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 오늘은 오랜만에 만나는 프랑스 코미디 ‘세라비, 이것이 인생!’(Le sens de la fete/ C’est la vie!·2017)을 다루고자 합니다. 올리비에르 나카체와 에릭 토레다노, 두 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입니다.

배종옥 | 우리나라에서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을 흥행시킨 바 있는 감독들입니다. ‘웰컴, 삼바’(2014)에 이어 4년 만에 한국 관객에게 신작을 소개하게 됐네요.

신용관 | ‘세라비’는 개봉한 지 2개월 됐는데, 안타깝게도 누적관객수가 2만3000여명에 그쳤습니다. ‘언터처블: 1%의 우정’이 172만명이 든 것과 비교하면 관객 동원에 참패한 셈이지요.

배종옥 | 저로서는 정말 재미있게 본 작품이고, 가끔 몇몇 장면을 떠올리며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영화라 이렇게까지 주목을 못 받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예요.

신용관 | 주인공은 은퇴를 코앞에 둔 웨딩플래너 맥스(장 피에르 바크리)입니다. 17세기 고성에서의 거창한 결혼식을 준비 중이지요. 하지만 준비 단계서부터 유달리 삐거덕거리고 손발이 전혀 안 맞는 직원들로 인해 돌발 사고가 계속되지요.

배종옥 | 예민한 클라이언트인 신랑 피에르(벤자민 라베른헤)는 이런저런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늘어놓고, 직원이자 내연관계인 조시안(수잔 클레망)은 이혼을 미루고 있는 맥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신용관 | ‘세라비’는 코미디영화의 몇몇 전형 중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갖가지 실수 연발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대타로 급하게 섭외한 밴드의 보컬 제임스(질 를르슈)와 맥스 회사의 매니저 아델(아이 하이다라)은 만나면 서로 으르렁대고, 맥스의 처남이자 이벤트 아르바이트 직원인 줄리앙(빈센트 매케인)은 결혼식 신부(주디스 쳄라)가 한때 좋아했던 옛 직장 동료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벤트 진행은 영 뒷전입니다.

배종옥 | 맥스를 둘러싼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가는 거지요. 촬영을 맡은 포토그래퍼 기(장 폴 루브)는 사진보다 파티 음식에만 관심을 갖고, 정신없이 바쁜 맥스 앞에 신랑의 엄마까지 나타나 파티 때 틀 노래까지 간섭합니다.

신용관 |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맞추면서 엉망진창인 직원들의 뒤치다꺼리도 해야 하는 맥스는 동분서주하지요. 지시와 요구사항만 던지는 상사, 일단 열심인 척만 하는 직원, 윽박지름, 무사안일, 임기응변, 위기대처, 갑질, 먹이사슬 등 영화에는 현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조직생활의 여러 속성들이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묘사됩니다.

배종옥 | 이 영화의 미덕은 무책임하고 프로의식 없으며 성격적 하자 많은 인물들에게서 사랑스러움과 공감을 끌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결함투성이인 인물들을 조롱하지 않고, 이들을 슬그머니 껴안는 시선이 이 영화를 그럴싸한 캐릭터 코미디로 만들고 있지요.

신용관 | 맞아요. 주인공 맥스와 신랑 피에르는 계획과 그 정확한 실천을 매우 중시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에게 실수란 무능력과 동일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을 질책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둘을 제외한 다른 모든 캐릭터는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수를 통해 ‘인생은 살 만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들이라는 점이지요.

배종옥 | 그래서도 ‘세라비’는 폭소를 자아내는 코미디라기보다 만면에 미소를 띠게 만드는 코미디인 듯해요.

신용관 | 이 지점에서 영화의 원제 ‘Le sens de la fete’를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축제의 센스’쯤 되는데, ‘sens’는 우리가 ‘유머감각’이라 말할 때의 그 감각에 가깝습니다. 보통 프랑스에서 누군가가 ‘sens de la fete’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파티에서 축하하는지를 잘 아는, 굉장히 흥이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네요.

배종옥 | 제목을 원용하면, 이 영화는 ‘파티 센스’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렇듯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파티 센스라는 것이 과연 무얼 뜻하는가를 묻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신용관 | 감독은 개봉 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리 테러 이후 웃음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2015년에 일어난 파리 테러로 프랑스 전역이 충격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기운 차리고 다시 일어서서 원래의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데에 일조를 하고 싶었다는 얘기지요.

배종옥 | 이 영화는 소통과 대화, 언어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외골수 줄리앙은 끊임없이 다른 이들의 문법 실수를 교정하려 들지요. 프랑스에서 돈을 벌면서 스리랑카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캐릭터들도 나오고. 하지만 이들은 이벤트가 난장판이 될 위기의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해결사’ 역할을 해냅니다.

신용관 | 이 영화를 보고 찰리 채플린이 남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이 떠오른다는 평도 있었습니다만.

배종옥 | 글쎄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네요.

신용관 | 프랑스 현지에서는 큰 흥행을 거뒀는데요,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참패를 면치 못했을까요?

배종옥 | 프랑스식 유머가 안 먹혔을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한국인들은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보다는 박장대소를 원하는 경향이 짙은 듯해요. 강렬한 웃음을 선호하는 거지요. 파티의 혼란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 주인공 맥스가 별거 중인 부인의 전화를 받잖아요. 부인이 “이혼하자. 사실 남자가 있다”고 말하자 맥스가 “그래… 근데 언제서부터?”라고 되묻지요. 난 그런 대사가 너무 웃기더라고요. 한데 극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 대목에서 웃지 않더군요.(웃음)

신용관 | 하하, 저는 “설마 내가 아는 놈은 아니겠지?”라고 반문하는 대목에서 웃음이 터졌는데.

배종옥 | 단기간의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생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아주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 거 같아요. 하지만 ‘세라비’에서 잘 그려졌듯 뭔가 안 풀리면 또 안 풀린 대로 생은 지속되는 거지요.

신용관 | 안달복달,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말이지요.

배종옥 | 맞아요. ‘그런 게 인생(C’est la vie)’ 아닌가요? 이 영화에서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여러 실수들이 오히려 사랑과 연애를 낳고, 흥겨움을 자아내듯이 말이에요.

신용관 | 하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프랭키 밸리의 명곡 ‘Can’t Take My Eyes Off You’(1967)는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더군요. 제 별점은 ★★★. 한 줄 정리는 “혼돈 끝에 사랑이라… 부럽군.”

배종옥 | 저는 ★★★★. “오랜만에 한없이 유쾌했다.”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배종옥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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