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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그리팅맨’ 유영호 작가의 갈라파고스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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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21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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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그리팅맨’ 유영호 작가의 갈라파고스 일기

더 이상 ‘인간의 것’을 보태지 않기를…

글·사진 유영호  조각가 

▲ 푸에르토 아요라항의 어시장. 어부가 생선을 손질하며 걷어낸 내장을 얻기 위해 펠리컨들은 목을 빼고 기다리고, 부동의 차렷 자세를 한 바다사자는 어부의 관대한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풍경은 작은 어시장에서 매일 만나는 유쾌한 일상이다.
한반도에 재난 수준의 폭염이 덮친 시간, 나는 지구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를 찾았다. 갈라파고스의 본섬 산타크루즈의 아요라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비로소 현실에선 멀기만 했던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상상과는 달랐다. 크지 않은 항구의 길거리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넘쳤다.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외관에 꽤 신경을 쓴 레스토랑과 바, 호텔, 기념품 가게들이었다. 이미 섬은 웬만한 관광지의 편의시설은 다 갖춘 도시의 모습이었다. 다양한 관광 코스와 액티비티 상품을 선전하는 간판들은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섬은 이미 전력 생산 차질, 상하수도 문제, 교통과 숙박시설, 쓰레기 처리 등 각종 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내 눈에 섬들은 자연보전과 관광을 위한 개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공존이 말처럼 쉬운 길이 아님을 이곳에 도착한 순간 실감했다.
   
   지난 7월 말 나는 갈라파고스(Galapagos)에 다녀왔다. 지구 반대편 갈라파고스에 가게 된 이유는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그리팅맨-인사하는 사람’ 조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생태계의 보고 갈라파고스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싶어 여러 경로로 노력을 했다. 결국 그리팅맨은 갈라파고스에는 가지 못하고 아쉽지만 갈라파고스를 가기 위한 관문 도시 에콰도르 과야킬에 세우게 됐다. 하늘이 도왔는지 작품 설치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 오픈일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허락됐다. 나는 주저 없이 갈라파고스로 날아갔다.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섬들이 눈 안으로 들어오자 벅찬 흥분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나는 그리팅맨을 여기에 세우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인간에 의한 상처와 작위적 치장에 신음하는 이 섬과 이곳의 생명을 생각해보니 나 한 명이라도 더 이상 ‘인간의 것’을 보태지 않는 것이 갈라파고스를 살리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는 아직도 인간의 손때가 덜 탄 생명의 땅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도, 사람이 넘치는 길거리와 작은 어시장, 해변 등 어디에서도 이곳의 ‘진짜 주인’들을 만날 수 있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의 생명체들을 통해 지구가 베풀어준 경이로움과 자연에 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자연과 인간, 생명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8일간의 짧은 체류였기에 갈라파고스제도 전체를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느낀 감동의 작은 조각들을 틈틈이 썼던 일기를 통해 전한다.
   
   
   갈라파고스 일기 #1
   발트라공항(Isla Baltra)~산타크루즈섬(Isla Santa Cruz)~아요라항(Puerto Ayora)~다윈연구소~산타페섬(Isla Santa Fe)
   
   갈라파고스는 128개의 크고 작은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13개의 섬(10㎢ 이상 크기)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에 사람이 살도록 허락된 섬은 다섯 개(그중 한 군데는 군인들만 거주함)다. 본섬인 산타크루즈에는 다윈연구소가 세워져 있다. 다윈이 이곳의 동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했던 장소다. 특히 연구소 부지에서 갈라파고스 땅거북과 육지이구아나를 키우고 있어서 이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산타크루즈섬에서는 바다사자들과 바다이구아나, 펠리컨들이 사람과 어울려 살고 있다. 길거리 곳곳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강렬하고 신기한 경험이다. 둘째 날, 무인도인 산타페라는 섬에 투어를 다녀왔다.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수많은 바다사자와 바다이구아나, 바다거북, 갈라파고스의 상어들을 만났다. 이들이 이 섬의 주인이다. 주인의 초대 없이 무단 침입한 이방인으로서는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최대한 겸손해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만약 지구상에 인간이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로 경쟁자 없이 군림하는 왕이 없었다면 이 지구는 어땠을까? 약육강식의 투쟁적인 세계로 해석된 자연계가 아니라 생명의 본래 뜻대로 지구는 아름답지 않았을까?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설파한 생명의 진화론을 우리는 정복하고 군림하고 지배하는 인간의 관점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닐까? 인간이 만든 투쟁적이고 승자독식의 세계관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그 불행이 아(我)와 타(他)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곳에 오니 우리가 다른 종에게 저지르는 숱한 잘못들이 떠오른다. 앞으로 인간이 고스란히 되돌려받게 될 죄업을 생각하니 등이 서늘해졌다. 지금까지 멸절해간 수많은 생명 종들에 대한 사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만감이 가득하다.
   
