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아나톨리아 지방 디디마에 있는 아폴로 신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된 신전을 알렉산더 대왕이 재건했다.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 디디마에 있는 아폴로 신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된 신전을 알렉산더 대왕이 재건했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헤밍웨이.’

유럽을 여행할 경우 반드시 만나게 되는 유명인들이다. 곳곳에서 마주친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주로 헤밍웨이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에서는 나폴레옹을, 그리스·터키로 이어지는 지중해와 에게해 그리고 인도양 주변에서는 알렉산더 대왕과 마주친다. 세 사람의 공통분모는 어디 한 군데 오래 정착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평생 떠돌이로 살았다. 평생의 보금자리도 따로 없다. 곳곳에 흔적만 남겼을 뿐이다.

‘관광 아이콘’이 됐다고나 할까? 관광붐을 틈 타 이들은 비즈니스 재료로 활용된다. 1920년대 파리에서의 헤밍웨이를 더듬는 타임슬립 투어 같은 것들이다. 헤밍웨이가 8살 연상의 아내와 보냈던 신혼집, 자주 갔던 술집, 권투를 즐겼던 체육관, 함께 노래를 불렀던 카페 등등이 모두 관광 코스로 되살아났다. 헤밍웨이가 조금이라도 스쳐 지난 곳이란 이유로 관광상품으로 변해 있다.

헤밍웨이와 나폴레옹, 그리고 알렉산더

세 명의 ‘관광 아이콘’ 가운데 최근 필자가 자주 만나는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2000년 전 지중해·에게해 역사에 주목하다 보면 곳곳에서 알렉산더를 만나게 된다. 알렉산더가 다녀간 도시, 독특한 군사 전술과 전략이 활용된 전장, 알렉산더에 관한 에피소드 등이 고대 그리스 유적지와 그 주변에 널려 있다. 이른바 ‘알렉산더 전설’이다. 필자에게 알렉산더는 향유고래와 같다. 짧은 인생을 통해, 인류 역사의 어제와 오늘 나아가 내일을 헤엄쳐 나간 영웅이다. 대정복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투명한 영혼과 우뚝 선 기상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향유고래는 의도적으로 애교를 부리며 뭔가를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다. 유유히 움직이는 몸동작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가치가 느껴진다. 바로 알렉산더다.

알렉산더상(像)은 알렉산더 전설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단서다. 알렉산더 조각이 있느냐 없느냐는 특정 박물관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알렉산더는 대리석이나 청동을 사용한 입상과 흉상, 두상 등이 다양하게 제작됐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56년에 태어나 33세 때 세상을 떠났다. 흥미롭게도 예수의 일생과 똑같다. 사망 당시 예수의 나이에 대한 이견이 많지만, 33세 생애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당대의 눈으로 보면, 알렉산더와 예수의 위상이 거의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알렉산더는 20세 때 왕위에 오른다. 내부 불화를 해결한 뒤인 기원전 334년, 23세의 나이로 동방원정에 오른다. 왕으로 호의호식하는 길을 버리고 33세에 병사(病死)할 때까지 10년간 야전사령관으로 지낸다. 정복 여정은 무려 3만2000㎞에 달한다. 이미 그의 생전에 알렉산더 조각상이 정복지 곳곳에 세워졌다. 알렉산더는 정복 도중 신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이집트에서는 신과 동격인 파라오 자리에 오른다. 곳곳에 들어선 동상들은 거의 똑같은 격(格)을 갖추고 있다. 신의 얼굴을 대하듯 특별히 정성을 들여 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조각에 문외한이라 해도 주의 깊게 몇 번 볼 경우 알렉산더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예수의 얼굴은 파악하기 어려워도 알렉산더 모습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디디마 신전 입구의 메두사 석상. ⓒphoto 유민호
디디마 신전 입구의 메두사 석상. ⓒphoto 유민호

정복지 곳곳에 세워진 알렉산더 동상들

유럽 박물관의 알렉산더상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류 최초의 영웅인 동시에 당시의 글로벌 대스타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매력적인 외모에다 정열적인 기상이 느껴진다. 50대의 필자에게는 이미 사라진, 청춘의 고결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세계 정복이란 원대한 꿈이 가져다주는 건강한 기상이 가슴속에 파고든다. 워낙 잘 다듬은 작품이란 점도 있겠지만 알렉산더의 모습 그 자체에서 특별한 감동이 전해져온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은 물론, 굵은 목과 빛나는 머릿결이 압권이다. 수려한 헤어스타일과 풍성한 머리숱은 고대 그리스 시대 빈부귀천을 가늠하는 척도다. 알렉산더는 사자의 이미지 그 자체다. 알렉산더는 스스로가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스의 후손이라 믿었다. 잠잘 때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 책을 베개로 사용하는 등,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의 일생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일찍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은 영웅의 공통점 중 하나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를 넘어선, 사자 그 자체로서의 알렉산더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그의 33년 인생은 고대 그리스를 넘어 서방 역사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인류 역사 전체를 아울러 최초로 등장한 진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이전에 등장한 영웅은 신화 속 인물이나 ‘용비어천가’로 탄생된 전제군주에 불과했다. 그리스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대제국의 왕 키루스(Cyrus the Great) 등이 대표적 예다. 알렉산더는 다르다. 알렉산더는 야전생활 10년간 자신의 부하들과 똑같이 생활했다. 구름 위 전제군주가 아니라 함께 먹고 자고 싸운 친구로서의 영웅이다. 공격에 나설 때는 반드시 앞장선다. 그 결과,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전쟁의 화신이 된다. 덕장, 용장, 지장의 면모를 모두 갖췄다.

