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함께 즐기는 뉴욕 ‘버거조인트’의 햄버거. ⓒphoto Google Virtual Tour
맥주와 함께 즐기는 뉴욕 ‘버거조인트’의 햄버거. ⓒphoto Google Virtual Tour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수제버거 열풍이 불고 있다. 종편의 맛집 프로그램에서도 수제버거 맛집을 자주 접할 정도다. 수제버거라는 단어가 아직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포털사이트의 오픈사전에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인스턴트 버거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수제버거의 원조를 놓고 서울 이태원에 있는 몇 버거집이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필자는 1998년에 설립되었던 크라제버거(kraze burgers)가 실질적인 원조라고 본다. 2000년대 초반 크라제버거에서 팔던 햄버거 1개 가격이 5500원에서 7500원 사이였다. 당시 호텔을 기반으로 시작한 고급 중국집 T사의 짜장면 가격이 3000원이었으니 그 가격대를 짐작할 만하다. 크라제버거 측은 당시 가격이 높은 이유를 소고기 패티를 매장에서 직접 만들고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었다. 크라제버거는 한때 버거 매니아 및 트렌디한 젊은층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2017년 파산하여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많이 잊혀졌다.

수제버거와 대조되는 인스턴트 햄버거는 외국계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웬디스, 맥도날드, 버거킹 등이 198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소개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햄버거라는 음식이 수제버거로 시작되었다가 프랜차이즈를 통해서 대중화된 미국과는 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햄버거를 수제버거와 인스턴트 버거로 무 자르듯이 나누지만 햄버거 원조국인 미국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동네가게 햄버거와 대기업 햄버거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그냥 햄버거는 햄버거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미국인의 햄버거 사랑

미국인의 햄버거 사랑은 절대적이다. 햄버거와 관련된 어록만 해도 수백 가지이다. 중년 이상의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미국의 권투선수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은 “내가 권투를 하는 이유는 햄버거 가게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권투를 하지 않으면, 나는 햄버거 가게를 통째로 먹어치울 것이다(I want to keep fighting because it is the only thing that keeps me out of the hamburger joints. If I don’t fight, I’ll eat this planet)”라는 어록을 통해 햄버거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현하였다. 영화배우 매튜 매커너히(Mattew McConaughey)가 “햄버거를 개발한 사람은 똑똑하고, 치즈버거를 개발한 사람은 천재다(Man who invented the hamburger was smart; man who invented the cheeseburger was a genius)”라고 한 말은 햄버거에 대한 가장 위트 있는 어록일 것이다.

햄버거에 대한 별난 기록도 있다. 5월 6일자 뉴욕포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빅맥을 많이 먹어 기네스북에 오른 미국인 돈 고스케씨가 지난 46년 동안 단 8일을 제외하고 매일 빅맥을 2개씩 먹어서 총 3만개를 돌파했다고 보도하였다. 위스콘신주에 거주하는 64세의 고스케씨는 앞으로 14년 동안 계속 빅맥을 먹어 총 4만개를 돌파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그는 1972년 5월 17일부터 매일 빅맥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 영수증을 계속 모으고 있다고도 했다. 2004년 빅맥 관련 다큐멘터리 ‘수퍼사이즈 미(Supersize me)’에 출연하기도 한 그는 “현재 말처럼 건강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고스케씨의 별명은 ‘빅맥 먹는 아빠(Big Mac Daddy)’라고 한다.

미국인들의 햄버거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맛있는 햄버거 집에 대한 취향도 다양하다. 요즘은 햄버거가 맥주와 마시기 좋은 음식으로 자리매김 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맛있는 햄버거를 술집에서 파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바에서 먹는 음식(bar food)’으로도 분류된다. 술과 함께 먹기에도 좋고, 심지어 해장식으로 햄버거를 애용하는 미국인도 많다.

‘버거조인트’ 실내와 네온사인 간판.
‘버거조인트’ 실내와 네온사인 간판.

