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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28호]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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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7대 불가사의’의 최고봉 아르테미스 신전을 찾아서

글·사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서기 1세기 제작된 아르테미스 여신. 현존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상 가운데 가장 크다.
21개에 달하는 가슴, 몸 전체를 감싸는 사자·표범·기린·벌 문양, 머리 주변을 에워싼 박쥐와 둥근 광채, 흰 대리석의 몸매와 검은 대리석으로 장식된 얼굴과 팔….
   
   30여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접했던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이다. 풍만한 가슴이 증명하듯 대지의 여신,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라 불리는 입상이다. 그러나 신성(神聖)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기묘한 신비감은 묻어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우상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났다. 중세시대라면 종교재판에서 화형에 처해질 이단(異端)의 전형적인 모델로 와닿았다. 부정(不淨)이나 불순(不純), 나아가 부정(不正)한 존재로까지 비쳐진다. 분명한 것은, 워낙 특이한 모습의 여신이기에 한 번만 봐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후 아르테미스를 다시 만났던 것은 로마의 바티칸박물관에서다. 고대 그리스 전시관을 돌아다니다 온통 흰 대리석으로 꾸며진 아르테미스 입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검은 얼굴의 나폴리 아르테미스는 로마인이 만든 짝퉁 조각이었다. 원래 그리스인이 제작한 아르테미스는 흰색 대리석으로 통일돼 있다. 우상 파괴에 앞장선 가톨릭 총본산 한가운데 이단의 여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15세기 르네상스의 출발점으로 통한다. 부분적이지만, 바티칸은 피렌체보다 앞서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빠져들었다. 주인공은 가톨릭의 본산 교황청이 아니라 교황 개인이었다. 우상 아르테미스가 바티칸박물관에 들어선 이유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교황 개개인의 남다른 호기심 때문이었다. 바티칸박물관 전시물품 중 상당수는 종교와 무관한, 예술과 역사에 관심을 가진 교황들 개개인의 수집품에 해당한다. 큰 봉(棒)을 든 헤라클레스, 벌거벗은 비너스 조각상이 바티칸에 들어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터키 에페수스(Ephesus)에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10여년 전이다. 그리스 신화의 특징이지만, 신은 반드시 자신의 기반이 될 특별한 신전을 갖고 있다. 제우스의 올림푸스 신전, 아폴로의 델피(Delphi)처럼, 그리스 모든 신들은 자신만의 고유영토를 적어도 하나는 갖고 있다. 제우스나 아폴로 신전이 에게해와 지중해 곳곳에 넘치지만, 원조에 해당하는 곳은 하나다. 보통은 신의 출생지나 주된 활동 근거지가 원조 신전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스 신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조 신전에 가서 살펴야 한다.
   
   
▲ 검은 얼굴의 나폴리 아르테미스. 로마 바티칸박물관에 있다.

   인류 최고의 성지
   
   터키 동쪽 아시아 지방의 원래 지명은 아나톨리아(Anatolia)다. 아나톨리아인들은 에페수스가 아르테미스의 출생지라 믿었다. 아르테미스를 신으로 모시면서 신전을 건립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에 관한 얘기는 기원전 3000년 전인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역사적 무대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0세기 이후다. 아나톨리아가 그리스 식민지가 돼 그리스인들이 들어온 시기다. 아르테미스의 영광은 기원전 2세기 시돈 출신 시인 안티파테르(Antipater of Sidon)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자신의 시집에 아르테미스 신전을 세계 최고 명소라 예찬한다. 기원전 2세기, 당대의 ‘7대 불가사의’ 중 최고봉이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크기와 권위라는 측면에서, 2200여년 전 에페수스 아르테미스 신전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성지였다는 것이다.
   
