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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35호] 2018.12.03

나의 아랍어 분투기

수능 최고 인기 제2외국어 4억명이 쓰는 유엔 6대 공용어

노석조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 중동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인 요르단 바카 난민촌의 학교에서 한 난민학생이 카타르개발기금 알 쿠와리 대표(오른쪽)에게 아랍어로 ‘감사해요 카타르’라고 쓴 스케치북을 건네고 있다. photo 뉴시스
얼마 전 치러진 수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2외국어는 중국어·스페인어도 아닌 아랍어였다. 제2외국어·한문 응시생 9만2471명 가운데 6만3825명(약 70%)이 아랍어를 택했다. ‘아랍어 쏠림’ 현상은 아랍어를 잘하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드물어 이를 조금만 공부해도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남들 다 하는 외국어가 아닌 특이 외국어이면서도 취업 등에 쓸모도 있다는 이유로 아랍어를 배우는 ‘진짜 아랍어 학생’도 적지 않다. 최근엔 수험생뿐 아니라 대학생·직장인을 상대로 한 아랍어 온·오프라인 학원이 여럿 생겨나고 있다. 수요가 꽤 있다는 뜻이다.
   
   아랍어는 45년 전인 1973년부터 유엔 6대 공용어로 지정된 ‘외교 언어’다.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연맹 22개국(시리아가 내전 때문에 일시적으로 제외돼 현재 연맹국은 21개국)이 아랍어를 국가 공식언어로 쓰고 있다. 아랍국가가 아닌데 아랍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한 나라도 있다. 차드는 프랑스어, 이스라엘은 히브리어와 함께 아랍어를 공동 공식언어로 삼고 있다. 전 세계 아랍어 구사자는 약 4억2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알면 참 요긴하지만, 아랍어 배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기자가 한 명의 증인이다. 2007년부터 지난 11년간 아랍어 공부를 하면서 여러 경험을 했고 주위의 사례도 보고 들었다.
   
   
   강의실에서 배운 아랍어, 거리에선 안 먹혀
   
   기자는 스물다섯이던 2007년 9월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훌쩍 이집트로 떠났다. 카이로대학 아랍어 연수 목적이었다.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 미리 아랍어 공부를 하고 싶어도 교재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 도서관에 가 뒤져서 나온 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고고학 서적 정도였다. 명색이 대학 도서관인데 이렇게 자료가 없을 수 있는 걸까 의아하고 실망스러웠다. 동시에 카이로대학에 가서 아랍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미개척지로 탐험을 떠나는 각오였다.
   
   아랍어가 28개 알파벳으로 이뤄졌고, 각 알파벳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2007년 10월 카이로대에서 첫 수업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수업을 듣다 보니 지렁이가 꼬리의 꼬리를 문 모습의 아랍어가 조금씩 ‘문자’로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종종 외국인들이 ‘밝다’ ‘맑음’ 같은 한글 글씨를 보고 퍼즐이나 미로같이 생겼다고 한다. 기역(ㄱ)·니은(ㄴ)·디귿(ㄷ)을 모르니 글씨를 이미지 덩어리로서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알파벳을 알고 모를 때 차이는 이처럼 크다.
   
   알파벳을 익혀갈 즈음 교수가 “이거 얼마예요?” 같은 회화 표현을 가르쳐줬다. 신이 났다. 얼른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가 배운 표현을 현지인들에게 써보고 싶었다. “아이나 히야 마하타트 메트로(전철역은 어디에 있나요)?” 이 문장을 입에 밸 때까지 반복해 연습했다. 수업 끝나자마자,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거리로 달려나갔다. 두리번거리며 이 표현을 쓸 대상을 찾았다. 마침 인심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다가왔다. 다시 한번 속으로 ‘아이나 히야 마하타트 메트로’를 연습하고선 아저씨가 가까이 왔을 때 그를 붙잡고 이 문장을 큰 소리로 내뱉었다.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강의실에서 교수는 기자(당시 대학생)의 발음을 듣고 “뭄테~즈”라며 아주 좋다고 칭찬까지 했었다. 아저씨가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분명히 아저씨가 기자의 아랍어 질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습 결과는 대실패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랍어는 문어체와 구어체가 엄격히 구별된 언어였다. 대학 강의실에서 배운 아랍어는 ‘푸스하(표준 아랍어)’로 일종의 문어체였다. 강의실 밖 거리에선 ‘푸스하’는 거의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암미야(비표준·방언)’라는 구어체 아랍어를 썼다. 거리와 시장에서 강의실에서 배운 ‘푸스하’를 쓴다는 건 갓 초등학교 들어간 아이에게 어려운 한자어로 대화 나누는 것만큼 어색한 것이었다.
   
   영어는 수업시간 배운 표현을 얼마든지 강의실 밖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실전 연습을 통해 외국어를 금세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아랍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푸스하’와 ‘암미야’ 아랍어를 각각 공부해야 했다. 사실상 두 개의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문어체이고 구어체라고 해도 얼마나 크게 다르겠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차이는 상당하다. 예를 들어 문어체로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는 ‘마다 투리드’인데, 구어체로는 ‘인타 아이즈 에’이다. 같은 단어가 하나도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좌절했다.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며 밤잠을 설쳤다. 아랍어라는 생소한 언어 하나 익히기도 버거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종류의 아랍어를 같이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다른 아랍어
   
   몇 달 뒤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같은 반 멕시코·파라과이 친구와 함께 이집트 시나이반도와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갔다. 아랍어도 좀 배웠으니 팔레스타인이라는 이집트 외 다른 아랍 지역에 가서 말을 좀 써보기로 했다.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해 이집트 구어체 아랍어로 “이흐나 아이진 이쉬랍 아흐와. 핀 카페 울라입 민 히나?”라고 팔레스타인 한 노인에게 물었다. 아랍 전통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가까운 카페가 어딨느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는 표정을 짓다가 껄껄 웃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집트 구어체를 쓰지 말고 팔레스타인 아랍어를 쓰라”고 했다.
   
   또 한 번 좌절했다. ‘푸스하’는 어느 아랍 국가에서든 통하긴 한다. 하지만 식자층이 아닌 사람들에겐 구어체를 써야 하는데, 이게 나라·지역마다 다 달랐던 것이다. 모로코 아랍인과 아부다비 걸프 아랍인이 만나면 대화가 잘 안 통할 정도다.
   
   아랍어 글씨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한글·영어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언어와 정반대다. 또 아랍어 단어는 사실상 자음만으로 연결돼 있다. 모음이 없다. 한글로 ‘가자미’라고 쓰는 걸 아랍어로는 ‘ㄱㅈㅁ’라고 자음만 나열한다. 그래서 알파벳 외 발음 기호를 표시해주지 않으면 정확히 단어를 읽거나 그 뜻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힘든 만큼 성취감도 큰 걸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숱하게 들면서도 그 와중에 익힌 아랍어로 현지인과 몇 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원활히 의사소통을 하고 나면 그렇게 신이 났다. 외국어는 마법 주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간 고난도 마법을 연마한 영화 속 주인공 해리포터 같은 ‘아랍어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2009년 카이로대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지내면서도 지난 11년간 꾸준히 서울에 사는 아랍인을 만나며 공부를 했다. 휘발유처럼 아랍어 능력이 금세 증발해 사라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증발 사태(?)를 방지한 덕에 현재 국제부 기자로서 일하는 데 아랍어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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