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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20호] 2018.08.13

팝컬처 축제 ‘코믹콘 서울 2018’

좀비, 스파이더맨, 손오공이 만나면…

김효정  기자 

▲ ‘코믹콘 서울 2018’ 행사장에서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로 분장한 관람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휴가철도 절정에 달한 지난 8월 3일 금요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홀 1층에 1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연인, 친구와 함께 온 10~30대 젊은 한국인 관람객이 대다수였지만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 외국인 관람객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더러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를 꼭 닮은 분장을 하고 온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행사는 ‘코믹콘(Comic Con) 서울 2018’, 팝컬처(Pop Culture·대중문화) 매니아들의 축제다. 8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열린 행사에 4만8000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코믹콘은 미국 서부의 해안도시 샌디에이고에서 처음 시작한 세계 최대의 팝컬처 전시회다. 지금은 전 세계 22개국에서 열리는데 특히 샌디에이고와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코믹콘이 유명하다. 매년 7월에 열리는 샌디에이고 코믹콘에는 팝컬처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스타들이 대거 참석한다. 여기에서 처음 공개되는 영화, 드라마 영상도 있어 코믹콘 티켓 예매 경쟁률도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처음 코믹콘 행사가 시작됐다. 마블스튜디오의 수퍼히어로 영화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흥행 수익을 올리는 국가가 한국이고 게임과 영화 시장 규모로는 열 손가락 안에 가뿐히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늦게 도입된 편이다. 코믹콘 행사 같은 팝컬처 전시회가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배경 때문이었을 텐데 실제로 지난해 코믹콘에는 외국인 관람객 수가 한국인 관람객 수에 비견될 정도였다.
   
   올해 코믹콘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코믹콘이 개최되는 전시홀의 크기도 훨씬 커졌다. 내국인 관람객 수도 확 늘었다. 무엇보다 나름의 관람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팝컬처 매니아가 많았다. 코믹콘 행사에 대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오는 관람객이 훨씬 많아 보였다. 이런 사실은 단지 코믹콘 행사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규모의 팝컬처 시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한데 모여 즐길 만한 기회를 갖지 못했던, 한국 팝컬처의 빈약한 터전이 이제서야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스파이더맨 분장을 하고 코믹콘을 찾은 관람객이 셀카를 찍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실제로 이번 코믹콘 행사장에는 문화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과 학교, 업계에서 행사를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행사장을 세 바퀴 넘게 돌면서 메모를 하던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기업과 소비자가 얽혀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는 코믹콘 행사장은 한국 팝컬처의 현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연차를 내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코믹콘 행사장은 다른 전시 행사장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각종 캐릭터 분장을 한 사람들이다. 가장 인기가 있는 분장은 마블과 DC의 수퍼히어로. 조금씩 모습이 다른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 완벽한 의상을 차려입고 수준 높은 분장을 한 사람들은 쏟아지는 사진촬영 요청에 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자신을 ‘딜런’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36살 남성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라쿤을 그대로 흉내 내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원래 제가 이 캐릭터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이런 행사가 있으면 제가 손수 만든 인형탈과 의상을 입고 나오는데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해져요. 얼마 전 ‘어벤져스 3’가 흥행하면서 캐릭터 인지도가 올라가서 그런지 오늘 유독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묻네요.”
   
   21살 대학생 오용성씨는 ‘딜런’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는 집에서 가져온 고무장갑에 각각 다른 색깔의 캔디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손에 끼고 있었다. 얼굴과 목에는 보라색 물감을 잔뜩 칠해뒀는데 누가 봐도 직접 거울을 보며 한 모양새라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 마블의 악당 ‘타노스’입니다. 영화에서처럼 갑옷을 쓰고 금속장갑을 끼고 오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렇게 못 했어요. 동네 슈퍼에서 산 캔디와 고무장갑으로 어떻게든 흉내를 냈지요.”
   
   굳이 분장을 해가면서까지 행사장을 찾은 이유는 뭘까. “저는 이 행사장의 거의 모든 콘텐츠를 좋아해요. 만화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그런 저에게 코믹콘은 축제 같은 행사입니다. 혼자서라도 즐겁게 즐기기 위해서 조금 부끄럽지만 분장을 해봤어요.”
   
