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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37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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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겨울여행의 매력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여울  작가 

▲ 스페인 말라가의 겨울 야경. 말라가해변은 겨울에도 섭씨 10도가 넘을 정도로 따듯하다. photo 뉴시스
겨울여행에는 유행이나 시류를 거스르는 묘미가 있다. 겨울 동안에는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명소도 있고, 아무리 유명한 장소도 막상 겨울에 가면 관광객이 거의 없어 스산하고 휑뎅그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유럽은 겨울에 해가 일찍 지기에 오후 3시만 되면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곳도 많다. 가끔은 눈 속에 고립되어 한동안 나오지 못할 위험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거의 허리 위까지 차오르는 거대한 눈더미를 헤치며 씩씩하게 걸어다닌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겨울여행이 좋다. 사람을 더욱 씩씩하고 용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쉽게 움츠러들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바깥에 나가기를 꺼려하던 나도 ‘생에 오직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소중한 겨울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저절로 따스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게 된다. 게다가 가까운 제주도에만 가도 서울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를 만날 수 있기에 겨울여행은 혹한을 피해 따스한 휴식처를 찾는 모험이 되기도 한다.
   
   여름여행의 생생한 활기도 좋지만 겨울여행의 쓸쓸함과 고즈넉함은 더욱 매혹적이다. 겨울여행은 뜻밖에 실용적인 측면도 있다. 인파에 떠밀려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일도 없고, 매표구 앞에 길게 늘어선 행렬 앞에서 한숨짓지 않아서 좋다. 여름 성수기에 비해 숙박료와 비행기표값, 음식 가격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맹렬한 추위와 낮은 일조량을 견딜 수 있는 몸의 체력, 그리고 떠들썩한 인파 속의 흥성스러움보다는 홀로 있는 시간의 한적함을 기쁘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체력. 이 두 가지를 단단히 준비할 수 있다면 겨울여행은 떠나기 전의 모든 걱정을 단번에 날려버릴 온갖 다채로운 매력을 품어안은 감성의 보물창고가 될 수 있다.
   
   
   겨울여행 초보자라면
   
   겨울여행 초보자에게는 스페인을 추천하고 싶다. 일단 영국이나 독일에 비해 평균기온이 훨씬 높은 편이며 특히 스페인 남부는 겨울에도 한파를 걱정할 날이 많지 않다. 플라멩코의 본고장 세비야, 프라도미술관이 있는 마드리드는 겨울에 가도 그 매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겨울에는 말라가해변의 뜨거운 열정을 맛볼 수는 없지만 플라멩코 공연이나 카르멘 같은 명불허전의 오페라는 겨울에도 따스한 실내에서 그 진가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말라가해변은 겨울에도 섭씨 10도가 넘을 정도로 따뜻한 날들이 많기 때문에 맹추위를 피하는 한겨울의 피난처로 스페인은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여름에는 너무 사람이 많아 일일이 관광객들의 눈을 맞출 수도 없지만 겨울에 톨레도 골목길 곳곳을 걷다 보면 1시간 전에 봤던 외국인을 또다시 우연히 만나 서로 반갑게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담소를 나눌 여유도 즐길 수 있다.
   
   겨울여행은 좀 더 천천히 도시를 산책하는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현지 주민들도 훨씬 친절하고 반갑게 관광객들을 맞이해준다. 한겨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도 아름답다. 잿빛 공업도시 빌바오를 일약 세계적인 관광지로 도약시킨 미래지향적 건축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건축이 한 도시의 운명뿐 아니라 주민들의 전반적 복지와 생활수준은 물론 예술에 대한 감수성까지 자극하는 문화적·심리적 영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겨울에는 여름보다 일찍 문을 닫지만 대부분 주말에도 문을 열기 때문에 추운 겨울날 따스한 커피와 빵이 그리울 때 박물관 카페테리아를 방문하면 아름다운 예술작품과 함께 따스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소 춥고 일조량이 매우 적지만 한겨울의 독일 여행도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지금은 멋지게 복원되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혹하게 폭격을 당한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교회의 웅장하면서도 쓸쓸한 폐허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상흔을 오래오래 곱씹게 만들어주었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에 고스란히 아로새겨진 전쟁의 상처, 고풍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전쟁의 흔적들 속에는 포탄과 총알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기억하면 고통스러우니 대충 잊고 넘겨버리기’가 아니라 ‘반드시 똑똑히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역사’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는 유적이다.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껴안은 어머니’상이 있는 베를린의 노이에바헤는 추운 겨울 눈이 쏟아질 때 더욱 슬픈 느낌을 준다. 죽은 아이를 껴안고 한없는 슬픔에 잠겨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눈을 맞고 비를 맞으며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무는, 가눌 수 없는 그리움과 아픔을 형상화한다.
   
