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오이노안다에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지. 한 번도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곳으로, 그리스 유물의 90% 이상이 아직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 오이노안다에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지. 한 번도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곳으로, 그리스 유물의 90% 이상이 아직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무덤 속의 평화와 우주’.

10여년 전부터 알게 된 새로운 가치관이다. 지구 곳곳에 흩어진 고대 유적지 방문에서 체험으로 깨달은 새로운 세계다. 돌무덤이란 폐허로 변한 유적지를 의미한다. 인적이 끊어지고 과거의 번영과 발전이 통째로 사라진 곳으로의 시간여행이다. 찾는 사람도 없고 새들의 울음만이 반기는 곳이지만 평화와 우주가 배어 있다.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신비와 경탄의 세계가 돌무덤 유적지들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남미의 마추픽추, 중국의 만리장성도 있지만 필자의 주된 관심 영역은 고대 그리스 유적지다. 그리스는 기원전 5세기를 정점으로 한 서방 문명의 출발점이다.

그리스는 돌을 기초로 한 문명국가다. 구운 벽돌과 화산재 콘크리트도 있지만 중심은 대리석이다. 거주지, 공공시설, 신전, 극장, 스타디움, 목욕탕…. 모든 것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오래가도 불에 타지 않는다. 한번 만들면 장시간 지속될 수 있다. 대리석에서 느껴지는 신비감은 석조건축물 양산의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존재라 해도 아래를 받쳐줄 균형이 필요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리스 유적지의 대부분은 붕괴된다. 지형적으로 그리스는 지진대 위에 서 있다. 인간문명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연을 당해낼 수 없다. 지금까지 남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전이나 건축물 대부분은 고고학자들이 재구성한 테마파크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리스 유적지의 99%는 폐허로 남은 돌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리키아 문명권의 도시를 찾아

그리스 신전의 중심기둥은 보통 ‘t(톤)’ 단위 무게다. 2500년 전 대리석 산에서 돌을 자른 뒤 옮기고 가공해서 세우는 일이 벌어졌다. 4500여년 전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전지전능한 파라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의무와 책임에 기초한 폴리스 내 자유민 모두의 시설이다. 신전의 대부분은 평지가 아닌 높은 산 위에 있다. 예술성, 종교성을 떠나 수십t 기둥을 바다와 강을 통해 신전 앞에 끌어들이는 과정 그 자체가 과학이다. 물론 경제도 신전과 더불어 탄생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대리석 신전은 문화가 아닌 문명이다. 아시아가 따라가지 못한, 전혀 다른 세계관이 대리석 문명에 녹아 있다.

오이노안다(Oinoanda)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남동쪽으로 750㎞ 떨어져 있다. 에게해 끝부분 항구도시 페티예(Fethyie)에서는 자동차로 1시간 반 거리다. 에게해 남단에서 꽃핀 리키아(Lycia) 문명권으로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번영을 누렸다. 좁은 의미의 그리스 문명사는 4세기 고대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로 종결된다. 비잔틴시대에도 지속되지만 그리스의 다신교가 아닌 일신교 체제하의 모습으로 변한다. 4세기 콘스탄티노플이 그리스를 계승하지만 비잔틴과 그리스의 세계관·우주관은 180도 다르다. 현재 남아 있는 그리스 유적지의 대부분은 그리스·로마·비잔틴의 2000년 역사가 뒤섞인 합작품이다. 신전은 그리스, 목욕탕은 로마, 큰 실내건물이나 성곽은 비잔틴시대 유적지 같은 식이다. 얼마나 그리스 본연의 모습이 남아 있는지를 발견, 발굴해내는 것이 유적지 탐사의 묘미다.

오이노안다는 고대 그리스의 원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고고학자에게는 탐사 처녀지와 같은 곳이다. 부분적일 뿐 본격적 발굴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스 유물의 90% 이상이 땅 밑에 그대로 보존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 이스탄불발 비행기로 이즈밀(Izmir)에 들른 뒤 페티예를 거쳐 오이노안다로 달렸다. 그리스 유적지는 그리스에 머물지 않는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을 기점으로, 그 이전의 그리스 유적지는 현재의 그리스에 집중돼 있지만 이후의 그리스 유적은 현재의 터키 에게해 주변에 흩어져 있다. 그리스 내보다 터키의 그리스 유적지가 한층 더 매력적이다. 그리스에 비해 개발이 안 된 상태이고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오이노안다로 가는 길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에게해 주변 터키의 도로망과 시설은 선진국 수준이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유적지나 특정 지역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엉망진창이다. 터키인들이야 잘 알겠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미로 찾기다. 인적이 드문 고대 유적지의 경우 아예 표지판 자체가 없다. 사실 필자의 오이노안다로의 여정은 총 세 번이나 시도됐다. 지난해 두 번이나 찾아헤매다 결국 중간에 포기했다.

