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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16호]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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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황금의 손 미다스 왕은 실존인물 그 흔적을 찾아가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미다스 아니티’. 미다스 왕이 실존인물이라는 증거 중 하나다. 벽에 ‘아르카이스의 아들 아테스가 미다스에게 바치는 기념물’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스카이라이트(Skylight) 프로젝트. 올해 4월 초부터 시작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하 메트) 내부수리 계획이다. 2층 유럽 갤러리가 수리 대상으로, 2020년 말에 재개장할 예정이다. 천장을 뜯어 태양빛에 가까운 자연조명으로 대체하자는 것이 공사의 목적이다. 이 때문에 유럽 갤러리에 소장됐던 예술작품의 60%가 창고로 옮겨졌다. 메트가 자랑하는 세계적 명화들로, 나머지 40%의 작품들만 남쪽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다. 어수선한 반쪽 전시관이지만 나름대로 장점도 있다. 공사 중이기에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최근 메트에 들른 이유는 그동안 감상을 미뤘던 그림 하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의 대명사인 니콜라 푸생(Nicolas Pussin)의 ‘파크토루스강(江)에서 손을 씻는 미다스 왕(王)’이다. 가로 72㎝, 세로 94㎝ 크기의 아담한 유화다. 창고로 옮겨진 60% 작품 중 하나가 아니길 빌면서 남쪽 갤러리로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메트 직원들에게 “미다스 왕 그림이 어디에 걸려 있느냐”고 물어봤다. 황당하게도 “모른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인기가 높은 북쪽 갤러리 명화들을 남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그림들의 전시공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인 니콜라 푸생의 작품 ‘파크토루스강에서 손을 씻는 미다스 왕’.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보관돼 있다.

   자세히 보니까 그림 배치가 엉망이다. 주제, 공통점,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 메우기 배치다. “지금이야말로 그림 절도범을 위한 최적의 시간”이란 싸늘한 농담과 함께 “구석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는 대답을 얻어냈다. 이 직원의 어정쩡한 기억을 바탕으로 여기저기를 헤매던 중 마침내 미다스 왕을 만났다. 그림 속은 ‘강 주변 바위에 기댄 미다스 왕, 마치 기도를 하듯 양손을 들어 뭔가를 열심히 찾는 남성, 요정인 듯한 두 명의 어린이’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림의 제목에서 보듯 미다스 왕이 자신의 손을 파크토루스강에서 씻는 장면이다.
   
   미다스 왕은 황금손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손으로 만지는 족족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한다. 그 같은 재능은 포도주의 신(神) 디오니소스의 축복에 따른 것이다. 행방불명된 디오니소스의 양부(養父)를 찾아준 데 대한 보상으로 미다스 왕의 소원인 황금손이 안겨진 것이다. 미다스 왕은 즉시 세상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꾼다. 그러나 곧바로 황금손이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음식, 심지어 무심결에 안은 딸까지 황금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옷도 못 입고 물도 못 마시고 밥도 못 먹게 된다. 굶어죽기 직전에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찾아가 황금손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을 한다. 너그러운 디오니소스는 파크토루스강에 가서 손을 씻으라고 말한다. 푸생의 그림은 강으로 달려가 손을 씻는 미다스 왕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강에서 손을 씻는 과정에서 모래 일부가 금으로 변한다. 그림 속의 기도하는 듯한 남성의 모습은 사금을 찾는 장면이다.
   
   
   얼굴 없는 미다스 왕
   
   푸생의 그림을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첫째 미다스 왕의 얼굴이다. 묘하게도 푸생은 미다스 왕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뒷모습만 보여준다. 열심히 사금을 채취 중인 남성을 내려다보면서 황금에 미쳤던 어리석은 세월을 반추하는 구도다. 돈(金)에 대한 욕심으로 점철된 미다스 왕의 어제가 사금을 캐는 남성을 통해 재현되는 셈이다. 황금에 질린 탓인지 미다스 왕의 머리도 황금면류관이 아닌 월계관과 같은 것으로 장식돼 있다. 만약 푸생이 미다스 왕이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을 그렸다면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까. 굶주림에 찌든 얼굴, 딸을 잃은 데 대한 회한의 눈물, 손을 씻은 뒤 황금을 돌로 대하는 달관한 모습 등이 담기지 않았을까.
   
