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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13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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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人]이것이 동대문표 예술!

제품을 작품으로 구슬을 예술로 ‘동대문 정신’ 내건 윤정원 작가

황은순  기자 

▲ 윤정원 작가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살림터 4층에 걸린 자신의 샹들리에 작품 밑에 앉아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분홍, 파랑, 노랑, 원색의 샹들리에가 화려하다. 하얀 공간에 총천연색 구름이 걸려 있는 것 같다. 가까이서 보니 샹들리에의 재료가 독특하다. 사람을 닮은 인형 수백 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인형들은 색깔도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구슬을 온몸에 감고 있는가 하면 파란색 털실 뭉치를 드레스처럼 걸치고 있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희한한 모양의 플라스틱 모자를 쓰고 있는 인형도 있다. 핑크색 구슬이 두 눈에 박혀 있는가 하면 노란색 공이 머리 대신 붙어 있다. 인형을 치장한 재료들은 비닐, 구슬, 헝겊,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들이다. 값싼 재료들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샹들리에로 변신했다.
   
   샹들리에는 오브제 작업을 오랫동안 해온 윤정원(47) 작가의 작품이다. 샹들리에에 들어간 재료들은 전부 동대문시장에서 온 것들이다. 새 것도 있고 쓰고 버린 것을 재활용한 것도 있다.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든다. 샹들리에뿐만이 아니다. 줄자에 인형을 연결해 목걸이를 만들고, 하이힐에 둥근 손잡이를 달아 핸드백을 만든다. 색색의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 가방도 있다.
   
   윤정원 작가의 작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싸구려 플라스틱 구슬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제품과 작품이, 구슬과 예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무줄에 왕사탕만 한 구슬을 꿰어 놓고 “명품이 별거냐?”고 당당하게 묻는다. 그는 매일 새로운 물건을 쏟아내는 시장 상인들과 작가의 작업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동대문시장을 담고 동대문시장에 예술을 심는다.
   
   윤정원 작가의 전시가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우주선이 지상에 내려앉은 듯한 모양의 DDP 건물 살림터 4층, 구조상 동선이 쉽게 연결되지 않은 탓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간이 숨어 있다. 건물 뒤편, 우주선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다. 천장도 벽도 곡선으로 이뤄진 백색의 공간은 진짜 우주선 선실 같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통유리창 밖으로 푸른 잔디광장이 펼쳐진다. DDP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가장 애정을 가진 공간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은 YG푸즈의 노희영 대표가 만든 새로운 개념의 식문화 공간 ‘히노스 레시피’이다. 노 대표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계절밥상’ 등 외식 브랜드를 성공시키고 YG 양현석 회장과 함께 YG푸즈를 설립, 삼거리푸줏간 등을 만들 었다. ‘외식브랜드 제조기’로 불리는 노 대표가 음식을 통한 소통을 꿈꾸며 만든 소셜다이닝 공간이다. 노 대표가 요즘 주목하고 있는 곳이 동대문이다. 동대문에 빠진 두 여자는 첫눈에 통했다. 만나자마자 의기투합, 전시로까지 이어졌다. ‘밥’과 ‘예술’이 한 공간에서 동대문의 꿈을 이야기하게 된 사연이다.
   
   “저게 무슨 작품이야? 10년 전만 해도 다들 그랬어요.”
   
   지난 6월 18일 히노스 레시피에서 만난 윤정원 작가가 말했다.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샀다는 파인애플 모양의 노란색 백을 들고 나왔다. 교복처럼 매일 입는다는 검정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화려한 작품과 꼭 닮아 보였다. 그는 학맥으로 얽혀 있는 미술계에서 이방인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 대학원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독일 쿤스트페어라인 국제미술상을 수상했다. 한국 미술교육의 틀 안에 갇힌 적이 없는 그의 작품은 낯설면서 새롭다.
   
   “그림을 못 그린 덕분에 대학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고교 졸업하고 독일 대학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을 했다.
   
   “저를 뽑은 교수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잘 그리는 사람한테 뭘 가르치겠냐고. 한국에서 명문대 다니다 온 사람들도 떨어졌거든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절 뽑은 거죠. 하하.”
   
