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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호]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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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국제럭셔리여행박람회를 가다

세계 여행업계 뉴럭셔리 전쟁

글·사진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 

▲ 싱가포르에서 지난 5월 22일부터 국제럭셔리여행박람회가 열렸다. 특급 호텔을 밀어내고 부티크 호텔들이 박람회장 중앙을 차지했다.
파티장이 아니라 전쟁터였다. 드레스와 정장을 갖춰 입고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지만 누가 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지 탐색하느라 다들 눈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지난 5월 21일 저녁,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 호텔에서 국제럭셔리여행박람회(ILTM) 웰컴 파티가 열렸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오길비레드(OgilvyRED)가 주최하는 ILTM은 전 세계 럭셔리 관광 업계가 모이는 B2B 행사이다. 일반인은 입장할 수 없다. 부스를 차린 업체와 참가 신청을 한 바이어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번 행사에는 46개국에서 550여개 전시관이 참여했다. 이 중 76개관은 올해가 첫 참가라고 했다. 밀라노, 런던, 두바이 등 대륙별로 행사가 열린다. 아태지역 행사는 지난해까지 상하이에서 열리던 것이 중국 시장이 너무 커지면서 중국과 아태지역이 분리됐다. 올해부터 싱가포르에서 아태지역 행사가 열렸다. 박람회는 5월 22~24일까지 마리나 샌즈베이 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최고급 호텔, 크루즈, 여행사, 레스토랑, 정부 관계자들과 바이어들이 참석한 만큼 럭셔리 여행의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행사다.
   
   21일은 박람회에 앞서 세미나와 웰컴 파티가 있었다. 세계 럭셔리 여행의 트렌드를 발표하고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파티’와 ‘잔치’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우리의 잔치는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나는 반면 파티는 철저하게 ‘교류’에 집중했다. 의자도 없고 음식도 서서 간단히 집어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 위주였다. 참석자들은 음식은 뒷전이고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왔다는 바이어 한 명이 필자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호텔 등에 고급 물품 등을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칸, 밀라노 등 유럽지역 박람회가 별도로 열리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싱가포르 행사에 자신을 포함해 직원 3명이 참가했단다. 그는 “아시아 럭셔리 여행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의 취향을 모르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다”면서 과장된 제스처로 말을 건넸다. 그의 말대로 세계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 부스마다 전통의상 등을 차려입고 바이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마케팅 전쟁이 치열하다.

   럭셔리 관광시장 큰손은 아시아 2535세대
   
   럭셔리 관광객은 보통 국가별 가계 소득 상위 5% 이내를 말한다. 국제관광박람회(ITB)에 따르면 2016년 글로벌 럭셔리 관광객은 4600만명으로, 전 세계 총 관광객의 4.2%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이 한 해 관광에 쓴 돈은 1720억유로(약 223조9285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세계 관광수입의 18.3%를 차지한다. 그러니 나라마다 VIP 관광객 모시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최근 럭셔리 관광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번 행사도 한국관광공사 한류관광팀 주관으로 참석한 것이다. 올해가 세 번째 참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필자가 맡고 있는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신라호텔, 워커힐, 설화수, 흑자 명인, 막걸리 명인 등 9곳이 선정돼 한국 관광 대표 주자로 나섰다. ‘럭셔리’ 명성에 맞게 부스 참가비도 일반적인 박람회의 3배에 달한다고 했다. 필자는 3일간 꼬박 부스에서 앉아 세계 각국에서 온 바이어들과 상담을 했다. 한 명당 15분씩 매일 20~25명을 만났다. 3일간 상담을 하고 받은 명함이 65장이었다. 상담 일정은 바이어들이 박람회 참가 리스트를 보고 주최 측을 통해 관심 있는 나라, 업체에 미리 예약을 한다. 이번 박람회 기간 예약된 상담건수는 2만8829건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럭셔리 트래블이 아니다!’ ILTM 주최 측이 이번에 내세운 박람회의 슬로건이다. 그동안 알던 럭셔리가 아니라 뉴럭셔리 시대를 선언한 것이다.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뉴럭셔리’를 정리하면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체험 럭셔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광고를 통해 주로 럭셔리를 접했지만, 요즘에는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한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다양한 체험들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된다. 두 번째는 2535세대의 등장이다. 돈만 버는 1세대 부자들과 달리 2세들은 돈 쓸 줄 아는 세대들이다. 특히 중화권 2세를 비롯한 아시아의 젊은 부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럭셔리의 주도권이 과거 서양의 중장년층에서 아시아 2535세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럭셔리의 경계가 무너졌다. 특급 호텔, 크루즈 등 기존 럭셔리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카테고리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박람회장의 부스 구성만 봐도 럭셔리 트렌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급 호텔들을 제치고 소규모 호텔들이 박람회장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규모는 작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부티크 호텔이 대세였다. 예를 들면 밀라노의 조르지오 알마니 호텔, 프랑스의 불가리 호텔, 이탈리아의 포지타노 호텔 등이다.
   
