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506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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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식물산책’ 저자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사진의 시대에 식물 그림이 왜 필요할까

최준석  선임기자  

▲ 진노랑상사화(한국 특산식물)
근로자의날인 5월 1일 경기도 남양주 광릉수목원 인근 진접면으로 식물세밀화가 이소영(34)씨를 만나러 갔다. 이씨는 최근 글항아리출판사에서 낸 ‘식물산책: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이라는 책의 저자다.
   
   그의 작업실은 왕숙천변의 건물 4층 옥탑방. 화가가 건네는 명함 속 꽃이 눈에 들어온다. 나리 꽃과 같은 화려한 색깔과 모양. ‘식물산책’의 표지그림이기도 한 상사화(相思花)다.
   
   식물세밀화는 본래 근대의 서양박물학자가 그린 그림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하다. 제국주의시대 유럽 박물학자가 식민지나 제3세계 식물을 찾다가 신종(新種)을 발견하면 그림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 초 한국에 식물세밀화가가 활동하는 줄은 몰랐다. 이소영 화가는 식물세밀화가 무엇인지, 식물세밀화가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식물세밀화가가 말하는 식물 이야기를 책 ‘식물산책’에서 들려줬다.
   
   “50대에나 성공할 수 있을까 기대했다. 성공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이 화가에게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소개해달라고 했을 때, 얘기 끝에 무심히 이런 말이 나왔다. 이 화가는 폭주하는 일감으로 분주했다.
   
   그는 이번 주 금요일(5월 4일)에 시작하는 KBS2TV 예능프로그램 ‘나물 캐는 아저씨’를 위해 쑥부쟁이, 민들레, 쑥 등 20종의 식물세밀화를 그렸다고 했다. “안정환(축구선수), 추성훈(종합격투기선수), 김준현(개그맨)이 출연한다. 식물세밀화를 일반에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작업했다.”
   
   그는 서울신문에 ‘이소영의 도시 식물탐색’이라는 고정 칼럼도 격주로 연재 중이다. 지난해 11월 연재를 시작했고, 오피니언페이지에 크게 들어간다. 첫 회분 칼럼을 보니 사과 세밀화가 들어가 있고 ‘사과를 그림으로 기록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 민들레

▲ 썸머킹사과(농촌진흥청 신품종)

▲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보리 신품종 ‘흑누리’.

   
   한국산 사과 품종 기록 작업
   
   농촌진흥청과는 한국의 사과나무 세밀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농진청이 서울신문 칼럼을 보고 지난 2월쯤 연락해왔다. 이 화가는 한국산 사과 품종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라며 “5~6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품종도 여러 개일 뿐 아니라 한 종의 1년 모습을 다 보고 그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농진청이 발행하는 잡지 ‘그림 매거진’의 표지그림도 그렸다. 2017년 11월호 표지에는 보리 신품종 ‘흑누리’ 세밀화를, 12월호에는 포인세티아 신품종인 ‘플레임’ 세밀화를 그렸다. 컬러 그림이 우아하고 깔끔하다.
   
   그의 활동 영역은 이뿐만이 아니다. 네이버의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오디오클립’에서는 ‘이소영의 식물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오늘도 한 편 제작해서 올렸다. 입원 중인 병원에서 만들었다.” 사실 이 화가는 며칠 전 추돌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날 인터뷰도 병원에서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진행했다. 작업실 한쪽에 오디오 콘텐츠 제작용 마이크가 있었다. 그 마이크 앞에서 녹음해 휴대폰으로 네이버에 파일을 보내면 된다고 했다. “네이버에서 지난해 4~5월쯤 제안을 해왔다. 식물학자도 아닌데 부담스럽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내 시선으로 하면 된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시작했다. 15분 길이인데, 38회분을 만들었다.” 네이버의 관련 담당자는 과학출판사의 편집자 출신. 나는 이 출판사 이름을 듣고 ‘IT공룡 네이버가 출판사의 인재도 데려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화장품 회사도 그의 고객이다. 아모레퍼시픽 의뢰로 ‘프리메라’ 브랜드의 패키지 디자인을 했다. ‘식물학자의 작업실을 엿보다’라는 콘셉트로 화장품 매장들의 디스플레이를 해주기도 했다. 이 화가가 보여주는 화장품 포장지에는 흑백으로 그린 풀 도해도가 몇 점 들어가 있었다.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민트, 라벤더, 쑥, 후추다. 1년반 걸려 6종을 그렸다. 식물을 직접 키우면서 관찰했다. 다른 화장품업체도 협업하자고 연락해왔으나 내가 거절했다. 그림이 중복되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첫 직장인 국립수목원과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 “5년 프로젝트로 약용식물원 길잡이 시리즈에 들어갈 식물세밀화를 그리고 있다. 2015년의 경우 ‘폐, 기관지에 좋은 약용식물’, 2016년은 ‘피부에 좋은 약용식물’을 했다.” 그는 국립수목원에서 2009년부터 2012년 12월 말까지 4년간 일했다. 거기에서 식물세밀화가로 ‘도감’에 들어가는 그림과, 신종 보고서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삼육대 원예학과 03학번으로 학창 시절 식물화 수업을 들은 게 식물화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식물을 전공한 화가”
   
