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불상의 두상 부분. 2~3세기에 제작됐다.
간다라 불상의 두상 부분. 2~3세기에 제작됐다.

석가모니의 생몰연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남방불교에선 기원전 624년으로, 북방불교에선 기원전 1026년으로 태어난 해를 추정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경우는 확실하다. 기원전 356년에 태어나 기원전 323년에 생을 마쳤다. 세기를 넘어 두 인물이 조우했다. 간다라 지방에서다. 이 만남은 ‘불상’을 낳았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의 원류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의 원류다.

간다라(Gandhara)는 간다리족이 사는 땅이란 뜻이었다. 왕조들의 흥망성쇠를 거치며 특정 지역을 의미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시대별로 약간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지금의 파키스탄 페샤와르 분지 일대를 가리킨다. 스물아홉에 인도 대륙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힌두쿠시산맥 남쪽을 정복하며 서른 살을 맞는다. ‘동방 원정’이었다. 인도 대륙 정복의 꿈은 열병과 함께 미완성으로 끝났다. 알렉산더의 정복길 뒤엔 그리스인들이 따랐다. 페샤와르 지역에도 그리스인들이 정착했다. 이들이 불교를 만나 만든 게 바로 간다라 불상이다. 헬레니즘 양식으로 붓다와 보살을 표현했다. 부처가 열반한 후 한참은 ‘무불상 시대’였다. 부처의 발자국, 빈 의자, 수레바퀴(법륜) 등으로 부처를 표현했다. 부처의 유골을 숭배하기도 했다. 봉분 모양의 구조물 속에 유골을 모셨다. ‘스투파’다. 스투파가 중국과 한국으로 넘어오며 ‘탑’으로 발음이 바뀌었다.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신을 형상화하는 데 익숙했다. 제우스, 헤라, 아폴론, 헤르메스,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에 둘러싸여 일생을 보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아무래도 기존의 것을 참조하기 마련이다. 초창기 간다라 불상들은 포즈나 복식이 그리스 인물상과 유사하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상처럼 비스듬히 서 있거나 아우구스투스상처럼 주름이 잔뜩 진 옷을 입는 식이다. 묘한 느낌을 준다. 현대의 우리가 불상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요소들이 보이지 않아서일 터다. 불상이 갖춰야 할 붓다의 신체 특징은 32가지로 정리됐다. ‘32상’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귀인상의 영향을 받았다. 이런 식이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가 있다, 이마 중간에 흰 털이 있다, 손가락이 길다, 눈이 연꽃과 같다’. 간다라의 부처는 이런 도상에서 자유롭다. 눈을 크게 뜨고 있다거나, 수염이 있는 식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불상과 사리함 등은 한 번 선을 보인 적이 있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알렉산더가 만난 붓다’ 전시회에서다. 주한 파키스탄대사관과 페샤와르박물관, 라호르박물관이 함께 연 전시회였다. 박물관 소장품은 돌려보내고 개인 컬렉터의 작품은 남겨뒀다가 이번에 다시 전시한다. 2세기에서 4세기경에 만들어진 불상과 사리함이다. 유리진열대 너머 멀찍이가 아니라 가까이서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기회다. 보살상의 원류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간다라 지방엔 대승불교가 정착했다. 대승불교에선 굳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지 않아도, 남을 돕는 보시 등 6바라밀을 실천하면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간다라의 부자들은 재산을 기부하고 선행을 베풀며 보살을 꿈꿨다. 간다라의 보살상이 화려한 복장을 한 이유는 이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 석굴암의 문수보살상이 떠올랐다. 목걸이와 허리띠를 걸친 자태로 묘사한 이유가 늘 궁금했다. 2000년 전 간다라의 숨결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열린다.

키워드

#전시
하주희 기자 / 갤러리 아트링크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