   호텔뿐만 아니라 모든 부스들이 2535세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2535세대의 특징은 윗세대보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들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다.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자기 만족이 중요한 세대이다. 물건보다 경험과 체험을 원한다. 명품 브랜드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브랜드 파워가 소용없는 시대이다. 고급 호텔보다 작지만 독특한 부티크 호텔을 선호한다. 저가항공을 타고 와 문화체험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펑펑 쓰기도 한다. 럭셔리의 전통적인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뉴럭셔리’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은 좋은 것보다 독특한 것, 남이 다 하는 것보다 남은 안 하는 것을 원한다. 박람회에 오래 참여해온 이웃 부스 업체들의 말을 들어보니 럭셔리의 개념이 20세기 100년보다 최근 20년 동안 바뀐 것이 훨씬 많다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고들 했다.
   
▲ 국제럭셔리여행박람회 첫날 세미나가 열려 새로운 럭셔리 여행의 트렌드를 소개했다.

   물건이 아니라 체험을 산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음식관광을 하는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이하 온고푸드)에도 ‘럭셔리’ 고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이들이 쓰는 돈은 보통 일반 관광객의 최대 10배에 달한다. 공통점은 지적호기심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관광업계 용어로 SIT(Special Interest Travel), 즉 특별한 테마여행이다. 쇼핑은 관심 없다. 특별한 체험을 사기 위해서는 돈은 얼마를 줘도 괜찮고 불편해도 상관없다.
   
   예컨대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전 세계 미식가들이 열광하는 아이템이다.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교통이 불편해도 감수한다. 제주도에 가서 해녀와 꼭 대화를 하고 싶다고 요청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내 시간, 내 만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산타워에 올라가고 싶은데 일반 관람시간이 지나서 입장을 하고 싶다거나, 경복궁 폐장시간에 특별한 입장을 원하기도 한다. 돈을 더 내는 대신 ‘패스트 패스(Fast Pass)’가 시스템화돼 있는 나라들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예외가 없다 보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도 하다.
   
   몇 년 전 세계 젊은 CEO들의 친목단체인 YPO(Young President’s Organization) 회원 36명의 단체관광도 기억에 남는다. 온고푸드에서 3박4일 동안 이들을 안내했다. 코카콜라, 왓슨, 다국적기업의 CEO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풍수지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풍수지리 전문가를 섭외해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을 다니면서 서울의 지형과 궁궐 터에 얽힌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주 흥미로워했다. 한국의 샤머니즘도 알고 싶다고 해 무속인을 모셔놓고 신내림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한 글로벌 기업의 CEO는 따로 무속인을 만나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싶은데 잘 살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한식과 거기에 어울리는 전통주를 대접했는데, 한 CEO는 복분자주를 여러 상자 사갔다. 한국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좋았다. 한 도시 안에서 전통과 현대가 대비되는 풍경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ILTM에서 상담을 하면서도 바이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콘텐츠가 뭐냐. 당신 회사에서는 남이 하지 않는 어떤 것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것에 목말라했다. 북한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럭셔리시장에서는 중요한 판매 포인트였다. 지금까지 호기심의 목적지가 미얀마, 라오스, 쿠바 등이었다면 다음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금지된 땅이다. 특급호텔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곳도 북한이었다. 그들에게 북한은 그야말로 미개척지다. 북한이 문만 열면 가장 먼저 들어가 깃발을 꽂을 이들이 호텔업계로 보였다.
   