   ‘즐기기 위해 왔다’는 건 코믹콘 모든 관람객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자세다. 21살 대학생 이종욱씨는 행사장에 들어선 지 한 시간 만에 집에 있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세수할 때 쓰는 폼클렌징 하나만 사서 코엑스로 와줄 수 있어?” 갑자기 세수할 일이 생긴 것은 그가 코믹콘 행사장에서 도전해본 분장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를 전문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 AMC에서 세운 부스에서는 좀비를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피어 더 워킹 데드’를 홍보하는 영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AMC 코리아 측은 “매니아층에서 인기가 높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코믹콘은 좋은 홍보 기회”라면서 “드라마도 홍보하고 코믹콘을 즐기러 온 관람객들의 흥도 돋울 겸 서경대 미용예술대학의 도움을 받아 좀비 특수분장을 체험해볼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분장실에서는 좀비 분장을 한 스태프들이 관람객의 분장을 돕고 있었다. 이종욱씨와 친구 황성우씨가 분장실에 앉아 얼굴에 화장품을 펴 바르고 있던 것도 좀비 분장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좀비 드라마를 원래 좋아하는 편인데 제가 직접 좀비가 돼볼 수 있다니 신나요.” 이종욱씨는 코믹콘 행사장에 있는 내내 좀비 분장을 한 채로 다닐 거라고 얘기했다. 처음에는 낯선 좀비 분장에 부끄러워하던 친구 황씨도 사진을 찍어볼 수 있게 마련된 세트 앞에서 적극적인 포즈를 취했다.
   
   
▲ 갑자기 벌어진 ‘스타워즈’의 악당과 어린이 관람객의 광선검 싸움에 이목이 쏠렸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코믹콘을 즐기는 법
   
   코믹콘 행사장에서는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메인 무대에서는 할리우드 스타의 팬미팅이나 유명 성우들의 시연회, 아티스트의 간담회 같은 것이 계속 열린다. 다른 나라의 코믹콘에서도 그렇듯이 코믹콘 서울에도 팝컬처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할리우드 스타가 방문해 2박3일 내내 팬들과의 만남을 갖곤 한다. 올해 코믹콘을 찾은 스타는 에즈라 밀러와 마이클 루커다. 에즈라 밀러는 DC 영화의 수퍼히어로 ‘플래쉬’ 역할과 ‘신비한 동물사전’의 ‘크레덴스’ 역할로 팝컬처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가장 핫한 20대 스타다. 마이클 루커는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 같은 조연 ‘욘두’ 역할로 전 세계적 인기를 끈 베테랑 배우다.
   
   원래 코믹콘 서울 이튿날부터 등장할 예정이었던 마이클 루커는 코믹콘 개막행사에 깜짝 등장해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마이클 루커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 팬들의 손을 잡기 시작하자 행사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천 명의 관람객이 메인 무대로 몰려와 사진을 찍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무대 왼쪽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긴 줄로 늘어서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4살 박희은씨는 100송이의 장미꽃 다발을 들고 코믹콘 개장 시간부터 줄을 서 있었다. 에즈라 밀러와 사진을 찍을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코믹콘에서는 부스 안에 들어가 스타와 일대일로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된 티켓을 판매했는데 박씨가 이 티켓을 구매해온 것이다.
   
   “티켓 예매와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3년 전부터 에즈라 밀러의 팬을 자처해왔는데 바로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떨려요. 100송이의 장미꽃을 들고 에즈라 밀러에게 프러포즈 하는 자세를 취할 예정이에요.” 박씨는 이날 하루를 온종일 에즈라 밀러를 위해 쓰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코믹콘을 관람할 예정이라고 했다. 에즈라 밀러는 DC코믹스의 영화판에 출연했지만 자신은 DC의 라이벌 마블스튜디오의 영화를 좋아한다면서 “오늘은 DC 팬, 내일은 마블 팬으로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 좀비 분장을 받고 있는 외국인 관람객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팬들의 후기를 보면 에즈라 밀러의 ‘사진 찍기’ 이벤트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친밀하게 진행됐다. 얼굴을 맞대고 사진을 찍어주고, 포옹을 서슴지 않고, 팬들이 원하는 자세와 포즈를 모두 취해준 할리우드 스타 덕분에 스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코믹콘 행사장 전체가 들썩거리곤 했다.
   
