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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20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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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뮌헨 바덴바덴 하이덴하임

오페라 애호가들의 여름 천국을 찾아

김기철  조선일보 논설위원 

▲ 지난 7월 8일 뮌헨 막스 요제프 광장서 열린 ‘모두를 위한 오페라(Opera for all)’. 바이에른 오페라극장 안에서 올린 바그너 악극 ‘파르지팔’을 광장 무대 스크린으로 생중계했다.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고 스타 성악가 요나스 카우프만, 르네 파페 등이 출연한 올 페스티벌 화제작이다. 야외 중계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photo Hannes Magerstaed/BMS
BMW와 FC 바이에른 뮌헨, 옥토버페스트, 이 셋은 뮌헨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하지만 뮌헨은 나에게 ‘오페라의 도시’다. 마리엔느 시청 광장을 지나 막스 요제프 광장으로 들어가는 모퉁이를 돌 때쯤 가슴이 설렌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극장은 그리스 신전(神殿) 같다. 둥근 기둥 8개가 떠받치는 황금색 지붕이 붉게 물드는 석양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165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가 자리한 이 극장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라인의 황금’ ‘발퀴레’ 등 바그너 대표작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2편이 초연됐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게오르그 솔티, 볼프강 자발리쉬, 주빈 메타 같은 거장들이 음악감독이나 지휘자로 거쳐갔다. 매년 400회 넘는 오페라·발레 공연이 열리고 관객 60만명이 찾는다. 독일, 아니 유럽 최고 수준의 오페라극장 대열에 명함을 내밀 만하다.
   
   
▲ 바이에른 오페라 ‘일 트리티코’ 중 ‘수녀 안젤리카’. 소프라노 에르모넬라 야호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다. photo Wilfrid Hoesl

▲ 바이에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로 나선 알렉스 에스포지토와, 마르첼리나 역의 안네 소피 폰 오터. photo Wilfrid Hoesl

   키릴 페트렌코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뮌헨이 각별한 이유는 매년 6월 하순부터 7월 말까지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 때문이다. 정규 시즌에 올린 작품 중에서 신작(新作)이나 화제작을 가려뽑아 호화 캐스팅으로 선보인다. 뮌헨에 살지 않는 이방인도 바이에른 오페라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1875년 시작됐으니 143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올해 페스티벌(6월 24일~7월 31일)엔 ‘파르지팔’ ‘일 트리티코’ ’피가로의 결혼’ ‘오를란도 팔라디노’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 등 올 시즌 신작 6편과 ‘토스카’ ‘라 트라비아타’ ‘사랑의 묘약’ ‘아라벨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 기존 레퍼토리 5편, 그리고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이 올랐다.
   
   7월 16일과 17일 이틀간 푸치니 ‘일 트리티코’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을 차례로 봤다. ‘일 트리티코’는 이 극장 음악감독인 키릴 페트렌코(46)가 지휘하는 신작인 데다 테너 이용훈이 주역으로 나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점찍은 작품이다. 페트렌코는 세계 클래식계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의 인물이다. 2013년부터 바이에른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있는 데다 2015년 사이먼 래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내년 시즌부터 베를린 필을 이끌 페트렌코의 바이에른 오페라 음악감독 임기는 2020~2021년 시즌까지다. 당분간 두 곳을 오가며 오페라와 심포니를 지휘하게 된다.
   
   푸치니가 작곡한 단막 오페라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를 묶은 ‘일 트리티코’는 한꺼번에 올리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어린 자식을 잃은 부부의 절망과 불륜, 살인을 다룬 ‘외투’는 음침하고, 수녀원에 강제로 끌려온 젊은 여성이 제 아기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자살하는 ‘수녀 안젤리카’도 어둡다. 돈 많은 노인이 죽으면서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기자 친족들이 유산 쟁탈전에 나서는 ‘잔니 스키키’도 희극 같지만 복잡한 작품이다. 네덜란드 신예 여성 연출가 로테 드 비어와 무대디자이너 베른하르트 함머는 죽음을 공통점으로 삼은 세 작품을 ‘터널’형 무대에 올려 삶과 죽음이 어우러지는 통로로 활용했다. ‘외투’의 피날레 살인은 장례식 행렬이 들어오는 ‘수녀 안젤리카’와 겹치며 작품 전환이 이뤄진다.
   
   이용훈의 루이지는 과감하고 열정적이었다. 객석(2101석) 뒤쪽까지 깊숙이 꽂히는 그의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격정적이었다. 조르제타와의 불륜을 알아챈 남편 미켈레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기까지 5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공연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용훈의 공연을 뮌헨에서 본 게 세 번째다. ‘일 트로바트레’ 만리코와 ‘카르멘’ 돈 호세를 부른 그에게 뮌헨 관객들이 보내는 신뢰는 탄탄했다. ‘수녀 안젤리카’ 주연을 노래한 알바니아 출신 소프라노 에르모넬라 야호의 온몸을 던진 연기도 볼 만했다.
   