리키아 문명권의 고대도시는 산꼭대기에 들어서 있다. 올라가고 돌아보는 데 최소 5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오전 중에 찾지 못하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시도지만 여기저기 헤매다가 오이노안다 1㎞ 앞에서 표지판을 발견했다. 눈앞에 험한 돌산들이 버티고 있다. 산 전체가 ‘고대도시 오이노안다’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돌산 위에 숨겨진 신전과 극장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만 어림잡아 2㎞는 떨어져 있는 듯하다. 산 위로 통하는 길이 따로 없다.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냥 정상으로 향했다.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은 겨울이 우기다. 미리 준비한 등산용 신발 덕분에 질퍽한 땅에서 자유롭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외선 햇빛이 어른거리지만 멀리 높은 산의 대부분은 눈으로 덮여 있다.

리키아 문명권의 특징은 설산을 배경으로 한 도시라는 데 있다. 오이노안다도 마찬가지다. 식수·농업용수가 풍부하다는 의미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도시지만 특유의 수리시설을 통해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 땀으로 얼룩진 1시간 등산 끝에 나무 속에 가려진 고대도시를 만났다. 남쪽으로 향한 대리석 성벽이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세워진 엄청난 무게의 대리석들이다. 통째로 허물어진 성벽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은 곳도 있다. 언제나 감탄하게 된다. t 단위의 돌을 어떻게 옮기고 깎고 세웠을까? 돌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땀과 피가 드리워 있을까? 노예들의 일이었겠지만, 2000여년 세월을 견뎌낸 대리석 성벽 그 자체가 성스럽다.

오이노안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그리스 고대 도시의 성벽.
오이노안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그리스 고대 도시의 성벽.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 흉상.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 흉상.

쾌락주의를 설명하는 벽서

그리스 철학가 에피쿠로스(Epicu-rus)는 필자가 오이노안다에 관심을 가진 가장 큰 이유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서 꽃핀 이른바 쾌락주의(Epicureanism)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오이노안다를 알게 됐다. 철학 연구가에게 오이노안다는 성지, 그 자체다. 쾌락주의를 설명해주는 벽서(壁書)가 있기 때문이다.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Diogenes of Oinoanda)’라는 인물이 만든 벽서다. 2세기 후반 오이노안다의 실력자 디오게네스가 자비(自費)로 설치한 일종의 교육용 기념비다. 참고로 ‘아테네의 개’로 통하는 시니시즘(Cynicism)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전혀 무관한 인물이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다.

철학은 물론 그리스 문명과 문화의 대부분은 책이나 구전으로 계승돼왔다. 하지만 오이노안다는 돌 벽서를 통해 에피쿠로스 사상을 남겼다. 책이나 구전이 아닌 벽서를 통한 논리와 이념 전달은 그리스 문명사를 통틀어 유일무이하다. 높이 2.37m, 길이 80m의 초대형 벽서다. 그리스어로 대략 2만5000자를 담고 있다. 오이노안다 역시 돌무덤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진으로 인해 벽서 대부분이 부서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도 이후 성벽 재료로 재활용된다.

오이노안다가 에피쿠로스의 성지란 사실은 1841년 처음으로 밝혀졌다. 영국 고고학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벽서를 끌어모아 해석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것이다. 부서진 벽화가 워낙 방대하게 흩어져 있기에 지금도 수시로 발견된다.

오이노안다의 핵심은 도시 한가운데 들어선 스토아(Stoa)다. 사람들이 모이고 물건을 보관하며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던, 민주주의 광장이 스토아다. 도시 내 거주민만이 아닌 외부인에게도 개방된 시설이다. 보통 주변에 시장도 들어선다.