호텔 한 구석 비밀스러운 공간에 위치

‘버거조인트’는 지난번에 소개한 뉴욕 브런치집 ‘노마스’와 같은 건물인 파커뉴욕호텔 로비층에 위치해 있다. 노마스는 로비 옆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 좋은 곳에 있는 ‘호텔스러운’ 식당이지만 버거조인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인터넷에서 버거조인트를 검색해보면 ‘비밀(secret)’이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처럼 발견되기도 한다.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설명을 듣고 가더라도 호텔 프런트에서 묻지 않고서는 찾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프런트 옆 검은 천이 드리운 곳이 입구이기 때문이다. 그저 호텔 로비가 끝나는 곳처럼 보이는 데서 좌회전을 하는 순간 길게 늘어선 줄과 마주친다. 그때야 여기에 뭔가 맛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빽빽하게 몰려 서 있는 사람들 너머 벽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햄버거 모양 네온사인이 붙어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버거조인트’라는 단어 자체가 햄버거 가게라는 뜻이기 때문에 가게 이름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지만 외국인들은 아마 햄버거 모양의 네온사인을 봐야 제대로 찾았다고 안심하는 모양이다.

가장 대중적이어야 할 햄버거 가게가 대리석 바닥과 샹들리에로 치장된 호텔 로비에 있다는 것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버거조인트 입구를 들어서면 구석 베니어판에 영화·음악 포스터가 가득하다. 실내가 1970년대 감성으로 꾸며져 있어서 제대로 된 햄버거 가게라는 인상을 준다. 벽에 가득한 낙서와 먹는 사람, 주문하는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우리나라 시장 같은 모습이 이곳이 호텔이라는 사실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게 한다.

버거조인트에서는 긴 줄 끝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주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친절하게 한글판 메뉴도 있다. 버거 메뉴는 햄버거, 치즈버거, 더블햄버거, 더블치즈버거가 기본이고 고기 없이 치즈만 넣은 치즈버거도 있다. 패티 이외에 양상추, 토마토, 양파, 슬라이스피클, 케첩, 마요네즈, 겨자소스가 들어간다. 하나씩 넣고 빼는 게 귀찮으면 모든 걸 다 집어넣는 ‘웍스(The Works)’를 주문하면 된다. 감자튀김과 통피클은 당연히 별도 주문이다. 음료는 맥주, 와인, 소다, 아이스티, 그리고 밀크셰이크가 있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을 위한 탄산수도 있다.(그냥 생수로 감자튀김과 햄버거를 먹기는 햄버거에 익숙한 미국인도 힘든가 보다.) 우리나라의 수제버거 집에서도 흔한 광경이 되었지만 밀크셰이크는 빨대로 마시기도 하고, 감자튀김을 찍어먹기도 한다. ‘단짠’을 좋아하는 건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버거조인트가 위치한 호텔 사장이자 버거조인트의 창업자인 스티븐 파이프(Steven Pipes)는 프렌치 음식 주방장인 에밀 카스틸로(Emile Castillo)와 함께 버거조인트를 개점하기 직전 수개월 동안 뉴욕 시내의 내로라하는 햄버거 집들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카스틸로가 30여개의 햄버거 레시피를 만들었고 최종 한 개의 레시피가 남을 때까지 양자 맛 대결을 시켰다. 최후의 레시피를 파이프 사장은 이렇게 정의하였다. “단순화했고 덜어냈다!(simplifying and taking away!)”