   상담자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호주 여행사에서 온 바이어 닐 커비(Neil Kirby)씨였다. 그는 7년 전부터 북한 담당이라고 했다. 북한, 베이징, 한국을 차례로 들르는 9박10일 여행 상품을 매년 한 차례씩 판매하고 있는데 매번 매진된다고 했다. 북한에서 3박4일을 보내고 베이징에서 1박을 한 후 한국에서 3박4일 여행 후 돌아가는 일정이란다. 그들에게는 남북의 경제적 차이를 비롯해 문화와 체제를 비교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여행인 셈이다. 그는 “북한은 3성급 호텔이 가장 좋은 곳이다 보니 잠자리가 불편하긴 하지만 개발이 안 된 덕분에 자연도 좋고 유적지들이 잘 보존돼 있다”고 말했다. 때 묻지 않은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우리와 협력해서 드라마틱한 상품을 개발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같은 재료로 만든 남북의 음식을 비교 체험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었다. 그는 “여행이 끝난 후 고객 스스로 남북 전문가가 된 것처럼 만들어준다면 성공적인 상품”이라고 말했다. 결국 ‘뉴럭셔리’는 체험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됐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온 바이어 줄리아 아가에씨는 한국의 성형의료 시장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에서는 그동안 미국 쪽 기계를 많이 사용했는데 최근 한국 쪽 기계가 가격도 좋고 성능도 우수하다 보니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유명한 성형의사가 의료기기 시찰을 겸해서 한국을 가려고 하는데 온고푸드 쪽에서 맞춤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알고 보니 러시아 여성들도 성형을 굉장히 많이 한단다.
   
▲ 박람회장 한국관 앞에서 필자(가운데)와 상담을 나눈 바이어들.

   한국만의 럭셔리는 무엇인가
   
   각국의 바이어들에게 한국의 가능성과 관련해 들은 이야기는 많았다. 신안의 소금 체험이나 보성 차밭이 특히 좋았다고도 하고, 한 크루즈 회사는 속초처럼 크루즈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도에서 온 바이어는 한국에 오고 싶어도 비자 내기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을 했다. 러시아는 항공편이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말레이시아 쪽에서는 무슬림이 많다 보니 먹는 걱정부터 했다. 숲 테라피나 올레길과 같은 한국만의 체험을 묻는 사람도 많았다.
   
   국가별 부스의 디자인이나 마케팅 경쟁도 치열했다. 호텔 부스들은 보는 순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환상적인 풍경이나 사진들로 도배를 해놓은 곳이 많았다. 부스에서 칵테일 파티를 하면서 바이어를 접대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인도는 호화찬란한 그릇에 차를 접대하면서 바이어부터 최상의 럭셔리를 경험하게 했다. 중동 쪽 부스는 ‘아라비안나이트’ 속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남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바이어가 몰리는 일본관은 규모도 크고 부스 색깔부터 멀리서도 눈길을 끌 수 있게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이번 행사는 내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우리나라 관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것은 과연 뭘까. 많은 상담자들이 물었지만 한마디로 딱히 대답할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본 하면 온천, 인도 하면 요가처럼 한국을 나타내는 한마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내세울 것이 많다는 것은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과도 같다. 최근 서양인들도 일본의 온천에 맛을 들였다고 한다. 일본 재방문율이 높은 것도 온천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한국은 아직 새로운 시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 지금까지 한국은 분단 국가, 여행 위험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제 위험의 요소가 걷히는 만큼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관광객 숫자만 계산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들을 잡을 전문가 양성도 필요하다. 누가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인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기간 내내 한국이 가고 싶은 나라, 사랑받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진정한 럭셔리는 어떤 것인가, 한국만의 럭셔리는 무엇인가, 그 고민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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