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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호]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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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화가 바사노의 고향 ‘그라파’ 풍경에 숨은 비밀

글·사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16세기 화가 야코포 바사노가 일생 대부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던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기슭의 도시 그라파의 상징인 ‘알피니다리’.
다리(橋)에 얽힌 두 가지 얘기부터 시작하자. 먼저 영화 ‘노틀담의 꼽추’다.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십여 편의 영화 중 1939년 작품이 단연 톱이다. 영국 출신 배우 찰스 로튼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노틀담대성당 전체를 활용한 현장 촬영과 1만명이 넘는 엑스트라 출연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에 비친 일그러진 콰시모도 얼굴은 이후 ‘노틀담의 꼽추’의 대표적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영화를 본 이유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등장 이후의 파리 풍경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로 정평이 나 있기에 화면을 통해 당시 파리의 풍경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영화에서 주목한 것은 콰시모도의 일터이자 집이었던, 노틀담대성당 종루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지상에서 약 50m 높이다. 1833년 책 출간 이후 100여년이 흐른 뒤의 영상이지만 촬영 당시 노틀담 주변은 19세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노틀담 주변이 개발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영화 속 풍경을 보면 뾰족한 삼각형 지붕의 낮은 집들이 대성당 주변을 촘촘히 에워싸고 있다. 아무리 높아도 2~3층 정도로 낮은 집들이다. 노틀담의 좌우에는 센강이 흐른다. 노틀담 부지는 여의도처럼 강에 둘러싸인 섬, 즉 하중도다.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곳은 노틀담 서쪽으로 흐르는 센강이다. 강폭이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 좁다. 강 위에는 노틀담다리(Pont Notre Dame)가 걸쳐져 있다. 다리가 엄청 크고 넓게 느껴진다. 먼 풍경 속의 노틀담다리를 정지화면에 두고 자세히 살펴봤다. 놀랍게도 다리 위에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희미하지만 빨래도 다리 곳곳에 걸려 있다. 다리 위 집들은 보통 2~3층 복층 형태로 길게 이어져 있다. 수제 보석 가공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물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풍경과 비슷하다. 피렌체 베키오다리에는 보석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영상 속의 노틀담다리는 빈곤층 달동네처럼 느껴진다.
   
   
   유럽의 주거용 다리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유럽의 다리는 하천과 육지를 이어주는 기능에 국한되지 않았다. 다리도 하나의 주거공간으로 활용됐다. 처음부터 주거용 부지 확보를 위해 아예 넓은 다리를 만들기도 한다. 아시아와 달리 다리 밑이 아니라 다리 위가 주거지다. 피렌체 베키오다리도 원래는 보석상만이 아니라 거주지로도 활용되던 공간이다. 교회, 학교, 식료품점, 옷가게 등이 다리 위에 들어서 있었다. 이런 ‘주거용’ 다리들은 20세기 들어 도보용 다리로 리모델링됐다. 21세기 현재의 노틀담다리는 ‘비상식적’이라 할 만큼 크고 넓다. 과거의 다리 위 집들이 밀려나가면서 생긴 여분의 공간 때문이다. 유럽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교량 건축물을 만날 경우, 십중팔구 과거 주거용 다리였다고 보면 된다.
   
   다리에 얽힌 두 번째 얘기는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시작된다. 구체적으로 명화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모나리자룸이 무대다. 루브르 모나리자룸은 수많은 코드로 뒤덮여 있다. 세상에는 견(見)과 관(觀)이라는 두 개의 눈이 있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코앞의 시신경에 매달리는 것이 견이라 할 때, 오감과 머리로 상상하고 이해하는 것이 관의 세계다. 관의 눈으로 들여다볼 경우 모나리자룸은 코드 그 자체다. ‘모나리자’ 그림 그 자체만이 아닌, 전시관 안 복수의 그림들을 연결해주는 코드가 넘친다. 어느 각도로 관찰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해석과 이해가 가능하다.
   
▲ 바사노의 그림 ‘두 마리의 사냥개’. 인류 최초의 동물 초상화로 명명된 이 그림은 파리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그림 바로 옆에 걸려 있다.

   ‘모나리자’ 좌우의 바사노 그림들
   
   필자가 발견한 최근의 코드 중 하나는 ‘모나리자’ 좌우에 들어선 두 개의 그림에서 출발한다. ‘모나리자’ 그림을 정면에 두고 수평으로 양옆을 보면 좌우로 두 개의 그림이 걸려 있다. 둘 다 16세기 베네치아 지역에서 활동한 야코포 바사노(Jacopo Bassano)의 그림이다. ‘모나리자’ 측면 좌우에 배치된 바사노의 그림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모나리자’를 정면으로 볼 때 오른쪽에는 ‘두 마리의 사냥개’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바사노가 38살 때 그린 작품이다. 루브르 해설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돈을 받고 제작된 동물 초상화’라고 한다. 동물이 인간의 배경으로 등장한 적은 많지만 동물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된 것은 바사노 작품이 처음이다. 사냥개로 유명한 하운드도그두 마리로, 각도로 보면 ‘모나리자’의 옆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인간에게 아양을 떨거나 충성을 바치려는 모습이 아니라 왕이나 교황처럼 군림하는, 품과 격의 모습이다. 7m 정도 떨어진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동물의 영혼을 표현한 깊고 심오한 초상화다.
   
