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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3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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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미국 문화의 ‘아시안 붐’을 읽는 코드들

김효정  기자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영화 포스터
올여름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라는 제목의 영화다. 8월 15일 개봉해 8월 27일 현재 북미에서만 7928만달러(약 880억원)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출연자 모두가 아시아계 연기자로 이뤄져 있다는 점. 감독도 중국계 미국인인 존 추다. 대만계 배우 콘스탄스 우와 말레이시아계 배우 헨리 골딩이 주연을 맡고 한국계 켄 정이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의 제작비는 3000만달러.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매우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흥행세는 무척 거세 좀처럼 박스오피스 자리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성공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열광적인 호응이 뒷받침된 것이다. 한국의 인기 가수이자 방송인인 에릭남은 자신의 고향인 미국 애틀랜타의 한 극장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를 위해 전석 티켓을 구매해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배우들은 자신들의 영화에 이어 개봉하는 영화 ‘서치’의 전석 티켓을 구매해 소셜미디어에 인증하기도 했다. 한국계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은 ‘서치’에도 미셸 라, 조셉 리 같은 한국계 배우가 대거 등장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는 꽤 크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중국·한국계 배우 아콰피나가 지난 8월 10일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가 대거 등장한 것으로 유명한 ‘오션스 8’에도 출연했던 그는 “보통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나 가족으로 인한 비극’을 그리는 영화에 출연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다른 미국인이 그렇듯 “자신의 삶을 최대한 영위하려고 노력한다”며 “우리를 미국인이 아니라 하나의 피부색을 가진,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단일 집단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발언에는 그동안 미국과 유럽 같은 서구 사회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함축돼 있다. 방탄소년단이 아시아인으로서는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시아 음악은 변방의 것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스플린터’의 저널리스트 이샤 아란(Isha Aran)은 “2017년은 아시아 음악, 특히 K팝에 있어서 획기적인 한 해였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아시아계 미국인은 미국 문화의 이방인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인구조사를 담당하는 미국 센서스국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7%는 아시아계로 그 수는 2180만명에 달한다. 인구증가율로 보면 다른 인종을 월등히 앞선다. 백인 인구가 겨우 0.5%, 흑인 인구가 1.2% 증가할 동안 아시아계는 3%나 증가했다. 2011년부터 5년 동안 미국으로 이민온 아시아계 인구는 280만명으로 모든 이민자의 35%에 달할 정도다.
   
   지금은 주류 문화에 편입된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 추세를 보는 것 같지만, 다른 소수 인종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샤 아란은 스플린터의 기사를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은 일, 교육, 경제적 성공에 헌신적인 기성세대 아시아인으로부터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우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 미국 밖 아시아인들이 미국의 다른 주류 인종과 다름없이 자유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 사회는 여전히 ‘아시아인’에 대한 고루한 인식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 시장에서도 이런 인식은 잘 드러난다. 미국에서 신화처럼 여겨지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근 작품 ‘라스트 제다이’에는 아시아계 여성이 비중 큰 조연으로 등장한다. ‘로즈’라는 이름의 캐릭터는 그러나 좀처럼 실패할 것 같지 않았던 ‘스타워즈’ 영화의 흥행 참패를 기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관객들이 지적한 부분은 이 캐릭터가 미국 내에서 강요되다시피 하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지키려는 의무적인 장치로 쓰였지만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득 담겼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에서 로즈는 수다스럽고 덜렁거리며 키가 작고 뚱뚱하다. 사건을 잘 수습하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감정을 변화시킨다. 미국 대중문화 작품 속에는 아시아계 배우가 한 번쯤은 등장하지만 대개 로즈와 마찬가지 역할을 맡곤 했다. 그나마도 최근에 와서 이런 경향이 줄어든 것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권리 찾기’ 의식이 강해진 덕분이다.
   
   
   인종차별 조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아시안
   
   지난 7월 17일 시장조사업체 닐슨에서 아시아 문화와 아시아계 미국인의 영향력과 구매력 등을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미국 주류사회에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마이클 판, 라이언 히가 같은 유명 유튜브 스타뿐 아니라 스포츠 선수 중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은 빼놓을 수 없다. 닐슨은 올 2월에 있었던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타덤에 오른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동메달리스트 마이아 시부타니, 알렉스 시부타니 남매와 스노보드 금메달리스트 클로에 킴을 주목했다. 특히 클로에 킴은 요즘의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처럼 미국인과 한국인 모두의 정체성을 혼합해 가졌다고 분석했다.
   
