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이른바 코드인사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코드인사란 생각이나 경험이 비슷한 사람만 골라 쓰는 용인술을 가리킨다. 당연히 “끼리끼리 해 먹으면 일을 망친다”는 비판이 거세다. 반면 “생각이 맞아야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코드인사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이 심각한 문제를 풀어볼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어빙 재니스(1918~1990)의 ‘집단사고’(Groupthink, 1982)다. 이 책은 그보다 10년 전에 나온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1972)의 확대개정판이다. 여기서 집단사고란 어떤 집단이 강한 응집력(cohesiveness)으로 인해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고 획일적 방식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집단사고는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어느 조직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골칫거리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때 전 세계의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등의 필독서로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 지금도 변함없이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념비적 저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코드인사로 시끄러운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번역·소개되지 않았다. 아마 1970~1980년대에 우리 사회는 집단사고를 비판적으로 논의할 태세가 부족했을 것이다.

재니스는 우선 역사적으로 잘못된 정책결정이 반복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거기에는 반드시 오도된 결정을 유발하는 독특한 심리학적 집단 과정이 게재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해보기 위해 그는 미국에서 잘못된 정책결정이라고 평가된 사례를 네 가지 선정하여 그 결정이 이뤄진 과정을 각각 면밀히 검토해보았다.

그가 고른 실패 사례는 픽스만(The Bay of Pigs) 작전, 한국전 확전, 진주만 피습, 베트남전 확전이다. 이어서 그는 성공적인 정책결정으로 평가된 사례도 두 가지 선택하여 실패 사례와 차이점을 검토했다. 성공 사례는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마셜플랜이다. 이런 비교를 통해 그는 최고의 인물들이 모인 집단이 형편없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따져보았다.

당연히 한국전 확전 과정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잘 알려진 대로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북진(北進)과 만주폭격을 건의했다. 트루먼과 참모진은 이러한 확전의 가부를 결정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공(당시의 중국)의 개입 여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중공의 국력은 형편없고 소련의 승인 없이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입각해 트루먼 집단은 만주폭격은 불허했지만 북진은 승인했다. 그러나 곧바로 중공군이 대대적으로 개입했다. 완전히 예상이 빗나갔다. 그들은 중공에 대한 편견에 입각해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지 않은 채 성급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미군은 ‘역사상 가장 긴 후퇴’을 맛보았다. 이 사건은 잘못된 정책결정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오도된 결정으로 회자되는 것은 1961년 4월 픽스만 침투사건이다. 케네디와 참모진은 쿠바 망명인 1400명으로 여단을 만들어 그들을 쿠바에 침투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군의 엄호 속에 망명인 여단이 쿠바 픽스만에 상류했지만 곧바로 쿠바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불과 사흘 만에 거의 전원이 생포되거나 죽고 말았다. 이 어설픈 군사작전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당시 참모진은 최고의 엘리트집단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들은 뉴프런티어 정신으로 고무되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라고 과신했다. 그런 와중에 성급하게 의견을 통일하려는 무언의 압력을 받고 개인적인 의심을 억눌렀다. 특히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이미 대통령은 결심했다’며 회의론자들을 침묵시켰다. 이른바 심기경호(mindguard)를 발동한 것이다.

불과 1년 반 후에 동일한 집단은 더욱 심각한 위기와 마주했다. 픽스만 사건 후 소련은 쿠바에 핵미사일 시설을 설치하려고 했다. 이 사건 초기에 케네디 집단은 내부적으로 극심한 의견 분열을 겪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대안이 면밀히 검토되었다. 결국 그들은 단호한 봉쇄작전을 채택해 위기를 극복했다. 이 결정은 역사상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동일한 집단이 놀라운 변신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픽스만 사건 때는 일사천리로 결론을 향해 치달았다. 반면 미사일 위기 때는 내부적 대립 속에서 진통을 겪으며 어렵사리 결론을 도출했다. 전자는 실패했고 후자는 성공했다. 따라서 두 사례를 비교해보면 정책결정 성패의 명암을 극명하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높은 집단 응집력이 이견이나 의심을 억누르고 암암리에 통일된 의견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런 집단은 객관적인 정보탐색에 실패하고 외부 의견과 대안 검토를 외면한 채 오로지 리더의 지시에 의존하기 쉽다. 또한 본계획의 차질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대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이처럼 응집적인 집단은 자기과신과 폐쇄성에 매몰되어 집단사고를 유발하고 만다. 그리하여 아무리 우수한 엘리트로 구성된 집단이라도 형편없는 의사결정을 내려 참담한 실패를 만끽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픽스만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케네디 집단은 러스크 국무, 맥나마라 국방, 로버트 케네디 법무, 슐레진저 보좌관 등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이런 집단사고의 과정을 역추적해보면 그 방지책이 도출된다. 무엇보다 다양한 이견을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리더는 초기에 자신의 의중을 섣불리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집단을 소그룹으로 나누어 토론한 후 각각의 결론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아울러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를 선정해 철저하게 반대 논리를 펴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케네디 집단은 불과 1년 반 만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여 새로운 집단으로 다시 태어났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견을 용인하고 고통스러운 불일치를 견뎌냈다. 흔히 응집적인 집단은 속성상 집단사고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한계를 직시하고 냉철하게 대응하면 얼마든지 그 함정을 극복할 수도 있다.

후속적 실증연구에서 집단 응집력은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응집력 자체는 집단사고와 관계없다는 주장마저 제기되었다. 또한 응집력을 관계지향적 응집력과 과업지향적 응집력으로 구분하여 전자가 집단사고와 관련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단사고’는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유용한 통찰력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원만함을 강조하고 학연과 지연을 중시하며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 깊다. 이런 것들은 한결같이 집단사고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여기에 코드인사까지 더해지면 집단사고의 우려는 더욱 커진다. 실제로 이런 폐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책결정의 성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전통이 부재하다. 특히 이 정권의 권력 엘리트들은 이념·정서·경험을 강렬하게 공유하고 있다.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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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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