에피쿠로스 벽서는 두 개의 스토아 건물 안에 새겨졌다. 현재 스토아는 돌무덤으로 변해 있다. 수많은 벽서와 더불어 바닥을 장식한 대리석 도로가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스토아를 포함한 광장의 규모는 대략 축구장 절반 크기다. 1800년 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장사도 하고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튼튼한 체력을 기반으로 한다. 산 정상 한가운데 들어선 스토아에 가려면 지치지 않는 다리와 심장이 필요하다.

올림픽이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어에 문외한이라 벽서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심하게 마모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엄청난 세월을 이겨낸 벽서도 있다. 글자 하나하나에 새겨진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성과 경건함이 느껴진다. 탁본 세트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 다시 한 번 더 찾아야 할 이유일 듯하다.

오이노안다 방향을 가리키는 초라한 이정표.
오이노안다 방향을 가리키는 초라한 이정표.

폐허가 된 민주주의 광장

스토아를 거쳐 북쪽에 있다는 오이노안다 극장으로 향했다. 산길이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겨우 찾았다. 절반 이상이 돌무덤으로 전락한, 작고도 소박한 극장이다. 발굽형 극장의 폭은 55m로 수용인원은 2000명 정도다. 그리스와 로마 극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덕의 이용 유무다.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오이노안다 극장은 언덕을 깎아 대리석으로 자리를 만들어 활용됐다. 로마 극장은 언덕 없이 아예 처음부터 돌을 포개 올라가면서 자리를 만든다. 산 언덕을 이용한 그리스와 달리 로마는 평지에다 극장을 세운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좋은 예다. 로마가 기술적으로 더 발전하게 됐다는 의미겠지만 필자는 그리스 극장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검투사의 피에 열광하는 오락용 시설이 아닌 신을 모시고 인간의 의미를 되새기던 의식용 사원이 그리스 극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오이노안다 극장은 남쪽을 향해 열려 있다. 무대로 사용됐던 공간에는 소나무들이 들어서 있다. 멀리 하얀 복면을 한 설산이 펼쳐져 있다. 단 한 사람도 찾지 않는 고독한 곳이지만 결코 고립은 아니다. 2000여년 전 그리스인들과의 대화가 가능한 평화의 극장일 뿐이다. 돌무덤에서 발견된 우주가 소나무 바람소리와 함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디오게네스 벽서에는 무슨 내용이?

행복에 이르는 길로 안내하는 6개 항목 기록

쾌락주의는 행복을 향한 삶의 기준을 쾌락에 두자는 식으로 해석된다. 쾌락이란 말이 주는 어감 때문에 세속적 즐거움을 떠올리기 쉽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기원전 4세기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이르는 길로 ‘기쁨(Pleasure)’을 상위에 둔다. 육체적 기쁨도 있지만, 정신적 기쁨이야말로 쾌락주의의 진수라고 강조한다. 욕망을 억제하고, 간소한 삶과 공동체를 통해 기쁨을 증진하고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속(俗)이 아니라 성(聖)이 쾌락주의의 진짜 가치다. 마음의 평화, 소유물의 극소화도 쾌락주의의 본질이다. 필자의 오이노안다 여정은 그같은 본질을 눈으로 직접 살펴보자는 데 있었다.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가 남긴 벽서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영국 고고학자가 풀어낸 벽서의 내용은 디오게네스가 왜 벽서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에피쿠로스 철학을 모두에게 알리고 수련하기 위해 벽서를 만든다.” 벽서 내용은 크게 여섯 개로 나뉜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모른다. 파편으로 남은 벽서를 통해 큰 윤곽만 유추해낼 수 있을 뿐이다.

① 윤리에 관한 논의: 인생의 목적으로서의 쾌락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쾌락을 얻을 수 있고, 어떻게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에 관한 질문들.

② 화학에 관한 논의: 꿈, 신(神), 그리고 인간 원형에 관한 논의. 글을 쓰고 웅변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연구.

③노인의 삶에 대한 논의: 젊은이로부터 노인을 지키기 위한 방법과 가치에 관한 내용.

④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에피쿠로스 철학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는 글.

⑤ 에피쿠로스가 남긴 경구들: 쾌락주의에 관한 수많은 설명과 격언.

⑥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디오게네스 자신이 꾼 꿈에 관한 얘기를 어머니에게 들려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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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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