   그는 대학에서 평생 스승을 만났다. 헹크 피시(Henk visch) 교수였다. 피시 교수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20대 때 5~6년 동안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원시인처럼 살다 세상으로 나왔다. 피시 교수는 생각도 작품도 자유롭고 가벼웠다. 학생, 교수 구별 없이 대했고, 학생들의 작업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피시 교수 덕분에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청동 용머리를 그렸는데 그 색깔이 내가 봐도 너무 예뻤어요. 지금 제 그림이 그때의 느낌과 같아요. 나만 알고 있는 것, 내가 잘하는 것, 그 느낌을 찾아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아마 학원을 다니고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았다면 내 색깔을 잃어버렸을 거예요. 나를 찾기도 전에 규격화돼버렸겠죠.”
   
   자신의 느낌을 찾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작품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봐요. 사실 금방 만들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면 간단하거든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요.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확실히 알죠.”
   
   그는 10여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둘러보고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재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거예요. 예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소꿉놀이하듯 그 재료들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어요.”
   
   그는 매일 시장으로 출근했다. 동대문시장이 놀이터였다. 새로운 재료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가게가 폐업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달려가 재료들을 박스째 사다 날랐다. 색색의 구슬, 플라스틱 꽃, 단추, 지퍼, 레고 조각까지, 모든 재료가 작품의 재료가 됐다. 샹들리에, 가방, 옷, 목걸이를 만들고 사람을 닮은 인형들을 패션 전사로 만들었다. 늘씬한 팔등신의 인형은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재료였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알몸의 인형에 상상의 날개를 달았다. 다양한 재료들과 아이디어를 버무려 재구성해낸 인형들은 하나같이 기발하고 자유로워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지난해 5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기획전 ‘공공연한 디자인전’에서 그는 미술관의 가장 큰 벽면을 전부 다른 400개의 인형들로 채워 화제가 됐다.
   
   “망치면 어떡하지? 그럼 안 돼요. 그냥 덤비는 거죠. 그림도 똑같아요. 겁 없이 그려야 해요.”
   
▲ 윤정원 작가의 작품 ‘동대문 정신’. 사람 닮은 인형에 동대문시장의 재료를 버무려 재구성해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동대문시장에 새로움을 담다
   
   바비인형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한 덕분에 그는 ‘바비인형’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인형은 하나의 재료일 뿐이다. 물감 대신 재료들을 이용해 다양한 드로잉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인형 작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작업으로 이어진다. 인형을 대형 사진으로 인화한 후 페인팅 작업을 더하기도 한다. 그림, 샹들리에, 인형, 사진 작업…. 재료는 다르지만 그에게는 모두 하나의 작업이다. 샹들리에, 인형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그림 속 장면들이 튀어나와 샹들리에, 인형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회화 작업도 독특하다. 동물, 사람, 인형이 등장하는 그림은 동화 같기도 하고 신화적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런 것을 왜 만들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의 작업은 한 단어로 설명하면 ‘새로움’이다. 동대문시장에 널려 있는 싸구려 기성품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로움의 가치를 보여준다. 화려한 가짜 액세서리를 내밀고 진짜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예술이 별거야? 내가 예쁘고 좋으면 예술이지!”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새로움의 잣대로 보면 가짜와 진짜가 달라진다. 그는 몇 초에 하나씩 팔린다는 비싼 백이 아니라 ‘나만의 것’이 명품이라고 말한다.
   
   “명품 브랜드로 자신을 내보이던 시대는 지났어요. 샤넬도 보세요. 하다하다 할 게 없으니 비닐로 옷을 만들어 팔잖아요. 이젠 브랜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물감 하나라도 뿌려놓고 남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해요. 20세기는 물질이 이끌었다면 21세기는 정신이 이끌어가고 있어요.”
   
   새로움은 전통적인 틀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것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그는 동대문시장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상력으로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내느냐가 예술의 역할이듯, 동대문시장은 ‘짝퉁 천국’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라고 믿는다.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고 백남준 작가도 “한국의 미래는 동대문시장에서 남대문시장을 아우르는 자유시장에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동대문시장 일대를 근거지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는 것도 변화의 바람이다. 이제는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오래전 자신의 브랜드도 만들었다. 브랜드 이름은 ‘스마일 플래닛(Smile Planet)’, 즉 웃음의 행성이다. 사람들이 예술과 소통하면서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작가의 작품을 갤러리가 아닌 어디서든 만나고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대문시장표 예술을 본격적으로 생산, 대중과 만나기 위해 최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15길에 상설 전시장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웃음의 행성’에서는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된다. 그 뿌리는 동대문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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