   크리스토프 로이가 연출한 ‘피가로의 결혼’은 인형극을 끌어들여 재미를 보탰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커튼 중앙을 차지한 앙증맞은 무대에서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 수잔나를 호시탐탐 엿보는 알마비바 백작 인형이 귀엽게 움직였다. 그러다 피가로 역 알렉스 에스포지토가 인형극 무대에 얼굴을 들이밀며 오페라 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알마비바 백작으로 예고된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대신 바리톤 마르쿠스 아이헤가 나와 당황했지만 갑작스러운 캐스팅 교체는 종종 있는 일이다. 알렉스 에스포지토와 백작부인 역 페데리카 롬바르디, 수잔나 역 올가 쿨친스카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연주였다. 마르첼리나 역에 스웨덴 유명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가 나서 깜짝 놀랐다. 백작부인과 맞먹는 카리스마를 과시하며 힘을 보탰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최고 화제작은 역시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이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올해 ‘반지’를 건너뛰면서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뮌헨 ‘반지’가 사실상 이를 대체했다. 한국에서도 페트렌코의 ‘반지’를 보러간다는 애호가들을 여럿 만났다. 나도 시도해볼까 했으나, ‘반지’ 시리즈 하나에 일주일을 바치기엔 휴가가 짧았다. 폐막작으로 올린 ‘파르지팔’도 페트렌코 지휘에 요나스 카우프만, 르네 파페, 니나 스템 같은 스타들이 나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바이에른 오페라 결산에 따르면, 올 페스티벌은 오페라와 발레, 콘서트 등 70회 공연에 98% 넘는 티켓판매율을 기록했다.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표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 바덴바덴 축제의 칠레아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주역 소프라노 타티아나 세르얀(가운데)과 에카테리나 세멘축(오른쪽). photo ANDREA KREMPER

   이색적인 古城 오페라
   
   하이덴하임은 독일 남부 울름 근처의 인구 5만도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낮은 언덕에 자리 잡은 고성(古城) 헬렌슈타인이 이 도시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독일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 소도시에서 헬렌슈타인성을 무대 삼아 하이덴하임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1964년부터 시작해 올해가 54회째였다. 올해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와 ‘롬바르디아인’을 올렸다. 독일 뉘른베르크 극장 소속 가수로 활약하는 바리톤 양준모(연세대 교수)가 ‘나부코’ 주연이었다. 페스티벌 음악감독인 마르쿠스 보쉬가 지휘하는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가 연주를 맡았다. 한쪽 벽이 허물어진 고성(古城)에서 달빛 아래 선선한 바람을 맞아가며 오페라를 보는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860석 아담한 공간에서 마이크나 스피커를 쓰지 않고 자연 음향으로 올린 오페라는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유명한 ‘나부코’는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간 아시리아와 이스라엘 백성 간의 갈등, 아시리아왕 나부코와 그의 수양딸 아비가엘레 간의 갈등, 이스라엘 청년 이스마엘레와 나부코 딸 페니나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무대를 현대로 옮기면서 오페라의 전개를 뒤바꾼 연출의 과도한 개입이 낯설었다.
   
   나부코는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퇴역군인이었다. 무대 위 LCD 화면에선 시리아 폭격을 중계하는 뉴스 화면이 잇달아 나왔다. 나부코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이스마엘레를 칼로 찔러 죽이는 결말이라니, 원작을 지나치게 비틀어 납득하기 어려웠다. 양준모의 나부코만 제 실력을 발휘했다. 관객들도 그에게 박수를 몰아줬다. 이튿날 콘서트홀 겸 다목적홀로 쓰이는 헬렌슈타인성 아래 콩그레스 첸트룸홀에서 열린 ‘롬바르디아인’은 야외 공연 ‘나부코’보다는 한결 안정된 연주였다. 하지만 다목적용으로 설계된 공연장 한계 때문인지 지나치게 자주 막을 여닫아 집중력을 흐트렸다. ‘롬바르디아인’ 역시 원작 스토리를 따라가기 힘들 만큼 과도한 연출이 부자연스러웠다.
   
