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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21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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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그는 진짜 창녀였나? 막달레나교회를 찾아서

글·사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복원된 막달레나의 얼굴 모습. 프로방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프로방스의 또 다른 상징이다.
가슴을 드러낸 반라(半裸)의 모습이다. 흙으로 범벅이 된 맨발에다 허리 아래까지 늘어진 금발의 긴 머리. 애절한 눈동자는 하늘을 응시한 채 열심히 기도 중이다. 눈물과 십자가는 기본. 배경은 주로 동굴인데 가끔씩 해골도 등장한다.
   
   유럽 교회에 가면 반드시 볼 수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묘사한 성화다. 중세교회에서 막달레나 이미지는 ‘회개하는 창녀’ 정도로 해석됐다. 성화 속 기도 장면은 창녀의 고해성사이자 회개이다. 보통 교회 구석 어딘가를 지키는 그림이다. 중세를 풍미한 무지와 무식 때문이겠지만, 막달레나 성화야말로 남성주도사회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사랑을 얘기하고 실천하는 교회지만, 여성을 악의 상징으로 만들어 반면교사로 삼았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예수가 던진 메시지는 간음한 여성에게 돌을 던지려던 모든 남성들에 대한 경고다. 하지만 막달레나 그림 앞에서 아직도 회개의 눈물을 흘릴 남성은 많지 않다. 죄를 뉘우치면서 기도하는 남성이 ‘창녀 막달레나’ 앞에서도 회개의 눈물이 솟아오를까.
   
   회개하는 막달레나는 창세기에 기록된 여성 원죄의 연장선에 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사과를 먹고, 아담에게까지 권한 용서할 수 없는 죄다. 이브 때문에 원죄를 뒤집어쓴 피해자가 아담이라 볼 수도 있다. 악(惡), 병(病), 어둠을 퍼뜨린 그리스 신화 속의 판도라가 그러하듯 남성보다 여성의 죄가 한층 더 크다는 시선은 오래전부터 견고했다. 어른만이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라도 막달레나 앞에만 서면 원죄의식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중세 남성주도사회에서의 사냥 대상은 마녀(魔女)일 뿐, 마남(魔男)이 아니다.
   
   “막달레나의 얼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금남(禁男)이 아니라 금녀(禁女)의 장소였지만, 지금은 여성에게도 문을 열고 있다. 예수가 가장 아꼈던 여성의 얼굴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개월 전 미식의 천국 프랑스 리옹(Lyon)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들은 얘기다. 옆 테이블의 마르세유 출신 40대 남성이 “외국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인만의 명소”라면서 이야기해준 곳이다. 프랑스 가톨릭 신자라면 평생 한 번은 반드시 찾는 “성지순례의 필수코스”라고 한다. 리옹에서 남쪽으로 350㎞ 떨어진 ‘산 막시망 막달레나 바실리카(Basilique Sainte-Marie-Madeleine of Saint-Maximin)’ 얘기다. 일명 막달레나교회로 불리는 곳이다. 프로방스(La Provence) 지방 남단에 위치한 비교적 큰 교회다.
   
   고속도로 7번을 타고 곧바로 내려갔다. 프랑스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130㎞다. 고속도로 노면의 질적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전 세계 톱에 들어가는 나라가 프랑스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마찰력이 약하고 비가 와도 빠르게 흡수된다. 고속으로 달릴수록 조용하고 아늑하다. 고속도로가 갖는 하이스피드의 맛과 멋을 만끽하면서 2시간 반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 막달레나교회의 전경. 13세기 말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낭만과 평화로 통하는 곳
   
   프로방스는 ‘낭만과 평화’로 통하는 곳이다. 영국 작가 피터 메일리의 소설 ‘프로방스에서의 1년’ 덕분이겠지만, 프로방스란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아름답고도 풍부하게 느껴진다. 소설 덕분에 포도밭으로 뒤덮인 언덕부터 상상되지만 계곡은 물론 산, 강, 바다, 평원, 심지어 동물공원 등 다채로운 환경으로 채워진 곳이 프로방스다. 지중해 특유의 연중 따뜻한 날씨에다 바로 옆 이탈리아와 마주한 복합문화 터전이기도 하다. 음식도 버터를 사용하는 프랑스 정통요리보다 올리브오일과 허브로 이뤄진 이탈리아 스타일이 주류다. 원래 사용하던 언어도 파리지앵이 절반 정도만 알아듣는다는, 스페인·라틴·이탈리아 말이 뒤섞인 사투리 ‘오크어(lenga d’Òc)’다. 정치적·지리적 이유만이 아니라 문화적·심리적 차원에서 볼 때도 ‘변방’ 맨 끝이 바로 프로방스다. 막달레나교회는 그 같은 프랑스의 변방을 지키는 무명(無名)의 성지다.
   
