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뉴저지주 뉴어크 거리. ⓒphoto NPR
포르투갈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뉴저지주 뉴어크 거리. ⓒphoto NPR

“뉴욕은 맨 정신으로 얘기할 만한 도시가 아니다. 인도 콜카타와 같은 곳이다. 뉴욕은 감정적·비이성적으로 대할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곳이다.”

영화감독, 배우에다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우디 앨런(Woody Allen)의 뉴욕관(觀)이다. 찬미인지 비난인지 모르겠지만, 뉴욕은 머리나 논리와는 무관한 카오스의 도시라고 말한다. 우디 앨런은 서부 할리우드에 맞선, 동부 영화계 대표주자다. 저가의 제작비로 현대인의 고민과 흥미를 파고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맨해튼 영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아동 성추행 소송 때문에 작업이 지연되고 있지만, 영화 ‘비오는 날의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도 현재 촬영 중이다.

우디 앨런 영화의 진수는 1970~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모바일이나 디지털과 무관한 아날로그 시대의 영화다. 소재도 뉴욕, 주제도 뉴욕이다. 우디 앨런 영화에는 액션이나 눈물이 거의 없다. 우디 앨런 특유의 브루클린 악센트 영어로 이어지는, 진담과 농담을 넘나드는 수다쟁이들의 황당 스토리다. 황금만능 도시 뉴욕에 맞춰 살아가는 뉴요커의 일상이 주된 테마다.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만큼 좋은 수단도 없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서울 풍경도 좋지만, 오드리 햅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영화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로마 구석구석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우디 앨런은 뉴욕과 관련된 수많은 이미지를 창조해낸 주역이다. 영화 속의 뉴욕은 크고 높고 넓고 비싼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비한 공기나 분위기와 더불어 사랑, 낭만, 여유로 충만한 도시다. 필자도 뉴욕을 특별한 도시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우디 앨런 영화에 있었다. ‘애니 홀’(1977), ‘맨해튼’(1979), ‘한나와 자매들’(1986) 같은 영화는 뉴욕 라이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뉴욕은 어제의 이야기일 뿐이다. 20세기 아날로그 시대의 맨해튼과, 83세 우디 앨런이 맞이한 2018년 디지털 시대의 맨해튼은 상전벽해, 천양지차다. 아동 성추행범으로 전락한 우디 앨런의 오명이 그러하듯, 뉴욕에 대한 환상은 끝났다. 왜일까? 두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세계화·국제화가 주범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옷차림과 상품은 물론 거리 풍경, 레스토랑의 맛에 이르기까지 전부 비슷하다. 둘째는 천문학적 임대료다. 자신만의 물건과 기술 하나로 살아가던 이민세대를 위한 서바이벌 공간이 사라져버렸다. 기술이나 독창성과는 무관한, 대자본만이 세계 최고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이민세대의 다양성과 창조성이 실종된 것이다.

옛 정취 남아 있는 포르투갈 커뮤니티

관광객에게는 신나는 도시가 될 수 있겠지만, 일상의 뉴욕은 다른 도시와 비슷하다. 크고 높고 많은 것으로 채워진 기네스북 세계 신기록 도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디 앨런 영화 속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맛과 잔잔한 멋의 뉴욕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와 ‘메이드 인 차이나’가 넘칠 뿐, 뉴요커가 창조해내는 오리지널 ‘메이드 인 뉴욕’은 제로에 가깝다. 영화 ‘대부(代父)’의 무대 리틀 이탈리아는 히스패닉이 점령한 지 오래다. 나폴리 음식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볼리비아 파스타나 우루과이 피자가 식탁에 오른다. 할렘 흑인지대에는 무슬림의 코란이, 소호(Soho)에는 10달러짜리 나이지리아산 루이비통 가방이, 브루클린에는 1달러짜리 ‘메이드 인 차이나’ 도라에몽 피규어 좌판이 넘쳐난다. 타임스스퀘어는 수퍼맨 가면과 함께 팁을 갈취하려는 ‘앵벌이’ 캐릭터들로 넘쳐난다. ‘글로벌 잡탕’ 뉴욕이라고 하지만, 인공조미료가 판치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진짜 뉴요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뉴욕만의 일상과 풍경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그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뉴욕을 어떤 식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생활 속에 숨어 있는 뉴욕과 뉴요커를 얼마나 피부로 경험하는지도 관건이다. 필자는 매일 뉴욕을 샅샅이 뒤지면서 다니거나, 진짜 뉴요커 친구를 많이 가진 사람은 아니다. 우디 앨런 영화를 충실히 본 덕분에 낭만, 여유, 환상, 마법, 신비로 가득한 뉴욕의 공기와 분위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1990년대 글로벌 시대에 들어서기 전까지의 풍경과, 21세기 현재의 뉴욕 사이의 차이를 알아낼 감각이다. 그 같은 관점에 기초해 우디 앨런 스타일의 노스탤지어를 찾아나설 경우 어디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뉴어크(Newark)의 포르투갈 커뮤니티가 필자의 답이다. 뉴저지주에 속해 있는 곳으로, 행정구역으로 볼 때 뉴욕과 전혀 무관하다. 그러나 필자는 뉴욕의 노스탤지어를 느끼려면 포르투갈 커뮤니티가 최고, 최적이라 확신한다. 부분적이지만, 뉴욕에도 우디 앨런의 향수는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정취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극히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제한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뉴욕 밖 포르투갈 커뮤니티는 한 세대 전, 아니 두 세대 전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타임슬립’ 이색공간이다.