   둘째 의문은 황금손을 씻는 미다스 왕의 그림이 걸린 장소다. 메트는 뉴욕의 상징 중 하나다. 뉴욕은 세계금융과 외환, 무역의 심장이다. 월스트리트는 명실상부 글로벌 화수분(河水盆)의 대명사다. 세계의 부를 창조하는 5대륙 6대양 황금손이 바로 월스트리트를 가진 뉴욕의 모습 중 하나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메트에 걸린 미다스 왕의 그림은 만지는 족족 황금으로 바뀌는, 화수분의 기적으로 채워져야 자연스러웠을 듯하다. 물·와인·음식·옷·가구 등 닥치는 대로 황금으로 바꾸는 미다스 왕이야말로 연봉 억달러 단위의 월스트리트 브로커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트의 미다스 왕 그림은 거꾸로 황금손을 씻는 장면이다. 돈과 욕심의 세월을 영원히 포기하는 미다스 왕의 그림이 부에 대한 욕망이 넘쳐나는 뉴욕 뮤지엄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미다스 왕이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존재한 역사상 인물이란 사실을 안 것은 지난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찾아 에게해 주변을 여행하는 동안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다. 미다스 왕의 흔적은 역사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기원전 8세기 고르디움(Gordium)을 기반으로 한 미다스 왕국이다. 당시 맹위를 떨친 아시리아제국의 변방을 공격한 탓에 아시리아 역사서에도 등장한다. 아시리아 역사서에는 ‘무시키(Mushki) 왕국의 미타(Mita) 왕이 공격의 주범’이란 대목이 등장한다. 미타는 미다스로 풀이된다. 미다스 왕은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의 책에도 언급된 인물이다. ‘고르디움의 아들 미다스’란 이름으로 아폴로 델피의 신탁에 봉헌(奉獻)했기 때문이다.
   
   황금손 미다스는 인류 역사상 재물에 빠진 첫 번째 인물일 수 있다. 인간이 황금에 빠진다는 것은 물물교환이 아니라 금은과 같은 간접재화를 통한 교류가 일상화됐다는 증거다. 사회구성원 간의 이해관계가 한층 복잡해졌다는 의미다. 미다스 왕은 당시 문화와 문명의 변혁기에 탄생한 세속적 가치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같은 캐릭터가 신화 속에 탄생한 이유는 아마 욕심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그의 욕심은 남에 대한 배려, 소통도 차단시켰다. 미다스 왕이 그리스 신화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이 같은 점을 보여준다. 미다스 왕은 아폴론의 팬파이프 연주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당나귀 귀로 바뀐다. 미다스 왕은 이후 당나귀 귀를 숨기려고 장발족이 되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발사의 독백으로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감히 아폴론에게까지 대들고,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당나귀 귀에 대한 비밀이 지켜지고 있으리라 믿는 고집불통 미다스 왕 신화는 소통단절까지 부른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미다스시티로 가는 길
   
   황금손 신화 덕분이겠지만 중세 이래 미다스 왕국이 어디냐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최종 결론이 내려진 것은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고고학팀에 의해서였다. 터키 동부 야시호유크(Yassihoyuk)로, 2800년 전 미다스 왕 당시 프리기아(Phrygia)로 불리던 곳이다. 현재는 ‘미다스시티’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천연색 대리석으로 이름난 아피온카라히살(Afyonkarahisal)에서 북쪽으로 80㎞ 떨어져 있다.
   
   미다스 왕이 실존인물이라는 걸 안 후 미다스시티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월 길을 나섰는데 터키 고대 유적지들이 모두 그러하듯 미다스시티로 가는 길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미다스시티로 향하는 간선도로는 온통 비포장도로다. 좁은 1차선 비포장 빗길을 달리다가 진흙탕에 빠지기도 했다. 흙탕물 속에 잠긴 자동차 바퀴를 빼내느라 거의 반나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미다스시티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스팔트 도로까지 걸어가 도움을 청해야 했다.
   