   
01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다사자들. 거리낌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 섬의 ‘진짜 주인’들을 만나는 기쁨 하나만으로도 머나먼 갈라파고스에 온 충분한 이유가 된다.
02 플로레아나섬 해안에서 만난 바다이구아나. 모습은 징그럽고 무섭게 생겼지만 해초만 먹는 초식동물이며 성격은 무척 온순하고 착하다. 갈라파고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유종이다.
03 발트라공항 입국장으로 가는 길. ‘First in the World’라는 문구에서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것을 실감하게 된다.
04 산크리스토발 바퀘리소 모레노항의 마을 전경. 이른 아침 한적한 거리는 저녁이 되면 바와 레스토랑에 불이 켜지고 여행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떠들썩한 거리로 변모한다. 환경보존을 위해 엄격히 규제를 받으면서도 마을은 내륙의 도시를 닮아가고 있다.

   갈라파고스 일기 #2
   플로레아나섬(Isla Floreana)
   
   갈라파고스에 최초로 도착한 사람의 눈에 보인 갈라파고스는 어땠을까?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다양한 생명체가 우글거리는 섬에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보지 않았을까? 다윈이 종의 기원을 연구하기 훨씬 전, 이름도 없던 섬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이 섬은 어떤 의미였을까? 식량과 물을 보충하는 섬? 고립무원의 무인도? 아니면 대양을 정복하고 신대륙을 정복하는 전초기지?
   
   아마도 처음 도착한 인간들은 우주가 태양계와 지구를 잉태한 후 먼지보다도 작은 지구에서 탄생한, 어떤 지적·과학적 분류와 해석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원초의 생명을 보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가 최초의 발견자가 되어 지구와 생명의 참모습을 다시 그려보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인간 종에게 남은 마지막 양심이 아닐까?
   
   다윈이 바라본 눈도 최초의 눈이었을 것이다. 그 눈을 부릅뜨고 깊이 바라보고 관찰하다가 진화라는 아이디어에 도달했을 것이다. 다윈이 본 생명은 진화론의 가장 편협한 재해석이라 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모습만을 본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설명할 수도 없는 생명의 실상과 그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았을까? 그 최초의 눈을, 처음으로 세상을 본 사람의 눈을 다시 찾는 길만이 이 지구를, 인간이란 종이 망가뜨린 생명의 낙원을, 우주에서 활짝 핀 황홀한 꽃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다윈은 지구라는 우주의 보석이 만든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생명의 모습을 진화라고 읽었다. 하지만 앞으로만 발전하고 나가는 것은 도태되고 소멸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진화가 아니다! 무한히 적응하고 변화할 뿐이다. 그것이 생명이다!
   
   
▲ 무인도인 산타페섬의 바다사자들. 허가받은 가이드의 인솔로 제한된 장소만 통행할 수 있다. 이곳의 바다사자 무리들은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갈라파고스 일기 #3
   
   갈라파고스는 어떻게 보면 많은 것이 불편하다. 잘 개발되어온 휴양지는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인공적인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모든 시설이 육지에 비해 열악하고 관광지다 보니 물가도 비싸다. 물자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겪어야 할 불편함은, 인간이 만들고 버리는 쓰레기와 오염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규제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문명의 많은 이기에 젖은 우리가 이 정도의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이곳에서 루이비통, 샤넬을 찾지 않는다면, 갈라파고스는 천국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귀한 생명들이 인간과 거리낌 없이 함께하는 땅, 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갈라파고스의 특별함이라면 특별함이다. 바다사자들과 함께 수영하며, 바다거북과 펭귄과 물놀이하는 곳. 나아가 인간, 자연, 생명이 공존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우주이다.
   