알렉산더 전설의 흔적과 관련해 최근 방문한 곳은 신전 디디마(Didyma)다. 태양의 신 아폴로를 모시는 곳으로, 터키 아나톨리아 이즈미르(Izmir)에서 에게해 해안을 따라 약 160㎞ 남쪽에 있다. 이번 방문을 포함해 전부 4번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디디마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은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시작됐다. 고대 그리스 도시 마그네시아(Magnesia)의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루브르 특별전시관 때문이다. 아르테미스 신전 전시관은 천장을 통째로 열어 태양광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초대형 공간이다. 마그네시아에서 갖고 온 수많은 유물 파편들이 기원전 5세기 당시 모습으로 재현돼 전시되고 있다. 마그네시아는 아테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가 독배를 마시고 자살한 곳이다. 당시 아르테미스 신전 구석구석을 살피던 중 전혀 뜻밖의 유물을 만나 ‘깜짝’ 놀랐다. 신전의 기둥 받침대 두 개다. 엄청난 크기다. 필자가 지금까지 본 신전의 기둥 중 가장 크다. 무려 2.6m 정도의 초대형 받침대다. 보통 1m를 넘기는 것도 드문데, 두 배 이상 크기다. 디디마에서 발굴한 것이라고 한다.

디디마에 세워진 그리스 최대의 신전

고대 그리스 당시 신전은, 독립공화국 폴리스(Polis)의 자존심이자 얼굴에 해당한다. 신을 통해 안전과 번영을 약속받기 위해 폴리스 모두가 경쟁적으로 건립한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당시 신전의 크기나 화려함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간단하게 당시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하나 있다. 기둥의 크기다. 기둥 받침대, 기둥 하나의 크기나 길이를 보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 수 있다. 기둥 받침대로 판단할 경우, 디디마 아폴로 신전은 필자가 지금까지 접해본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다.

11월 초 디디마 신전은 한국의 한여름처럼 뜨겁다. 태양신 아폴로를 모신 신전답게 달아오른 태양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다. 에게해 태양만큼 강렬한 햇빛도 없다. 루브르에서 깜짝 놀랐던 것처럼, 디디마를 대하는 순간 탄성이 터져나온다. 크고, 넓고, 깊으며 아름답다. 현대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신비함과 엄숙함, 나아가 비장함이 묻어 있다. 신전 내부 전체에 태양빛이 파고드는, 지붕 자체가 없는 개방형 구조다. 아폴로의 축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일 듯하다. 신전의 구체적 크기는 전방과 측방 기둥의 수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오니아 스타일 신전인데 전방이 기둥 8개 38m, 측방이 21개 85m, 후방이 9개 38m로 이뤄져 있다. 전방과 후방 기둥의 수가 다르다는 것은 아주 특이하다. 제사가 이뤄지는 전방을 넓게 활용할 목적으로 기둥 하나를 줄였을 듯하다. 참고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 기둥의 수가 전방 8개 31m, 측방 18개 70m에 달한다. 파르테논에 비해 디디마 신전이 30% 정도 더 크다.

아시아 문화권의 경우 최대 최고의 조형물은 왕의 독점물로 해석된다. 조선 왕실은 중국 왕실보다 ‘반드시’ 작고 좁아야만 한다. 지방관리나 유지가 한양 궁궐보다 더 큰 집을 지을 경우 능지처참이다. 고대 그리스는 다르다. 아테네가 그리스 종주국으로 나선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파르테논보다 더 큰 신전이 그리스 곳곳에 들어선다. 신을 모시는데, 아테네보다 작게 지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각 폴리스의 능력에 맞춰 크기와 넓이, 장식은 자유자재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서방문화의 뿌리는, 신전과 같은 건축물 하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스 사모스섬 박물관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 두상. ⓒphoto 유민호
그리스 사모스섬 박물관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 두상. ⓒphoto 유민호

알렉산더가 복원한 디디마 신전

필자가 디디마에 빠진 것은 크기 때문만이 아니다. 알렉산더 전설과 관계된 특별한 신전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가 디디마에 도착한 것은 기원전 334년, 동방정복에 나선 첫해다. 디디마는 에게해 이오니아 동맹권에 들어서 있었다. 알렉산더가 오기 전 이오니아는 페르시아의 점령지였다. 기원전 8세기에 건립된 디디마 신전은 페르시아에 의해 거의 초토화됐다. 아폴로 청동 입상은 페르시아 왕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알렉산더는 도착 즉시 신전 재건립을 명령한다. 건립비용을 전부 지원한다. 현재의 웅장한 디디마의 모습은 알렉산더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다.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먼지 속에 사라졌을 신전이 바로 아폴로를 모신 디디마다.