   초상화 역사는 멀리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라가 들어 있는 관 속의 인물을 확인하고 알려주는 인증서가 초상화의 출발이다. 이후 유럽으로 넘어가 권력과 돈의 상징으로 진화한다. 교회와 왕궁의 정통성과 힘을 알리는 과정에서 호화찬란한 초상화들이 등장한다. 화가는 이들 권력자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예외는 있지만 화가가 돈과 명예를 얻게 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바사노는 거의 모든 작품에 동물을 집어넣은 동물애호 화가로 유명하다.
   
   두 마리의 개 초상화에 이어 ‘모나리자’ 왼쪽 그림의 주인공은 안토니오 다 폰테(Antonio da Ponte)다. 초상화는 ‘건축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대략 70대 인물로 왼손에 컴퍼스를 잡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컴퍼스는 이성과 과학의 상징이다. 두 마리의 개 초상화가 정반대편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들과 마주 보는 구도인 동시에 중간에 들어선 ‘모나리자’ 옆모습을 보는 자세다. 흰수염 사이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꽉 찬 공기가 느껴지지만 어둡거나 불온한 것은 아니다. 초상화 속에도 안토니오 다 폰테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매년 겨울 베네치아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안토니오라는 이름을 본 순간 누구인지 와닿았다.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 리알토(Rialto)를 만든 건축가다. 1588년 건립된 석제 리알토를 설계 건축한 당대 최고의 예술가가 안토니오 다 폰테다. 기존의 목재 리알토다리가 불에 탄 직후인 1574년, 재건축 공모전이 열린다. 당시 공모전에서 무명의 건축가였던 안토니오가 당선된다. 미켈란젤로도 당시 응시했지만, 안토니오에게 패한다. 일약 베네치아, 아니 유럽의 유명인으로 떠오른 신데렐라가 안토니오다.
   
   바사노의 두 개의 그림을 살펴보면서 ‘왜(?)’라는 물음이 터져나왔다. 왜 ‘모나리자’ 좌우에 바사노가 그린 건축가와 개 초상화가 걸려 있을까. 루브르의 큐레이터는 무슨 생각으로 바사노라는 화가의 초상화 둘을 ‘모나리자’ 좌우에 배치했을까. 모나리자룸을 수차례 방문한 뒤 내린 결론은 ‘자연과 문명’이란 키워드다. 개는 자연을 의미하고 건축가 안토니오와 그의 작품인 베네치아 다리는 인류가 쌓아온 문명의 본보기다. ‘모나리자’ 정반대편에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초대형 작품 ‘가나의 결혼식’이 걸려 있다. 최초의 기적을 행한 그림 속의 예수는 모나리자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즉 자연으로서의 개, 문명으로서의 건축가가 인간 모나리자를 받쳐주고 있다. 신과, 신이 만든 세상 전부가 모나리자룸에 드리워진 코드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 그라파의 알피니다리 위에 있는 주점. 그라파는 알코올 도수 50도짜리 샴페인인 그라파의 고향이다.

   그라파의 명물 ‘알피니다리’
   
   바사노의 고향 ‘바사노 델 그라파(Bassano del Grappa·이하 그라파)’로 향한 것은 모나리자룸에 숨겨진 코드를 나름대로 해석한 직후다. 자칫 놓치기 쉬운데 세상에는 우연처럼 느껴지는 필연도 많다. 과거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그라파란 곳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어느날 무심코 지도를 살피는데 그라파란 인구 5만 정도의 중세풍 도시를 발견했다. 특이한 지명 때문에 눈이 갔다. 그라파는 이탈리아에서 식후에 디저트로 마시는 술의 이름이다. 자세히 알아보니 한층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화가 바사노의 고향이자 바사노의 이름을 딴 도시라는 점이다. 순간 모나리자룸에서 만난 두 개의 초상화가 떠올랐다. 바사노가 평생 머물면서 그림을 그린, 바사노의 인생 전부가 스며든 그라파라는 도시는 과연 어떤 곳일까.
   
