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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07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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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개인천문대 운영하는 김오성 조각가

38t 돌 조각에 우주를 새기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 사진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 별자리를 조각한 천구의 앞에 선 김오성 조각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 이곳에서 지난 5월 4일 김오성(73) 조각가의 작품전인 ‘천구의 조각전’이 열렸다. 김오성씨는 인체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석조(石彫)를 통해 인간 태초의 원초적 감각과 감성을 표현해온 작가. 또 한편으로는 별에 미친 아마추어 천문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에 그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가 관찰해온 별을 주제로 한 대형 조각품들이다.
   
   지난 5월 4일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아름다운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서울에서 4시간 정도를 달려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목적지에 도착하니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이라고 적힌 팻말이 반긴다.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은 우리나라 조각공원의 효시다. 1966년에 ‘금구원조각공원’으로 문을 열고, 2003년 7월에 사립 미술관(제277호)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원래 이 자리는 농민학교가 들어설 땅이었다. 농민교육운동을 펼쳤던 김오성 조각가의 부친(고 김병렬)이 고향인 부안 땅에 농민 교육기관 설립을 위해 숲을 개척했지만 산업화의 거센 바람이 농업을 뒷자리로 밀어냈고 농민학교 역시 재정 지원을 얻지 못해 좌초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조각을 하던 아들은 자신이 만든 돌 조각품을 하나둘 아버지에게 내려보냈다. 부친이 이 땅에 아들의 조각품을 세워놓기 시작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조각공원’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돌 조각은 지금 150여점에 이른다. 이들 작품들이 각각의 포즈를 취하며 자리를 잡고 있다.
   
   
   중졸 청년 조각가를 꿈꾸다
   
   김오성 조각가는 석조 분야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최종 학력은 중졸. ‘조각가’라는 꿈을 마음에 품고 살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탓에 학업도, 미술 공부도 정식으로 할 수 없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농민운동을 하던 부친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에 3·1문화상을 받았어요. 그때 함께 수상한 이들 중에 조각가 김경승 선생(작고)이 있었지요. 그래서 조각에 대한 제 자신의 열정을 전달했죠. 선생은 그런 제 열정을 받아주었어요. 그렇게 스승을 만났고 이때부터 전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하게 됐죠.” 김씨는 “1983년 이후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 고 백문기 교수(이화여대 미술대)를 만나 작품 활동에 큰 힘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러다 1972년 국전에 처음 출품했는데 입선했다. 그 다음해에도 입선했고 1974년 국전에서는 특선을 했다. 198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학벌과 인맥이 중시되던 당시 예술계의 분위기에 비추어볼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나 더. 그는 프로 못지않은 아마추어 천문가다.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의 푯돌에는 ‘천문대’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1991년 11월 그는 이곳에 한국 최초의 개인천문대(금구원천문대)를 세웠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별과 천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그를 천문학에 빠져들게 했다.
   
   “1988년 당시 서울에 아파트 하나 마련하려고 모은 돈으로 아내를 설득해 대신 망원경을 구입했어요.” 그만큼 우주를 사랑하는 이다.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 내 그의 2층집 돔에는 미국 아스트로피식스(Astro-Physics)사의 구경 206㎜ 굴절 망원경이 하늘 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 말 망원경을 들여놓을 당시만 해도 최고 성능의 굴절 망원경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총 8회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매번 신선한 작품들로 눈길을 끌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놀랄 만한 또 하나의 작품을 등장시켰다. 바로 석조 천구의다. 천구의는 우주의 항성과 별자리 위치를 구(지구를 중심에 두고 둘러싸고 있는 가상의 천구) 형태에 새겨낸 천문도다.
   
   김오성 조각가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나일성 박사의 ‘성도’라는 책에 실린 베크바 성도를 참고로 하여 천구의 별자리를 조각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장소로 여행을 갈 때 지도가 필요하듯 밤하늘을 볼 때에도 성도(항성의 적경·적위·등급 등을 지도처럼 평면 위에 나타낸 그림)가 필요하다. 성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베크바 성도’, 스카이 아틀라스(Sky Atlas 2000),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 등이 유명하다. 이들 성도에는 각 별자리와 성운, 성단, 은하, 초신성, 신성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구 구조는 지구의 자전축을 연장해 북쪽에서 만나는 천구의 북극과 남쪽에서 만나는 천구의 남극, 지구의 적도면을 연장했을 때 천구와 만나는 면인 천구의 적도, 관측자의 머리 위를 연결했을 때의 천정과 그 반대쪽인 천저, 그리고 천정과 천저를 연결한 선이 직각으로 천구와 만나는 원인 지평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구의 북극과 남극, 그리고 천정과 천저를 지나는 대원을 자오선이라고 한다.
   
   천구의를 제작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실제로 보는 별자리의 모습을 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천구 밖에서 보는 별자리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지구상에서 관찰하는 별자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인 반면 천정을 뚫고 별의 뒤쪽, 즉 천구 밖에서 관측자가 본 별자리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과 달리 뒤집힌 모습이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서 보는 밤하늘에 18이라는 숫자가 떠 있다면 천구 밖에서는 좌우가 바뀐 81로 보인다는 얘기다.
   