   시골 운동장 트랙을 수십 바퀴 돈 뒤에 볼 수 있는 10대 청소년의 숨소리나 땀, 아니 어깨나 다리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강하고 튼튼한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부드럽고도 순수하다. 성(聖)과 미(美)가 동시에 배어 있다. 속(俗)에 비해 성이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라, 성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이다. 막달레나교회를 본 첫인상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지중해의 푸른 하늘이 잘 어울리는, 상상 속 프로방스의 한 장면이 막달레나교회에 드리워 있다.
   
   막달레나교회는 인구 1만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 ‘봄(Baume)’의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역사로 따지자면, 필자가 지금까지 접했던 교회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포함될 만큼 역사가 오랜 교회다. 주마간산 지식이지만, 오래된 건축물의 연혁은 정문·창문·지붕·벽장식 등을 통해 추정해낼 수 있다. 그리스→로마→비잔틴→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로 이어지는 유럽 건축문화사 총론 정도만으로도 건축물 건립 시기를 알아낼 수 있다. 보통 여러 가지 양식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열심히 보면 나름대로의 기준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지중해 태양빛 아래서 만난 프로방스 막달레나교회는 필자의 그 같은 어설픈 지식을 넘어선 ‘태고의 건축물’로 와닿았다. 각을 지어 높게 쌓은 고딕양식이 주류이긴 하지만, 일체의 인위적 장식에서 자유로운 로마네스크양식의 냄새가 강하게 배어 있다. 13세기 말 건립된 중세교회라고 하지만, 고대교회의 원형을 상상케 만드는 ‘타임슬립’ 공간이다. 정면은 흙과 작은 벽돌로 쌓아올린 로마 스타일이지만, 그 어떤 고가의 장식물도 따라갈 수 없는 품과 격이 느껴진다.
   
   막달레나교회의 원래 이름에 들어있는 ‘산 막시망(Saint Maximin)’은 프로방스를 지키는 대표적인 수호성인이다. 막달레나교회 정문 바로 위에 들어선 나무조각상의 주인공이다. 막달레나와 함께 이스라엘에서 프랑스로 넘어왔다고 전해지는 성인으로, 죽을 때까지 막달레나 주변을 지켰다고 한다.
   
   
▲ 막달레나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 반지하로 생각보다 작은 규모다.

▲ 막달레나 동굴 속의 막달레나 해골.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방문객 모두가 만지려던 성(聖)의 상징이다.

   막달레나교회의 핵, 막달레나 동굴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높은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돌기둥 하나하나가 두껍고도 무겁다. 기둥이 크다는 것은 건축 방식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다. 오래된 교회의 특징이다. 창문도 없고, 큰 기둥에다, 내부공간이 비좁을수록 오래된 건축물이다. 교회 천장의 ‘아치볼트(Archivolt)’가 인상 깊다.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사방의 천장을 아치형으로 중앙에 집중시키는 고딕양식 특유의 건축법이다. 이슬람은 ‘하늘을 찌르는’ 고딕 스타일의 원조에 해당한다. 아치볼트도 이슬람 건축의 영향물이다. 기본은 이슬람 형식에서 차용했지만, 더 크고 더 높게 만들어진 것이 중세 가톨릭 교회다.
   
   막달레나교회는 바실리카(Basilique) 성지 중 하나다. 왕궁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바실리케에서 유래한 바실리카는 일반적으로는 가톨릭 성당의 원형에 해당하는 바실리카식(式) 성당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지만 공간적으로 크다는 의미와 함께, 역사상 교황이 와서 미사를 집전한 교회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서울 방문 당시 찾았던 명동성당도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했다는 점에서 바실리카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 명동성당도 곳곳에 막달레나 성화나 조각이 있다.
   
   ‘막달레나 동굴(La Crypte)’은 막달레나교회의 핵(核)이다. 동굴은 예수가 승천한 뒤 프로방스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막달레나의 집이다. 막달레나는 이곳에서 30년간 신과 예수에게 기도를 올리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동굴 안에는 막달레나의 뼈와 해골이 안치돼 있다. 원래 여성 출입을 금했지만, 1516년부터 모두에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당시 프로방스를 통치하던 프란시스 1세가 자신이 모시던 여왕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면서 여성에게도 개방됐다.
   
   10여개 계단을 따라 동굴 안으로 내려갔다. 등불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둡다. 가로 4.48m, 세로 4.25m 정도의 좁은 공간으로, 정면에 큰 철창이 있다. ‘막달레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철제문이다. 문이 완전히 열리는 것은 막달레나 축일인 7월 22일이나 특별한 날에 국한된다.
   