   
▲ 겨울 운무에 젖은 뉴욕 브루클린다리. photo 뉴시스

   브루클린다리로 쏟아지던 겨울 햇살
   
   한겨울 바람 씽씽 부는 뉴욕도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다리를 건널 때, 따스한 겨울 햇살이 거대한 철교 위에 금가루처럼 화르르 부서지며 쏟아지는 장면은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장엄한 풍경이었다. 브루클린박물관의 원주민 미술 컬렉션은 방대한 작품 수와 뛰어난 디스플레이로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 인디언의 예술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브루클린박물관의 원주민 미술 컬렉션은 초기 미국의 개척자들이 잔인하게 파괴한 문명이 얼마나 소중한 인류학적 가치를 지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몇 년 전 이사하며 새로운 건축으로 탈바꿈한 휘트니미술관은 저녁 7시부터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바로 7시부터는 ‘내고 싶은 만큼 입장료를 내는’ 이벤트다. 보통 15달러 정도 하는 높은 미술관 관람료가 부담스러운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벤트다. 에드워드 호퍼, 백남준, 조지아 오키프 등의 뛰어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석양이 지는 뉴욕의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가장 좋은 위치에서 볼 수 있는 카페도 휘트니미술관의 명소가 되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언제 봐도 놀라운 유럽미술 전시 공간은 몇 번을 다시 가도 또 다른 느낌을 선물했다. 고흐의 방, 모네의 방, 로뎅의 방, 들라크루아의 방이 따로 있을 정도의 방대한 전시 규모뿐 아니라 관람객들이 특정 시기의 작품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관람하며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게 다양한 설명과 친절한 안내문들을 여기저기 배치해놓았다. 인류가 만들어온 온갖 ‘악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악기박물관도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내부에 있는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옥상에서 바라본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주변의 탁 트인 풍경은 아무리 추워도 더욱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은 그리운 이미지로 남았다.
   
   한국에 맹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도 하와이나 두브로브니크는 일 년 내내 따스한 기후를 만날 수 있다. 2월의 두브로브니크 시내는 아직 추웠지만 해변의 카페로 들어가자 외투를 벗어야 할 정도로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심지어 2월에도 훌훌 옷을 벗어던지고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하와이는 항상 쾌적한 여름 기온을 유지하기 때문에 언제나 꽃들이 만발해 있다. 추워서 문을 닫는 장소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 하와이에서의 3박4일의 짧은 일정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일 때문에 귀국하기 전날, 하와이의 한 슈퍼마켓에서 점원이 “언제까지 하와이에 있을 거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아쉬운 얼굴로 “내일 가야 한다, 하지만 이곳이 너무 따뜻해서 돌아가기가 싫다”고 이야기하니 점원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언젠가 또 오렴, 하와이는 언제나 열려 있어.”
   
   
   때를 거슬러 여행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하모니
   
   한국의 계절과 다르게 시간을 역행하는 장소들도 아름답지만, 한국 못지않게 추운 곳들에서도 겨울여행만의 독특한 낭만이 있었다. 한겨울 영국 일주를 감행했던 나에게 사람들은 “제발 겨울에는 영국에 오래 있지 말아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나의 청개구리 근성은 ‘겨울의 맹추위 속에서도 영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웨일스 지방도 아름다웠지만 특히 스코틀랜드 지방이 잊을 수 없는 풍경들로 가득했다. 한겨울 인버네스를 찾아온 여행팀이 오직 두 팀밖에 없어서 배가 출발하지 못할 뻔한 적도 있었고, 에든버러는 겨울바람이 너무 혹독해서 장갑과 목도리를 하나씩 더 사서 두르고도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겨울 여행의 스산한 분위기에는 뭔가 눈을 뗄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바로 ‘여행하기 어려운 계절’에도 그야말로 ‘때를 거슬러 여행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 장소와 인간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하모니다.
   
   인간은 오직 즐거움만을 위해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기 안의 새로운 힘을 느껴보는 탐험에 도전하고 싶어서, 때로는 누가 뭐래도 아무리 힘들다고 말려도 ‘지금 이 순간 꼭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서 한겨울에도 여행을 떠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는 순간, ‘마음속의 여행 온도계’가 점점 올라가는 순간, 나는 겨울여행을 준비한다. 배낭 하나 달랑 들고, 때로는 짐도 제대로 싸지 않은 채 따스한 제주도로 훌쩍 떠나기도 한다. 당신이 많이 지쳐 있다면, ‘겨울은 성수기가 아니니 별로 재미가 없을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겨울여행을 시도하지 못했다면, 더더욱 겨울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처럼 뜨거운 우리 마음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시간, 겨울여행의 낭만이 차오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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