 강한 음식 양념처럼 도시에 빠져들게 만든다.
   
   2018년 봄 나폴리의 주인공은 단연코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다. 나폴리 사람들, 즉 나폴리타노라면 하루에 한 번쯤은 마라도나를 입에 올린다. 나폴리 시내 곳곳에도 사진이나 포스터는 물론, 벽화까지 마라도나 일색이다. 높이가 거의 30m에 이르는 초대형 마라도나 초상화도 있다. 나폴리 곳곳에서는 거의 매일 새로운 마라도나 벽화가 탄생한다. 나폴리타노에게 마라도나는 예수와 동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 5월 11일은 나폴리타노라면 초등학생조차 알고 있는 역사적인 날이다. 나폴리가 이탈리아 축구 프로리그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역사상 남부 도시가 우승컵을 움켜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경기 장면은 31년이 지난 지금도 나폴리 현지 TV를 통해 주기적으로 방영된다. 최근 나폴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선술집 TV를 통해 그 경기 장면을 두 번이나 봤다. 당시 일등공신이 1984년부터 나폴리 프로팀 용병으로 활약한 마라도나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인 세리에A 우승 경력이 1986~1987 시즌과 1989~1990 시즌 두 번 있는데 모두 마라도나가 뛰던 때였다.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신(神)으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폴리는 대낮에도 노상강도가 설치는 도시다.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치안이 확보된 안전한 거리만 골라서 구석구석 걸어다녀야 한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버스는 타지 않는 것이 좋다. 직접 걸어다니다 보면 마라도나의 인기를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카페치고 마라도나 사진 한 장쯤 안 걸린 곳이 없다. 골목마다 마라도나의 사진이나 벽화와 마주친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마라도나에 대한 열기가 거의 종교적 컬트로까지 느껴진다.
   
   
▲ 나폴리 골목마다 마주치는 마라도나 벽화.

   왜 마라도나일까
   
   도시를 온통 도배하다시피한 마라도나를 바라보면서 이상하면서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글로벌 스타라고 해도 마라도나는 이제 한물간 어제의 인물 아닌가. 펠레나 마이클 조던이 추억 속 인물로 변해가듯 1960년생인 마라도나 역시 과거의 인물일 뿐이다. 항상 새로운 스타가 쏟아져 나오는 스포츠야말로 어제가 아니라 오늘을 즐기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대표적 예다. 게다가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와는 무관한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그런데 왜 나폴리타노는 과거의 인물에 줄기차게 열광할까? 그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이 나폴리 벽화에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벽화는 도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포스터나 사진도 있지만, 거리를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볼 것’이 벽화다. 벽화는 사진이나 포스터에 비해 수명도 길다. 24시간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마음에 안 들 경우 다른 벽화로 대치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도시의 벽화에는 그 도시의 정서와 분위기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나폴리의 벽화는 시민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영역이다. 경찰이나 시청의 공권력이 터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베니스의 경우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포스터 한 장에도 벌금이 따라붙지만 나폴리는 나쁘게 말하면 무법, 좋게 말하면 거리예술의 해방구다. 도시 구성원의 유대감, 일체감을 나타내는 상징예술이 벽화라는 형태로 만개한 곳이 나폴리다. 누구나 벽에 뭔가를 그릴 수 있고, 또 그걸 모든 시민들이 즐긴다.
   
   나폴리 벽화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1인 미술이라는 점이다. 혼자서 그리고,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보통 한 명이다. 보통 벽화는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벽화의 역사는 멀리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라오의 절대권위를 엄청난 수의 노예를 동원해 표현했다. 현대 벽화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들이 ‘인민의 목소리(Vox Populi)’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수십, 수백 명의 구성원을 벽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주먹과 함성이 벽화의 주요 코드 중 하나다. 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 발행된 우표를 보면 ‘위대한 지도자’ 외에는 개인 초상화 우표가 없다. 초등학생들조차 반미 반제를 외치며 충혈된 눈으로 ‘궐기’하고 있는 그림들이 조그만 우표 화면을 채우고 있다. 2018년 북한의 벽화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뉴욕 할렘에서 마주치는 벽화들도 비슷하다. 흑인들의 생존권을 부르짖는 다수의 목소리가 벽화에 담겨 있다.
   
   하지만 나폴리 벽화들에는 그같은 집단이나 군중이 없다. 가리발디광장 근처에서 마주친 반(反)이스라엘 벽화가 필자가 나폴리에서 본 거의 유일한 군중 벽화다.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모습이다. 추측건대 중동계 이민자들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나폴리 벽화에는 정치적 메시지도 드물다. 단테(Dante)광장 근처를 지나가다 카스트로를 그린 벽화를 만났다. 바로 앞에 바가 있어 일하던 청년에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봤다. “당신들은 혁명을 원하느냐”는 질문도 던져봤다. 대답이 그럴듯하다. “이탈리아는 혁명을 믿지 않고 혁명이 일어난 역사도 없다. 혁명은 상하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나는, 반문화 반문명의 또 다른 핑계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카스트로 벽화는 콧수염과 모자가 좋아서 우리 동네 친구가 그렸을 뿐이다. 카스트로만큼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도 없지 않은가. 혁명가가 아니라 멋쟁이라 우리의 우상이 됐다. 시가도 그리려 했는데, 체 게바라가 이미 선점해서…. 저기 뒷골목으로 가면 긴 시가를 문 체 게바라 벽화도 볼 수 있다.”
   
