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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10호]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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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소확행’이 만든 풍경

라이프스타일 숍이 뜬다

김효정  기자 

▲ 라이프스타일 숍 무인양품 신촌점의 전경. photo 이광재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여의도의 대형 쇼핑몰 IFC몰에는 두 개층에 걸쳐 1174㎡(약 355평) 규모의 ‘무인양품(MUJI)’ 매장이 있다. 6월 셋째 주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직장인 전윤애씨 커플은 이곳에서 두 시간 가까이 매장 안을 맴돌며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는 이런저런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칫솔꽂이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빈 용기 같은 작은 잡화도 있었지만 잠옷이나 편하게 입을 만한 바지도 있었다. 전씨 커플이 머리를 맞대고 고르던 제품은 침구와 커튼이었다.
   
   전세로 구한 신혼집을 꾸미려고 하루 휴가를 내 무인양품을 찾은 이유는 이곳이 전윤애씨 커플의 취향에 맞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백화점에서 혼수를 하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대형마트에서 다 갖추는 건 싫고요. 신혼집이니까 감각적으로 하고 싶었거든요. 겨우 시간을 내 쇼핑하는 건데 한자리에서 다 해결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전윤애씨의 설명에는 무인양품이 최근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가 모두 담겨 있었다. 무인양품 제품에는 브랜드가 드러날 만한 커다란 로고 같은 것이 없다. 그저 베이지색이나 파스텔톤으로 차분한 색상에 단순한 디자인으로 전 제품의 통일성을 갖출 뿐이다. 매장 안에는 꽃병, 시계부터 화장품, 의류, 가구 심지어 먹을거리까지 없는 것이 없다. 모두 비슷한 색상에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콘셉트로 오만 가지 제품이 다 있으니 ‘무인양품다운’ 콘셉트로 집을 꾸미고 싶다면 굳이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다.
   
   무인양품과 같은 곳을 보통 ‘라이프스타일 숍’이라고 부른다. 가구, 생활잡화, 의류, 문구,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콘셉트로 고객에게 ‘라이프스타일’, 즉 생활양식 전반을 제안하는 매장이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생활용품 전문점이라는 우리말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라이프스타일 숍은 그저 물건을 파는 곳만이 아니다. 각 브랜드에서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동의하는 고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에서 시작한 대표적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2004년 한국에 처음 진출했다.
   
   전국에 1200여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는 국내 1위 생활용품 전문점 ‘다이소’의 예를 들어보자. 다이소에 가면 신선식품을 제외하고는 생활 전반에 필요한 다양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다이소에서 산 물품들로 작은 원룸 방을 채우는 자취생이 있다면 그는 다이소에서 제안한 라이프스타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이소에서 파는 제품의 상표에는 제각각의 원산지가 붙어 있지만 스타일은 같다. 겉보기나 쓰임새만큼이나 중요한 것, 저렴한 가격이다. 제품의 질이나 재료의 내구성은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가격이 우선인 ‘다이소 스타일’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과 북유럽의 영향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숍은 일본과 북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서점 ‘쓰타야(TSUTAYA)’를 기획한 마스다 무네아키(增田宗昭)는 앞으로의 유통 업계는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것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의 책 ‘라이프스타일을 팔다’를 인용해보자.
   
   “먼저 자신이 지향하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이 있고, 그것을 구체화한 형태로 패션이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레코드나 비디오, 서적과 같은 물건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쓰타야의 출발점이다.”
   
   쓰타야에는 책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꽂혀 있지 않다. 요리책이 놓인 바로 옆에 조리도구가 있고 음악과 관련된 책과 음반, 음향기기가 진열돼 있다. 물건을 판다기보다 스타일을 파는 것이 쓰타야의 전략이었다. 쓰타야 안에서는 어떤 제품도 판매될 수 있다. 자동차 관련 용품이나 가전제품도 책과 함께 판매한다.
   