아폴로는 음악의 신인 동시에 오라클(Oracle), 즉 신탁에 의한 예언의 신이다. 아폴로 신전은 신을 경배하는 곳인 동시에 신의 목소리를 듣는 ‘특별 서비스’의 현장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12신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존재는 아폴로 단 한 명뿐이었다. 오라클은 그리스 델피(Delphi)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중해·에게해에 수없이 퍼져 있는 아폴로 신전 모두가 행하던 의식이다. 디디마는 델피와 더불어 최고 최대의 오라클 특별 서비스의 현장이었다. 당시 의식은 공짜가 아니다. 오라클 예언에 앞서 돈이나 공물 제공이 필수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알렉산더는 오라클에 빠진, 신탁 추종자로 느껴진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인물이 될 것이란 태몽과 함께 태어난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을 제우스의 아들이라 믿는 근거로 오라클을 활용했을 것 같다. 동방정복에 앞서 그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을 찾았을 때의 에피소드는 오라클에 대한 알렉산더의 집념을 이해하게 만드는 증거다. 당시 그리스 델피의 오라클은 문을 열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오라클을 행하는 처녀사제, 피티아(Pythia)를 강제로 불러 오라클을 주문한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피티아를 강제로 끌어와 자신에 대한 아폴로의 예언이 무엇인지 묻는다. 강권에 못 이긴 피티아는 저항하듯 한마디 던진다. “나에게서 떠나라. 당신은 천하무적이다.(Let go of me! You are invincible.)” 처녀사제의 비명에 가까운 말이지만, 당시 알렉산더는 대만족했다고 한다. 신의 목소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자기최면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알렉산더의 디디마에 대한 자금지원과 특별한 관심은 델피 신탁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듯하다.

2400년 전의 영웅 알렉산더는 지금 유럽에 다시 등장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기도 하다. 200만 인구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공화국(Republic of Macedonia)이 무대다. 2017년도 1인당 국민소득 5442달러의 빈국으로, 가까운 시일 내 북마케도니아공화국(Republic of North Macedonia)으로 개명할 예정이다. 나라 이름을 바꾸자는 데 대해 박수를 칠 사람은 드물다. 국민투표에 의해 최종결정될 사항으로, 판결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마케도니아는 아시아로 치자면 은둔의 나라, 부탄에 비견될 수 있다. 유럽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나라가 왜 개명에 나섰을까? 유럽연합(EU)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EU와 NATO 신규가입은 기존 가입국의 전원 동의를 필요로 한다. 대부분 마케도니아의 가입에 대해 이의가 없지만, 결사반대에 나선 나라가 딱 하나 있다. 마케도니아 바로 밑에 위치한 그리스다. 마케도니아란 이름에 대한 ‘역사 저작권’이 이유다. 나라 이름을 바꾸지 않는 한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의 결의다.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더의 고향이다. 역사가 공인하듯, 알렉산더는 그리스인이다. 아테네 출신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삼았고 그리스어를 사용한 그리스 문화권의 인물이다.

마케도니아공화국과 그리스의 다툼

21세기 마케도니아공화국은 어떨까? 원래 유고연방 소속의 슬라브 문화권 나라로, 그리스어는 물론 헬레니즘 문화와도 무관하다. 그리스가 터키에 예속된 이후 알렉산더의 고향 마케도니아가 슬라브권 유고에 넘어가면서 얼떨결에 그리스의 고토(古土)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마케도니아는 자신의 국가적 브랜드를 알렉산더로 연결시킨다. 마케도니아는 2011년 6월, 수도 스코페에 20m 높이의 알렉산더 기마상을 세우기도 했다. 슬라브 문화권의 마케도니아가 알렉산더를 ‘관광 아이콘’으로 내세워 헬레니즘시대의 정통성을 훔치려 한다는 것이 그리스의 반대 근거다. 물론 마케도니아도 할 말은 있다. 슬라브 문화권이기는 하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마케도니아 혈육이란 점에서 알렉산더의 진짜 후손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EU와 NATO 가입 문제가 닥치면서 급해진다. 결국 두 나라 사이에서 찾은 타협점이 북마케도니아공화국이란 국명이다. 마케도니아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리스가 본류라는 의미의 국명이다.

마케도니아란 이름을 둘러싼 국제분쟁에서 보듯, 알렉산더를 가까이 할수록 헬레니즘 당시 누렸던 영광과 전설을 재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양으로 가득 찬 디디마에 다녀온 지 1주일도 안 지났지만, 다시 찾아가고 싶은 이유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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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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