   미다스시티로 가는 길 주변은 기원전 18세기 때부터 약 1000년간 청동기문화를 발전시킨 히타이트문명권에 해당한다. 인터넷 혁명으로 하루가 다루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기까지 1000년이 걸렸다. 미다스시티로 가는 길은 당시 문화와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이색공간이다. 전체적으로 평지다. 날씨는 건조한 편이지만 작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많다. 히타이트는 산이나 절벽 위에 세워진 성(城) 문명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현지를 돌아다니며 내린 나름대로의 판단이다. 외부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평지보다 조금 높은 언덕을 이용했을 뿐이다. 조악한 축성기술 때문이라 볼 수 있겠지만 당시는 지배·피지배 계급 사이의 엄격한 분리가 없던 때였다. 피지배층의 반란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 당시 지배층이 성 대신 자연적인 언덕을 방어물로 이용한 이유일 수 있다.
   
   미다스시티는 간선도로에 접어든 지 30분 만에 나타났다. 언뜻 보면 인공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공간이다. 해발 1300m로 비교적 고지대다. 주변 평지와 비교하면 약 30m 정도 높은 언덕 위에 들어서 있다. 역시 성벽의 흔적은 전혀 없다. 전체적으로 축구장 10개 정도 크기의 넓은 공간이다. 다른 문화유적지와 달리 티켓을 파는 검문소가 잘 정비돼 있다. 안으로 들어가 작은 언덕 하나를 꺾는 순간, 동쪽 방향으로 서 있는 엄청난 조형물 하나가 나타났다. 돌로 만들어진 16m 높이의, 이른바 ‘미다스 아니티(Aniti)’다. 아니티란 기념물이란 의미다. 첫눈에 신성하고 신비한 뭔가가 느껴진다. 고대 그리스 조각이 그러하듯 영혼이 밴 조형물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미다스 아니티는 미다스 왕이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증거이다. 미다스 아니티 오른쪽 상단에 기록된 고대 프리기아 문자가 구체적인 증거다.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던 이 고대문자를 스코틀랜드 고고학팀이 해석해냈다. ‘아르키아스(Arkias)의 아들 아테스(Ates)가 미다스에게 바치는 기념물’이란 것이 벽에 새겨진 문장의 내용이다.
   
▲ ‘미다스 아니티’에 새겨진 벽서.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고고학팀이 해석해냈다.

   미다스 아니티는 큰 바위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조형물이다. 은은하고도 깊은 붉은 색감이 조형물 전체에 퍼져 있다.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 어디쯤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700여년 세월이 흘렀지만 일부분만 파손됐을 뿐 거의 완벽한 상태다. 훼손된 곳은 맨 위의 삼각형 정점으로 아치형 조형물의 중간 부분이다. 미다스 아니티의 첫인상은 입체 피라미드를 평면으로 집약한 모습으로 와닿는다. 삼각형 피라미드는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죽음 뒤에 맞이할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출발점이 초대형 입체 삼각형 피라미드의 기원이라는 해석이 많다. 미다스 아니티의 경우 원래 어떤 의도에서 세워졌는지 알 수 없다. 고대 대형 조형물의 대부분이 신을 위한 봉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전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다. ‘미다스에게 바친다’는 벽서는 이후 새롭게 추가된 내용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조형물 일부에서 발견된 ‘마타(Matar·어머니 Mother)’란 글자를 근거로, 대지와 풍요의 여신 ‘키벨레(Cybele)’에게 바쳐진 신전의 일부라 추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조형물 안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이다. 기독교 문화권 대부분을 돌아다녔지만, 예수 탄생 이전에 만들어진 십자가 문양은 난생처음이다.
   
▲ 미완성 상태로 남겨진 미다스 기념 벽화.

▲ ‘미다스 아니티’ 바로 옆에 있는 ‘미다스 왕좌’. 자연동굴을 비잔틴시대 수도원으로 개조해 1000여년간 활용했다.

   미다스 아니티 바로 옆에 들어선 ‘미다스 왕좌(Throne)’는 미다스시티의 명물 중 하나다. 멀리서 보면 의좌처럼 보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천 년간 지속된 거주용 자연동굴로 4세기 이후 비잔틴 수도원으로 개조해 1000여년간 활용된 공간이다. 미다스 왕좌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기독교도들의 엄격한 수행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필자라면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과 공간만이 들어서 있다. 나머지는 전부 신에게 바친다. 황금손 도시의 상징인 미다스 아니티 바로 옆이 성(聖)의 보고인 셈이다. 성과 속의 적당한 조화가 미다스시티, 황금손 미다스 왕이 던지는 진짜 메시지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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