   나폴리는 1930년대 독재자 무솔리니를 가장 열렬히 지지한 도시다. 1931년 10월 25일 나폴리 플레비시토(Plebiscito)광장에서 무솔리니가 연설을 할 때 나폴리타노 20만명이 몰려들었다. 당시 비디오를 보면 마라도나에 대한 인기는 애들 장난 수준이다. 대장간집 아들 무솔리니만큼 나폴리의 정서를 이해한 정치가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나폴리에서 무솔리니 벽화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사진이나 포스터도 별로 없다. 뉴욕 할렘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말콤 엑스, 킹 목사 같은 수준도 안 된다. 기본적으로 정치가나 정치적 인물을 외면하는 곳이 나폴리 벽화의 세계다.
   
   
▲ 유쾌하고 낙천적인 나폴리타노를 닮은 벽화.

   막장 인생들의 최후 안식처
   
   정치가 대신 나폴리 벽화를 장식하는 인물들이 마라도나 같은 스포츠 스타다. 이탈리아 코미디언 ‘토토(Toto)’ 역시 나폴리 벽화의 오랜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웃음과 장난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나폴리타노의 아바타쯤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마라도나가 나폴리 벽화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기 훨씬 전인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70여년간 나폴리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아왔다. 하지만 마냥 예쁘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파스타를 손으로 집어 입안으로 쑤셔넣는 ‘무식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코미디언이지만 묘한 애수가 느껴진다.
   
   ‘유럽의 창녀’는 나폴리가 가진 오명 중 하나다. 나폴리는 시칠리아와 더불어 이탈리아 주류들의 입장에서는 무관심의 땅이다. 유럽에 새로운 패권이 들어서면 교황의 중재하에 전리품으로 넘겨지기 일쑤였다.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처럼 유럽의 승자들이 한 번씩 거쳐간 땅이다. 나폴리는 새로운 ‘점령군’을 상전으로 깍듯이 모셔왔다. 유럽 도처에서 군인들이 몰려오면서 유럽 최악의 성병 발원지가 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군도 성병으로 고생한 곳이다.
   
   나폴리가 몸은 물론 마음까지 개방한 가장 큰 이유는 생존에 있다. 나폴리타노들에게는 국가, 민족, 정치 같은 거대 담론보다 오늘과 내일의 생존과 생활이 최우선으로 자리 잡았다. 피부색이나 국적, 심지어 종교보다 나에게 도움을 주고 생존을 보장하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정치 불신의 배경인 셈이다.
   
   마라도나가 갖는 특별한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다. 북부 이탈리아인은 말한다.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인이 아니다. 하지만 나폴리타노인 것은 분명하다.” 21세기 들어 나폴리 항구는 중국의 유럽 진출 총본부로 활용되고 있다. 곳곳에 중국인이 넘쳐나면서 중국인들 특유의 추태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한 나폴리 친구에게 중국인들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다. “문제될 게 없다. 중국인 덕분에 일자리와 돈이 넘친다. 거리에 침을 뱉고 와인을 병째로 마시는 사람들이지만, 내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사고뭉치 막장 인생이라도 나폴리에 살면서 나폴리타노로서 정체성을 갖는 한 영원한 친구로 남는다.”
   
   이탈리아의 유명 화가이면서 막장 인생을 산 카라바조(Caravaggio) 역시 마지막 안식처가 나폴리였다. ‘살인자 화가’라고 불리는 카라바조는 자신의 친구 두 명을 칼로 찔러 살해한 인물이다. ‘빛과 어둠’으로 풀이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화법(畵法)의 선구자로, 21세기 들어 가장 뜨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카라바조는 1606년 로마 테니스 코트에서 도박을 하다 홧김에 살인을 한다. 이후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다 나폴리에까지 숨어 들어온다. 17세기 그와 같은 유럽의 막장 인생들이 마지막에 흘러들어온 곳이 나폴리였다. 카오스(Chaos)의 도시는 공권력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탁월한 그림솜씨로 나폴리에서도 유명해진다. 덕분에 사후 자신의 작품들을 나폴리에 남긴다. 카라바조가 남긴 명화들은 요즘 사람들이 나폴리를 찾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카라바조 역시 나폴리 벽화를 장식하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나폴리 여기저기서 콧수염을 기른 살인자 화가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카라바조의 출생지는 밀라노이지만 이 살인자 화가를 마지막으로 보듬고 추앙한 곳은 나폴리다. 유럽의 창녀 나폴리는 잘난 사람보다 못나고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남겨진 최후의 안식처일지 모른다. 나폴리 벽화는 바로 카오스 도시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 나폴리 곳곳을 장식한 벽화들. 나폴리 벽화들에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거의 없다.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도 그들이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라서 벽화로 그렸다는 것이 나폴리타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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