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토박이들이 ‘진짜 베네치아’라고 평가하는 키오자의 야경. ⓒphoto hotelbristol.net
베네치아 토박이들이 ‘진짜 베네치아’라고 평가하는 키오자의 야경. ⓒphoto hotelbristol.net

베네치아와 처음 만난 것은 1994년이다. 인터넷이 탄생하고, ‘글로벌 시대’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때다. 외관상 2018년 말 베네치아를 당시와 비교해보면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중세 유럽의 뉴욕으로 군림했던 1000년 왕국 베네치아의 모습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똑같을 것이다. 500여년 전 만들어진 산마르코광장과 그 주변 풍경을 현재와 비교해봐도 90% 이상 똑같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보면 전혀 달라진다.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로 포장된 글로벌 시대가 낳은 ‘하향평등’이 베네치아 곳곳에 넘친다. 글로벌 시대는 전 세계에 통용될 공통분모, 즉 글로벌 스탠더드를 필요로 한다. 좋게 말하자면 ‘간편하고 싸며 익숙한’ 세계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명암은 교차한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베네치아로 몰려들면서 어제의 전통과 역사가 한순간 무너진다. 주(住)는 그대로지만, 생활 속에 필요한 의(衣)와 식(食)에 관한 급격한 변화가 베네치아에도 불어닥친다. 베네치아는 인구 10만도 안 되는, 100% 관광 수입에 의존해 살아가는 도시다. 2017년 한 해 동안 무려 44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이 외지인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베네치아 내부가 무너진다.

장인들이 공들여 만들던 베네치아 무라노(Murano)의 유리공예, 로코코(Rococo)시대 유럽 귀족사회의 상징인 니트 레이스, 카니발축제의 상징인 가면과 의상, 리알토(Rialto)다리 주변의 신선한 시푸드…. 24년 전 필자가 베네치아에 처음 왔던 때만 해도 곳곳에 널려 있던,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던 베네치아의 일상들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 이후는 소수의 상위계층만을 위한 고급문화로 변해간다. 그 대신 들어선 것은 1유로짜리 ‘메이드 인 차이나’ 기념품, 맥도날드 햄버거와 케밥, 동양인들로 채워진 베네치아 부엌이다. 베네치아에 온 기념으로 이국적 정취에 젖어보고 싶겠지만, 관광객을 위한 먹고 입는 일상의 90% 정도는 어제의 베네치아와 무관하다.

베네치아에 진짜 베네치아는 없다

한 끼에 무려 20유로나 하는 먹물오징어 파스타 원재료는 아프리카산이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부엌에서 묵묵히 요리를 하는 사람은 방글라데시인, 영어·독일어·프랑스어로 능숙하게 서비스를 하는 식당 종업원은 알바니아인, 베네치아 전통을 120% 복원했다는 카니발 가면의 장인은 슬로베니아인이다. 배경이 베네치아와 무관하다고 해서 질적으로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럽의 중세도시까지 간 이상, 뭔가 베네치아만이 가진 오리지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다. 산마르코광장에서 먹은 15유로짜리 베네치아 정통 피자의 요리사가 네팔 출신이었다고 할 때 어떤 느낌이 들까?

미국에 ‘페이크 뉴스(fake news)’가 기승을 부리듯이, 베네치아에는 ‘페이크 베네치아’ ‘페이크 이탈리아’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메이드 인 이탈리아’란 포스터가 베네치아의 새로운 오리지널 중 하나로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베네치아인이 직접 경영하는 가게 앞에 ‘반드시’ 붙는 포스터다. 10분의 1 정도 가격의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대항하기 위한 ‘절규’겠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관광객은 물론 이탈리아인조차 무라노 제품이 아닌, 중국산 페이크 유리잔을 선호한다. 사실 100유로짜리 베네치아산과 5유로짜리 중국산의 질적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냉동 여부나 원산지와 무관하게, 그냥 검은색 소스로 뒤덮여 있다면 베네치아의 명물 먹물오징어 파스타로 간주된다. 베네치아에서 발견되는 오리지널 베네치아는 아주 극소수에 그친다. 선진국 대부분이 그러하듯 베네치아 역시 인구감소가 극심하다. 오리지널 베네치아는 고사하고, 베네치아인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변해가는 판이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앞으로 10년 뒤쯤에는 얼마 안 남은 오리지널조차 전부 사라진, ‘페이크 베네치아’의 무대가 될 것이다.