뉴요커는 뉴어크의 포르투갈 커뮤니티를 ‘아이언바운드(Ironbound)’라 부른다. 이곳에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제철공장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스페인·이탈리아·아프리카에서 몰려온 초기 이민세대의 첫 출발점이 아이언바운드다. 몸 하나로 모든 식구를 먹여살린 20세기 이전 미국 개척사의 현장이다. 미국 이민사를 통틀어 포르투갈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늦게 미국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1910년대 간헐적으로 들어온 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밀려왔다. 이전에 밀려온 유럽 이민세대들이 맨해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포르투갈의 아이언바운드 진출이 시작됐다. 현재 3만명 정도의 포르투갈인들이 아이언바운드에 살고 있다. 뉴요커 대부분은 ‘아이언바운드=위험지역’으로 해석한다. 제철공장, 일용직 노동자, 초기 이민세대가 만들었던 척박한 주변환경에서 비롯된 어두운 이미지 때문이다. 사실 뉴어크비행장이 바로 인접한 탓에 인적이 드물고 방치된 건물이나 공간도 많다. 뉴욕 마피아 영화 속의 마약거래나 살인현장으로 활용될 법한 곳들이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뉴어크는 미국 내에서 수위를 달리던 범죄도시 중 하나였다.

포르투갈 커뮤니티가 조성돼 있는 뉴어크 아이언바운드. 과거 제철소가 들어섰던 동네다.
포르투갈 커뮤니티가 조성돼 있는 뉴어크 아이언바운드. 과거 제철소가 들어섰던 동네다.

맨해튼에서 아이언바운드까지의 거리는 약 30㎞ 정도다. 짧은 거리지만, 24시간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탓에 자동차로 갈 경우 최소한 1시간은 잡아야 한다. 뉴저지주는 뉴욕에 비해 자동차 기름값이 10~20% 정도 싸다. 가기 전에 기름탱크를 비우는 게 좋다. 아이언바운드를 찾은 날은 지난 7월 15일이다. 일부러 월드컵 결승전에 맞춰 찾아갔다. 포르투갈은 세계 축구의 대명사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모국이다. 더불어 아이언바운드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커뮤니티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역주민들의 축구에 관한 관심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언바운드 중심에 위치한 이베리아 레스토랑 주차장에는 이미 100인치 초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축구 광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월드컵 기간 포르투갈, 브라질이 출전하는 게임이 있을 경우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최고의 에스프레소 천국

95번 턴파이크 하이웨이를 지나 14번 출구로 나서면 곧바로 아이언바운드로 들어선다. 뉴욕과 전혀 다른 보통 2층, 높아도 5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이어지는 풍경이다. ‘젠틀맨 온리’ 클럽에서부터, 중고 타이어나 중고 자동차 부품을 파는 곳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위축될 만한 분위기다. 아이언바운드의 중심지는 페리(Ferry) 스트리트다. 아이언바운드의 상징인 산스테판 교회에서 시작해 뉴어크 펜 스테이션까지, 대략 1㎞ 정도의 거리다. 양쪽에는 포르투갈어와 함께 포르투갈인이 직접 경영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와인, 빵, 올리브오일, 생선, 의류, 주방기구, 스포츠용품 같은 것이 주된 상품들이다. 페리 스트리트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꺾으면 포르투갈인을 위한 교회, 학교, 공공장소가 들어서 있다. 필자의 감각이지만, 리스본에서 만난 포르투갈의 이미지와 99% 동일하다. 급경사 언덕을 오르는 전차가 있다면 100% 포르투갈 풍경이다.

뉴어크의 상징인 산스테판 교회.
뉴어크의 상징인 산스테판 교회.