   이씨는 한국에서 유일한 식물세밀화가는 아닐지 모른다. 그에 앞서 광릉국립수목원에서 일한 또 다른 세밀화가가 있었다. “2000년 즈음부터 국립수목원이 세밀화가를 뽑은 걸로 안다. 내 앞에 4명 정도 일했다. 그분들이 나와 다른 건, 그분들은 미술을 공부한 화가라는 점이다. 나는 식물을 전공한 사람이다. 전임자들은 수목원을 떠난 뒤 그림을 그리는 걸로 안다.”
   
   이씨는 지금과 같은 사진 시대에도 기록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사진은 이상적인 식물 기록이 아니다. 사진으로는 식물의 종 특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식물 그림은 극사실화가 아니다. 식물 그림은 식물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은 확대하고 강조하되, 식물 개체의 환경 변이와 같이 종의 특징이 아닌 면은 축소해야 한다. 그래야 식물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특징을 잡아낼 수 있다.” 식물 전공자와 그림 공부한 사람과는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식물 한 종을 그리는 건 보통 수고가 아니다. 관찰하고, 그리기 위한 표본을 선택하고, 사진 촬영하고, 현장스케치하고, 자로 크기를 잰다. 그런 뒤 작업실에 와서 스케치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기름종이를 놓는다. 마루펜촉에 잉크를 찍어 기름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개체 하나로 식물 한 종을 그릴 수 있을까. 식물 한 종을 그리려면 식물이 생육하는 전 과정에 걸쳐 뿌리와 줄기, 가지, 잎, 꽃, 열매 등 모든 부위가 필요하고 나무의 경우엔 수피, 겨울눈 등도 모두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식물은 이 부위를 한 번에 보여주는 법이 없다. 초봄이면 뿌리에서 줄기가 자라기 시작해 잎이 나고,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겨울눈을 드러낸다. 한 장의 그림에는 식물의 이 긴 삶이 담긴다.” 그는 식물의 생식기관을 잘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그는 “이제는 ‘내일까지 그려줄 수 있느냐’고 요구해오는 사람은 없어졌다”며 웃었다.
   
   식물세밀화에 대한 사회의 수요가 커지면서 그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기록의 의의를 벗어나지 말 것, 식물 연구과정에 필요한 기록일 것, 디자인으로 활용되더라도 옛 식물세밀화처럼 식물산업 전반에 도움이 될 만한 그림을 그릴 것, 궁극적으로는 식물 종 보존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할 것 등이다. 지금은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 작업한다고 했다.
   
   국립수목원이란 안정적인 자리를 그만두고 나온 건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더 많은 식물을 보기 위해 일본, 영국, 중국, 싱가포르 등 적지 않은 나라에 다녀왔다. 그의 책에는 외국의 식물세밀화가, 식물 이야기도 일부 들어 있다. “영국 큐식물원에 식물세밀화 1년 과정이 있다. 그곳에서 공부하고, 큐식물원에서 일하고 싶다.”
   
   외국에서의 공부는 폭주하는 일 때문에 밀렸다. 세계 최고의 식물원에서 일을 배우고자 하는 꿈은 아직 살아 있다. 그는 “아버지가 ‘평생 식물을 보며 산다는 게 좋지 않니’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이 길을 오게 됐다”고 했다. 작업실을 나오면서 그가 건네준 명함을 다시 봤다. 상사화는 도시 주변에는 없고 산에 가야 있다고 했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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