   관심이 있는 메인 무대 행사가 끝나면 코믹콘 행사장을 즐길 차례다. 메인 무대를 기점으로 오른쪽은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와 피규어 회사들이 각각의 부스를 만들어 팬들을 유인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늘어선 부스 중 하나가 게임회사 넥슨이 마련한 것이다. 넥슨은 곧 출시될 모바일 게임 ‘마블 배틀라인’을 코믹콘에서 최초로 공개하며 시연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모바일 게임도, 마블 캐릭터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십 분 줄을 서 기다리느라 주변까지 북적일 정도였다. 넥슨 측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코믹콘 같은 기회가 많은 편은 아니라 업체로서도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면서 “좋은 홍보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매니아 취향의 콘텐츠를 갖고 있는 회사라면 코믹콘은 훌륭한 기회의 장이다. 코믹콘 행사장 입구 부근에서 “정의롭고 당당한 덕질을 위해” “일하는 이유=덕질하려고” 같은 유쾌한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홍보하던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스타트업 라프텔 직원들의 생각이다. ‘덕질’이란 영화·만화·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 매니아를 의미하는 ‘덕후’에 행동을 뜻하는 접미어 ‘질’을 붙인 것으로 ‘신나는 취미생활’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동안 애니메이션,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은 대개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서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곤 했다. 라프텔은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처럼 한곳에서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다. 현재 회원 수만 35만명에 달하지만 애니메이션 매니아 인구를 생각해보면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라프텔 측의 설명이다.
   
   “예전처럼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숨길 만한 취미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청계천 인근 세운상가에 가서 불법 복제된 비디오를 보면서 ‘덕후의 꿈’을 키웠겠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당당하게 취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 라프텔에 덕질을 즐기고자 하는 코믹콘 참가자들은 모두 잠재고객인 셈입니다.” 강한빛 라프텔 마케팅 매니저의 설명이다.
   
   
▲ 좀비 분장을 하고 포즈를 취한 관람객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외국인도 지방서도
   
   각종 피규어가 즐비하게 전시된 오른쪽 행사장의 반대편에는 팝컬처 관련 서적을 파는 부스, 자신만의 작품을 판매하는 아티스트들의 공간, 온라인 게임을 직접 해보고 즐길 수 있는 게임존 등이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번 코믹콘 서울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래픽노블 작가 그렉 박이 참여해 팬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국계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은 그렉 박은 수퍼히어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마블과 DC, 두 회사를 오가며 연이은 히트작을 그려내는 작가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 중에는 ‘아마데우스 조’라는 한국계 수퍼히어로도 있다. 설정상 ‘아마데우스 조’의 어머니로 나오는 ‘헬렌 조’가 영화 ‘어벤져스 2’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 배우인 수현이 헬렌 조 역할을 맡았다.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가 생소하게 느껴질 무렵부터 한국에 그래픽노블 작품을 출간해온 시공사는 아예 코믹콘에서만 파는 한정판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픽노블은 미국식 만화 장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텍스트가 많고 내용의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상당히 높은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시공사는 마블, DC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120종의 서적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시공사 측에서는 “코믹콘에서 판매되는 책의 매출액만 해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무엇보다 팬들에게 시공사의 책을 더 알릴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데 모여 있는 외국인 가족 관람객들 사이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코믹콘 행사장에 입장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천안에서 올라왔다는 젊은 관람객들은 모처럼 자신의 취미를 마음껏 즐길 기회에 한껏 들떠 있었다. 삼성SDI 자원봉사자단의 도움을 받아 상경한 천안 휴브릿지주간보호센터 소속 장애인들이다. 뇌병변장애 1급으로 거동이 불편한 23살 남성은 평소에 ‘소드 아트 온라인’이라는 일본 만화·소설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는 “좋아하는 작품의 피규어가 있으면 사고 싶다”며 온몸을 들썩거릴 정도로 들뜬 모습이었다. 김학일 천안 휴브릿지주간보호센터 센터장은 “장애인들도 대중문화 콘텐츠를 좋아하는데 막상 참가해 즐길 만한 행사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누구나 와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행사장을 보니 분위기만으로도 벌써 즐거워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관람객이 만화 캐릭터 피규어를 사들고, 어린이가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쓰고, 외국인 가족들이 좀비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팝컬처 축제 코믹콘은 매년 8월 초 올해와 같은 모습으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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