   
▲ 지난 7월 21일 바덴바덴 축제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photo Manolo Press/Michael Bode

   온천 휴양지 바덴바덴의 여름 축제
   
   바덴바덴은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결정한 IOC 총회가 열린 도시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고급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바덴바덴은 수준 높은 여름 페스티벌(7월 7~23일)로도 음악 애호가들을 손짓한다.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2500석 오페라극장은 콘서트홀로도 뛰어난 음향을 자랑한다. 최근 들어 페스티벌 피날레는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이끄는 마린스키극장이 맡고 있다. 작년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게르기에프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쇼팽 협주곡 1번, 2번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올해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그의 남편인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가 함께 나서는 칠레아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가 주목을 끌어 일찌감치 매진됐다. 잔뜩 기대했는데 공연 하루 전인 7월 19일 새벽, 극장에서 보낸 긴급 이메일을 받았다. 네트렙코 부부가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 출연할 수 없게 됐다는 통지였다. 이번 여행의 후반 하이라이트로 마음먹은 공연인데 펑크가 났다. 바덴바덴극장은 마린스키극장에 자주 서는 소프라노 타티아나 세르얀이 대타로 나선다고 알려줬다.
   
   하이덴하임에서 바덴바덴으로 가는 아우토반 A6와 A5는 ‘속도 무제한’이란 슬로건이 무색하게 곳곳에서 막혔다. 공연 시간 직전에 겨우 도착했지만 이번엔 에어비앤비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늑장을 부렸다. 1막 후반에야 들어가 3층 꼭대기 입석으로 안내를 받았다. 세르얀의 연주는 훌륭했다. 처음엔 소리가 낮고 무거워서 메조소프라노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공연 하루 전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훌륭했다. 게르기에프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도 흠잡을 데 없는 연주를 들려줬다. 하지만 네트렙코를 보러 한국에서 바덴바덴까지 찾아온 애호가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다음날 온천 휴양지로 이름난 바덴바덴의 프리드리히 온천을 찾아 여독을 풀었다. 열몇 개나 되는 방을 드나들며 피로를 풀다 이른 저녁 무렵 페스티벌홀을 찾았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 출신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1번과 스크리아빈 협주곡은 전날의 실망을 말끔히 씻겨줬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트리포노프는 진지한 피아니스트답게 한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리아빈을 성실하게 소화했다. 게르기에프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까지 만족스러운 러시아 음악의 향연이었다. 다음날도 트리포노프는 게르기에프의 마린스키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스크리아빈 교향곡 3번과 무소르스키 ‘전람회의 그림’까지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시원하게 날려줬다.
   
   낮엔 온천욕으로 피로를 씻고 저녁엔 최고의 오페라와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바덴바덴이다. 바덴바덴은 ‘숲의 나라’ 독일이 자랑하는 ‘슈바르츠발트’(검은 숲)를 여행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한나절 둘러본 슈바르츠발트 산길에선 이끼와 시냇물 내음이 진하게 났다. 잘 왔다 싶었다. 바덴바덴에 다시 올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하이덴하임의 스타 양준모
   
   ‘리골레토’ 등 獨 명문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주역 맡아
   
▲ 하이덴하임 페스티벌서 ‘나부코’ 주역으로 나선 양준모. photo Oliver Vogel

   바리톤 양준모는 하이덴하임 페스티벌의 스타다. 올해 ‘나부코’에 앞서 ‘맥베스’(2015), ‘방황하는 네덜란드인’(2017) 주역으로 헬렌슈타인성(城)에 섰다. 독일 뤼벡 극장을 거쳐 2013년부터 뉘른베르크 극장 전속가수로 활동했다. 마침 이 극장 음악감독 마르쿠스 보쉬가 하이덴하임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고 있어 주역으로 발탁됐다.
   
   양준모의 유럽 무대 이름은 안토니오 양(Antonio Yang). 밀라노 유학 시절 선생님 조언에 따라 “부르기 편하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골랐다. 연세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2006년 뮌헨 ARD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올가을 시작하는 2018~2019시즌은 그의 오페라 경력에 분수령이 될 것 같다. 독일 명문(名門)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에 잇달아 주역으로 데뷔하기 때문이다. 당장 9월 ‘리골레토’ 주역으로 나서고 12월 마지막날 올리는 ‘라 트라비아타’에는 제르몽으로 나선다. ‘제르몽’에 더블캐스팅된 토마스 햄슨은 이 시대 최고 바리톤으로 꼽히는 스타다. 내년 2월엔 이 극장 음악감독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하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주역으로 선다. 틸레만은 바그너를 비롯한 독일 음악에 정통한 세계적 지휘자다.
   
   “기획사에만 기댈 수 없어서 직접 젬퍼 오페라에 연락해서 오디션을 봤다. 젬퍼 오페라 전속가수로 갈 뻔했다. 그러다 지난 1학기 연세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겸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젬퍼 오페라는 포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연락이 왔다. “너무 아깝다. 방학 때만 와서 출연해줄 수 있느냐.” 젬퍼 오페라 같은 명문 극장에서 일류 지휘자·연출가들이 만드는 오페라에 참여하는 건 성악가들의 꿈이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이 없을 것이다. 2013년 국내 초연한 ‘파르지팔’ 클링조르로 나섰던 양준모는 10월 국립오페라단 ‘헨젤과 그레텔’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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