‘페이크 베네치아’에 민감해진 것은 베네치아에 장기체류하면서부터다. 10여년 전부터였지만, 베네치아 남쪽에 길게 이어진 섬 리도(Lido)가 겨울의 거주지다. 매년 갈 때마다 베네치아의 추락이 피부로 느껴진다. 가장 예민한 것은 음식이다. 베네치아인들이 경영하던 레스토랑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외국인들이 밀려든다. 맛도 엉망이지만, 더불어 가격과 서비스도 뒤죽박죽이다. 베네치아에 들르면 누구나 마시는 스프리츠(Spritz) 한 잔 가격이 5유로까지 급등했다. 관광객 메뉴라는 이름의 20유로 이하 코스요리도 있지만, 냉동제품을 전자레인지로 돌려 나온 음식이라 보면 된다. 베네치아인들은 거의 외식을 하지 않는다. ‘페이크 베네치아’의 실상을 알기에,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필자 역시, 베네치아 식당에 의존하지 않는 ‘자취생활’을 당연시하게 됐다. 맛이 떨어지든, 값이 올라가든 베네치아인들과 무관하다. 베네치아에 살지만, 베네치아인과 유리된 도시가 1000년 왕국 베네치아의 실상이다. 관광객 필수코스인 산마르코광장도, 정작 베네치아인들에게는 1년에 2~3번 정도 찾는 ‘외국인의 땅’으로 받아들일 정도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키오자.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에서 배와 버스로 2시간 정도 가야 한다. ⓒphoto 위키피디아
공중에서 내려다본 키오자.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에서 배와 버스로 2시간 정도 가야 한다. ⓒphoto 위키피디아

2시간의 노스탤지어 여정

“키오자(Chioggia)에 가면 베네치아가 보인다. 키오자만이 아니라, 키오자까지 가는 2시간 정도의 여정을 오리지널 베네치아 체험이라 보면 된다.”

베네치아의 추락을 베네치아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묻자 100% 베네치아인 프란체스코의 반응이다. 필자의 리도 숙박지 주인이자, 베네치아에서 타악기 관련 음악활동을 하는 30대 초반의 이탈리아인이다. “베네치아 침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베네치아 도시 자체도 물속으로 침하하고 있지만, 베네치아의 전통과 역사도 글로벌 체제에 맞춰 추락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 최대 희생자 중 하나가 베네치아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지만, 그래도 키오자를 통해 베네치아의 가치를 기억하고 재발견한다.”

프란체스코의 생각을 다른 베네치아인들을 통해 재확인해봤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싱싱한 베네치아 시푸드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먹을 수 있는 특별요리로 변해버렸다. 키오자야말로 베네치아 시푸드의 맛과 영광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싸고 푸짐하기도 하지만, 소박한 베네치아인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다.”

키오자는 베네치아에 온 외국인 관광객 중 극히 일부분만이 찾는 곳이다. 베네치아와 주변 지역주민들에게만 알려진 작은 어촌으로, 섬이 아닌 육지에 붙은 항구도시다. 베네치아에서 남쪽으로 25㎞ 정도 떨어져 있다. 베네치아 주변 작은 섬들이 그러하듯, 가는 길도 간단하지 않다. 자동차로 가면 20분 정도 거리에 불과하지만, 산마르코광장에서 출발하면 배를 갈아타는 등 2시간30분 정도 잡아야 갈 수 있다. 우선 산마르코광장에서 여객선 5-1번을 타고 20분간 정도 가면 리도가 나타난다. 여객선 운임료는 7유로50센트에 달한다. 그러나 한 달 단위로 끊을 경우 엄청 싸다. 5년간의 회비 50유로와 함께, 한 달 단위로 끊을 경우 38유로면 된다. 한 달 내내 베네치아와 주변의 수많은 섬들을 돌아다녀도 38유로면 된다. 이탈리아인, 외국인 똑같이 적용되는 교통비다.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여객선은, 필자가 느끼는 베네치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배에 오를 때마다 행복지수가 100으로 올라간다. 여객선 맨 뒤에 들어선 4인용 야외좌석은 베네치아 풍경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비행기 퍼스트클래스 부럽지 않은 곳이다. 찬바람도 불고 배의 엔진소리로 귀청이 얼떨떨해지지만, 배에 오르는 순간 맨 뒤 4인용 야외좌석으로 달려간다. 고맙게도 관광객이 드문 겨울철에는 거의 텅 비어 있다. 배가 스쳐지나가는 베네치아의 파도는 높고도 험하다. 깊어야 수심 10m 정도겠지만, 여객선 사이로 퍼져나가는 파도의 높이는 태평양에 비견될 정도다. 따라서 야외좌석의 경우 격한 파도로 인해 옷이 젖기도 한다. 그렇지만 적당한 거리와 함께 바라본 세상이 한층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다.