맨해튼의 3분의 1 가격인 시푸드

아이언바운드와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으로 향하던 중 싼값의 기름을 찾아 주유소에 들렀다가 우연히 이 지역을 발견했다. 우디 앨런 스타일의 공기로 충만한 곳이란 게 당시 첫인상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변한 것이 거의 없는 곳이다. 아이언바운드는 미국 내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커피천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포르투갈 이민세대에 의한, 포르투갈산 커피기계에다 포르투갈에서 제조된 원두로 만들어진 지중해 커피맛 그대로다.

카페에서 카드놀이를 즐기는 뉴어크의 포르투갈 이민자들.
카페에서 카드놀이를 즐기는 뉴어크의 포르투갈 이민자들.

언제나처럼 아이언바운드 동쪽 입구에 들어선 센트럴(Central) 카페에 들렀다. 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럽 시골 스타일의 ‘아재’ 전용 카페다. 종업원만 여자일 뿐, 지금까지 여자 손님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위스키·와인·샌드위치도 즐길 수 있다.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은 1달러25센트다. 종이컵이 아니라 두꺼운 포르투갈산 세라믹잔에 담긴 커피다. 설탕과 함께 레몬껍질도 제공된다. 첫눈에 봐도, 손님의 대부분은 햇볕에 검게 탄 육체노동자들이다. 나이가 든 사람은 대략 포르투갈인, 젊은 사람은 브라질인이다. 식민지로 엮인 관계지만, 아이언바운드에서는 서로 돕고 즐기는 사이다. 평소의 센트럴 카페는 아재들의 1달러짜리 카드게임 놀이터다. 그러나 월드컵 축구 결승전 덕에 모두의 시선은 TV에 꽂혀 있다. 예상 외로 분위기가 너무도 차분하다. 결승전에서 프랑스가 첫골을 넣었는데도 탄성이나 박수가 없다. “포르투갈, 브라질이 모두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무슨 재미가 있겠냐? 볼수록 화만 난다.”

필자가 생각하는 아이언바운드의 하이라이트는 시푸드 레스토랑이다. 포르투갈은 시푸드의 나라다. 아이언바운드에서라면 어느 레스토랑을 가도 120% 대만족이다. 항상 손님들로 터져나가지만, 싱싱하고 푸짐하다. 가격은 맨해튼에 비해 3분의 1 정도다. 리스본 바닷가에서 먹었던 꽁치구이도 재음미할 수 있다. 20달러 정도면 포르투갈 특유의 와인 비노 베르데(Vinho Verde)도 마실 수 있다. 탄산이 섞인 비노 베르데는 시푸드를 왕창 즐기는 사람을 위한 최고의 음료다. 와인 전용 고급 잔이 아닌 일반 컵에 담아 마시는 물과 같은 음료다.

가장 약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시에브라 마리스케이라(Seabra’s Marisqueira)’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이언바운드 시푸드 레스토랑의 얼굴이다. 특유의 분위기도 인상 깊지만, 둥글게 연결된 바에서 즐기는 새우·문어·돼지고기 요리는 기억에 남을 만하다. 시푸드 요리 가운데 파토(Pato)는 필자가 가장 즐기는 포르투갈 요리의 출발점이다. 조개와 마늘·허브를 섞은 요리다. 고추를 아시아에 퍼트린 나라가 해양대국 포르투갈이다. 아시아 진출에 관한 한 포르투갈은 유럽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고 적극적이었다. 고추는 물론 ‘덴푸라’ ‘카스텔라’ 같은 음식들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아시아로 확산됐다.

아이언바운드의 대표적 시푸드 레스토랑인 ‘시에브라 마리스케이라’.
아이언바운드의 대표적 시푸드 레스토랑인 ‘시에브라 마리스케이라’.

미국 서부 명물로 세쿼이아(Sequoia)라는 나무가 있다. 높이 100m에다 직경 20m까지 자라는 초대형 나무다. 요세미티국립공원에 가면 대군집이 남아 있다. 어떻게 인간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강도가 너무 약하기에 건축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약한 것이(The weakest) 가장 강한 것’이라는 말은 세쿼이아에 따라붙는 명언이다. 15세기 말 가장 먼저 해외 진출에 나선 포르투갈이지만, 정작 신천지 미국으로의 이민은 유럽 내 꼴찌다. 정반대의 모순된 행동의 원인이자 배경으로 1775년 리스본 대지진이 떠오른다. 한순간에 포르투갈의 국운을 추락시키고, 식민지 경영도 끝장낸 역사적 대재앙이다. 한국인보다도 미국 이민에 늦게 나선 이유가 대재앙 당시 새겨진 트라우마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이언바운드는 뉴욕의 노스탤지어를 지키는 몇 안 남은 공간 중 하나다. 가장 늦게 온, 가장 약한 존재이기에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고나 할까? 우디 앨런 영화 속의 뉴욕을 보고 싶다면 단 한 번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평생 기억에 남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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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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