   세계 최대 가구 판매점 이케아(IKEA)도 라이프스타일 숍의 유행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이케아에 가보면 필요한 물건을 고르기까지 한참을 걸어야 한다. 이케아 물건으로만 꾸며진 수십 개의 쇼룸(showroom)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최태원 더라이프파트너스 대표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케아의 쇼룸”이라고 설명했다. 이케아의 쇼룸은 실제로 사람이 생활하는 것처럼 꾸며져 있는데 이케아 제품을 구입하면 쇼룸에서 보는 듯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물건을 기계적으로 진열해두는 것보다 이 물건으로 인해 어떻게 삶을 꾸밀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는 것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케아의 라이프스타일에 설득 당한 고객들은 당장 커다란 가구를 사지 못해도 작은 잡화 하나 정도는 손에 들고 구입해 나오기 마련이다.
   
   이케아와 쓰타야의 성공은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라이프스타일 숍 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케아가 경기도 광명시에 첫 매장을 열었고 무인양품이 14년 사이 29개로 매장을 늘리며 한국 시장에 정착했다. 덴마크에서 시작한 ‘플라잉타이거’도 한국에 진출했고 ‘자라 홈’ ‘H&M 홈’ 같은 라이프스타일 숍이 속속 문을 열었다. 경기도 고양시와 하남 등지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게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한국에서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숍도 크게 성장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운영하는 ‘자주(JAJU)’가 대표적 사례다.
   
   2006년 ‘자연주의’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장한 자주는 말 그대로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다. 원래는 이마트 안에서 생활용품을 담당하는 코너로 있다가 2012년 8월 이름 변경과 함께 본격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독립 매장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이마트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20~40대 주부 및 가족이 보다 선호할 만한 제품이 많다. 2013년 1600억원이던 매출액은 4년 만에 2200억원으로 증가했다.
   
   라이프스타일 숍은 요즘 서울 번화가 어디에서나 관찰된다. 침구류, 소형가전까지 파는 ‘모던하우스’는 이랜드리테일에서 분사한 엠에이치앤코에서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몇 년 전부터는 모던하우스보다 조금 더 아기자기한 소형 생활용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버터’라는 이름의 브랜드도 내놓았다. 다이소와 이름이 비슷한 ‘미니소’는 일본 디자이너가 중국에서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2016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해 현재 전국에 6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두 라이프스타일 숍은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 50m 거리를 두고 나란히 들어서 있다.
   
   홍대입구역 1번 출구 지척에 있는 미니소 매장에 들어와 물건을 고르던 김창영·남성호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룸메이트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방 두 개짜리 연립주택에서 월세살이 하는 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흥미를 가지는 분야는 ‘집 꾸미기’다. “저희는 좀 신기한 것들, 디자인이 예쁜 물건 같은 것을 많이 사서 꾸며놓는 편이에요.” 김창영씨는 평소에도 종종 라이프스타일 숍을 다니며 물건을 구입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소형가전에 끌려 전등, 선풍기, 주방도구도 비슷한 디자인으로 바꿨어요.” 남성호씨는 옆에서 “잡화를 먼저 바꾸는 바람에 그에 맞춰서 소파 커버나 러그(카페트)를 바꾸려고 발품 파느라 고생했다”고 거들었다.
   
   김씨와 남씨의 소비 패턴은 왜 요즘 라이프스타일 숍이 늘어나는지, 고객들은 왜 이곳을 찾는지 짐작하게 한다. 라이프스타일 숍은 단지 이것저것 다 모아두고 쇼핑하기 편하기 때문에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라이프스타일 숍에 가보면 꼭 살 것이 없더라도 두 손 늘어뜨리고 매장 곳곳을 천천히 돌아다니는 ‘아이쇼핑족’이 눈에 많이 띈다.
   