리도는 독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의 소설이자,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의 배경이 된 섬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음악가 구스타프가 머물렀던 ‘호텔 데 방(Grand Hotel des Bains)’은 매년 열리는 베네치아 영화제의 중심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에게 있어서 리도는 영화가 아닌, 장렬한 종교의식의 현장으로 와닿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베네치아는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의 부국으로 부상한다. 비잔틴제국과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십자군의 출발지가 베네치아였다. 교황의 보증하에 전함과 수송선을 제작해 유럽 각국 십자군에 팔았다. 리도는 당시 십자군 전함과 수송선이 집결해 있던 베네치아의 외곽항구였다. 리도 한복판을 지키는 ‘산 니콜(San Nicolo di Lido)’ 교회 주변이 십자군 출발지다.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인물이 산 니콜이다. 당시 교회 앞 바다 전체가 수백 척의 십자군 배로 메워졌다. 산 니콜 교회는 십자군 출발에 앞서 열린 장엄한 의식의 현장이다. 유럽 각국에서 몰려든 수만 명의 기사들이 20㎏이 넘는 완전군장 상태에서 참가한 신성한 의식이다. 리도 주거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어 자주 들르는 교회지만,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1000년 전 성전(聖戰)에 임했던 십자군 기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다 쪽에서 본 펠레스트리나 공동묘지. ⓒphoto 유민호
비다 쪽에서 본 펠레스트리나 공동묘지. ⓒphoto 유민호

펠레스트리나의 버스종점은 공동묘지

키오자로 가기 위해서는 리도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리도 중앙선착장 바로 앞에서 타는 11번 버스다. 잘 알려져 있듯이 베네치아에는 자동차가 별로 없다. 자동차에 오감을 뺏기지 않은 채, 마음대로 걸어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평화로운 것인지 절감할 수 있다. 6.8㎞ 길이에 달하는 길고 긴 섬 리도는 베네치아 본섬과 달리 자동차가 달린다. 육지와 리도를 연결하는 차량운반용 대형선박이 1시간마다 오간다. 11번 버스는 1시간마다 한 대씩 다닌다. 한두 시간 전에 미리 가서 리도를 둘러본 뒤 버스에 오르는 것이 좋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베네치아영화제의 현장인 ‘호텔 데 방’까지 갈 수 있다. 11번 버스는 거의 직행에 가까운 버스다. 중간에 정거장이 거의 없이, 타는 순간 고속으로 달린다. 키오자행 주민을 위한 특별운송선이란 성격이 강하다.

약 25분 정도 달리면 리도의 남쪽 끝부분에 도착한다. 버스를 포함한 자동차 수송용 대형선박이 기다리고 있다. 리도 바로 아래에 이어진 또 다른 섬, 펠레스트리나(Pellestrina)로 향하는 배다. 리도와 더불어 베네치아를 지키는 남쪽 방파선이자 방어선에 해당하는 길이 12㎞의 섬이다. 리도처럼 길쭉한 섬으로, 폭은 길어야 200m 정도에 그친다. 버스를 실은 배는 15분 만에 펠레스트리나에 도착한다. 운송선에 머무는 동안 버스 밖으로 나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리도에서도 부분적으로 볼 수 있지만, 베네치아의 노스탤지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정이다. 더불어 펠레스트리나에 도착하는 순간, 버스는 갑자기 완행으로 돌변한다. 과장하자면 100m에 한 번씩 선다. 버스정거장이 촘촘히 이어져 있다. 버스 승객의 대부분은 60대 이상 노년층이다. 베네치아와 리도가 그러하듯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큰 문제다. 동물보호단체가 보면 비난할 듯한 두꺼운 동물모피를 입은 노인도 많다. 21세기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일 듯하다.