   “마찻길로 이어진 웅장한 바빌론 성벽 위의 공중정원, 올림푸스산의 제우스 신전, 로데스(Rhodes)섬의 초대형 태양신 청동조각,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해 완성된 피라미드, 마우솔루스(Mausolus)의 거대한 무덤. 이 모든 것을 직접 보면서 여행을 다녔지만, 구름 위로 솟아난 아르테미스 신전은 다른 것들(나머지 6개 불가사의)의 위용을 한순간에 녹슬게 만드는 위대한 공간이다. 올림푸스 신전을 제외할 경우, (아르테미스 신전 위의) 태양이 그토록 크게 보이는 곳도 없다.”
   
   에페수스는 이미 예수가 탄생하기 전부터 번성한, 당시의 아테네와 로마에 필적할 만한 아나톨리아의 항구도시다. 서기 1세기 당시 인구가 22만명이나 됐다. 아나톨리아의 뉴욕 같은 도시가 바로 에페수스다. 에페수스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귀에 익은 ‘죄의 원천지’로 통하는 곳이기도 하다. 성경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바울의 핵심 선교지가 바로 에페수스다. 보통 ‘에베소’란 지명으로 등장한다. 더불어 아르테미스 여신도 ‘아데미’란 이름으로 성경 곳곳에 나타난다. 바울 당시는 물론 이후 기독교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우상과 사탄으로 들끓는 지옥행 대기실이 에베소이고 그 원흉이 아데미다.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에페수스) 사람들아, 에베소가 큰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사도행전 19장 35절)
   
▲ 신전 기둥 하나만 남긴 채 전부 사라진 아르테미스 신전. 기독교도가 조직적으로 파괴한 고대 우상의 성지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언급된 초대형 성지 아르테미스 신전.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에페수스로 향해야 한다. 현재의 행로는 보통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즈미르(Izmir)로 날아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에페수스로 직행하는 식이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출발해 전부 3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이다. 21세기 에페수스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로마 당시 만들어진 계획도시 에페수스에 있다.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고대도시로, 전체가 대리석 도보로 길게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초대형 원형경기장에서부터, 하드리아누스를 비롯한 황제들의 기념관, 미적 차원에서 헬레니즘 예술의 최고봉이라 불릴 만한 도서관, 부자들의 별장과 모자이크 장식품이 늘어선 초대형 도시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도시 에페수스에서 3㎞ 떨어진 내륙에 위치해 있다. 터키에서 에페수스는 셀주크(Selcuk)라 불린다. 셀주크 버스정류장에 내려 곧바로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향했다. 걸어서 1㎞ 거리에 있다. 흥미롭게도 기원전 2세기 최대 규모를 자랑한 아르테미스 신전이지만, 19세기 들어서기까지 구체적인 위치가 어디인지 수수께끼였다고 한다. 1869년, 6년간의 탐사 끝에 아르테미스 신전을 발견한 것은 영국 고고학팀이다. 부서진 작은 간판을 따라 아르테미스 신전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좁은 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기둥 하나가 보일 뿐, 고대 신전이란 느낌이 전혀 안 드는 적막한 분위기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고대 동전 판매상만 넘칠 뿐, 안내간판이 없다면 아르테미스 신전이란 사실조차 알아내기 어렵다.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곳이었지만, 2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99.99%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폐허 그 자체다. 고대도시 에페수스에 가기 전에 들르는, 5분짜리 셀카 관광지가 ‘큰 아데미’의 현실이다.
   
   청동기시대 이래 3000년 이상 성지로 통해온 곳이 아르테미스 신전이지만, 서기 4세기를 기점으로 흙먼지로 변해간다. 기독교가 국교로 정착되면서 유일신에 어긋나는 이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된다. 기독교도들의 눈에 아르테미스 신전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우상의 상징으로 비쳤다. 당시 에페수스 시민들의 대부분이 아르테미스 여신을 믿는 신자들이다. 신전을 먼저 파괴해야만 기독교 포교가 쉬워진다. 로마가 가진 공권력을 동원해 아르테미스 신전 주변에 넘치던 수많은 입상들을 하나씩 처분한다. 성전 아르테미스 신전도 철저히 파괴했다. 대규모 기둥의 경우 아예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겨져 교회 건축용 재료로 재활용되기도 했다. 이스탄불의 하지아 소피아(Hagia Sophia)는 비잔틴시대 당시는 물론 현재 터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고대건물이다. 하지아 소피아의 수많은 초대형 기둥들은 원래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키던 대리석들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착된 이후 그리스 신전은 교회로 개조되거나, 새 교회 건립용 재료 공급처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도 로마 이후 기독교 교회로, 이후 오스만투르크 시대에는 이슬람 모스크로 활용돼왔다. 적어도 2000여년 전 건립된 건축물들이지만, 미적 감각은 물론 크기나 구조 면에서 손색이 없다.
   