그래서인지 이 집 햄버거 소스는 케첩, 마요네즈, 겨자소스만 사용한다. 다른 햄버거 가게에는 흔한 특제 소스가 없다. 궁극적으로 버거를 통해서 추구하는 가치가 단순함이어서 버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사장과 주방장의 철학이라고 한다. 개점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철학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단순화했고 덜어냈다

그동안 메뉴에 한 가지 변화는 줬다. 처음에는 없던, 소고기 패티가 두 장 들어가는 더블버거를 얼마 전부터 새로 팔기 시작했다. 햄버거번(햄버거용 빵)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놀드 햄버거번을 사용한다. 이를 전혀 숨기지 않아서 고객이 주문할 때 봉투에 쓰여 있는 아놀드 로고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그저 구워서 햄버거를 만든다. 햄버거 패티를 만드는 고기는 네브래스카산 블랙 앵거스의 앞다리살을 사용하는데 매일 직접 갈아 패티를 만든다. 이를 위해서 고기 만지는 사람(butcher) 두 명이 상주한다. 하루에 패티 1000여장을 만들고 살코기와 지방 비율을 8 대 2로 유지한다. 치즈는 화이트 체다와 콜비 치즈를 각각 한 장씩 올린다. 채소는 신선한 것을 쓰고, 피클(B&G), 케첩(하인즈), 겨자소스(그레이 푸폰), 마요네즈(헬맨) 등은 모두 기성제품이다. 그저 단순하기 짝이 없다.

버거조인트 입구에 다가서면 어두운 복도에서부터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자리에 앉기까지 15분 이상은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냄새가 사람을 더욱 허기지게 한다. 오픈키친 앞으로 계산대가 있어서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넓지 않은 조리대를 세 칸으로 나누어 한곳은 감자를 튀기고, 중간은 고기를 굽고, 한쪽은 햄버거번을 봉투에서 꺼내어 버거로 만든다. 주방 내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하니 조리사가 포즈를 취해주며 팁을 달라고 했다. 사진을 찍는 시간이나마 밀려들어오는 주문 사이에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몇 장의 사진을 일부러 찍고 팁통에 팁을 넣었다.

줄 선 지 25분 만에 햄버거 한입을 베어물 수 있었다. 번, 소스, 야채가 먼저 미각을 돋웠고 마지막에 패티가 저작 활동에 참여하였다. 두꺼운 햄버거 패티를 베어물 때에 응당 뒤따라오는 느끼한 기름에 대한 찝찝함이 전혀 없었다. 육즙이 스테이크처럼 촉촉하고 신선했다. 기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보통 햄버거를 베어물면 양파가 컬링선수들이 스위핑하듯이 육즙과 함께 솟아나는 기름을 닦아내지만 두꺼운 패티에서 나오는 기름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버거조인트의 치즈버거를 먹으면서 느낀 뒷맛은 콜라를 함께 마시지 않아도 담백할 정도였다. 같은 브랜드의 햄버거를 한국에서 먹다가 미국에서 먹으면 훨씬 기름지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칙인데, 버거조인트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그래서 양파를 비롯한 다른 채소들이 기름기를 못 느끼게 하는 엄폐물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패티의 맛을 더하는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햄버거 생김새는 종이에 싼 한국의 길거리 토스트 같지만 맛은 호텔 식당에서 만든 것이 분명하였다. 덜어내는 음식의 미학을 추구하는 일본 음식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담백한 스시 한 조각을 맛보는 것 같은 미묘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집을 꼭 추천한다. 햄버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순함과 덜어냄의 가치는 개발자들의 기대 이상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늘 줄지어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추종자로 만들면서 말이다.

뉴욕에 있는 햄버거집 리스트는 너무 다양하다. 레스토랑 평가 전문지인 재것(zagat)의 경우 햄버거 집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버거조인트 외의 햄버거 맛집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구글 검색 시 최상위에 떠오르는 다른 햄버거 집도 소개한다.

• 버거조인트(Burger Joint) 평점 4.2 / 주소: 119w 56th St.

• 파이브냅킨버거(5 Napkin Burger) 평점 4.3 / 주소: 630 9th Ave.

• 블랙아이언버거(Black Iron Burger) 평점 4.4 / 주소: 245 W 28th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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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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