   3.90유로를 들여 그라파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라파는 베네치아 북부, 알프스산맥 아래 인접한 산악도시다. 도시 내에 스키장은 없지만 뒷 배경으로 잘생긴 알프스산이 드리워져 있다. 신기하게도 유럽에 가면 후각이 민감해진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중세 특유의 공기가 느껴진다. 오래된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냄새와 비슷한 공기다. 중세 분위기를 내는 구시가지 건물들은 기차역에서 내려 불과 5분 만에 만날 수 있다. 보통 다른 도시들은 역에 내린 후 한참을 걸어가야 구시가지를 만날 수 있다.
   
   바사노의 흔적을 관찰하던 중 어딘가로 향해 걸어가는 수많은 인파를 만났다. 중세도시의 거리는 좁다. 조금만 사람들이 모여도 꽉 찬다. 어디인지도 모른 채 함께 어울려 따라가는 순간, 믿기 어려운 광경이 나타났다. 좁은 그라파 중심도로에서 급커브를 꺾자 마자 ‘늠름한’ 초대형 건축물 하나가 등장했다. 더불어 알프스 만년설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엄청난 유속의 하천과도 마주쳤다. ‘알피니다리(Ponte degli Alpini)’다. 아예 천장까지 달려 있는 ‘가옥형’ 목재다리로, 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온다.
   
   산업화 이전 원래 인간이 자연과 교감 공생하면서 이용했던 다리의 원형이자 모델이란 생각이 든다. 짙은 고동색의 다리 하부와 검게 변한 천장 모두 알프스의 두꺼운 원목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동차 2대, 아니 3대가 지나갈 정도로 넓다. 과거 노틀담다리가 그러했듯이 다리 입구에는 거주용 집과 영업용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알코올 도수 50도의 그라파(Grappa) 전용 주점도 다리 위에서 영업 중이다.
   
   그라파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의 관심사는 화가 바사노가 아니라 문명의 상징인 알피니다리에 있다.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로부터 흘러내려오는 하천을 견뎌내는 튼튼하고도 고집스러운 다리가 그라파의 얼굴이다. 알피니는 필자가 접한 최대 최고의 목재다리다. 이탈리아 다리의 대부분은 대리석과 같은 석재 건축물이다. 고대 로마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왜 돌이 아닌 목재로 만들었을까. 알프스에서 구할 수 있는 소나무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탈리아 동북지방이 갖는 특이한 문화적 배경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라파는 알프스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오스트리아, 왼쪽으로는 스위스와 연결된다. 도시 전체 분위기가 라틴이 아닌 게르만계에 가깝다. 일단 주민들의 몸이 크다. 토산품으로 파는 신발, 옷, 모자도 이탈리아풍과 조금 다르다. 와인이 아닌 맥주집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특이하다. 목재 건축은 ‘숲속의 바바리안’, 독일 게르만계 특유의 문화다. 고대 로마가 아닌 알프스 산악을 무대로 한 게르만 문화가 그라파의 원형일 듯하다.
   
▲ 바사노의 생가. 지금은 맥주집으로 바뀌어 있다.

   50도짜리 술 그라파의 고향
   
   화가 바사노는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동쪽 작은 언덕에서 평생을 보냈다. 젊을 때 잠시 베네치아에 거주한 적이 있지만, 82살로 마감한 인생 대부분을 그라파에 살면서 그림만 그리다 생을 마감했다. 400여년 전 바사노 생가를 찾아나섰다. 터만 남은 채, 선술집으로 변한 지 오래다. 그라파도 한잔 할 겸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화가 바사노에 대해 묻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바사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술에 대해서는 환하다. 최고 인기의 토속 그라파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레몬 그라파를 권한다. 시칠리아 레몬을 주성분으로 한 순도 55% 알코올이다. 투명하고도 건강한 노란색 그라파가 샴페인 잔에 실려온다. 이탈리아인 대부분은 그라파를 마실 때 안주 없이 즐긴다. 강한 술일수록 한입에 털어넣어야 한다. 마신 지 채 1분도 안 됐는데 몸과 마음이 달아오른다. 선술집 근처 다리 아래에 흐르는 만년설의 물소리가 귓속으로 고속질주한다.
   
   노틀담 종루에서 바라본 파리는 귀머거리 콰시모도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피와 살이 튀는 세상과 무관한, 종소리만이 울려퍼지는 환상의 세계다. 바사노가 평생을 보낸 그라파는 알프스와 눈으로 둘러싸인 자연 그 자체다. 알피니다리는 바사노 생전에 만들어졌다. 원래 있었지만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바사노가 59세 때이던 1569년이다. 따라서 바사노는 알프스라는 자연과 함께 알피니다리라는 문명의 힘도 동시에 경험한 화가다.
   
   루브르 모나리자룸에 새겨진 코드의 의미와 비밀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바사노의 고향 그라파에서 만난 풍경은 수많은 코드의 비밀을 푸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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