   
   ‘소확행’과 유통망의 만남
   
   무인양품과 버터, 미니소 같은 매장에 가 보면 이 물건 저 물건을 들었다 놨다 구경만 하는 고객이 대다수다. 아예 아이쇼핑을 목표로 라이프스타일 숍만 돌아다니는 고객들도 꽤 많다. 거의 모든 라이프스타일 숍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객을 주목하지 않는다. 원하는 만큼 제품을 구경하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돌아서도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무인양품에 가면 이런 제품이 있더라’ ‘미니소에 신기한 아이템이 출시됐더라’ 등등 기억하게 하는 것이 목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쇼핑은 모바일과 인터넷에서 목적 의식을 갖고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였다. TV의 홈쇼핑 채널이나 인터넷 쇼핑몰은 둘러보기와 구매 활동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도록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이 매장 저 매장 원하는 티셔츠를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 없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는 편리함과 효율성 때문에 온라인 쇼핑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딱 원하던 제품을 원하던 용도에 맞게 원하는 가격에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면 효율성과 속도에 저항하는 소비자도 생겨났다. 라이프스타일 숍을 찾는 소비자들은 몇 걸음 못 가 발걸음을 멈추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곤 한다. 매장 안에서 발 아프도록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 소비자라면 그렇게 구입한 제품 하나하나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라이프스타일 숍의 제품들은 크기나 용도에 상관없이 하나하나 애착을 갖고 구입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무인양품은 아무 무늬 없는 명함케이스 하나를 두고 “소재 본래의 질감을 살렸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자주는 평범해 보이는 옷 수납상자에 “상자는 소중합니다”라며 “정성스럽게 보관하고 싶은 물건들을 내 마음대로 보관하도록 돕는 똘똘한 도우미”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이런 제품 설명을 읽고 제품의 디자인과 스타일에 만족해 구입하는 소비자에게는 사실 가격이나 쇼핑 시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신조어가 들어맞는 상황이다. 라이프스타일 숍의 성장은 욜로(YOLO)니 휘게(Hygge), 소확행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유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는 영어 문장을 축약한 단어 욜로는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덴마크어로 ‘편안함’ ‘따뜻함’이라는 뜻을 가진 휘게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 혼자서 즐기는 편안한 삶을 포괄하는 말이다. 세 단어 모두 미래의 거창한 삶의 목표보다는 지금 현재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즐거움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이다. 특히 20~30대를 위시한 젊은층이 이런 삶의 방식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다.
   
   젊은층이 소확행이나 욜로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살기 팍팍한 현실에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의 목표란 사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해 산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잘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 만큼 보다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스타일은 주로 소비 행위로 실천된다. 미래에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집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보다 집 가격에 비해 매우 적지만 마음에 꼭 드는 제품 하나를 구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이 더 큰 것이 지금 젊은층의 모습이다.
   
   라이프스타일 숍은 이런 젊은층의 소확행을 이끈다. 라이프스타일 숍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제품으로 구성돼 있지만 다이소를 제외하고는 염가(廉價) 제품이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가격보다도 이 제품이 어떤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라이프스타일 숍은 대개 체험형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무인양품이나 이케아의 경우에는 아예 이불을 덮어보고 침대에 누워볼 수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한참 구경하고 있더라도 이를 제지하는 점원이 없기 때문에 매장 안에서 소비자는 라이프스타일 숍이 제공하는 스타일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숍의 인기는 골목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무인양품이나 미니소, 플라잉타이거 같은 글로벌 기업이나 자주, 다이소 같은 유통 대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라이프스타일 숍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과 서교동 일대의 ‘메종키티버니포니’나 ‘오브젝트’는 서서히 규모를 넓히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키티버니포니는 대구에서 시작한 섬유 업체로 서울 합정동에 쇼룸을 갖춘 매장을 열었고, 홍대 앞에서 5년 전 문을 열었던 오브젝트는 최근 서울 곳곳에 분점을 내고 있다. 이외에도 어느 한 분야의 제품이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통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숍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말하자면 서울 곳곳에 생겨나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숍의 성장을 단지 물건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종합 잡화점’이 늘어나는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의 욕구와 소비방식이 변하고 그에 맞춰 유통방식도 변화하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숍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을 모았을 때 제시되는 스타일을 판다. 궁극적으로는 실제 삶과 소비 공간을 연결해 소비자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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