펠레스트리나 역시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산마르코광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공간이지만, 전혀 다른 세상이다. 생선은 물론, 베네치아 지역의 명물인 채소 ‘라디키오(Radicchio)’ 생산지로 유명하다. 한국의 배추와 비슷한 라디키오는 11월과 12월이 제철이다. 바닷바람 속에서 자라는 모질고도 강한 라디키오가 펠레스트리나 겨울 풍경 중 하나다. 펠레스트리나의 버스종점은 남쪽의 공동묘지다. 거기에 키오자로 향하는 여객선이 기다리고 있다. 바다와 더불어, 버스와 공동묘지, 그리고 여객선이 교차하는 풍경이다. 펠레스트리나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이 공동묘지에 묻힌다고 한다.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와 여객선을 사후(死後)에도 만날 수 있다.

선술집서 만난 ‘메이드 인 베네치아’

펠레스트리나에서 키오자까지의 여정은 약 25분 정도다. 250명 정원의 큰 배지만, 승객은 10명도 안 된다. 산마르코광장에서 키오자까지의 여정은 ‘배-버스-배-버스-배’로 이어지는 다섯 코스인 셈이다. 이것이 한 달 38유로짜리 정기운행권 하나로 해결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키오자는 베네치아를 적(敵)으로 하면서 생존해온 특이한 지역이다. 결국 베네치아가 점령하지만, 숙적 제노바가 14세기에 점령해 베네치아의 목을 겨누는 비수로 활용한 땅이다. 육지의 반(反)베네치아 지역을 통합한, 제노바 주도하의 베네치아 포위작전의 최전선이 키오자다. 제노바는 프랑스 영향권하의 해상도시국가다. 비잔틴과의 무역을 통해 유럽 강국으로 부상한다. 비잔틴 방어를 위해 최후까지 지원병을 보낸 곳이 제노바인 데 반해, 비잔틴제국 멸망을 조장하며 반사이익을 노린 곳이 베네치아다. 근본부터 전혀 안 맞는, 숙적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키오자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제노바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인이라면 단 한마디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프랑스 악센트가 강한 사투리를 사용한다.

베네치아 주변의 12월 밤은 대략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다. 한순간 해가 넘어가는가 싶더니, 키오자 항구 전체가 주황색 불빛으로 채워졌다. 항구도시의 공통분모겠지만, 깊고도 짙은 정적만이 기다리고 있다. 관광객은 물론 인적조차 전부 끊어진 신비로운 공간이다. 키오자 안으로 들어갔다. 구도시는 길이가 100m에 불과한 작은 규모다. 중앙의 큰 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일직선 운하를 가진 일종의 인공도시다. 프랑스 문화권의 특징이지만, 일단 운하를 파고 도시 건설에 들어갔다. 키오자에는 자동차도 다닌다. 도시의 수호신은 베네치아와 똑같은, 날개를 단 사자상이다. 키오자 곳곳에 들어서 있다. 작은 크기 때문이겠지만, 베네치아인들은 사자가 아닌 고양이상이라 놀린다.

베네치아 노스탤지어의 증거를 발견한 곳은 키오자 중심지 관공서 바로 앞 선술집이다. 스프리츠 하나를 시키자, 특유의 뷔페형 샌드위치 안주도 함께 제공된다. 샌드위치 5개 정도를 먹었지만, 그래봤자 가격이 1유로50센트다. 양과 가격만이 아니라, 맛이 일품이다. 동양인 주방장도, 영어가 능숙한 동부 유럽인도 없는 ‘메이드 인 베네치아, 키오자’의 현장이다. 이후 영어도 안 통하는 40대 남성과 함께 키오자 내 선술집 10여군데를 전전하며 밤 12시까지 ‘떠들고 퍼마셨다’고 말하면 믿어질까? 고맙게도, 키오자에서 리도로 돌아오는 배와 버스는 24시간 운행된다. 결과론이지만, 감사의 대상은 ‘페이크 베네치아’를 낳은 글로벌 시대일 듯하다. 베네치아 노스탤지어인 키오자를 인생의 한 페이지로 장식할 수 있게 도와준 일등공신이다. 싫든 좋든 대세는 글로벌 시대다.

키워드

#여행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