   철창 사이 막달레나의 ‘흔적’이 보인다. 1m 높이의 인간 상체 형상이 들어서 있다. 머리 부분은 황금틀과 함께 해골로 장식돼 있다. 뼈와 살을 모은 작은 병도 보인다. 대리석으로 된 2m 길이의 무덤이 막달레나의 황금 상체를 받쳐주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검게 변한 해골의 주인이 진짜 막달레나일까라는 의문이 인다. 동굴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은 그 같은 궁금증에 답하듯, 1974년 부검 결과를 공시해놓고 있다. 해골의 주인이 50대 여성에다 중동인 특유의 두상이라는 것이다. 어둡고 무섭게 느껴지는 무덤이지만, 종교적 열정을 가진 기독교인이 와보면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방문객이 필자를 포함해 전부 세 명에 불과했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하루종일 줄을 서야 만날 수 있던 성지가 막달레나 동굴이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막달레나 동굴이 전 세계의 관심을 끌던 시기가 ‘한순간’ 있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 덕분이다. 예수의 연인이었던 막달레나의 전설이 숨 쉬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막달레나 동굴은 ‘다빈치코드 투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필수 관광코스인 루브르박물관을 포함한 기존의 2~3일 코스가 다빈치 매니아를 위한
   
   1주일 이상 코스로 늘어나면서 막달레나 동굴이 관광객들로 미어터졌다.
   
   
▲ 막달레나 황금해골상 아래의 막달레나 대리석 무덤. 예수가 조롱을 당하며 십자가로 끌려가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성인 막달레나의 추락
   
   유럽 전체를 통틀어 막달레나 이름을 가진 교회는 수십여 군데에 이른다. 그러나 기원 후 1세기 이래 막달레나의 흔적을 기반으로 건립된 교회는 프로방스 막달레나교회가 유일하다. 사실 프로방스는 오래전부터 막달레나 전설이 살아 숨 쉬던 곳이다. 예수의 딸로 알려진 ‘블랙 마돈나’에 관한 얘기도 프로방스 전설 중 하나다. 프로방스에서는 막달레나를 창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없다. 예수의 12제자 이상으로 존경하고 흠모하는 성인이 프로방스에서 막달레나의 위상이다. 전설에 그치던 막달레나 동굴이 프랑스인 모두에게 알려진 것은 1279년이다. 나폴리 출신으로 프로방스를 통치하던 샤를르 2세(Charles 2nd)가 막달레나의 유골을 찾아내면서 성지 중의 성지로 변해갔다. 샤를르 2세가 프로방스 전설에 기초해 여기저기 무덤을 찾아 헤매던 중 성령의 힘으로 이곳을 발견해냈다고 한다. 즉시 교황은 샤를르 2세가 발굴한 막달레나 유골을 진짜라고 공인한다. 당시 유골을 발견한 장소를 중심으로 현재의 막달레나교회가 들어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원래 막달레나는 창녀나 죄인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예수 부활을 가장 먼저 지켜본, 신의 아들과 가장 가까운 여성이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예수와 연인관계였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인물이다. 예수가 자신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앞에 나타났던 인물이 막달레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이 선택한 특별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랬던 ‘성인’ 막달레나가 공식적으로 추락한 것은 591년이다.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인이 수없이 등장한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막달레나=한순간 회개하는 창녀’로 둔갑한다. 성경에 등장하지만, 원래 부잣집 딸로 예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면서 자신의 머리로 예수의 발을 닦아준 인물을 막달레나로 보고 이 여성이 이른바 ‘죄인(The Sinner)의 상징’으로 공표된다. 이 같은 해석을 내린 인물은 로마교황 그레고리(Gregory the Great)였다.
   
   정통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스스로 정통성을 보여주는 것과, 이단 반동을 만든 뒤 마음대로 짓밟으면서 그 반사이익으로 정통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스스로 이상적인 모델을 실천하고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인민·역사·민족이란 명분을 앞세워 대규모 숙청을 통해 ‘공포의 정통성’을 확립해나가는 방식이다. 당시 교황청은 막달레나를 부정하고 비난하고 악마로 몰아갈수록 스스로 면죄부를 받고 나아가 정통성을 확보했을 것이다. 사랑과 평화는 교회 성화들의 주된 목적이자 의미다. 반면 반라로 기도하는 막달레나 그림은 증오와 편견을 조장하는 중세교회 프로파간다의 대표적인 본보기다.
   
   이처럼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랜 기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창녀라는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썼다. 막달레나의 위상이 제대로 정립된 것은 1988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막달레나가 중요한 사도의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면서였다. 이어 2016년 6월 3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막달레나의 기념일을 축일로 격상시키는 교령을 발표하였다. 이 조치는 막달레나의 지위를 사도와 동급의 위치에 놓는 것으로 간주됐다.
   
   교회에서의 예의지만 안에 들어가면 촛불에 불을 붙여야 한다. 교회 전체를 찬양하는 촛불도 있지만,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성화 속 인물에게 다가가서 촛불을 붙이며 인사를 올린다. 유럽 교회를 돌아다니며 확인했지만, 가장 많은 촛불을 품은 성화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다. 항상 용서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머니 마리아의 역할이다. 의외로 예수에 바치는 촛불은 그렇게 많지 않다. 프로방스 교회에서 만난 막달레나 성화는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많은 촛불을 품고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버금가는 숫자의 촛불들이다. 교회 밖으로 나서 바로 앞 기념품 가게로 갔다. 해골 같은 막달레나 얼굴이 새겨진 기념품들이 즐비하다. 성스러운 아름다움이 안에서부터 배어나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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