   
   갈라파고스 일기 #4
   산크리스토발섬(Isla de San Cristobal)
   
   오늘은 산크리스토발섬 360도 일주 투어에 나섰다. 코스 중에 키커록(Kicker Rock-Roca de Leon Dormido-잠자는 사자바위라는 뜻)이라는 작은 바위섬에서 스노클링을 했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갈라파고스 망치상어들, 특히 1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들과 놀아주던 새끼 바다사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나와 같이 부유하던 바다거북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 해초와 산호들…. 그들과 함께한 순간은 시간이 멈춘 영원이었다. 그리고 작은 보트 가까이 지나가는 혹등고래들도 만났다. 좀처럼 보기 힘든 혹등고래의 우아한 날갯짓을 본 것은 행운의 여신이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리라. 눈물이 날 만큼의 아름다움을 또다시 훔친 하루였다.
   
   바다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그대로 두지 않고 침략자처럼 정복하려 한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본다. 물 위에서, 물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을 걷어올리고 오염시키고 죽이고 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포세이돈의 세계를 사악한 손으로 훼손하지 않았다면 좀 더 경이로운 세상을 다른 모든 생명들과 함께 누렸을 텐데. 내 삶의 위선과 무지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촉구하는 하루다.
   
   산크리스토발섬 어느 한구석, 입도(入島)가 허락된 산호 모래사장에서 해변에 덮인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을 보고 둔기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여기가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은 어떨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내년부터 갈라파고스는 비닐봉지부터 스티로폼 용기, 그리고 플라스틱 병까지 점차적으로 사용을 금지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플라스틱 제품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인간이 이룬 섬 안의 소박한 공동체는 완전히 카오스가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폭주해온 소비의 방식을, 삶의 패턴을 근원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비관적이다. 인간이 만들고 버리는 엄청난 쓰레기 생각에 암울해진 하루가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하게 빛나는 노을과 함께 저물어간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과 썩지도 않는 쓰레기더미를 급속도로 쌓아가는 문명이 불안하게 공존하고 있는 오늘의 역설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01 산타페섬의 선인장. 갈라파고스는 30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산섬이다. 그래서 화산암과 돌담 등 풍광이 제주도와 흡사하다.
02 로레아나섬에서 만난 갈라파고스거북. 맨 앞의 거북은 100살은 족히 넘었다고 한다.
03 유럽인 최초 플로레아나섬의 이민자로 기록된 독일인들이 원주민 석상을 본떠 만들었다.

   갈라파고스 일기 #5
   푼타 카롤라 해변(Playa Punta Carola)~티헤레타스 힐(Muelle Tijeretas)
   
   갈라파고스에 온 지 7일이 지났다. 내일이면 이 아름다운 천국과 이별하고 과야킬로 돌아가 그리팅맨 오픈식 준비를 해야 한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갈라파고스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갈라파고스에서의 일주일은 나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지구와 지구가 잉태한 모든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새록새록 느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바케리소 모레노항에서 멀지 않은 카롤라 해변과 티헤레타스의 작은 만에서 갈라파고스의 많은 친구들과 마지막 하루를 기념했다. 티헤레타스에서는 바다사자 가족들이 나에게 다가와 우리가 지구의 한가족임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특히 무리 중의 작고 귀여운 새끼 한 마리는 물 밑에서 불쑥 올라와 내 옆구리와 종아리를 툭툭 건들고, 가까이 다가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마주 보며 깊고 신비한 눈빛으로 곧 있을 헤어짐을 위로했다. 바다거북 두 마리는 한 시간 넘게 내 곁을 지키며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함께해주었다. 수많은 크고 작은 물고기 형제들도 다 함께 이별의 축배를 들었다. 갈라파고스의 특별한 친구들이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감동을 선물로 준 것같아 울컥해졌다.
   
   “언젠가 꼭 다시 올 거야! 그때까지 건강하고 더 맑아진 세상에서 만나자, 친구들아! 반가웠고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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