   코트라 뉴욕무역관이 닐슨과 미국 센서스국의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의 영향력은 확실히 커지고 있다. 다른 인종에 비해 아시아계 미국인은 학력 수준이 높고 평균 소득도 많은 편이다. 백인 전체 가구의 연평균 소득이 8만6221달러(약 9580만원)인데 아시아계 미국인은 11만523달러(약 1억2280만원)에 달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집단의 구매력은 지난 17년 사이 250% 넘게 성장했다. 미국 전체 구매력의 6.8%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9870억달러(약 1100조원)에 달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양적인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이제 질적인 권리를 찾아나서는 움직임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룰 때에는 흑인·히스패닉 집단에 주로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CNN이 2015년 미국인을 대상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조사했을 때 흑인과 백인, 히스패닉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그 예 중 하나다. 지난해 미국 공영방송 네트워크인 NPR이 하버드대학과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시아인의 61%는 인종차별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볼 때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 문제는 더 이상 뒷전으로 미뤄둘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2~3년 전부터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룰 때에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사례가 꼭 등장했다. 2016년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백인을 위한 시상식이라는 비판이 미 전역에서 제기됐을 때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했던 것은 ‘존 조 출연시키기 놀이(#StarringJohnCho)’였다. 존 조는 미국의 유명 SF 시리즈 ‘스타트렉’에서 핵심 조연으로 등장하며 이름을 알린 할리우드 스타다. 미국 네티즌들은 백인 캐릭터인 제임스 본드, 캡틴 아메리카 등에 존 조의 얼굴을 합성하면서 ‘왜 백인만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나’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한국계 셰프들, 아시아를 담다
   
   이런 움직임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Korean Wave’라고 부르는 ‘한류’ 열풍이었다. 서구의 대중문화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 드라마, 한국 아이돌, 익숙한 듯 낯선 한식은 미국 대도시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힙스터 문화’의 일종이 됐다.
   
   당장 한식만 해도 그렇다. 서구의 요식업계에서 한식은 요즘 가장 유행하는 요리 중 하나다. 정통 프렌치, 이탈리안 요리를 하는 셰프라도 한식에 대해서 이해하고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아예 한식당을 차리는 셰프들도 있다. 미식 문화의 최첨단인 미국 뉴욕에서 이름을 알린 젊은 셰프 중 많은 수가 한국계이기도 하다. 이들은 한식을 기반으로 한 레스토랑을 연 셰프들이다.
   
   푸드칼럼니스트 이해림씨는 뉴욕에서 최근 각광받는 한국계 셰프들이 단순히 인종적인 문제로 한식당을 연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생계를 해결할 방편으로 세탁소나 한식당을 연 것이 아니라, 셰프의 요리로 한식의 정체성을 가지고 레스토랑을 연 것”이라는 얘기다. 이 셰프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한식을 베이스로 하지만 전통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현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림씨는 “질이 좋지 않은 액젓 대신 동남아 소스인 피시소스를 쓰는 한식당도 있다”고 말했다. 정체성은 한국 문화에 두지만 틀을 정해두고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계로서는 유일하게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베누’를 운영하는 코리 리 셰프는 아예 레스토랑 안에 장독대를 가져다 두고 공간을 꾸몄다. 그러나 그의 요리가 정통 한식에만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식, 중국식 나아가서는 태국과 베트남식으로도 보이는 요리는 다양성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노래 부르는 것은 당연”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며 한국 대중문화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 역시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예다. 방탄소년단의 외국 팬들은 종종 외국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노래 부를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던지곤 할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방탄소년단의 팬인 유튜버들은 “한국인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데 왜 영어 타령이야”라고 외친다. 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팬들 앞에서 방탄소년단은, 한층 더 한국적인 신곡 ‘IDOL’을 들고 돌아왔고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4일 만에 1억뷰를 기록했다.
   
▲ 지난 5월 20일 미국에서 열린 빌보드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을 기다리는 외국인 팬들. photo AP

   한식과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글로벌 대중문화’로서 아시아 문화가 미국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수범 인천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한류를 위시한 아시아 문화의 성공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범아시아인으로서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른 인종 문화에서 찾거나 아니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은 변방의 아시아인에 대한 묘사에서 억지로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 교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한류 콘텐츠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과 가족, 주변 인물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며 “한류 콘텐츠가 그 누구도 아닌 아시아계 미국인 그 자체로서 정체성을 갖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백인 사회에 동떨어진 소수자로서 눈치 보던 조상들과 달리 딱히 국적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이 백인도, 흑인도, 히스패닉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는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영화다. 흑인 배우가 주연을 맡아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블랙코미디를 선보이며 대호평을 받았던 영화 ‘겟 아웃’이나 최초의 흑인 수퍼히어로 영화 ‘블랙팬서’와 같은 맥락이다. 기존 미국 주류 사회가 아시아인을 다루는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젊은 아시아인의 여유 있는 로맨스를 보여주면서 아시아계 미국인들로부터 “우리 영화”라는 호평을 들으며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시작일 뿐이다. 아시아 문화에 대한 미국 주류 사회의 관심이 단순한 유행일 뿐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수범 교수는 “기존의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유행과는 좀 다르게 진행될 것 같다”고 해석했다. 미국 사회의 아시아 문화에 대한 변화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권리 찾기 운동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흥행, 한식의 유행,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다른 아시아 문화 요소의 성공으로도 이어질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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