   김오성 조각가는 그동안 천구 밖에서 본 석조 천구의를 3개나 조각했다. 2001년에 제작한 직경 1.5m의 천구의가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재 부안의 매창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또 하나는 어느 한 아파트에 놓여 있다. 나머지 하나는 포항 호미곶 등대 건립 100주년을 기념해 조각한 ‘호미곶 호랑이 상’(2008년 11월)으로, 호랑이 꼬리 부분에 직경 1m의 천구의가 만들어져 있다. 호랑이가 꼬리로 감싸고 있는 천구의는 선박이 태양과 별자리를 이용하여 오대양 육대주를 항해하는 천측항법을 의미한다.
   
   김오성 조각가가 이번에 만든 천구의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보는 별자리 모습을 그대로 새긴 것으로 그가 처음 시도한 작품이다. 화강석 재질의 천구의는 직경만 195㎝에 무게가 11t이다. 천구의 바로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세 사람의 무게는 15t, 그 밑의 좌대가 12t이다. 이를 모두 합한 총 무게는 38여t이나 된다. 하늘에 보이는 별자리 그대로 조각한 석조 천구의는 세계 처음이자 크기 면에서도 세계 최대라고 할 수 있다.
   
▲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에 있는 돔 형태의 전시실.

▲ 김오성 조각가의 개인천문대.

   
   지상으로 내려온 별자리
   
   천구의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만들어왔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BC 6세기)가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천구의는 보통 나무와 금속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천구의는 현재 이탈리아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된 ‘파르네세 아틀라스(Farnese Atlas)’이다. 그리스 신화의 거인인 아틀라스가 창공(천구의)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품이다. 이때의 천구의 별자리는 기원전 3세기의 것으로, 몇몇 동물들의 모습으로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기원 후 2세기 무렵에 로마에서 다시 대리석으로 제작하여 소장하고 있다. 11세기에 만들어진 아라비아의 천구의도 여러 개 남아 있다. 태평양 섬에 사는 뱃사람들은 천구의를 천문항법을 가르치는 데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 천구의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국보 228호)가 대표적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3차원 구가 아닌 2차원의 평면 돌에 새긴 천문도이다. 2007년 1월 22일부터 발행된 1만원권 뒷면 배경에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다.
   
   천구의 석조에서 별자리를 표현할 때 중요한 요소는 별의 밝기를 정하는 일이다. 남반구와 북반구를 합한 별자리 수는 88개. 이 중 1등성은 21개뿐이다. 김오성 조각가는 천구의에 6등급의 별까지 새겼다. 별의 밝기에 따라 밝은 별은 구멍을 크게 뚫고, 어두운 별은 작게 구멍을 뚫어 조각했다. 1등급 사이의 반인 0.5등급 차이까지 구분해 12단계의 구멍으로 표시했다. 1등급, 1.5등급. 2등급. 2.5등급… 이런 식으로 말이다. 구멍 하나하나의 깊이는 5㎜에서 1㎝까지 깊게 뚫어 풍화작용에도 끄떡없이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도록 했다.
   
   지구는 경도·위도를 좌표로 표현한다. 천구도 마찬가지. 관측자를 좌표의 원점으로 생각하고 방위각과 고도, 방위각과 천정거리에 따라 천체의 위치를 나타낸다. 이것을 지평좌표(수평좌표)라고 한다. 방위각은 북점(또는 남점)을 기준으로 지평선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별이 있는 방향까지 잰 각이다. 별의 방향을 0~360°로 나타낸다. 고도는 지평선에서 천정 쪽으로 별이 떠 있는 높이까지 수직선을 따라 잰 각으로, 별의 높이를 0~90°로 나타낸다. 이런 점들을 계산하여 새긴 세계가 김오성 조각가의 천구의에 담겨 있다. 직접 눈으로 보면 걸작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는 본업 못지않게 많은 시간과 정력을 별 보는 일에 투자한다. 그러다가 천체 관측에서 얻은 영감을 조각품에 활용한다. 그의 작품에는 ‘달과 여인’ ‘달빛의 숲’ ‘봄하늘의 별자리’ ‘반달’ 등 천체와 관련된 이름들이 많이 붙어 있다. ‘하잘것없이 작다’는 뜻을 가진 ‘티끌’이라는 대리석 조각품에는 달의 아페닌산맥 부근의 분화구가 실제와 똑같이 조각돼 있다.
   
   김오성 조각가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항상 대형 작품을 만든다는 것. 이번 조각전에서 새롭게 선보인 ‘…일 적’(여체 조각상)은 좌대를 뺀 작품 길이만 7.5m로 아마 국내 조각품 가운데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의 김오성 조각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조각가로서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그에게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다. 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우주의 신비를 캐는 것은 단지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낭만만은 아니다. 마치 우주와 맞닿아 있는 듯한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의 ‘천구의’ 곁에서 별 헤는 밤을 보내는 것, 상상만 해도 꽤나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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