   
▲ 아르테미스의 전신에 해당하는 대지의 여신 시벨르(Cybele). 앉아 있는 여신이다.

   여신을 향한 기원
   
   폐허로 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지만, 고맙게도 박물관을 통할 경우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셀주크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들어선 에페수스박물관 덕분이다. 열심히 볼 경우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박물관으로, 전 세계 어떤 고고학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급 유물들로 메워져 있다. 사실 터키 고고학 여행의 진수는 박물관에서 시작된다. 사전지식과 이미지를 머리에 넣은 뒤 현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 에페수스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르테미스 여신이다. 서기 1세기, 2세기에 만들어진 두 개의 대형 아르테미스 여신이 들어서 있다. 기독교도의 눈과 손을 피해 용케 살아남은 귀중한 유물이다. 어두운 조명 밑에 설치된 두 여신을 통해 2000여년 전 여신을 향해 기원하는 인간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생로병사에 관한 인간의 애원 전부가 아르테미스가 벌린 양팔 사이로 스며들어갔을 것이다. 우상에 대한 무지한 미신이라 단정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각도에서의 해석도 가능하다. 예수는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어떤 대상이라 해도, 인간의 기도와 염원이 극에 달할 경우 설명하기 힘든 기적이 생겨날 수도 있다.
   
▲ 아르테미스 신전 상상도. 파르테논 신전의 거의 두 배 크기였다.

   원래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특징 중 하나는 습지다. 무너진 대리석들 대부분이 물에 잠겨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습지 위에다 기초를 다진 특이한 건축물이다. 지진 때문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습지는 지진에 강하다. 영국 고고학팀이 밝힌 원래 신전의 조감도를 보면 전방 기둥 8개, 측방 기둥 20개로 이뤄져 있다. 전방이 72m, 측방이 129m에 달하는 거대한 신전이다. 얼마나 큰지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파르테논은 전방 기둥 8개, 측방이 18개다. 길이는 전방이 31m, 측방이 70m 정도다. 현재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아테네의 걸작 파르테논의 거의 2배에 달하던 곳이 아르테미스 신전이었다. 크기가 2배라는 것은, 적어도 4배 이상의 하중을 감당해내야만 한다는 의미다. 기둥 하나 크기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 이상이었던 셈이다. 건립에 필요한 모든 석재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10여㎞ 떨어진 대리석 산에서 채굴됐다.
   
   현재 에페수스는 기독교도들을 위한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하다.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성모 마리아가 피난해온 곳이 에페수스였기 때문이다. 아들을 잃은 마리아가 평생 기도로 보냈다는 작은 집이 에페수스 도시를 내려다보는 산 위에 들어서 있다. 마리아가 마지막 승천할 때까지 살았던 산은 아르테미스 신전에서도 보인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약 2㎞ 정도 떨어져 있다. 바티칸이 공인한 산 위의 마리아 집과 고대 7대 불가사의였던 아르테미스 신전. 정통과 이단, 성모와 우상으로 대별되는 존재지만, 필자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고 싶다. 모성애를 잊지 못하는 인간의 고독함이 만들어낸 꿈과 희망으로서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아르테미스다.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신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 대지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로서의 아르테미스다. 신의 어머니이기에 옳고 강하며, 대지의 어머니이기에 사악하고 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용서를 받고 사랑에 의지해 살아가려는 인류 모두의 소원이 아르테미스와 마리아를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성모 마리아 최후의 주거지가 아르테미스 신전 바로 옆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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